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42)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42화(42/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42화
* * *
마지막 계단을 밟았을 때, 나를 기다리듯이 서 있는 데온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까 그 낯짝을 한 대만 때린 게 아쉬워.”
다시금 얼굴을 마주한 그를 보며 나는 말했다.
“만약 카시스가 어머니를 구하지 않았으면 어쩔 셈이었어?”
데온은 언제나처럼 고요하기 짝이 없는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뻔뻔히 대꾸했다.
“아무것도.”
망할 자식.
나는 냉랭한 눈으로 눈앞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치밀어 오르는 불쾌감을 삼켰다. 데온에게만큼은 절대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말했잖아.”
그런 나를 향해 데온이 웃었다.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모골이 송연해질 만큼 섬뜩한 미소였다.
“난 네가 우는 걸 보는 게 좋다고.”
역시 아그리체의 사람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데온은 가장 위험한 축에 속하는 인간이었다.
“유감이네.”
나는 속에서 꿈틀거리는 뜨거운 불길을 내 안에 가둔 채 싸늘히 그를 스쳐 지나갔다.
“그거야말로 앞으로 당신이 죽는 순간까지 영원히 보지 못할 모습일 테니까.”
등 뒤로 집요한 시선이 따라붙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그것을 익숙하게 무시했다.
어쩐지 지금 이 상황이 조금 구역질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용한 복도를 걷다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밤하늘을 품은 유리창에 조금 전 보았던 데온 못지않게 섬뜩하리만치 냉정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 얼굴이 비쳤다.
그래……. 이 경멸과 혐오가 향하는 곳은 비단 타인만이 아니었다.
“네, 어머니가 바라셨던 대로 저도 이제는 훌륭한 아그리체가 되었어요.”
“전 자랑스러운 아그리체이자, 존경하는 아버지를 그 누구보다 많이 닮은 딸이니까요.”
정말 살면서 몇 번이나 되뇌었던 그 말처럼 된 모양이었다.
유리창에 비친 나는 어느새 그 누구보다도 아그리체다운 인간이 되어 있었다.
“역겨워라.”
나는 나밖에 듣는 이가 없는 말을 작게 읊조리며 유리창 속의 얼굴을 외면했다.
* * *
그 시각, 카시스는 환각의 방에 갇혀 있었다.
〈안 돼……. 죽으면 안 돼, 눈을 떠, 제발…….〉
낮에 들었던 것과 비슷한 간헐적인 울음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눈을 감고 있는 동안 꿈인지 환상인지 모를 광경이 어둑한 시야에 떠올랐다.
누군가를 끌어안고 울고 있던 여인이 마침내 그를 돌아보았다.
눈물 어린 얼굴에 떠오른 선명한 원망과 질책의 감정에 덜컥 숨이 막혔다.
장면이 바뀌어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 시린 눈빛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가 나타났다.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네 힘은 재앙과도 같다.〉
그래……. 이것은 수면 아래에 깊숙이 묻어 두고 있던 기억이었다.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지금 같은 일에 네 힘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처음으로 후회를 배웠던 그날. 어리석었던 그는 제 손으로 절망의 독배를 삼켜야만 했다.
〈우리는 고결한 심판자 페델리안. 그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지 마라.〉
〈긍지를 잃은 자에게는 오직 파멸만이 있을 뿐이니.〉
단단한 바위 같은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부터 그를 짓눌렀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귓전에 울리던 목소리가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네게 금제(禁制)를 걸겠다.〉
카시스는 모래성처럼 부스러지는 꿈에서 벗어나 눈을 떴다.
* * *
“좀 더 자는 게 좋을 텐데.”
실바람처럼 가늘고 청아한 목소리가 잔상처럼 남은 남자의 목소리 위로 덧씌워졌다.
언뜻 이마에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아마도 옆에 있는 사람의 손길인 것 같았다.
가물가물한 시야에 낯익은 얼굴이 비쳤다.
카시스는 의식이 흐린 상태에서도 고개를 틀어 안온한 온기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러지 마.”
하지만 부드러운 손길이 단호하게 그의 움직임을 막아 냈다.
“어차피 이건 환상이니까.”
자그마한 속삭임에 카시스가 멈칫했다.
“여긴 환각의 방이야. 그러니까 지금 내가 여기에 있는 것도 모두 현실에서의 일이 아니라는 거지.”
다시금 다정한 손길이 그에게 닿았다.
록사나는 카시스의 어깨를 당겨 좀 더 편안히 눕혔다.
그녀의 말을 듣자 어쩐지 정말 이것이 현실이 아닌 환각의 연장선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난 지금 당신한테 조금 미안한 것 같아. 이런 감정은 잊은 지 오래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한 뒤 잠깐 정적이 내려앉았다.
