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4)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4화(4/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4화
* * *
다음 날 다시 지하 감옥을 찾았다.
원래 뭐든 처음이 가장 어렵고 두 번째부터는 더 쉬운 법이다.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이 감옥을 출입하는 게 쉬웠으니 두 번째는 더 볼 것도 없었다.
옥지기를 딱히 구슬릴 필요도 없이 그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넙죽 문을 열어 주었다.
나는 그 안으로 발을 들이기 직전에 옥지기를 향해 물었다.
“어제 내가 다녀간 뒤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이 안에 들어온 적 있어? 제레미라거나 아니면 샬럿이라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라도.”
“아니요, 주인님께서 아무도 안으로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나는 들어갔잖아.”
스쳐 지나가듯 읊조린 내 말에 그가 멈칫했다.
나는 슬쩍 옆에 있는 얼굴을 살핀 뒤 언제 그를 관찰했냐는 듯이 눈꼬리를 접어 사르르 웃었다.
“나만 특별히 안으로 들여보내 준 거구나.”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았다.
“이름이 뭐야?”
“네?”
“너 말이야. 이름이 뭐냐고.”
나이도 한참 더 어린 내가 대놓고 반말을 하는데도 그는 조금의 위화감이나 불쾌감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멍청하게 얼굴을 붉혔다.
“요, 요안입니다.”
“그래. 고마워, 요안. 혹시 나 때문에 난처한 일이 생기지 않게 오늘도 잠깐 얼굴만 보고 나올게.”
“별말씀을요!”
고작 이름 한 번 불러 주고 좀 웃어 주었을 뿐인데, 그는 술에 취하기라도 한 사람처럼 귓불까지 빨갛게 붉힌 채 횡설수설했다.
“저야말로 소문으로만 듣던 록사나 아가씨를 이렇게 직접 뵙게 되어서 영광이고, 또 이렇게 작은 도움이나마 될 수 있어서 기쁜…….”
나는 격양된 어조로 주절거리는 그의 말을 웃는 낯으로 무시한 뒤 감옥 안으로 들어섰다.
으음. 여전히 기분 나쁜 곳이야. 공기도 불쾌하고. 웬만하면 별로 오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카시스 페델리안이 여기에 있으니 어쩔 수 없지.
끼이익.
오늘도 철문에서는 귀 따가운 소리가 울렸다. 적어도 100년은 기름칠을 안 한 것 같은 끔찍한 소리였다.
감옥은 다 이런가? 예전부터 소설이나 영화, 혹은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꼭 이런 장소에서는 문에서 소름 돋는 소리가 나더라. 공기가 습해서 그런가.
그런 생각을 하며 안으로 들어서다가 문득 감옥 안에 있던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타오르는 태양 같은 강렬한 금색 눈동자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 오늘은 깨어 있었네.”
어제의 기절한 모습이 뇌리에 남아 있던 탓일까?
설마 벌써 이렇게 눈을 말똥히 뜨고 있을 줄은 몰라 한순간 멈칫했다.
그는 숨을 죽인 채 조용히 나를 주시하고 있다가 내 목소리를 듣고 움찔 눈살을 찌푸렸다.
“너…….”
곧이어 그가 나를 매섭게 노려보며 입을 벌렸다.
어제 그를 찾아왔던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눈치였다. 어제는 비몽사몽간이라 내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었던 걸까?
내가 철창 안으로 들어서자 그가 경계하며 물었다.
“어제 나한테 뭘 먹인 거야.”
여전히 잔뜩 쉬어 갈라진 목소리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당장이라도 나를 베어 넘길 듯한 서늘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팔다리도 여전히 묶여 있는 주제에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궁금해하니까 대답해 줄까?
“해독제. 마비 독에 당해서 왔잖아.”
나는 담담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그거 그냥 놔두면 적어도 닷새는 가. 그때 되면 근육통이 엄청나거든.”
보아하니 어제 이후 추가적으로 더 맞은 곳은 없는 것 같았다. 대충 확인하긴 했지만 다른 상처가 더 늘어나진 않은 듯했으니.
채찍질당한 상처를 치료해 주는 건 너무 눈에 띄는 짓이라 거기까지 할 생각은 나도 없었다.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거야?”
“어제보다 몸이 많이 편해지지 않았어? 이렇게 멀쩡한 정신으로 나랑 대화도 나누고 있잖아.”
내 말에 그가 입을 꾹 다물었다.
당연히 나를 곧바로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한테 다른 것을 더 묻고 싶은 것 같았지만 그는 상당히 신중한 성격인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게 해독제가 맞다면, 무슨 꿍꿍이로 나한테 약을 준 거지?”
“그런 거 없어.”
일순간 그의 눈에 혼란이 스쳐 지나갔다.
물론 그것은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을 뿐, 곧 그는 다시금 굳은 얼굴로 나를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너…… 도대체 누구야?”
낮게 갈라진 목소리가 바닥을 기어 내게 도달했다.
하지만 남의 정체를 알고 싶으면 자기소개부터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카시스 페델리안.”
뒤이어 내 입에서 흘러나온 이름에 소년이 움찔했다.
“당신 이름 맞아?”
그래도 이때까지는 아주 조금이나마 기대하고 있었다. 혹시 이 소년이 내 예상과는 다른 인물이 아닐까 하고.
