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38)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238화(238/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외전 29화
* * *
퍽!
다음 날 점심 무렵, 복도를 걸어가던 록사나에게 무언가가 날아와 부딪쳤다.
“뭐야, 멍청하게 그거 하나 못 피해? 진짜 굼뜨다니까.”
동그란 구체 밖으로 터져 나와 옷을 적신 걸쭉한 점성질의 액체에서 오물 같은 고약한 냄새가 났다.
“안녕, 록사나 언니. 오늘따라 차림새가 수수해 보여서 내가 좀 더 꾸며 줬어. 그렇다고 너무 고마워할 필요는 없고.”
옆쪽의 복도에서 나타난 샬럿이 갓난아기 주먹만 한 동그란 또 다른 구체를 손에 들고 던졌다 잡았다 하며 록사나를 비웃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은 사육장에 들어갈 일이 있을 때 마물들을 문 앞에서 일시적으로 쫓아내는 데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샬럿……. 또 저택 비품에 마음대로 손을 댄 모양이구나.”
록사나는 싸늘하게 식은 눈으로 샬럿 때문에 더럽혀진 옷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처벌의 방이 그렇게 그리웠니? 그 안에 다시 들어가고 싶었던 거면 이렇게 어렵게 알리지 말고 직접 말을 하지.”
“닥쳐, 고자질밖에 할 줄 모르는 게……!”
며칠 전 창고의 물건에 허락 없이 손댄 것을 들켜 처벌의 방에 갇혔다 나온 샬럿이 록사나를 노려보며 씨근덕거렸다.
“그런 주제에 쓸데없이 운만 좋아서는. 지난달 월례 평가 때야말로 정말 폐기 처분 당할 줄 알았는데, 어떻게 매번 거머리같이 살아남는 거야?”
그래도 이번 일로 나름대로 배운 점은 있었는지, 그녀는 더 이상 록사나에게 바락바락 열 내지 않고 혼자 화를 삭였다.
“뭐, 그 운도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이번 월례 평가도 기대되네.”
그렇게 빈정거린 샬럿이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또 던지려 했을 때, 계단 위에서 다른 사람이 나타났다.
“시발, 이게 뭔 똥내야?”
“앗, 제레미 오빠!”
복도에 떠다니는 불쾌한 냄새에 오만상을 쓰고 있던 제레미가 금세 상황을 파악하고 코웃음 쳤다.
“뭐야. 샬럿, 너 또 쟤 괴롭히고 있었냐? 매일 할 짓이 그렇게 없어? 그러니까 네가 월례 평가 때마다 성적이 그따위지.”
“웃겨. 요즘 대만찬에 좀 자주 참석한다고 잘난 척은.”
“잘난 척하는 게 아니라 난 진짜 잘난 거야, 이 멍청한 년아.”
발끈하는 샬럿을 깔보듯 한 번 비웃어 준 제레미가 앞에 있는 록사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런 반편이 같은 걸 데리고 노는 게 뭐가 재밌다고.”
그녀를 보는 눈에는 샬럿을 볼 때보다 더한 멸시가 담겨 있었다.
“야, 그런데 너 왜 오늘은 혼자 있냐? 매일 뒤에 껌딱지처럼 붙이고 다니던 건 어디 갔어?”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제레미가 꺼낸 말에 록사나의 몸이 티 나지 않게 움찔했다.
샬럿이 웬 뒷북이냐며 대신 답했다.
“에밀리 말하는 거야? 얜 두 달인가 전에 죽었잖아.”
“어? 그랬나? 왜?”
“갑자기 뭘 잘못 처먹었는지 교육관을 한 명 죽여서…….”
무신경한 대화가 이어진 끝에 마침내 제레미도 지난 일을 기억해 냈다.
“아아, 생각났다……. 맞아,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별 볼 일 없는 이복 누이인 록사나의 일이라 깜빡 잊고 있었는데, 당시에 그것과 관련해서 저택에 꽤 큰 소란이 일어났던 게 뒤늦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제레미의 입매에 삐딱한 미소가 걸렸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껄렁하게 서서 록사나에게 말했다.
“이야, 누구는 좋겠어? 자기 대신 목숨 구걸해 주는 어미에, 값싼 눈물 한 번이면 기꺼이 불구덩이까지 뛰어 들어가는 충실한 애완견도 있어서.”
가슴을 날카롭게 후벼 든 이죽거림에 록사나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무릎이야 몇 번 꿇는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애완견이 한 마리 죽긴 했지만 대신 목숨 버려 줄 개새끼들은 아직도 많으니까. 넌 월례 평가 때마다 걱정 없겠다?”
하지만 그녀는 살갗이 파이도록 아프게 주먹을 꽉 쥐어 마음속의 동요를 감추었다.
그러고 나서 샬럿과 제레미 둘 모두에게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은 것처럼 느슨히 입매를 당겨 오히려 웃어 보였다.
“내가 부러워서 배가 아프다는 소리를 뭐 그렇게 장황하게 돌려서 해? 없어 보이게.”
