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25)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225화(225/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외전 16화
* * *
“누나! 들어가서 앉아 있지, 왜 밖에 서 있어?”
“나도 지금 막 왔어. 마침 네가 오는 발소리가 들려서 기다린 거야.”
“나도 멀리서 누나 발소리 듣고 막 뛰어왔는데!”
복도의 건너편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제레미가 록사나의 말을 듣고 기분 좋게 웃었다.
평소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제레미였지만, 록사나를 앞에 두었을 때만큼은 귀여운 남동생이 따로 없었다.
록사나도 그런 제레미를 보고 미소 지었다.
각각의 모친 쪽 피를 더 짙게 이은 두 사람이었으나, 이렇게 서로를 마주 보고 웃는 모습은 누가 봐도 남매라 할 만큼 꽤 많이 닮아 있었다.
“그런데 제레미, 오늘은 좀 피곤해 보이네. 요즘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아니야. 누나보다 하는 일이 많지도 않은데.”
두 사람은 사이좋게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면서 앞에 열린 문을 향해 나란히 걸었다.
그러다 에밀리는 제레미가 록사나의 시선을 피해 문 앞을 지키고 있던 다른 사용인들에게 험악한 눈빛을 보내는 것을 목격했다.
뻐끔거리는 그의 입 모양을 읽자, ‘눈깔 뽑기 전에 안 깔아?’ 라는 문장이 완성되었다.
록사나를 넋 놓고 보고 있던 신입 사용인들이 제레미에게서 스며 나오는 살기를 읽고 화들짝 놀라 서둘러 눈을 내렸다.
묘한 낌새를 느낀 록사나가 제레미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제레미는 무슨 일을 했냐는 듯이 그녀를 향해 천연덕스럽게 방긋 웃어 보일 뿐이었다.
록사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별말을 하지 않고 제레미와 함께 문 안으로 발을 들였다.
에밀리도 언제나처럼 아무것도 못 본 양 고개를 숙인 채 그들을 따라 들어갔다.
* * *
원래 아그리체에는 일가족이 함께 이용하는 식당이 없었다.
지금 록사나와 제레미가 아침 식사를 하러 들어간 곳은 란트가 있던 시절 한 달에 한 번 대만찬을 갖던 장소였다.
원래 란트와 선택받은 사람만 출입할 수 있는 장소였으나 록사나는 그곳의 문을 항시 열어 두었다.
다른 형제들의 출입도 굳이 막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씩 호기심을 표하며 만찬실에 들어와 내부를 구경하거나,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고 기분을 내며 사용인에게 식사나 다과를 주문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물론 가끔은 살벌하게 상석 자리를 다투는 형제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큰 소란을 야기하기 전에 상황이 정리되곤 했다.
만찬실이 공개되면서 전과 달리 아그리체의 이복형제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있는 광경은 심심찮게 목격되었다.
하지만 제레미가 있을 때 이곳에 오는 사람은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제레미와 록사나가 함께 있을 때는 모두 만찬실을 피하는 추세였다.
당연히 제레미의 무시무시한 눈총 때문이었다.
“오늘도 우리밖에 없네. 대부분 이 시간에 아침을 안 먹어서 그런가?”
“다들 게을러빠져서 그래. 보나마나 늦게까지 퍼질러 자다가 오후쯤에나 슬슬 기어 나오겠지.”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록사나가 짐짓 모르는 척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제레미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누나, 이거 맛있다! 여기, 내가 잘라 놓은 걸로 먹어.”
록사나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해맑은 제레미의 얼굴을 보다가 그가 내민 것을 받아먹었다.
그러자 배부른 고양이처럼 제레미가 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쨍그랑!
“아! 죄, 죄송합니다!”
언제 봐도 놀라운 제레미의 이중인격적인 모습을 힐끔거리던 사용인 하나가 나르던 접시를 실수로 떨어뜨렸다.
제레미의 얼굴이 파삭 구겨졌다.
“뭐하는 거야? 아침부터 시끄럽게…… 응? 잠깐.”
그러다 그는 록사나의 구두에 묻은 소스 한 방울을 매의 눈으로 발견했다.
“그거 뭐야? 지금 쏟은 거 누나 구두에 튄 거 아니야?”
식당 안의 온도가 단숨에 싸늘하게 곤두박질쳤다.
“너 죽고 싶어? 이따위로 일하는 놈을 어떤 새끼가 뽑았어?”
록사나의 앞에서 아무리 양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다고 한들 제레미는 제레미였다.
특히 그는 록사나와 관련된 일에서는 자비가 없었다.
새파란 안광이 덜덜 떨고 있는 사용인에게 쏘아 박혔다.
“접시 하나 제대로 못 나르는 손모가지는 달고 있을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네 생각은 다른가 보지?”
“히익……! 저,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레미 수장님!”
“그래, 입도 필요 없겠네. 지금 네가 누구한테 사죄해야 할지도 구분 못 해? 아니면, 그 둔한 머리를 썰어줘야 정신을 차리려고?”
