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31)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31화(31/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31화
하지만 곧 카시스는 그가 붙잡은 것이 붕대를 감은 내 왼팔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내 팔을 옥죄고 있던 손아귀에서 스륵 힘이 풀어졌다.
나는 이제 카시스 페델리안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얼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상황, 이런 순간에서조차 이 남자는 이다지도 신사적으로 나를 배려하고 있었다.
다만 나는 그런 그를 어떻게든 이용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미안해.”
조금 전 카시스가 쥐었던 왼팔을 들어 그의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아마도 지금 내 얼굴은 간이고 쓸개고 다 빼 줘야 할 것처럼 더없이 처연하고 안쓰러워 보일 것이 분명했다.
그 증거로 카시스는 여전히 눈매를 굳힌 채 차마 내 손을 뿌리치지도 못하고 있었다.
“기분이 나빠도 조금만 참아 줘.”
미안하지만 여기서 어중간하게 그만둘 수는 없었다.
카시스의 목에 남은 흔적이 아직 너무 옅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다.
“최대한 금방 끝낼 테니까…….”
나는 최대한 애처로워 보이게 시선을 내리깔며 속삭였다.
마치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듯이.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하는 것을 내가 아주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처럼.
“당신은 그냥 가만히 있으면 돼.”
하지만 역시 내 행동을 더 이상 묵인할 마음은 없는 듯, 카시스의 손이 그의 얼굴에 닿아 있던 내 손을 붙들었다.
그것과 동시에 다시 한 번 내 고개가 그의 목덜미 위로 떨어져 내렸다.
“잠깐, 너…….”
카시스가 나를 막으려 입을 열었으나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내 손을 감싸고 있는 악력이 점차 강해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나를 밀쳐낼 줄 알았는데 카시스는 그러지 않았다.
어쩌면 내 행동이 워낙 뜻밖이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것일 수도 있었다. 맞닿은 몸은 아까보다 한결 더 딱딱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쿵쿵, 아까보다 한결 더 거세진 심장 박동이 몸을 울렸다. 이번에도 역시 누구의 심장 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최대한 선명한 자국을 남기기 위해 과감하게 움직였다.
불현듯 내 뒷덜미에 카시스의 손길이 닿았다. 아까처럼 나를 떼어 내려는 것인가 싶어서 더 세게 그의 목을 깨물었다.
그러자 내 머리카락 사이를 파고든 손이 우뚝 멈추어졌다.
낮은 숨이 내 귓가에 흩뿌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뒷덜미가 약간 당기는 느낌이 드는 걸 보니, 카시스의 손가락이 내 머리카락을 휘감아 붙잡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아플 정도는 아니었고, 오히려 모순적이게도 그의 손을 지지대 삼아 더 편하게 자국을 남기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카시스가 방해가 될 정도로 몸을 움직이거나 나를 떠밀지 않아서 생각보다 일이 쉬웠다.
하나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내친김에 두어 개 정도 흔적을 더 만들었다.
잠시 후, 나는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카시스의 목에 또렷이 남은 자국을 느리게 쓸었다.
숨을 내쉬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는 얌전한 몸과 달리 그의 찬연한 금색 눈은 나를 집어삼킬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손끝에 닿은 단단한 근육이 이완과 수축을 반복했다. 마치 무언가를 애써 참아 내고 있는 것처럼.
“도와줘서 고마워, 카시스.”
나는 그를 향해 다정하게 속삭였다.
일단은 이것으로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 * *
끼리끼리 놀고들 있네.
나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저 멀리 보이는 두 사람을 응시했다.
란트 아그리체와 데온 아그리체였다. 두 사람은 정원에 서서 무어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비를 심어 둔다면 그들의 대화를 나도 엿들을 수 있을 테지만 아직은 위험부담이 있어 그냥 포기했다.
괜히 어쭙잖게 나섰다가 얻은 것 하나 없이 숨겨 놓은 패만 들통날 수도 있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보니까 닮긴 닮았구나.
란트와 데온은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이 동일한 부자였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이목구비 자체는 전혀 달랐다.
또 워낙에 둘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다르다 보니, 오히려 이렇게 멀리서 언뜻 보았을 때가 차라리 더 서로와 닮은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란트가 손을 들어 데온의 어깨를 두드렸다. 일을 잘 끝마치고 돌아온 것을 칭찬해 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그리체의 아이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저택 밖으로 나서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현재 이런 식으로 가문을 위한 임무를 맡은 형제는 극히 일부뿐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현재로서는 단 둘뿐이다.
