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4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243화(243/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외전 34화>
그녀가 바깥의 상황을 살피고 방으로 돌아왔을 때, 소년은 침대 옆쪽의 창가에 앉아 투명한 유리창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다.
록사나는 문가에 서서 그런 그를 잠깐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곧 소년에게 다가가 그의 앞에 몸을 낮추고 앉았다.
“햇볕이 따뜻하지?”
햇빛을 받아 더 새하얗게 보이는 치맛자락이 바닥에 목련 꽃잎처럼 펼쳐졌다.
하찮은 장난감의 앞에서 보이는 태도라기에는 서슴없었고, 주인답지 않은 처신이었다.
하지만 록사나는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앉아 의자에 기대 있는 소년의 손을 확인했다.
오늘도 그의 손끝에는 피가 배어나 있었다.
이제는 록사나도 이게 무슨 흔적인지 알았다. 소년은 그녀가 보는 앞에서도 종종 손목과 발목을 결박하고 있는 것을 뜯어내려는 듯이 강박적으로 손을 움직이곤 했으니까.
그래서 록사나는 그녀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늘 소년의 구속구를 풀어 주었다.
“오늘도 밖에서 네 얘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어. 아까 교육실에 가다가 폰타인하고 언뜻 마주쳤는데 벌레를 씹은 것 같은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그쪽에서 먼저 날 피하더라고.”
폰타인과의 일이 있었을 때 록사나도 알게 되었지만, 완전히 잘린 줄 알았던 소년의 팔다리 힘줄은 완벽하게 손상된 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록사나는 오늘도 주저 없이 그의 몸을 자유롭게 해 주었고, 소년은 여느 때처럼 몸이 묶이지 않은 상태에서도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녀를 조용히 내려다보기만 했다.
“뒤늦게 사용인들 입단속을 시켰다는 걸 보면 그날 있었던 일이 아버지 귀에 들어갈까 봐 걱정하는 것 같기도 했어.”
여전히 무디긴 했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록사나의 말이나 행동에 소년이 반응을 보이는 순간도 늘어났다.
꼭 이번 일로 소년을 겹겹이 가두고 있던 두꺼운 벽 중 하나가 깨져 금이 간 것 같았다.
“어쨌든, 그 인간 성격이면 이 이상 너하고 나를 더 건드리지는 않을 것 같아서 조금 마음이 놓여.”
눈 부신 햇살이 내리쪼이는 창가에 앉아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소년 소녀의 모습은 언뜻 성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티 한 점 없이 맑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냥 이대로 다들 널 잊었으면 좋겠다…….”
록사나는 그렇게 작게 읊조리며 소년의 다리에 얼굴을 기댔다.
긴 금빛 머리칼이 달콤한 벌꿀처럼 흘러내렸다.
살짝 손끝만 맞닿아 있던 두 사람의 손이 조금 더 밀착되면서, 다리 위에 올려진 소년의 손등에 록사나의 이마가 내려앉았다.
약간 발갛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에서는 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
그것을 느꼈는지 소년의 손이 움찔했다.
월례 평가가 끝난 후부터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록사나도 느끼고 있었다.
특히 폰타인과의 일까지 있었던 직후에는 상태가 더 악화되었다.
“네 손, 오늘은 시원하네. 다른 때는 따뜻했는데.”
록사나는 소년의 손에 얼굴을 반쯤 묻은 채로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열이 오른 상태라 그런지 다른 때보다 혼잣말하는 목소리가 느리고 나른했다.
뒤이어 소년을 향하고 있던 루비 보석 같은 눈이 살짝 휘어지며 달짝지근한 미소를 그려 냈다.
“시원해서 기분 좋아…….”
순간 머리카락에 살짝 가려진 소년의 눈매가 미세하게 좁혀졌다.
그의 다리 위에 얼굴을 기댄 소녀를 내려다보고 있던 뿌연 눈동자 안에서도 그동안 보이지 않던 광채가 깜빡였다.
록사나에게 잡히지 않은 손가락 끝이 힘을 받아 작게 움직였다.
꼭 이대로 뿌리칠지 말지, 혹은 잡을지 말지……. 아주 조금 갈등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지만 다른 때보다 몸의 감각이 둔해져 있던 록사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잠시 후 핏물 맺힌 손가락에서 다시 힘이 풀어졌다.