“뭐?”
그러자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이 제레미와 샬럿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번에는 록사나가 그런 그들을 확연히 비웃었다.
“하긴, 부럽기도 하겠지. 너희는 백 번을 죽었다 살아나도 절대 못 가질 테니까. 그렇게 주저 없이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을 정도로 너희를 아껴 줄 사람 같은 건. 불쌍하게도.”
특히 제레미에게는 대신 목숨을 구걸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두려워하며 도망치다 추락사한 어머니만 있었다.
“뭐라는 거야? 누가 누굴 부러워해!”
“시발, 저게 아침에 약을 잘못 처먹었나……. 죽고 싶냐, 너?”
그래서인지 샬럿보다 제레미 쪽에 더 강렬한 반응이 있었다.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한결 음산하고 난폭해졌다.
“어머, 무서워라. 농담이었는데 뭘 그렇게 화를 내?”
하지만 록사나는 겁도 없는지, 아름다운 얼굴에 천진한 표정을 드리우며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면 꼭 내 말이 사실인 것 같잖아. 혹시 내가 정곡을 짚은 거야? 그렇다면 미안하게 됐어.”
그러나 두 사람을 향하고 있는 그녀의 눈빛만큼은 더없이 차갑고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어쨌든 안됐네. 그래 봤자 내 어머니가 네 어머니가 될 수는 없으니까.”
“야, 좋은 말로 할 때 닥쳐.”
“죽은 네 어머니 무덤에나 가서 부탁해 봐. 다음에 네가 폐기 처분 당할 위험에 처하게 되면, 그때 아버지 꿈에라도 한번 나와서 울며 무릎 꿇고 대신 빌어 달라고. 물론 널 그렇게 끔찍하게 여겼던 네 어머니가 죽은 이후라고 소원을 들어줄지는 잘 모르겠긴 한데.”
“이게 진짜……!”
“그래도 원한다면 내 애완견 정도는 한 마리씩 빌려줄게. 물론 내 충실한 종들이 너희 같은 걸 위해서 대신 불구덩이 속에 뛰어들어 주지는 않겠지만, 밤에 외로워서 혼자 자기 무서우면 엄마 대신 끌어안고 자든지.”
입꼬리를 비틀며 말을 끝맺은 록사나가 먼저 돌아섰다.
“야, 너 거기 안 서? 야……!”
“제, 제레미 오빠! 참아! 지금 쟤 건드리면 또 처벌의 방에 들어갈 거라고!”
“시발, 저건 쥐뿔 잘난 것도 없으면서 뭐 저렇게 재수 털리게 굴어?”
록사나의 등 뒤로 복도에 있던 장식품들이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광분한 제레미를 무시하고 걷는 록사나의 얼굴에도 어느새 웃음기가 씻은 듯이 가져 있었다.
제레미는 모르겠지만, 아까 그가 한 말은 록사나의 역린을 건드리다 못해 아주 제대로 쑤시고 들어왔다.
그래서 록사나도 똑같이 갚아 준 것뿐이었다.
그녀는 가슴에 얹힌 제레미의 말을 지워 내려 애쓰며 방으로 향하는 걸음을 빨리했다.
* * *
“시간이 빨리 가는 건지, 느리게 가는 건지 잘 모르겠어.”
그날 밤에도 록사나는 반응 없는 장난감을 앞에 두고 혼자 떠들었다.
그녀가 없는 사이에 뭘 했는지, 장난감의 손가락 끄트머리는 살이 다 벗겨져 붉은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널 데려올 날을 기다릴 때는 하루가 1년 같았는데……. 며칠 있으면 또 월례 평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나니까 한 달이 하루처럼 지나간 것 같기도 하고.”
어스름한 밤에 잘 어울리는 고요한 목소리가 희미한 불빛이 어린 방 안에 얕게 깔렸다.
“이상하지? 월례 평가는 매달 겪는 일인데도 그때마다 새롭게 무서워. 나 말이야. 정말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거든.”
장난감의 다친 손가락에 붕대를 감아 주던 록사나가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너도 알잖아. 지난번에 월례 평가 때 마주쳤을 때 말이야.”
그러나 이번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불빛에 음영 진 소년의 얼굴은 끝을 알 수 없는 심해처럼 잠잠하기만 했다.
록사나는 막 치료를 마친 그의 손을 약간 힘줘서 붙잡으며 설핏 미소 지었다.
“하긴, 기억 못 해도 상관없어.”
침대에서 일어난 록사나가 응급처치에 사용했던 물건들을 치운 뒤 다시 돌아왔다.
침대 옆에 있는 협탁의 서랍을 연 그녀가 꺼낸 것은 여러 종류의 약들이었다.
“샬럿과 제레미 말이 맞아. 내가 오늘까지 살아 있는 건 순전히 다른 사람들 덕분이야.”
모양과 색이 다양한 알약으로 채워진 유리병들 위로 하얗고 예쁜 손가락이 느리게 배회했다.
