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48)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248화(248/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외전 39화
* * *
다른 사람도 아닌 제레미가 실비아에게 반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그런 마음을 품기 시작한 건지 록사나로서도 알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설마 제레미가 어울리지도 않는 연심 때문에 이렇게 천 치같이 굴 줄은 더더군다나 예상하지 못했다.
‘실비아 페델리안을 여기까지 데려오다니, 미쳤군.’
록사나는 제레미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몰래 납치해 온 여자의 존재를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제레미는 앙큼하게도 실비아를 여분의 장난감 방에 숨겨 놓고 천연덕스럽게 시치미를 뗐다.
그러나 록사나가 봤을 때 실비아는 제레미에게 납치당한 것이 아니라, 납치당해 준 것이었다.
즉, 실종된 오빠의 진실을 찾아 스스로의 의지로 아그리체에 들어온 것이란 의미였다.
페델리안에서 전부터 카시스의 일로 아그리체를 의심해 온 것은 너무나 명백했다. 그래서 실비아도 그동안 제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아그리체 주변을 맴돌았던 게 아니던가.
그런데 철옹성 같던 아그리체의 성벽이 이렇게 허무하게 뚫리다니.
혹시 실비아가 이것을 노리고 일부러 제레미를 꼬드긴 것은 아닐지 의심마저 들 지경이었다.
그 정도로 제레미가 한 짓은 뇌가 없다고 생각될 만큼 멍청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란트가 없을 때라 망정이지, 만약 운 나쁘게 들켰다면 실비아 페델리안이 어떤 꼴을 당했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록사나는 한동안 제레미를 주시했다.
그래도 처음에는 단순 소유욕인 줄 알았는데 실비아를 데려다 놓고 안절부절못하는 꼴을 보니 진심이긴 한 것 같았다.
록사나의 머릿속에도 여러 가지 생각이 오고 갔다.
‘아니……. 오히려 이 상황을 이용할 수는 없을까?’
아무도 모르게 제레미를 지켜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늪지대의 진흙처럼 어둡고 질척한 무언가가 소리 없이 도사리고 있었다.
요즘 록사나는 방에서 그리젤다의 주술서를 보는 날이 많아졌다.
란트가 공부시킨 내용 중의 하나인지, 아니면 단순히 그리젤다의 취미였던 것인지, 거기에는 현재 사용되지 않는 여러 금기된 주술들이 기록된 서적도 있었다.
“너, 실비아 페델리안을 언제까지 여기 둘 생각이야?”
“네가 그걸 어떻게……!”
“걱정 마. 아버지를 포함해서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 마음은 없으니까. 네가 가져온 사냥감이니 그걸 어떻게 하든 나하고는 상관 없어.”
“지금 나더러 그 말을 믿으라고?”
“애초에 내가 아버지께 받은 일을 쉽게 완수하려면 실비아 페델리안이 밖에서 돌아다니지 않는 게 나으니까.”
처음에는 의심하고 경계하는 듯하던 제레미도 록사나의 마지막 말에는 수긍했는지 살기를 약간 잠재웠다.
증거 인멸을 할 셈으로 록사나를 공격하려던 손도 주춤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완전히 그녀를 믿는 것도 아닌 듯했지만,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너, 혹시라도 틈새를 노려서 실비아 건드리면 가만 안 둬!”
제레미는 꼭 제 짝을 지키려는 짐승 새끼처럼 록사나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록사나는 그런 제레미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너도 참 딱하구나. 그렇게 그 애가 마음에 들면 차라리 그냥 솔직하게 알려 주지 그래?”
“뭐? 알려 주라니, 뭐를?”
“가엾잖아. 이미 세상에 없는 오빠를 찾아서 지금까지도 저렇게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허, 설마 지금 카시스 페델리 안 얘기야? 무슨 개소리를……. 너 돌았어?”
“설마 그 애가 진심으로 오빠가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아직도 미련을 못 버린 거겠어?”
달콤한 독을 바른 혓바닥에서 흘러나온 말이 실비아의 마음을 얻지 못해 초조해져 있던 제레미의 심장을 움켜쥐었다.
“처음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이제는 그냥 습관 같은 거지. 넌 몇 년이나 그렇게 오빠를 간절히 찾아다니는 게 이해가 돼? 정말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러는 게 가능할 것 같아?”
“그건…… 아니지만.”
역시 아그리체 사람인 제레미는 실비아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 단지 포기할 용기가 없어서 스스로는 그만두지 못하는 거야. 사실은 실비아 페델리안도 지금쯤 이 끝없는 술래잡기에서 해방되기를 바라고 있을걸. 다만 아직까지는 멈출 계기가 없어서 그러지 못하고 있던 것뿐이지.”
제레미는 애정을 갈구하는 어린 애였다. 그런 그가 조금은 한심하기도 하고 또 조금은 불쌍하기도 했다.
“내가 맞혀 볼까? 실비아가 널 따라 여기에 올 때 생각보다 저 항이 약하지 않았어?”
“맞아……. 그랬어.”
“널 어느 정도 마음에 둔 게 아니면 설마 그렇게 얌전히 따라왔을까.”
그래도 록사나는 그런 부분까지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러니 겁쟁이처럼 두려워할 게 뭐가 있어? 더군다나 그 애는 지금 지쳐 있고, 그런 상황이라면 몇 년간이나 그토록 애타게 갈구해 왔던 진실을 손에 쥐여 준 사람에게 저절로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사랑이란 감정은 참으로 부조리해서 거기에 매혹된 인간의 이성을 쉽게도 마비시켰다.
제레미는 거의 홀린 것처럼 록사나를 보고 있었다. 실비아 페델리안을 갖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만큼 그녀의 말에 마음이 크게 흔들린 눈치였다.