아무도 모르게 그 자리에 부유하고 있던 기묘한 공기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날부터 록사나는 신열에 시달리며 앓았다.
자주 의식이 깜빡깜빡하고 물먹은 솜처럼 몸이 갈수록 무거워졌다. 하지만 밖에서는 그런 티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 중 일정이 빈 시간에는, 낮에도 곧잘 방 안 아무 곳에나 널브러져 잠을 자는 건지 쓰러진 건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다 간간이 묵직한 눈꺼풀을 들어 올릴 때면 소년이 앞에 있었다.
시야가 가물거려서 그가 어떤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가끔은 눈앞의 형체가 진짜인지, 아니면 잠결에 헛것을 보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한번은 눈을 떴을 때 훌쩍 가까워진 소년의 손이 록사나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적막한 금색 눈과 혼몽하게 젖은 붉은 눈이 허공에서 얽혔다.
커다란 상처투성이 손 안에서 얕은 맥이 뛰었다.
록사나는 앞에 있는 소년을 보고 희게 웃었다. 그러고는 여전히 무방비한 모습으로 다시 눈을 감았다.
지금 자신에게 벌어진 일이 무엇인지 의미를 모르는 것처럼. 혹은 이대로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고 허락하는 것처럼.
록사나의 목을 옥죄는 손길에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한 듯한 주저함이 아주 짧게 어렸다가 이내 지그시 힘이 들어갔다.
밀착한 얇은 살갗에서 전해지는 맥박도 한결 선명해졌다.
반대로, 소녀의 가느다란 목 정도는 쉽게 부러뜨려 버릴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단단한 손아귀에서 배어 나오는 갈등 실린 파동도 점점 강해졌다.
그러다 잠시 후, 꼭 새벽빛에 악몽이 밀려나듯이 록사나의 목줄기를 틀어쥐고 있던 손길이 떠났다.
이 또한 꿈인지 아닌지, 록사나는 분간할 수 없었다.
그 후에 이어진 암전은 다소 길었다.
그러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밤이었다.
록사나는 언제나처럼 그녀를 괴롭히는 지독한 악몽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와 울고 있었다.
열 때문에 눈두덩이까지 뜨거워진 탓인지,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와 얼굴을 적셨다.
언젠가부터 아린 눈가를 느릿하게 쓸고 있는 손길이 꿈결 같았다.
닿을 듯 말 듯, 조금은 서툴고 건조한 느낌으로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손길이 꼭 마음속의 상흔까지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아까 록사나의 목을 졸랐던 손이 지금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 정도 염치는 있었으니까.
대신 이 비슷한 온기를 가진 다른 손을 록사나는 알고 있었다.
“미안해, 에밀리…….”
빗물이 번진 것 같은 날숨 사이로 울음에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네가 나를 찾아왔을 때…… 그냥 받아들이지 말 걸 그랬어.”
살면서 뼈저리게 후회되는 일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특히 가장 최근의 상실은 못 견디게 아팠다.
“그냥 너 같은 거 필요 없다고 다시 돌려보낼걸.”
계속 지난날을 곱씹으며 수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수십, 수백 번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그러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아그리체에서 어머니를 제외하고 유일하게 록사나를 필요로 해 주고, 또 유일하게 아무 이해 관계없이 그녀의 옆을 선택해 준 사람을 거부할 수 있었을 리가 없었다.
“그럼 하다못해 기억하지 못하는 척이라도 할걸…….”
곁에 둘 수밖에 없었다면, 최소한 그렇게 반가워하며 마음을 나누지는 말 걸 그랬다.
같이 지내는 동안에도 그런 식으로 제 안의 약한 모습을 전부 다 보이면서 그녀에게 의지하지 말고,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언제든 내 곁을 떠날 수 있게……. 적어도 네가 날 위해서 죽을 일은 없게, 그랬어야만 했는데…….”
그날도, 그녀의 앞에서 그런 식으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
란트가 새로운 교육관으로 보낸 그 추잡한 인간이 그녀의 목숨줄을 잡고 무슨 더러운 짓을 하든, 혼자 삭여내고 참았어야만 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좀 더 오래 옆에 있어 드리고 싶었는데.”
악몽 속에서 교육관의 피를 뒤집어쓴 에밀리가 넋을 잃은 록사나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웃음 지었다.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여지는 목소리가 심장을 아프게 찔렀다.
