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39)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239화(239/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외전 30화
* * *
이번 월례 평가 때도 1위는 데온이었다.
제레미는 이번 대만찬에는 참석을 허락받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고정되어 있던 1위 외에 다른 순위에는 유동성이 있었으니 별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제레미는 그 사실이 꽤나 분한 모양이었다.
그는 월례 평가가 끝난 이후, 꼭 사냥을 앞둔 위험한 짐승처럼 흉포한 기운을 줄줄 흘리고 다녔다.
그래서 모두가 그런 제레미를 슬슬 피해 다녔다.
“록사나 아가씨, 월례 평가를 무사히 끝마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고마워.”
회랑을 지나가는 록사나에게 누군가 축하 인사를 건넸다.
매달 있는 월례 평가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데다 거기에서 좋은 성과를 얻은 것도 아니라 솔직히 축하받는 것도 우스웠지만 록사나에게는 심심찮게 벌어지는 일이었다.
다른 이복형제들이 이 모습을 본다면 또 록사나에게 애완견이 한 마리 생겼다고 폄하하며 비웃을 게 분명했다.
“이건 별것 아니지만, 선물입니다.”
빨개진 얼굴로 다가온 남자가 록사나에게 준 것은 특이한 연청빛 꽃이었다.
“어머나……. 처음 보는 꽃이네. 신기한걸.”
그러나 그녀의 일개미가 되기 위해 알아서 꼬여 드는 사람을 굳이 먼저 내칠 이유는 없어서, 록사나는 상냥한 태도로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
“못 보던 종류인데 혹시 밖에서 가져온 거니?”
“네, 네! 오늘 폰타인 도련님의 단기 공무에 동행하게 되어 아그리체 밖으로 잠깐 나가게 되었는데, 예쁜 꽃이 보여서……. 록사나 아가씨 생각이 나 꺾어 왔습니다.”
록사나가 꽃의 향기를 맡으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미려한 얼굴이 활짝 피어난 꽃과 한데 어우러져 무서울 정도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다.
그녀를 앞에 둔 폰타인의 시종은 완전히 넋을 잃고 있었다.
주위를 지나가던 사용인들의 걸음도 본인들이 인지하지 못한 새 제자리에 우뚝 멈추거나 서서히 늦추어졌다.
“날 위해 일부러 가져와 줬다니, 고마워. 마음에 들어.”
록사나는 사람을 홀리게 만드는 웃음을 흩뿌리며 꽃다발을 안고 방으로 돌아갔다.
“카시스, 여기 널 닮은 꽃이 있어.”
조금 전까지와 달리 가식 없는 미소가 그녀의 장난감에게 향했다.
이 하잘것없는 꽃이 록사나의 마음에 든 이유였다.
“바깥에서 가져온 거라는데 혹시 너도 본 적이 있는 꽃일까?”
그녀는 햇볕 아래 앉아 있는 장난감에게 다가가 들고 있던 꽃다발을 그의 품에 안겨 주었다. 그 중 한 송이는 머리에 꽂아 주기까지 했다.
그런 뒤 그녀는 꽃에서 흘러나오는 향기보다도 달콤하게 미소 지었다.
“역시 잘 어울린다.”
설탕으로 빚어 만든 인형처럼 가뜩이나 아름다운 얼굴에 맑은 미소까지 번지자, 주위가 대번에 화사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록사나의 기분은 다른 때보다 좋아 보였다.
이번 월례 평가가 무사히 끝났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넌 꽃을 좋아하니? 난 별로 그렇진 않아. 그런데 이상하게 다들 나한테 자꾸 쓰레기 같은 꽃 선물을 준단 말이야.”
록사나는 조금 전 소년에게 했던 것처럼 꽃 한 송이를 자신의 귀에도 꽂았다.
“그래도 이건 널 닮은 꽃이라 마음에 들어.”
새가 지저귀는 듯한 청아한 목소리가 햇빛 가득한 방 안에 울렸다.
