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37)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237화(237/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외전 28화
외전 5. 악역의 사랑 방식 록사나 아그리체의 관점에서 본 〈나락의 꽃〉
성대한 연회 날.
술에 진탕 취한 란트 아그리체가 총애하는 딸을 향해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물었다.
“오늘은 내 기분이 아주 흡족하구나. 네게도 선물을 하나 줄 테니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해 보아라.”
그러자 좀 전까지 아름다운 가무로 연회의 분위기를 띄웠던 록사나가 우아한 몸짓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 란트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제 미천한 재주가 아버지께 작은 즐거움이나마 되었다면 그보다 큰 선물이 어디에 있을까요?”
화려한 장신구로 온몸을 치장한 록사나는 누구나 찬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러나 샹들리에의 불빛이 번진 붉은 눈동자에는 광기와 닮은 기묘한 이채가 남모르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도 만약 이 기쁜 날 아버지께서 제게 자애를 베풀어 주시겠다면…….”
뒤이어 고개를 든 록사나가 더 없이 섬연해 오히려 어딘가 선뜩한 느낌을 풍기는 짙은 미소를 입가에 꽃피웠다.
“카시스 페델리안, 그의 목을 제게 주세요. 제가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뿐입니다, 아버지.”
* * *
록사나가 형제들의 장난감을 직접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야! 저 새끼 빨리 잡아!”
월례 평가가 있던 날.
미로 속에 있던 록사나의 눈앞에 ‘그 소년’이 나타났다.
석 달 전 아그리체에 들어온 페델리안 출신의 장난감.
먼지와 피로 더럽혀져 거의 잿빛으로 보였지만,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머리칼은 분명 눈부신 은발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소년은 꽤 참혹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소년의 움직임은 매우 날쌨다.
푸릇한 잔디를 그림자처럼 붉게 적시고 있는 핏자국만 아니었다면, 그가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완전 좆 될 뻔했잖아! 병신 새끼가 벌레처럼 꿈틀거리는 게 재미있어서 놔뒀더니 감히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쳐?”
하지만 결국 그는 다른 형제들에게 붙잡혔다.
잔뜩 분개한 형제들이 소년을 사슬로 묶고 둘러쌌다.
유독 길들이기 어려운 장난감이라 그동안 이런 식으로 탈출을 시도한 적이 잦았고, 정말 성공할 뻔한 횟수도 두 번인가 세 번 정도 된다고 들었다.
한때는 그것도 신선한 맛이 있어 좋다고 너도나도 탐낸 주제에, 지금 형제들은 잔뜩 독이 올라 소년을 구타했다.
한편으로는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때도 아니고 월례 평가 중에 이처럼 거하게 일을 저질렀으니, 자칫 잘못해 아버지 란트의 귀에 이 소식이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형제들은 무서운 면책을 피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록사나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장난감에게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저 멀리서 전해지는 소식을 어렴풋이 들을 때마다 ‘아그리체의 철통같은 감시를 뚫고 몇 번이나 탈출에 성공할 뻔하다니, 재주도 좋지.’ 하고 다소 무감하게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날, 피 칠갑을 한 소년과 마치 운명처럼 마주친 순간.
록사나의 세상은 전에 없던 대격변을 맞이했다.
햇빛을 등지고 나타난 소년이 태양 같은 두 눈으로 그녀를 꿰뚫었을 때, 용광로의 금속보다도 뜨겁게 끓고 있는 그 강렬한 황금빛에 그대로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줄 알았다.
한눈에 깨달았다.
저 소년이, 이제껏 록사나가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결국 그녀는 죽는 날까지 자각하지 못했지만, 사실은 그때가 바로 지독한 사랑에 빠진 첫 순간이었다.
* * *
“안녕, 드디어 네가 내 손에 들어왔구나.”
한 달 뒤, 록사나는 마침내 다시 만난 소년을 눈앞에 두고 기쁘게 웃었다.
늘 이복형제들에게 둘러싸여 얼굴도 제대로 보기 힘들던 소년이 지금은 그녀가 손만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형제들의 장난감은 일전에 보았을 때보다도 훨씬 망가져 있었다.
사지의 힘줄은 진작 다 잘려 나갔고, 몸에는 온갖 고문의 흔적이 수두룩했다.