“죄송합니다, 록사나 수장님!”
사색이 된 사용인이 허둥지둥 바닥에 꿇어 앉았다.
아래로 내리깔린 록사나의 시선이 그녀를 향해 조아려진 남자의 머리와 작은 얼룩이 진 구두를 차례로 스쳤다.
벌벌 떨고 있는 남자 대신 뒤에 서 있던 에밀리가 앞으로 나와 더러워진 록사나의 구두를 닦았다.
“요즘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실수가 잦구나.”
이윽고 줄곧 다물려 있던 록사나의 입이 열렸다.
“새로 들어온 인원이 많으니 일에 익숙해지려면 당연히 시간이 걸리겠지만……. 같은 실수가 반복되면 그건 본인의 역량 부족, 혹은 단점을 개선할 의지가 없는 것으로 봐도 되겠지.”
비단 지금 접시를 깬 사람에게만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만찬실 안에 있던 사용인들이 긴장해 몸을 곧추세웠다.
덜덜 떨고 있는 사용인을 내려다보는 눈빛이 제레미만큼 서늘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따뜻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록사나는 앞에 있는 사람에게 무서운 벌을 내리거나 곧바로 해고하지는 않았다.
“다음엔 조심하렴. 기껏 새로 들인 일손을 이렇게 빨리 교체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가, 감사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바닥에 떨어진 걸 치우고 나가 봐.”
사용인은 거듭 감사를 표하며 록사나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제레미는 급히 바닥을 청소하고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을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정말, 누나는 너무 착하다니까. 저런 쓸모없는 걸 봐주고.”
“네가 항상 내 몫까지 대신 걱정하고 화를 내주니까 내가 나설 일이 없는 거잖아. 너도 아침부터 마음 상해하지 말고 기분 풀어.”
록사나가 다정하게 말하자, 제레미도 언제 덜떨어진 사용인 때문에 심사가 뒤틀렸었냐는 듯이 얼굴을 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사용인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에밀리는 제레미가 조금 전 록사나의 구두를 더럽힌 사용인의 얼굴을 따로 기억하려는 듯이 예리한 눈으로 주시하던 것을 떠올렸다.
그렇게 오늘 아침에도 제레미는 만족스럽게 록사나와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문을 나서자마자 그는 금방 죽상이 되었다.
오늘은 오전부터 아그리체 영역 내부를 시찰하러 외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록사나는 꾸물거리는 제레미를 토닥여 보낸 뒤 그녀의 집무실로 이동했다.
“에밀리, 오전에는 집무실 밖으로 나갈 계획이 없으니 다른 걸 하면서 시간을 보내도 돼. 날씨도 좋은데 안에만 있으면 아깝잖아.”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 록사나가 남긴 말에 에밀리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하지만 정말 자리를 떠날 마음은 없었다.
록사나가 오전 업무를 보는 동안 에밀리는 문밖에 서서 언제든 그녀가 필요로 할 때 움직일 수 있도록 대기했다.
바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활기찬 소음이 그녀가 있는 곳까지 작게 떠밀려 왔다.
고작 두 계절이 지났을 뿐인데도 아그리체의 모습은 상당히 많이 바뀌어 있었다.
내부 사람들이 많이 교체된 것도 분위기를 바꾸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하루에도 몇 명씩 사람이 죽어 나갔던 예전에는 모두가 작은 숨소리 하나 내는 것조차 조심했었다. 그래서 저택에는 늘 정적인 공기만이 가득 고여 있었다.
“에밀리, 오늘도 여기 있구나! 안녕!”
지금 막 청소 도구를 들고 에밀리가 있는 복도로 들어선 길레타를 포함한 다른 신입들은 그런 사실을 모를 터였지만 말이다.
에밀리는 손을 붕붕 흔들어 인사하는 길레타에게 또 고개를 까딱해 화답했다.
그렇게 긴 시곗바늘이 몇 칸 더 움직여 정오를 넘겼을 때, 눈에 익은 또 다른 사람이 에밀리의 앞에 나타났다.
“안녕, 에밀리. 안에 들어가도 되니?”
한 달 전 중간 구역의 거처를 떠나 아그리체로 돌아온 그리젤다였다.
그녀는 오늘도 피로한 낯을 하고 있었다.
어제 록사나에게 언질받은 부분이 있어 에밀리는 문 앞에서 비켜섰다.
그리젤다가 록사나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고 난 뒤 안에서는 이야기가 제법 길게 이어졌다.
방음이 잘 되어 있어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에밀리는 그리젤다가 록사나를 찾아온 이유를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이번에 록사나가 아그리체 소속의 주술사들을 그리젤다에게 맡긴 일 때문일 것이다.
원래 아그리체에서 일하던 주술사들은 거의 노예처럼 부려지던 사람들이었다.
란트는 밖에서 조금이라도 쓸 만한 사람을 발견하면 인신매매 하거나 납치해 와 뼛골까지 빨아먹었다.