“하지만 이제는 제가 없어도 괜찮을 거예요……. 아직 스스로 모르고 있을 뿐, 사실 당신은 강한 사람이니까요.”
그러니 그녀가 없어도 혼자서 충분히 이겨 낼 수 있을 거라고, 그런 슬픈 말을 남긴 채 에밀리는 록사나의 앞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그 빈자리에 감당하기 어려운 고독이 밀려들었다.
거기에서 벗어나려 휘저은 손끝에 다른 온기가 잡혔다.
카시스 페델리안.
어쩌면 이렇게 망가지는 데 그녀 역시 본의 아니게 조금쯤은 일조했을지도 모르는 소년.
“너는, 가면 안 돼…….”
그러니 이번에는 그녀가 지켜 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 아니야. 사실은 그런 이타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더 이상 혼자가 되긴 싫어.
그건 너무 외로워.
이대로는 죽을 것 같아.
그러니 떠나지 마.
아무 데도 가지 말고 날 위해 이대로 내 옆에서 살아 줘. 제발.
실제로 하고 싶은 말은 이토록이나 이기적이었다.
손에 잡힌 옷자락을 마지막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꽉 붙잡았다.
그제야 마음속에 안심이 찾아왔다.
록사나의 눈물을 서툴게 닦아 주던 온기가 옷자락을 붙든 그녀의 손 위로 내려앉았다.
억지로 떼어 내려는 것처럼 록사나의 손등을 감싼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정작 그 이상의 행동은 이어지지 않은 채, 덧없는 시간만이 지나갔다.
틈 없이 맞물린 따스한 온기가 가슴 위에 멍울졌다.
하늘의 별처럼 어지럽게 뒤엉킨 감정들이 부딪쳐 엉망으로 깨져 나가던 기나긴 밤이었다.
록사나는 다음 날 오후까지 열병에 시달렸다.
그래도 그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밤새 앓았던 것이 꿈인 것처럼 정신이 또렷해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이번에도 가장 먼저 그녀의 시야에 비친 것은 소년이었다.
그는 록사나에게 옷을 잡힌 채 옆에서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열에 들떠 의식을 잃기 전에 깜빡 잊은 것인지, 소년의 몸에는 그를 결박하고 있는 사슬과 구속구가 하나도 없었다.
록사나는 잠든 소년을 한참 바라보았다.
간밤의 일을 더듬어 보았지만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역시 경계가 불명확했다.
똑똑.
“록사나 아가씨, 일어나셨습니까?”
문밖에서 들려오는 사용인의 목소리가 그녀를 불렀다.
록사나는 손에 쥐고 있던 구겨진 옷자락을 놓았다.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에 조금 머뭇거리긴 했지만, 결국 그녀는 소년을 묶어 두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 * *
이후로 록사나는 방을 나갈 때에도 소년을 자유롭게 놔두었다.
그래도 그는 그녀가 돌아올 때마다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 사실은 록사나에게 꽤나 중독성 있는 안도감과 기쁨을 느끼게 했다.
“그럼 다녀올게.”
오늘도 그녀는 소년에게 구속구를 채우지 않고 그의 뺨에 가볍게 입 맞춰 인사했다.
그 후 고개를 들자 어쩐지 머리카락이 살짝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록사나의 시선이 밑으로 떨어졌다.
소년의 손가락 사이에 그녀의 금빛 머리칼 끄트머리가 조금 얽히듯이 잡혀 있는 것이 보였다.
“나가지 말라고?”
얼마 전부터 록사나의 앞에서 조금씩 먼저 보이기 시작한 소년의 반응에 반가운 마음이 들어 물었다.
다른 사람으로서는 알지 못할 무수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것 같은 깊은 눈동자가 앞에 있는 그녀를 가만히 주시했다.
그러다 곧 그의 손가락에서 스르륵 힘이 풀어졌다.
혹시 얼마 전의 일 때문에 밖에 나가는 그녀를 걱정해 준 걸까? 아니면 그녀와 좀 더 같이 있고 싶어서?
어느 쪽이든 저 좋을 대로 생각한 것이었지만 아무렴 어떠랴.
“괜찮아. 금방 다녀올게.”
록사나는 웃으면서 소년을 한 번 꼭 끌어안은 뒤 방을 나섰다.
그래도 그날은 다른 때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저녁 무렵 일과를 마치고 다시 돌아왔을 때, 록사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방은 텅 비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