처음에는 수려하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얼굴도 지금은 짓무른 상처와 화상 자국으로 흉측하게 망가져 있었다.
과연 이복형제들 중 몇은 쳐다보기도 싫다고 했을 정도로 추한 몰골이었다.
하지만 록사나는 거리낌 없이 손을 뻗어 소년의 얼굴을 감쌌다.
“예뻐라.”
부드러운 손길이 흉터로 가득한 뺨을 아프지 않게 어루만졌다.
“넌 말이야, 특히 눈이 정말 예뻐. 처음 본 순간부터 갖고 싶어서 애가 달았을 정도로.”
정말 어여쁜 것을 보듯이 한없이 다정하게 녹아든 눈빛이 맞잡은 얼굴 위로 떨어져 내렸다.
“내가 널 데려오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
“…….”
“하지만 널 얻기 위해서라면 내가 가진 걸 전부 내줘도 아깝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나도 손해를 본 건 아니야.”
그러나 록사나의 앞에 무릎 꿇려진 소년은 그에게 끊임없이 건네지는 상냥한 말에도 줄곧 무반응했다.
그저 가만히 뜨고만 있는 황금빛 눈동자에는 두꺼운 막이 낀 것처럼 아무것도 투영되지 않은 상태였다.
록사나는 결국 말을 멈추고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하도 말을 듣지 않아 결국 약물까지 썼다고 하더니, 소년은 정말 그냥 살아서 숨만 쉬는 인형 같았다.
“괜찮아, 카시스.”
록사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소년의 머리를 가슴에 끌어안았다.
“난 널 아프게 하지 않을 거야.”
그는 여전히 미동조차 없이 얌전히 몸을 맡긴 채로 록사나에게 쓰다듬을 받았다.
무엇을 해도 소년에게 거부당할 일이 없는 것만큼은 록사나의 마음에 들었다.
록사나는 마침내 그녀의 손안에 들어온 장난감을 품에 가득 끌어안고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속삭였다.
“이제는 내가 네 주인이니까, 죽는 날까지 예뻐해 줄게.”
* * *
록사나는 꼭 여러 번 조르고 졸라 얻은 귀여운 인형이나 애완견을 다루듯이 소년을 대했다.
그를 수집품실이 아니라 그녀의 방에 데려다 놓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록사나는 교육 시간을 포함해 피치 못하게 자리를 비워야 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늘 방에서 그녀의 장난감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내가 없는 동안 또 음식에 전혀 손을 안 댔네. 오늘도 내가 먹여 주길 바라는 거야? 내 장난감은 어리광쟁이구나.”
“…….”
“어머? 그런데 여기 상처가 터졌잖아. 내가 없는 동안 건드렸어? 아프겠다. 먼저 치료부터 하자.”
“…….”
“머리도 이렇게 대충 말려 놓고 가다니. 목욕 담당을 혼내 줘야겠네…….”
돌아오는 대답도 없었고, 반응도 없었다.
그래도 록사나는 그와 함께 있는 동안 지루함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 다 됐다. 오늘은 어제보다 더 예쁘다, 카시스.”
록사나는 장난감의 젖은 머리카락을 말리고 빗으로 깔끔히 빗어 주기까지 한 뒤 흡족하게 웃었다.
“이 약도 발라 줄게. 꾸준히 바르면 흉터를 없애 주는 약이야. 귀한 거지만 나한테는 종종 들어오거든. 물론 다른 사람한테 들키면 아버지께 벌을 받을 테니 우리끼리의 비밀이야.”
아그리체의 사람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쓸 수 있을 정도로 물량이 적은 약이었다.
그런 귀한 것을 다른 사람도 아닌 장난감에게, 특히 카시스 페델리안에게 사용했다는 사실을 란트가 알게 된다면 보통 벌을 받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을 터였다.
똑똑.
그때, 누군가 밖에서 방문을 두드렸다.
무언가를 직감한 록사나의 얼굴에서 순간 미소가 사그라졌다.
“록사나 아가씨. 특별 교육 시간입니다.”
짧은 침묵이 방 안에 맴돌았다.
잠시 후 록사나가 굳은 입매를 다시 매끄럽게 이완시키며 장난감에게서 손을 뗐다.
