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35)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235화(235/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외전 26화
* * *
“당신, 신기한 비밀을 가지고 있었네?”
방에 들어가자마자 카시스 페델리안을 벽에 몰아넣고 팔 사이에 가두었다.
나한테 벽쿵 당하는 상상은 딱히 해 본 적이 없었는지, 그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슬며시 치켜 올렸다.
“어제 나한테 사용하려 했던 이상한 능력도 이것과 비슷한 거야?”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흐응.”
카시스 페델리안은 이미 방문을 닫은 순간부터 꼭 욕실에서 금방 씻고 나온 것처럼 온몸이 깨끗해져 있었다.
그게 신기해서 아까 거무스름한 독액이 묻어 있던 남자의 얼굴에 손을 댔다.
찰랑거리는 머리카락도 만져 보고, 깎아 만든 것 같은 날카로운 턱도 손가락으로 훑었다.
이렇게 순식간에 깔끔해질 수 있는데, 밖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일부러 더러운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듯했다.
“너무 만지지는 마.”
그러다 내 손이 귀에 닿았을 때, 지금까지 가만히 있어주던 카시스 페델리안이 간지러운 듯이 고개를 살짝 비틀었다.
“기분이 이상해지니까.”
어제처럼 피하거나 밀어낼 줄 알았는데, 그는 내 허리에 팔을 감아 오히려 나를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러고 나서 몸을 단숨에 뒤집어 이번에는 반대로 나를 벽 쪽에 가두었다.
“내 정신 연령이 육체 나이를 못 따라가서 아무 짓도 안 한다더니?”
“포옹 정도는 어린애도 하지.”
말이나 못하면.
왠지 좀 웃겨서 실소하자 카시스 페델리안도 나를 따라 입꼬리를 올리며 콩 가볍게 이마를 맞댔다.
그나저나 이 방, 올 때마다 느끼는 건데 정말 다른 손님들이 묵는 방하고 거리가 너무 혼자만 뚝 떨어져 있는 거 아닌가?
의도가 너무 눈에 훤히 보이는 것 같은데.
‘마님은 왜 돌쇠에게만 별채의 방을 내주었을까?’도 아니고.
으음, 그냥 내 마음이 불순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나는 잠깐 머리를 혼잡하게 만들었던 잡념을 떨쳐 버린 뒤 카시스 페델리안에게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그런데 당신, 데온 아그리체하고 같이 마물 서식지에서 뒹굴기라도 했어?”
그러자 그의 얼굴에 떠올라 있던 미소가 엷은 비소로 변했다. 마주한 눈동자에도 한순간 날카로운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카시스 페델리안은 데온처럼 내 의문을 묵살하지는 않았다.
“대충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그 얼굴을 보니 경계에서 무슨 일이 있긴 있었구나 싶었다.
그래도 엇비슷하던 둘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쌍방 과실인 듯한데.
“그래도 엄밀히 따지자면, 네가 우려할 만한 일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니.”
카시스 페델리안이 어깨 앞으로 길게 늘어뜨려진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저 서로 합이 안 맞는 상태에서 다른 때보다…… 열심히 움직인 탓에 그런 못 봐 줄 꼴이 되었던 것뿐이야.”
큰 문제가 될 정도의 분란이 생긴 건 아니지만 서로 발목을 잡는 일이 있긴 했다는 의미로군.
나는 그렇게 카시스의 말을 해석하고 그게 어떤 상황이었을지 혼자 추측해 보았다.
“왜 다른 때보다 열심히 움직였는데?”
“쌓인 걸 해소할 곳이 필요해서, 라고 해야 할까.”
“뭐가 쌓였는데?”
“그걸 내 입으로 말해야 하나?”
카시스 페델리안이 손으로 한 줌 휘감아 움켜쥐고 있던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그런 뒤 보란 듯이 거기에 입을 맞추면서 입매를 얕게 끌어 올렸다.
아까 페델리안의 수하들이 유독 지쳐 보였던 것도, 주인을 따라서 덩달아 마물 서식지를 너무 열심히 구른 탓인 듯했다.
나는 살짝 찌푸린 듯이 웃는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어제 내가 잠든 동안 그 이상한 힘을 쓰지 않았어?”
“약속했으니까. 네가 싫어하는 건 하지 않겠다고.”
