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25)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25화(25/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25화
* * *
결국 제레미는 하녀들의 뒤를 따라 마리아가 있는 곳까지 이동했다.
마리아는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밭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낮은 바람에 흔들리는 붉은 꽃의 물결이 마치 피바다처럼 보였다.
“마리아 아줌마.”
뒤쪽에서 들려오는 부름에 곧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제레미의 본데없는 호칭에 하녀들 중 몇 명이 흠칫했다.
하지만 예전부터 마리아의 밑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익숙한 듯 아무런 반응도 내보이지 않았다.
“제레미.”
정작 마리아부터 호칭 따위에 연연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녀는 제레미를 보자마자 환하게 미소 지었다.
마리아는 원래 미형의 사람이나 동물, 물건 따위를 유독 좋아했다.
그래서 아그리체 내에서는 록사나와 그녀의 어머니인 시에라를 특히 좋아했고, 지금처럼 제레미가 버릇없이 굴어도 언제나 너그러운 모습을 보였다.
“날 보러 온 거니? 기뻐라.”
물론 그녀의 생각대로 제레미는 마리아를 보러 온 것이 맞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녀들의 뒤를 졸래졸래 따라왔을 리가 있나.
“아줌마, 또 안 좋은 버릇이 도졌더라?”
비록 그것이 좋은 의도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제레미는 마리아에게 대놓고 시비를 걸었다.
“한동안 조용하더니 멀쩡한 하녀는 또 왜 죽이고 지랄이람. 이러다가 마물들이 아줌마를 사육사로 알겠어.”
“제레미, 난 말을 잘 안 듣는 아이들만 벌준단다. 멀쩡한 하녀를 죽이다니, 어쩜 오해하는 것도 귀엽기도 하지.”
우웩.
제레미는 토하는 시늉을 했다.
마리아는 제레미가 무슨 말을 하든, 어떤 태도를 취하는 그저 다 귀엽다는 듯이 다정히 웃기만 했다. 마치 어린아이의 재롱을 보기라도 하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나저나 그 꼴로 잘도 돌아다니네. 아줌마한테 피비린내 쩌는 거 알아? 진짜 비위 상하게.”
엄밀히 따지자면 굳이 찾아와서 이런 식으로 시비를 거는 제레미도 딱히 정상은 아니었다.
게다가 조금 전 하녀를 벤 일로 피투성이가 된 마리아와 마찬가지로 방금 전까지 마물 사육장에 있던 제레미의 몰골도 썩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
“제레미, 너야말로 마물 사육장에 다녀오는 길이니? 그 새까만 것 때문에 네 예쁜 얼굴이 잘 안 보이는구나.”
안타까움을 담은 마리아의 탄식에 제레미가 흥 콧방귀를 뀌었다.
마물의 독액을 뒤집어쓴 것이 처음으로 그리 나쁘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그런데 마리아의 말을 듣고 보니, 문득 아직까지도 독액의 비린 맛이 입 안에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레미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는 옆에 있는 빨간 꽃잎을 한 움큼 뜯어서 입 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지금 그들이 서 있는 곳 지천에 깔린 붉은 꽃은 아그리체 내에서 자체적으로 품종을 개량한 마약 성분이 있는 꽃이었다.
하지만 환각 등의 작용을 가진 것은 줄기와 이파리 부분뿐이었다. 물론 꽃잎에도 두통 등을 야기하는 독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독에 내성이 있는 제레미에게 있어서 이 정도는 그냥 아무런 효능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나도 바빠 보이던데 말이야. 공부도 쉬엄쉬엄 해야지, 너무 무리하면 몸에 좋지 않아.”
“남이사 뭔 상관…… 잠깐, 사나 누나 만났어?”
제레미는 입가심으로 꽃잎을 씹다 말고 멈칫했다.
“조금 전에 우연히 만났어. 데온도 불러다 셋이서 같이 차를 마실까 했더니, 데온은 집에 없고 사나는 다른 일정이 있다지 뭐야.”
이번에는 제레미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왕창 구겨졌다.
“뭐라고? 할 짓이 없어서 재수 없는 데온 새끼를 그 자리에 부르려고 해?”
갑자기 입 안에 감돌던 은은한 꽃 향이 역하게 느껴졌다.
제레미는 록사나가 데온과 마리아를 둘 다 싫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제레미도 록사나를 따라 두 사람을 덩달아 싫어하고 있었다.
아니, 물론 ‘록사나를 따라서’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긴 했다.
데온은 혼자 떼어 놓고 봐도 도무지 호감 가는 곳이 보이지 않는 재수 없는 놈이었고, 그의 어머니인 마리아도 사람을 질색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건 아들과 똑같았다.