하지만 곧 고막을 파고든 살기 어린 음성에 나는 미련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서 무슨 발뺌이지? 내가 누구인지 뻔히 다 알면서 비열한 수를 써 여기까지 끌고 와 놓고는.”
아, 제기랄. 역시 맞구나. 그래도 만에 하나에 걸어 보고 싶었는데.
“그만 네 정체를 밝혀. 너도 더러운 아그리체의 졸개인가?”
미쳤네, 여기가 아그리체인 것도 알고 있구나.
하긴 내 아버지가 딱히 은밀하게 정체를 감추고 범죄를 저지르는 성격은 아니지. 차라리 눈앞에서 대놓고 상대방을 비열하게 비웃어 주면서 칼빵을 놓으면 또 몰라.
나는 제자리에 서서 약간 심란한 눈으로 눈앞의 소년을 보다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그런데 나 계속 궁금했던 게 있는데.”
“네 정체가 뭐냐고 물었어. 대답부터 해.”
나는 카시스 페델리안의 말을 무시하고 어제부터 계속 신경 쓰였던 것을 물었다.
“당신, 지금 눈 안 보이지?”
그 직후 지하 감옥 안에 침묵이 맴돌았다.
카시스 페델리안은 내 말에 동요를 내비치지 않았다. 하지만 조용히 나를 주시하는 그의 눈을 보고 나는 해답을 찾아냈다.
“맞구나, 안 보이는 거.”
지금 내가 걸음을 옮겨 다가가는 동안에도 그는 정확히 내 얼굴을 보고 있었다.
아까 철창의 문을 열어 이곳에 막 발을 들였을 때부터 카시스는 아주 자연스럽게 시선으로 나를 좇았다. 그래서 나도 계속 긴가민가하며 확신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거 몇 개로 보여?”
“치워.”
나는 카시스의 앞에 다다라 눈 앞에 손을 들어 휘휘 흔들었다.
물론 그는 내게 장단을 맞춰 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그의 태도에서 확신했다.
“어쩐지 날 보고도 너무 무반응이더라.”
그래, 눈이 제대로 보였으면 나를 이렇게 코앞에 두고도 동공의 흔들림 하나 없을 리가 없었다.
적어도 눈이 마주친 첫 순간 정도는 동요를 보여 주는 게 맞았다. 지금까지 내 얼굴을 보고 조금도 놀라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
물론 나는 그가 적지에서 보게 된 사람이었으니 경계하고 싫어하는 게 오히려 당연할 테지만, 그건 이것과 별개였다.
물론 누가 들으면 도끼병 말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건 매우 타당한 결론이었다.
역시 카시스는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눈치였다.
그래, 눈이 보이지 않으면 그럴 수 있지.
게다가 조금 전 그가 내게 ‘너도 아그리체의 졸개냐’고 물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분명 어제 카시스는 다른 가족들의 옆에 함께서 있던 나와 시선이 마주쳤으니 말이다.
내 생각에는 그를 납치해 올 때 마비 독 말고 시력을 앗아 가는 수단까지 사용한 것 같았다.
지금 카시스가 손발에 차고 있는 것도 그냥 마물이 아닌 대마물용 구속구였다.
그런 걸 보면 이 소년을 사로잡기가 어지간히 까다롭기는 했던 모양이다.
어제 나와 내 가족들을 노려보는 형형한 눈빛에 놀랄 정도였는데, 그때도 그저 기척으로 위치를 파악한 것뿐이었나.
나는 잠깐 그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딱히 불온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의 눈에 관련된 징후를 찾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내 눈에 어떤 흔적이 비쳐 들었다.
나는 서슴없이 손을 뻗어 찢어진 셔츠의 틈새를 벌렸다. 내 손길이 닿은 순간 카시스가 미간을 좁히며 움칫했다.
“이건 독이 아니라 주술이네. 일시적인 효과라 오래가지는 않겠어.”
허리 부분에 새겨진 작은 소용돌이 문양을 보니 지금 카시스는 거의 완전히 실명한 상태인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감쪽같이 행동하다니……. 이 자식, 좀 놀라운데?
나는 미간을 좁히며 눈앞에 있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이번에도 그는 정확히 내 눈을 마주했다.
가까이에서 본 카시스는 어제 느낀 것보다 확연히 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기절해 있을 당시에는 굉장히 곱상하고 순한 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제대로 눈을 뜨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그에게서 느껴지는 압박감이 상당했다.
아직 열일곱 살밖에 안 된 소년답지 않게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서 그런가.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 침착한 태도를 보이고 말이야.
“일단 눈은 그냥 놔둘게.”
지금도 두려움이나 불안감을 표하기는커녕 눈빛이 굉장히 싸늘하게 벼려져 있어 등줄기에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어차피 이틀 정도 있으면 조금씩 시력이 돌아오기 시작할 테고, 해주법이 까다로운 주술이라 지금 건드리는 건 비효율적이야.”
카시스는 내 말의 의중을 파악하려는 듯이 잠시 침묵했다. 앞에 있는 내 기색을 읽으려 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어차피 이런 말 해 봤자 안 믿겠지만.”
나는 그를 향해 조용히 읊조렸다.
“난 당신이 죽기를 바라지 않아.”
“뭐……?”
내 말이 뜻밖이었는지 그의 표정이 변했다.
“그럼 또 올게.”
“잠깐, 기다려.”
카시스가 나를 붙잡았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겨 지하 감옥에서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