내 물음에 카시스 페델리안이 바로 답했다.
“그리고……. 오늘 네가 다시 날 찾아올 줄 알았거든.”
마주한 황금색 눈동자가 슬쩍 갸름하게 접혔다.
이내 머리카락을 놓고 밑으로 떨어진 그의 손이 내 팔을 타고 흘러 내려가 손목을 움켜쥐었다.
“이거, 내가 낫게 해 주고 싶은데.”
묘하게 달짝지근한 느낌이 밴 나지막한 속삭임이 귓가에 울렸다.
카시스 페델리안이 붙잡아 들어 올린 내 손에는 붉은 선이 가늘게 그어져 있었다.
아까 샬럿이 던진 칼을 붙잡다가 살짝 벤 흔적이었다.
옆에 있었던 제레미도 몰랐는데 카시스 페델리안이 이걸 발견하다니. 엄청난 관찰력이었다.
“그러려면 네가 싫어하는 짓을 해야 되지만.”
가까이에서 시선이 얽어매졌다.
나로서도 뜻밖이었지만…….
생각보다 허락의 말은 쉽게 흘러나왔다.
“그럼 한번 해 봐. 살짝만.”
혹여 내 마음이 변할까 싶어 틈을 주지 않으려는 속셈인지, 곧바로 따뜻한 온기가 좀 더 밀접하게 손을 감쌌다.
맞닿은 살갗으로 어제처럼 형체 없는 무언가가 흘러들기 시작한 순간, 무의식중에 흠칫 몸을 떨었다.
카시스 페델리안이 괜찮다고 말하듯 엄지로 느릿하게 내 손등을 훑었다.
어제 지레 놀라 경계했던 게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악의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아주 온화하고 맑은 기운이 표피 안쪽으로 스몄다.
그것이 아주 잠깐 머물다가 사라졌을 때, 피부 위의 붉은 상처가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아문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좀 놀랍긴 해서 아직 카시스 페델리안에게 잡혀 있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소설 속의 실비아에게도 이와 비슷한 능력이 있었다.
카시스 페델리안은 내가 어제처럼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지 확인하려는 듯,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그에게 무심코 물었다.
“당신 여동생은 잘 지내?”
그 순간 남자의 반듯한 미간이 작게 주름졌다.
“설마 나는 잊어 놓고 내 여동생은 기억하는 건가?”
아, 괜히 물어봤네. 소설로 봐서 안다는 말을 할 수는 없잖아.
“카시스 페델리안.”
나는 카시스에게 아직 잡혀 있는 손을 움직여 그의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
여기까지 온 마당에 뭘 더 뜸들이고 망설이나 싶어졌다.
“허락할 테니까, 어제 당신이 나한테 시도하고 싶어 했던 거 조금만 해 봐.”
차라리 아예 아무것도 몰랐으면 또 몰라, 어제 애매하게 간만 본 상태라 더 입 안이 말랐다.
“당신 능력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성인인 열여덟 살까지는 기억 났으면 좋겠는데.”
깍지 낀 손에 지그시 힘을 준채로, 시선을 맞댄 남자를 향해 농밀하게 웃어 보였다.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지금의 현상을 유지한 채 지나갈 앞으로의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꼭 달콤한 냄새를 풍기며 매달린 포도를 눈앞에 둔 배고픈 여우가 된 것 같았다.
지금 당장 손만 뻗으면 먹음직스러운 과실을 맛볼 수 있는데 이걸 참으라니.
나는 욕망에 솔직한 아그리체 사람이었고, 원하는 건 그게 무엇이든 손에 넣으라고 배워 왔다.
하물며 이 남자는 원래 내 것이었고.
하여 말하자, 카시스 페델리안이 꼭 기다렸다는 듯이 짙게 미소 지으며 내 손등에 입술을 눌러 찍었다.
“무엇이든, 명령대로.”
파앗!
그 순간, 조금 전 느낀 청량한 기운이 몸 안쪽의 보다 깊은 곳까지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왔다.
“……!”
머릿속에 조용히 봉오리 져 있던 꽃이 갑자기 꽃잎을 활짝 펼치고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을 가리고 있던 뿌연 안개가 일부 걷혔다.
“카…….”