“페델리안의 상징은 푸른빛이잖아.”
바로 그 순간이었다.
태엽이 풀린 인형처럼 미동 없이 앉아 품 안의 꽃다발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던 그녀의 장난감이 고개를 들고 시선을 맞대온 것은.
여전히 눈빛은 혼탁했지만 그에게서 이렇게 곧바로 반응이 돌아온 건 처음이었다.
록사나도 그 사실을 깨닫고 숨소리를 죽인 채 마주 앉은 소년을 바라보았다.
“페델리안이라는 말에 반응한 건가?”
하지만 이후 몇 번인가 시험해 봤을 때는 조금 전과 같은 눈에 띄는 반응이 이어지지 않았다.
결국 록사나는 우연이었나 보다고 생각하며 앵무새처럼 같은 단어를 읊조리는 것을 멈추었다.
이후 그녀는 앞에 있는 소년을 빤히 응시했다.
그러다가 손을 들어 소년과 처음 만났던 한 달 전보다 길어진 그의 머리카락을 옆으로 쓸어 넘겨주었다.
록사나를 향해 있는 황금빛 눈동자가 시야에 더 환히 드러났다.
“역시 네가 날 보는 건 기분이 나쁘지 않아.”
아름다운 소녀의 얼굴에 가느다란 호선이 그려졌다.
저택에 있는 사람들은 몇 명의 극히 드문 예외를 제외하고 대부분 그녀를 흠모하거나 멸시하는 눈으로 보았다.
예외 중 하나인 아버지 란트의 눈빛은 꼭 물건을 감정하는 듯했고, 어머니인 시에라의 눈빛은 항상 가엽고 애처로운 것을 보는 듯했기 때문에…….
록사나는 그 모두가 달갑지 않았다.
똑똑.
“사나야.”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시에라의 것이었다.
록사나는 이대로 방에 없는 척 하고 싶은 욕망에 잠깐 시달리다가, 이내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흐린 표정을 짓고 있던 시에라의 얼굴이 살짝 밝게 갰다.
“어머니, 갑자기 어쩐 일이세요?”
“어제 월례 평가가 끝났잖니. 혹시 다친 곳은 없는지 걱정돼서 찾아왔어.”
부드러운 손길이 록사나의 얼굴을 가볍게 쓸었다.
다정한 염려가 배어 있는 푸른 눈을 마주하는 순간 속이 울렁거렸다.
가슴 밑바닥에 잠잠하게 가라앉아 있던 불티가 하나둘씩 되살아나 불꽃을 튀기며 부유하는 것 같았다.
“괜찮아요, 어머니. 이번에는 부상을 입을 만한 실기 시험이 없었는걸요.”
시에라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록사나는 웃으며 말을 돌렸다.
“그보다 이거, 오늘 제가 사용인에게 받은 선물인데요. 아그리체 밖에서 가져온 꽃이래요.”
“그러니? 예쁜 꽃이구나.”
“이건 어머니한테 드릴게요. 어머니도 외출하지 못하신 지 한참 되었잖아요. 방에 있는 화병에 꽂아 두세요.”
그렇게 말한 록사나가 귀 위에 꽂고 있던 꽃을 빼내 시에라에게 건넸다.
모녀는 살뜰하게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난 뒤 웃으며 헤어졌다.
하지만 문을 닫고 다시 방으로 들어온 록사나의 미소는 부자연스럽게 무너져 있었다.
록사나는 문밖으로 멀어지는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그녀가 준 꽃을 아직도 무릎 위에 올리고 있는 소년에게 다가갔다.
“……언제부터일까?”
앞으로 천천히 뻗어진 손이 소년의 머리에 있는 꽃을 가져가 짓뭉갰다.
“어머니에게 화를 내면 죄책감이 들고, 다정하게 대하고 나면 속이 답답해져.”
짓이겨진 꽃잎이 꽉 쥐어진 그녀의 손아귀에서 떨어져 내렸다.