록사나의 말은 어딘가 이상했다. 그녀가 그에게 미안할 만한 일이 무엇일까.
오히려 오늘의 일은, 그가 벌인 짓 때문에 록사나가 곤란해졌을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물론 카시스는 그 일을 그녀에게 사과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록사나는 그 후로 한동안 말이 없었고, 카시스는 지금의 적막감이 어쩐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도 이 침묵이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어딘지 온화하게 느껴지는 공기가 방 안에 물결처럼 흐르고 있었다.
“어머니를 구해 줘서 고마워.”
그러다 멈추었던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그냥 모른 척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아서.”
그 후 이마에 얕게 스치는 것은 부스러지는 듯한 숨결이었다.
“당신이 지금보다 조금만 덜 좋은 사람이었다면 내 마음도 이보다는 한결 편했을 텐데.”
카시스의 머리를 어루만지던 손이 이윽고 그의 눈을 덮었다.
“쉬도록 해.”
이상한 밤이었다.
낮의 일에 대해 서로에게 마땅히 해야 할 말이 있었는데도 그들은 그런 것이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굴고 있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현실로 돌아가 있을 테니까.”
그 순간만큼은 각자가 처한 상황마저 잊은 것 같았다. 결코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는데도.
카시스의 입술이 작게 벌어졌으나 결국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에 동참했다.
그날 밤은 어쩐지 무척 길어서 이대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6. 탈출, 그리고 또 다른 속박
이번 사건의 책임은 대부분 제레미가 지게 되었다.
마물 사육장의 문을 연 것은 카시스를 잡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애초에 그를 방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만든 것도 그였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카시스의 방에 몰래 심어 두었던 나비를 통해 나는 그날 일의 전말을 자세히 알게 된 참이었다.
카시스가 방에서 탈출한 것도 제레미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으로 정리되었다.
물론 거기에는 내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독나비를 부화시킨 일로 내게 유독 너그러웠던 란트 아그리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카시스에게 아무런 벌도 내리지 않을 수는 없어서, 나는 그를 환각의 방에 가두었다.
환각의 방은 고문용으로 개조된 곳으로, 그 안에 들어간 사람은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미치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카시스에게 내린 처벌을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물론 나는 카시스에게 영향이 없도록 내 몸에 역주술을 새기고 환각의 방에 들어가 처벌의 시간 동안 카시스와 접촉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환각에 방에 들어간 이유를 카시스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즐기기 위해서, 혹은 환각에 시달리는 카시스에게 또 다른 굴욕적인 벌을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그리체의 상식으로는 그게 보편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는 굳이 그 오해를 풀지 않았다.
그 후 제레미는 샬럿이 먼저 감금되어 있던 처벌의 방에 갇히게 되었다.
제레미에 비하면 샬럿은 죄질이 훨씬 가벼웠기 때문에 원래 예정보다 조금 일찍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사실 제레미를 처벌의 방에 가두는 것까지는 계획에 없었지만 마물 사육장의 문을 연 것은 확실히 과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내 계획이 모조리 어그러질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도 이번만큼은 제레미를 돕지 않았다.
나를 화나게 했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는 잔뜩 풀이 죽은 얼굴로 처벌의 방에 들어갔다.
데온은 란트의 명으로 오늘 새벽 카란튤 서식지로 향했다.
나는 란트 아그리체의 앞에서 내 소유물에게 월권을 행사하려 한 데온을 처벌해 달라 요구하며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물고 늘어졌다.
그의 무고함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증인들도 이미 죽은 뒤였으니 더 거리낄 게 없었다.
하지만 사실 데온이 사육장의 마물을 충당하러 떠난 것은 벌이라고 할 수 없었다.
때마침 임무를 끝내고 돌아와 한가하기도 하고, 또 마물을 포획하는 무리를 이끌기에 데온만큼 믿음직한 인사가 없는지라 겸사겸사 자숙하라는 명목을 붙여 그를 보내기로 한 것이었다.
란트 아그리체의 얄팍한 수였지만 그래도 독나비를 부화시킨 것 때문인지 내 마음을 달래려는 나름의 시도는 한 셈이었다.
물론 나는 데온을 눈앞에서 치워 버리는 것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에 이 정도로 만족했다.
하지만 마물 서식지로 떠나기 직전 마주친 데온은 마치 모든 것을 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 주는 듯한 오연한 눈빛을 하고 있어 나는 또 기분이 더러워지고 말았다.
어쨌거나 그래서 저택에는 간만에 고요한 공기가 감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