그 후 다시 본 남자는 이미 조금 전까지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카시스 페델리안……?”
지금의 나는 갓 새해를 맞은 열아홉 살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내가 열여섯 살 때 직접 아그리체에서 탈출시켰던 예전의 그 소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일 뿐이었지만, 카시스 페델리안과 보냈던 그때의 기억은 이후에도 전혀 흐려지지 않고 내 안에 굉장히 선명하게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 후로 거의 2년 반 만의 재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른 채로 내 얼굴을 붙들고 있는 남자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의미 없이 달싹이고만 있는 입술에서는 아무 말도 쉽게 내뱉어지지 않았다.
그런 나를 향해 카시스 페델리안이 으슥하게 느껴질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록사나. 지금은 몇 살이지?”
몇 번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쉰 뒤, 나를 정면에서 담아내고 있는 황금색 눈동자를 마주하며 답했다.
“열아홉…… 흐읍!”
미처 말을 끝맺기도 전에 마주한 남자에게 입술을 통째로 잡아 먹혔다.
“하으, 잠깐……! 카시…….”
벌려진 입 안으로 뜨거운 덩어리가 거침없이 밀려들어왔다.
억센 팔뚝에 잡아당겨진 허리가 저절로 휘어지고, 강렬한 입맞춤에 밀려난 고개가 뒤로 꺾였다.
하지만 내게 쏟아지는 모든 자극을 피할 틈새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그대로 벽에 아프도록 세게 밀어붙여져 카시스에게 숨 한 조각조차 모조리 집어삼켜졌다.
“아, 흐윽…….”
단 한 마디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밭은 신음만 흘리면서, 나를 칭칭 옭아맨 남자의 몸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폭풍처럼 몰아치며 퍼부어지는 키스에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내 숨통을 막고 있던 입술이 겨우 떨어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몸이 덥석 위로 들렸다.
단단한 손과 팔이 내 허벅지와 허리를 붙들어 지탱했다.
나도 엉겁결에 나를 안아 올린 남자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하아, 하……. 카…… 으, 카시스…….”
카시스에게 뭐라고 말하고 싶은데 너무 숨이 차서 제대로 된 단어 하나 만들어 낼 수가 없었다.
긴 머리채가 눈앞에 있는 너른 등 뒤로 치렁치렁하게 흘러내렸다.
“그래, 나 여기 있어.”
나지막한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달군 쇳물처럼 흘러들었다.
“록사나.”
“흐읏…….”
“지금은 나를 어디까지 기억해?”
카시스가 나를 안고 방을 가로지르며 물었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와중에 타는 듯한 뜨거운 입술이 목 위로 내려앉아서 그만 펄쩍 튀어 오를 듯이 몸을 떨고 말았다.
“열아홉이면, 나하고 다시 만나기 전?”
“하지, 으응…… 마.”
카시스의 입술이 젖은 소리를 내며 내 목덜미를 지분거렸다.
“내가 페델리안에 있고, 네가 아그리체에 있을 때인가?”
그 야살스러운 감각을 피하고 싶어서 몸을 비틀었지만 나를 단단히 붙는 팔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니, 일단 얘기를……. 얘기를 좀 하고 싶은데.
하지만 다음 순간, 등 뒤로 푹신한 느낌이 들며 시야에 비친 방의 풍경이 변했다.
침대에 눕혀진 내 위로 곧장 카시스의 몸이 덮였다.
“맞나 보군.”
내 얼굴과 그를 보는 눈빛을 보고 정답을 알아냈는지, 마주한 남자의 얼굴에 느른한 미소가 걸렸다.
다가온 카시스의 손이 헝클어진 내 머리를 살살 어루만졌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얘기를 해 본 적은 없었지.”
그러다가 얼굴 윤곽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진 손길이 한껏 예민해진 귀를 간질였다. 나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가까스로 호흡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카시스, 나…….”
“록사나. 그때 나하고 이런 거 하는 상상, 해 본 적 없어?”
하지만 이어서 카시스가 나를 내려다보며 속삭인 말을 듣고 나는 훅 숨을 들이마실 수밖에 없었다.
시야에 비친 수려한 남자의 얼굴에 진한 미소가 그려졌다.
“난 많았는데.”
달콤한 목소리가 귓속에 간지럽게 녹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