그런 이유로 제레미는 평소에도 굳이 이렇게 시간을 내 데온과 마리아에게 시비를 걸러 오곤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들에게는 제레미의 시비가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오만상을 찌푸리며 자리를 떠나는 것은 항상 제레미 쪽이었다.
제레미는 그 점에 더 오기가 들어 그들에게 시비를 거는 일을 아직까지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맞아, 내 아들이지만 데온이 별로 귀엽지 않은 성격이긴 하지.”
마리아는 제레미가 데온의 욕을 하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듯이 선뜻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전에도 사나 누나한테 데온 가져다 붙이지 말라고 했지?”
제레미는 짜증스럽게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마리아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나? 왜, 남매끼리 사이좋게 지내면 좋잖아?”
“남매? 나아암매애?”
이 아줌마가 미쳤나?
남보다 못한 게 아그리체 인간들인데 남매는 무슨 얼어 죽을 남매야? 게다가 하필 그 데온 자식이랑?
“이봐, 마리아 아줌마. 귓구멍 열고 똑똑히 들어.”
제레미는 입가에 비웃음을 걸며 말을 이었다.
“사나 누나한테 ‘남매’란 단어를 가져다 붙일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오직 딱 한 사람, 나밖에 없어. 알았어?”
세상이 두 쪽 나도 결코 변하지 않을 만고강산의 진리를 읊는 듯이, 실로 위풍당당한 선언이었다.
그러자 마침내 마리아가 제레미의 말뜻을 알아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그래, 그럼 다음에는 사나랑 데온만 부르지 않고 제레미 너도 부를게. 너만 빠트려서 삐졌구나.”
“아씨, 그런 얘기 아니거든?”
제레미는 아까보다 더 짜증이 났다. 마리아의 머리에는 도대체 뭐가 들었는지,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나 누나가 그렇게 한가한 줄 알아? 차는 무슨 놈의 얼어 죽을 차.”
그는 마리아가 손수 가꾸는 이 꽃밭에 확 불을 질러 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끼며 신경질적으로 뇌까렸다.
“가뜩이나 요즘은 그 빌어먹을 장난감 때문에 나랑 같이 있는 시간도 줄었는데.”
“장난감?”
“그 청의 개새끼 있잖아. 얼마 전에 사나 누나가 데려간…….”
그런데 마리아의 반응이 이상했다.
그녀는 이제까지 중에 가장 생생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깜짝 놀란 것처럼 동그랗게 떠진 눈을 보고 제레미는 의혹을 품었다.
“뭐야, 설마 몰랐어?”
록사나가 처음으로 제 소유의 장난감을 들인 것은 저택 내에서도 꽤 크게 소란이 된 일이었다.
그래서 제레미도 당연히 마리아가 그 사실을 알고 있을 줄 알고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마리아는 자신의 아들이 이미 한참 전부터 집에 없었다는 사실도 여태 몰랐지 않은가?
그러니 록사나의 장난감 이야기에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이는 것 정도야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귀 좀 열어 두고 살아. 같은 저택 내에 살면서 아는 게 없어. 보나마나 또 인형 놀이인지 뭔지 하는 그 음습한 취미 생활이나 하고 있었겠지.”
제레미는 있는 대로 빈정거리며 쯧쯧 혀를 찼다.
하지만 마리아의 귀에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래, 사나에게 장난감이 생겼다니……. 궁금해라. 어떤 아이일까?”
“그냥 데온만큼이나 존재 자체만으로도 재수 없어.”
마리아의 혼잣말 같은 물음에 제레미가 가차 없이 평했다.
그러나 역시 마리아는 제레미의 말을 그냥 흘려듣는 것 같았다. 그녀의 두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누가 가서 르웰을 불러와. 이런 재미있는 걸 아직까지도 나한테 말해 주지 않다니, 그 아이 영 쓸모가 없네.”
하지만 곧 마리아는 하녀가 고개를 조아리며 자리를 떠나기 직전 자신의 말을 번복했다.
“아니, 그냥 내가 직접 가야겠다. 제레미, 내 방에 놀러 올래? 맛있는 거 줄게.”
“집어치워. 난 아줌마 인형 아니거든?”
제레미는 마리아의 생각을 다 안다는 듯이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곧장 진저리를 치며 자리를 떠났다.
마리아는 그런 제레미의 뒷모습을 보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잠시 후 저택을 향해 걷기 시작한 그녀의 얼굴에는 아까와 같은 호기심과 기대감이 가득 떠올라 있었다.
“조만간 사나한테 초대장을 보내야겠네. 장난감까지 동반한 티 파티를 열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들뜬 목소리로 혼잣말하는 마리아의 등 뒤로 피처럼 붉은 꽃이 살랑살랑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