내 위로는 한 명의 언니와 세 명의 오빠가 있었지만 그중 한 명인 아실은 예전에 폐기 처분 당해서 죽었다.
남은 셋 중에 한 명은 아직 열일곱 살로, 성인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현재 유일하게 대외 활동을 하는 것은 두 명의 형제 뿐이었고, 그들 중 월등한 성과를 보이는 것은 단연코 차남인 데온이었다.
한순간 착각처럼 저 멀리 있는 데온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나는 언제 그를 보았냐는 듯이 곧바로 싸늘하게 몸을 돌렸다.
5년 전, 아실이 죽은 이유는 목표 대상을 제거하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 후 결국 아실은 폐기 처분을 선고받았다.
그리하여 그런 그를 최종적으로 죽인 사람이 바로 데온 아그리체였다.
그것이 내가 그를 좋아할 수 없는 첫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그가 이곳에서 내 약한 모습을 본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 * *
“못 하겠어?”
이제 막 미성숙한 소년을 넘어 어른이 되어 가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만약 사람의 목소리를 형체화 할 수 있다면, 그의 목소리는 손만 대도 부스러질 한겨울 밤의 모래알이 되었을 것이 분명했다.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그의 음성은 감정 한 톨 담기지 않은 것처럼 지독히도 차갑고 건조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날카로운 비수라도 되는 것처럼 불현듯 숨을 멈추었다.
그때의 나는 옆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었을 정도로 아연실색해 있었다.
“그럼 하지 마.”
한기 어린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그 후 그가 걸음을 옮겨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가 미처 하지 못한 일을 대신 마무리 지으려는 것이었다.
만약 내 머리가 조금 더 나빴다면, 이대로 내 손을 더럽히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심했을지도 몰랐다.
또는, 이 끔찍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마냥 기뻐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것은 자비도 수용도 아니다.
지금 내가 이 일을 하지 못하면, 돌아오는 것은 죽음뿐일 것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일을 처리하는 것은 나여야만 했다.
게다가 꼭 그것뿐만이 아니더라도 나는…….
“……져.”
마침내 이를 악물고 내뱉은 내 말에 다가오던 사람이 발길을 멈추었다.
목이 잠겨 들릴 듯 말 듯 아주 자그마한 음성이었는데도 그것이 그의 귀에 닿은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나는 후들거리는 손을 뻗어 벽을 짚었다. 그리고 주저앉아 있던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꺼져, 데온.”
그런 뒤 어느덧 내 지척까지 다가와 서 있는 남자에게 다시 한 번 씹어뱉듯이 읊조렸다.
“여기에 네가 나설 자리는 없으니까.”
열다섯 살의 최종 월례 평가 날이었다.
이미 몇 년 전에 죽은 아실이 내 눈앞에서 울고 있었다.
그래, 이것은 환영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죽은 사람이 산 사람처럼 버젓이 내 눈앞에 서 있을 수는 없었다.
아까부터 머리가 어지럽던 것도 나도 모르는 새 환각제를 다량 투여받은 탓인 것 같았다.
아니, 하지만 어쩌면 지금 내가 어지러운 것은 꼭 환각제 때문만이 아닐 수도 있었다.
나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내 죽은 오빠를 향해 걸어갔다.
그를 애도할 꽃이 아닌, 그의 숨을 단번에 끊어 버릴 날카로운 칼을 손에 들고서.
“너 따위의 손에 아실을 두 번 죽게 하지는 않을 거야.”
그 순간, 얼어붙은 바다처럼 한없이 고요하고 또 차갑기만 하던 남자의 눈동자에 선득한 광채가 떠올랐다.
나는 그 시선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아니, 그 당시의 나에게 그런 것은 단지 하잘것없기만 할 뿐,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뒷모습에 따라붙는 집요한 시선을 뒤로한 채 그저 눈앞에 있는 이를 향해 걸었다.
열다섯 살, 오늘의 나와 동갑이던 아실은 이 방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아실의 환각 속에는 도대체 누가 나왔기에, 목표물을 처리하지 못한 대가로 그가 대신 죽어야만 했을까.
나는 그날 이후로 늘 그것이 궁금했지만 내 물음에 대답해 줄 사람은 이미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