당연히 란트가 그들을 밤낮 없이 일하게 한 동력은 공포 정책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일한 만큼 정당한 보수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록사나는 그들에게 몇 가지 제안을 더 했는데, 전부 다 눈이 번쩍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운 내용뿐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여 아그리체에 남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관리를 그리젤다에게 맡겼다.
그리젤다는 생각지도 못했던 록사나의 결정에 당황한 눈치였다.
벌컥.
30분 정도가 지나, 마침내 그리젤다가 록사나의 집무실에서 나왔다.
그녀는 아까보다 피로감 어린 얼굴을 하고 에밀리를 지나쳐 복도를 걸어갔다.
“어휴, 내가 미쳤지, 미쳤어……. 여길 왜 내 발로 기어 들어와서는 이렇게 팔자에도 없는 고생을 사서 하고…….”
그러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는 뒷모습이 에밀리의 두 눈에 박혔다.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가 그리젤다의 원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에밀리는 두 사람의 대화가 록사나의 뜻대로 결론 났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은 그리젤다가 록사나의 말을 따르리라는 사실도.
지금 그녀가 록사나를 좇아 이렇게 아그리체에 돌아와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이후 록사나는 집무실에서 점심 식사를 대충 해결했다.
“에밀리.”
“네, 록사나 수장님.”
“지금 이 명단에 있는 사람들 차례로 들어오게 해.”
그 후에는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그녀가 수장이 되고 나서 새로 차출한 심복들과 몇몇 이복형제들을 따로 불렀다.
지난겨울까지 아그리체의 주요 수입원은 중앙 구역에 있는 도박장과 대부업체, 마약과 독극물 등의 밀거래, 인신매매와 청부업을 비롯한 그 밖의 온갖 위험한 사업체들이었다.
에밀리는 록사나가 하는 일들을 전부 알지 못했지만, 지난봄부터 그런 사업체들을 하나둘씩 정리하거나 내부 방침을 바꾸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록사나는 이런 일들을 쓸 만한 심복들과 형제들에게 일부 분담했다.
데온이 이번 주 내내 아그리체 밖에 나가 있는 것도 록사나가 시킨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똑똑.
“록사나 수장님. 에밀리입니다.”
“들어와.”
그렇게 시간이 더 흘러 어느덧 오후 3시경.
에밀리는 다시 집무실로 돌아와 관련 서류를 보고 있는 록사나에게 쟁반 위에 정리해 놓은 봉투들을 건넸다.
“오전 8시부터 지금 시각인 오후 3시 사이에 도착한 서신들입니다.”
“고마워, 에밀리.”
에밀리가 책상에 내려놓은 것을 힐끗 쳐다본 록사나가 다음 순간 멈칫했다.
특별한 표정이 없던 얼굴에 서서히 온기가 번지며 부드러운 미소가 피어났다.
들고 있던 펜을 놓고 앞으로 옮겨 간 록사나의 손이 연한 푸른빛을 띤 봉투에 닿았다.
에밀리는 록사나가 가장 위에 놓인 페델리안의 서신을 집어 드는 것을 보고 조용히 물러났다.
카시스 페델리안은 여름 동안 거의 두 번 정도 아그리체에 방문했다.
당연히 그때마다 제레미는 심기 불편함을 온몸으로 표출하며 애꿎은 사람들을 쥐 잡듯이 달달 볶아 댔다.
하지만 카시스도 페델리안에서 할 일이 많은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한 번 올 때마다 아그리체에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에밀리는 대신 록사나와 카시스가 떨어져 있는 동안 자주 서신을 주고받는 것을 알고 있었다.
페델리안에서 편지가 올 때마다 록사나의 얼굴에 유독 화사한 꽃이 피는 것도 알았다.
주인의 마음을 감히 속단할 수는 없었지만 에밀리는 록사나가 지금 밤낮 없이 아그리체의 일에 열중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카시스 페델리안이라고 생각했다.
아그리체의 일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가고 나면 지금보다는 여유 시간이 생길 터였으니까.
그럼 카시스 페델리안이 종종 아그리체에 찾아오듯이, 록사나도 카시스가 있는 페델리안에 시간을 내 방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령 에밀리의 생각이 맞다 해도, 역시 지금 당장 가능한 이야기는 아닌 듯했다.
잠시 후 록사나가 다른 일정을 위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두 사람은 보수 중인 마물 사육장을 점검하러 이동했다.
그러던 중에 록사나가 에밀리에게 말했다.
“에밀리, 조만간 페델리안에서 아그리체에 방문할 거야. 이번에는 여름철 마물 토벌이 공식적인 목적이니 규모가 작지 않겠지.”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에밀리는 담담하게 답했다.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군요.”
“나도 내일부터는 바빠질 것 같아. 그러니 일전의 그 일은 오늘 처리해야겠어.”
에밀리는 록사나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오늘 일정을 끝마치시는 시간에 맞춰 준비하겠습니다.”
에밀리는 록사나의 뒤에서 명령에 순응하는 의미로 고개를 깊숙이 숙여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