“운이 좋다면 좋았던 거지. 하지만…….”
“…….”
“이런 말을 하면 내가 너무 나쁜 걸까?”
그러다 이내 그림자를 만들던 손가락의 움직임이 뚝 멈추었다.
“그런 거, 난 하나도 기쁘지 않아.”
록사나는 어렴풋이 그녀의 죽은 오빠를 생각했다.
불과 5년 전의 일인데도 그와 함께 있던 시간이 아주 오래된 과거의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아실이 폐기 처분 당한 뒤 록사나는 겁에 질려 한동안 방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질식할 듯한 두려움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인 시에라가 억지로 그녀를 밖으로 데리고 나와 교육실에 밀어 넣지 않았다면 분명 화를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열다섯 살 때 록사나가 아실처럼 그해의 마지막 월례 평가를 통과하지 못해 폐기 처분 당할 뻔했을 때도, 시에라가 란트에게 매달려 울며 호소해 간신히 그녀를 살렸다.
그리고 아까 만난 샬럿과 제레미의 대화에서 화제로 나왔던 두 달 전에는…….
잘그락.
록사나는 약병에서 알약을 한 움큼 꺼내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다른 병에서까지 알약을 쏟아 그것도 전부 삼켰다.
다시 서랍 안에 약병들을 넣고 돌아서자, 어느덧 소년의 황금빛 눈이 그녀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는 게 시야에 들어왔다.
사실 응시하고 있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긴 했다.
역시 소년의 눈에는 빛이 꺼져 있었고, 그는 단지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반응해 고개를 돌린 것뿐으로 보였기에.
하지만 록사나는 웃으며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오늘은 수면 향만으로 잠들지 못할 것 같아서.”
“…….”
“평소보다 좀 이르지만 오늘은 그만 자자.”
잠시 후 방 안에 드리워져 있던 불빛이 더 작게 줄어들었다.
장난감을 옆에 눕히고 뒤척이던 록사나는 어느 순간부터 약 기운이 돌아 까무룩 잠들었다.
그로부터 세 시간 정도가 더 지난 밤.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있던 록사나의 이마에 식은땀이 배어나기 시작했다.
악몽이라도 꾸는 것처럼 작게 신음하며 경련하듯이 몸을 떨던 록사나가 이윽고 크게 숨을 들이 마시면서 벌떡 일어났다.
“……헉! 허억…….”
거친 숨소리가 어둠 속에 흩뿌려졌다.
얼마 후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 거친 호흡이 한결 차분해졌지만, 잠에서 깬 록사나는 곧바로 다시 자리에 눕지 않았다.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던 그녀가 몸을 일으켜 향한 곳은 방의 한구석에 위치한 장식장이었다.
록사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 안의 맨 밑 단, 그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넣어 놨던 상자를 꺼냈다.
뚜껑을 연 록사나가 그 속에 있는 것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잠시 후, 마침내 미세하게 떨리는 손이 움직였다.
그녀는 상자에 든 것을 꺼내 품에 끌어안고 거기에 얼굴을 묻었다.
“에밀리…….”
넝마처럼 찢어진 옷은 아그리체의 사용인들이 입는 것이었다.
애초에 잠들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록사나 때문에 깨어난 건지, 어둠 속에 있는 소년의 고요한 눈이 달빛 아래에서 하얗게 웅크린 그 뒷모습을 조용히 담아냈다.
시간이 좀 더 흘러 록사나가 다시 침대로 올라왔다.
하지만 그녀는 원래 자리에 눕지 않고 옆에 있던 소년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 순간, 갑작스러운 접촉에 대한 반사 작용인지 록사나와 맞닿은 몸이 작게 움찔거리며 흔들렸다.
록사나는 그런 그를 더 꽉 끌어안았다.
“넌 아무 데도 가지 마.”
잠시 후, 자그마한 속삭임이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언제 가냘픈 목소리로 죽은 이의 이름을 애달프게 속삭였냐는 듯이 흔들림 없이 또렷한 음성이 소년의 가슴팍 위로 흩어졌다.
“난 너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러니까…….”
지금까지 중 가장 가까이에서 시선이 얽혔다. 어둠 속에서도 신비한 광채로 빛나고 있는 붉은 눈이 마주한 사람을 삼켜 버릴 것처럼 직시했다.
“그냥 이대로 계속 내 옆에 있어.”
내가 죽을 때까지.
그렇게 소년의 심장 깊은 곳까지 아로새기듯이 속삭인 록사나가 고개를 기울여 화상으로 일그러진 그의 왼쪽 뺨에 입술을 맞댔다.
보드랍고 조심스러운 입맞춤이 달빛 속에 녹아들었다.
늘 그렇듯이 록사나의 장난감은 오늘도 그녀에게 아무런 약속을 해 주지 않았다.
그래도 그를 품에 끌어안는 것까지 거부당하지는 않아서, 록사나는 소년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맑은 체취를 한가득 들이마셨다.
왠지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