그가 듣고 싶어 할 이야기만 골라서 해 주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러나 어리석었다.
록사나가 한 말의 일부는 진실일지 몰라도, 만약 실비아가 카시스 페델리안의 죽음에 대한 전말을 알게 된다면 같은 아그리체인 제레미 역시 결코 용서할 리 없었으니.
록사나는 성녀처럼 웃으면서 덧붙였다.
“너도 알다시피 그 애는 착하니까. 그러니 분명 널 이해하고 용서해 줄 거야.”
* * *
실비아 페델리안이 절규했다.
그녀는 아그리체의 모두를 저주하며 복수할 것을 맹세했다.
그날 밤에도 록사나는 방에서 빠져나와 달빛조차 비추지 않는 어둠 속의 아그리체를 홀로 거닐었다.
늘어뜨린 손을 타고 흘러내린 피가 성벽 내곽 주변에 무질서하게 자란 풀잎 위로 떨어져 바닥까지 스며들었다.
그녀의 눈과 귀, 그리고 손길이 미치는 영역은 한정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들을 그녀가 있는 곳으로 모이게 하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얀 초승달 같은 미소가 밤의 그림자 속에 희미하게 녹아들었다.
“또 이상한 짓을 하고 있군.”
그때 암흑 속에서 나지막한 음성이 날아왔다.
록사나는 그녀를 보는 시선을 이미 알고 있던 것처럼 조금도 놀라지 않고 소리가 난 곳으로 조용히 눈동자를 움직였다.
“뭘 위해서 밤마다 이런 행동을 하는 거지?”
데온의 눈길이 소매가 걷어 올려진 록사나의 팔로 떨어져 내렸다.
아무렇게나 그어진 자상에서 아직도 흐르고 있는 붉은 피가 달빛에 반짝였다.
“무슨 상관이야?”
록사나는 주위에 퍼져 나가는 피 냄새만큼이나 은은한 웃음을 머금은 채로 데온을 보았다.
“네가 언제부터 나한테 관심이 있었다고.”
예전에는 란트만큼이나 데온이 무섭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녀가 살면서 정말 두려워해야 했던 건 그런 것 따위가 아니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넌 이 세상의 무엇에도 흥미가 없지.”
록사나는 데온이 요즘 밤마다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목격한 것을 란트에게 말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들지 않았다.
“나를 내버려 둬. 그럼 네가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재미있는 걸 구경하게 될 거야.”
결국은 데온 아그리체도 록사나의 눈으로 속을 꿰뚫어 볼 수 있게 된 인간일 뿐이었다. 그런 인간은 더 이상 록사나에게 공포를 주지 못했다.
그녀는 적요한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남자를 두고 먼저 돌아섰다.
* * *
“미안, 화내지 마. 네 동생을 괴롭히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니까.”
다음 날, 록사나는 노을 지는 창가에 앉아 무릎 위에 올려 둔 유리 상자 속의 소년에게 사과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상처 자국이 나 있었다.
제레미가 록사나의 수집품 방에 쳐들어와 난장판을 만들 때 생긴 것이었다.
어떻게든 실비아를 달래려다가 실패했는지, 제레미는 록사나를 거의 죽일 것처럼 굴었다.
때마침 란트가 귀가할 때라 그녀에게 그 이상 손대지는 못했지만 대신 그는 록사나의 수집품 방에 있던 황금색 눈을 강탈해 갔다.
록사나는 제레미에게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저항하는 척했다.
하지만 사실 그 눈은 카시스의 것이 아니라 가짜였으니 훔쳐 가든 망가뜨리든 상관없었다.
록사나가 목숨처럼 아끼는 진짜는 지금도 이렇게 그녀의 품에 안겨 있었으니까.
“그냥 나도 조금만 도움을 받으려는 거야. 처음부터 이럴 의도였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잖아. 어차피 그 애가 바라는 것도 다르지 않을 텐데.”
록사나는 진한 노을빛이 스민 창밖에 시선을 두며 유리 상자 위로 고개를 기댔다.
‘그리고 너도…….’ 하고 덧붙이는 음성이 창밖에서 새어 들어온 저녁 공기에 섞였다.
“난 지금까지 살면서 아무것도 이 손으로 지키지 못했어.”
그래서 이번에는 반대로 생각해 봤다.
“하지만 망가뜨리는 건 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묘한 광채를 드리운 채 섬요하게 빛나고 있는 붉은 눈동자가 심연 너머의 달콤한 미래를 몰래 엿본 듯이 감미로운 온기를 머금었다.
땅 밑으로 떨어져 고이는 낙조가 오늘따라 유난히도 아름다웠다.
* * *
“이 멍청한 년!”
짜악!
란트의 두꺼운 손에 뺨을 얻어맞은 록사나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같이 보낸 사람이 몇인데 죄다 죽고 심지어는 알아낸 것조차 없이 덜렁 돌아와?!”
요즘 특별한 일이 없는데도 이상하게 느낌이 별로 좋지 못했다.
그래서 란트는 이유 없는 찜찜함을 해소할 겸 그냥 한번 사람을 추려 아그리체 주변을 정찰하게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록사나가 자신에게 일을 맡겨 달라고 자신만만하게 먼저 앞으로 나섰다.
그래서 믿고 밖으로 내보냈더니 결과가 이다지도 처참했다.
더군다나 다른 이유도 아니고, 경계에서 길을 잘못 들어 마물에게 당해 죽어 버렸다니.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서 뒷골이 당길 지경이었다.
같이 보낸 수하들이 목숨 바쳐 시간을 버는 동안 혼자 도망쳐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록사나의 몰골 역시 멀쩡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