“가 봐야겠네. 오늘은 조금 늦게 올 거야. 방에 있는 물건을 잘못 건드리면 위험하니까 사슬을 조금 짧게 해 놓고 갈게. 불편해도 조금만 참고 있어.”
그를 침대에 두고 어깨에 숄을 걸친 록사나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
망가진 장난감의 초점 흐린 눈이 멀어지는 그 뒷모습을 의미 없이 담아냈다.
* * *
벌컥!
록사나는 자정 무렵에 돌아왔다.
무표정한 얼굴로 방문을 잠그고 들어온 그녀는 곧장 방에 딸린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다시 밖으로 나왔다.
욕실에서 걸어오면서도 록사나는 가운 사이로 드러난 팔을 강박적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얼마나 세게 긁었는지, 겉으로 보이는 살갗이 다 빨갛게 터서 핏방울이 맺힌 것처럼 보였다.
아까 장난감의 머리를 제대로 말리지 않았다고 사용인을 혼내려 한 것과는 대조되게도, 지금 록사나는 온몸의 물기가 덜 닦여 걸음마다 젖은 흔적을 발자국처럼 남기고 있었다.
뚝…… 뚝.
흠뻑 젖은 데다 빗질도 하지 않아 엉망으로 뒤엉킨 머리카락이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얼굴을 듬성듬성 가렸다.
평소에 늘 부드럽게 짓고 있던 미소까지 깨끗이 사라진 록사나의 얼굴은 더없이 냉락하고 황폐했다.
다음 순간, 거울을 응시하던 그녀의 눈이 막 점화되어 일렁이는 불꽃처럼 빛났다.
앞으로 움직인 손이 화장대에서 잡히는 물건을 아무것이나 집어 거울에 던졌다.
쾅! 쨍그랑……!
그것으로도 모자라 그녀는 화장대 위에 있는 물건들을 전부 다 옆으로 쓸어버렸다.
거칠게 내몬 숨에 가슴이 가파르게 들썩였다.
록사나가 진정된 것은 얼마간의 시간이 더 지난 후였다.
그녀는 방에 있는 다른 사람의 존재를 뒤늦게 깨달은 듯이 흠칫해 고개를 돌렸다.
“미안……. 놀랐니? 너한테 화난 거 아니야.”
침대에 있는 소년에게 사과하는 목소리가 직전에 보인 거친 행동과 괴리감이 들 정도로 다정하고 부드러웠다.
“그냥…… 내가 좀 변덕스러워서 아주 가끔 감정 기복이 심해질 때가 있어서 그래. 그래도 사람을 때리거나 하진 않으니까 무서워하지 마.”
타인의 앞에서 자신을 꾸미고 숨기는 데 익숙할 대로 익숙한 사람답게 그녀의 태세 변환은 급격했다.
정작 록사나의 장난감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것처럼 동요 없이 벽만 보고 있을 뿐이었는데도, 그녀는 그를 달래는 데 불필요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고 나서 록사나는 잠깐 가만히 서 있다가, 무의식중의 행동인 듯이 또 손톱을 세워 팔을 긁었다. 꼭 더러운 껍데기를 벗기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시간이 늦었네. 그만 자자.”
이윽고 자리에서 걸음을 떼 느리게 침대로 다가오는 록사나의 얼굴은 순식간에 지쳐 있었다.
실내용 신에 밟힌 부서진 물건의 파편들이 빠드득 소리를 냈다.
엉망이 된 방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신형이 너무 가냘파서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다.
록사나는 머리맡에 독한 수면향을 피우고 벽에 걸린 촛대의 불길을 작게 줄였다.
그런 뒤 장난감이 있는 침대의 옆쪽으로 가서 그를 등지고 누웠다.
머리끝까지 이불 속에 푹 파묻은 채 작게 웅크린 몸의 윤곽이 어둠 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났다.
옆에 있는 소년이 얼마든지 손을 뻗어 목을 분지를 수 있을 정도의 가까운 거리였음에도 그런 걱정은 애초에 조금도 하지 않는 듯, 아주 무방비한 모습이었다.
한동안 얕은 숨소리만이 적막한 방 안에 울렸다.
“잘 자, 카시스…….”
그러다 이내 작은 속삭임이 점멸하는 빛처럼 어둠 속에 흐리게 스몄다.
그래도 꿈으로 도피할 수 있어 낮보다 나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