록사나는 그렇게 잠깐 서 있다가, 이내 다시 해사하게 웃는 얼굴로 소년의 품에서 꽃다발을 빼내 갔다.
“남은 꽃은 화병에 꽂아 두자. 오래 두고 볼 수 있게.”
* *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대만찬이 예정된 날이 되었다.
“오셨어요, 아버지.”
란트는 다른 때보다 일찍 귀가했다.
록사나는 란트가 두려웠지만 애써 웃는 얼굴로 그를 맞았다.
언젠가부터 그녀는 이런 식으로 귀가한 란트를 보러 나와 꼬박꼬박 인사하곤 했다.
그녀의 목숨 줄을 움켜쥔 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름대로 재롱을 떠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란트가 그 주눅 든 모습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그는 마뜩잖게 쯧 혀를 찬 뒤 대답조차 해 주지 않고 록사나를 스쳐 지나갔다.
란트와 함께 온 데온도 록사나를 힐끗 보고 무심히 지나쳤다.
그들은 대다수의 아그리체 남매들이 그렇듯이 서로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록사나는 란트와 데온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얼른 자리를 벗어났다.
어두운 복도로 들어서자 겨우 숨통이 트였다.
“야, 록사나.”
방에 도착해 막 문을 열었을 때, 뒤쪽에서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이번에도 용케 폐기 처분 당하지 않고 살아 있네?”
장남인 폰타인이었다.
폰타인도 록사나와 마찬가지로 대만찬에 참석할 정도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특히 그는 차남이면서도 그보다 훨씬 다재다능한 데온에게 어릴 때부터 극심한 열등감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인가.
“지금도 아버지한테 알랑거리는 것 같더니, 넌 그렇게 살고 싶냐?”
그는 화풀이할 만만한 상대를 찾아온 것 같았다.
‘또 시작이군.’
록사나는 다가오는 폰타인을 싸늘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얼굴에 고운 미소를 그렸다.
“폰타인 오빠……. 오랜만이네. 요즘 공무 때문에 바쁜 것 같더니.”
“나야 할 일 없는 너나 다른 애새끼들하고 다르게 바쁘지.”
어차피 몇 마디 등신 같은 소리를 들어 주고 나면 만족해서 떠날 테니, 자리를 피하기 위해 괜히 피곤하게 입씨름할 필요 없었다.
“역시 장남이라 아버지께서 다른 형제들보다 유독 폰타인 오빠를 신뢰하는…….”
“그 말은 내가 장남이지 않았으면 아버지한테 이만한 신뢰도 얻지 못했을 거란 의미냐?”
“……그게 아니라 오빠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이미 아버지께 남다른 의미를 지닌 존재라는 소리였어.”
문을 등지고 선 록사나가 문고리를 당겨 살짝 열려 있던 문을 닫았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들었는지, 폰타인의 시선이 움직였다.
“참, 그러고 보니 그 페델리안의 장난감, 지금 네 수중에 있다며? 나도 좀 보자.”
“아……!”
록사나가 막으려 했지만 폰타인은 막무가내였다.
결국 활짝 열린 문 안으로 폰타인이 들어섰다.
“폰타인 오빠, 그러지 말고 나가서 얘기…….”
“야, 저 새끼 완전 반송장 다 됐네? 넌 왜 저런 걸 옆에 끼고 있냐?”
방 한구석에 있는 소년을 본 폰타인이 하, 비웃음 섞인 소리를 내뱉었다.
록사나가 소년에게 다가가려는 폰타인을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안 돼, 건드리지 마.”
“저리 비켜, 가까이에서 좀 보게.”
폰타인이 그런 록사나를 밀치고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록사나는 평소와 달리 끈질기게 또 그를 가로막았다.
“거슬리게 왜 이래? 저리 안 비켜?”
“……져.”
“뭐?”
어느새 록사나는 웃음기 가신 얼굴로 폰타인을 서늘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꺼지라고.”
세게 짓씹은 그녀의 입술에서 가열된 음성이 토해져 나왔다.
“당장 내 방에서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