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4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43화(43/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43화
* * *
“마리아 님께서 지금 바로 록사나 아가씨께 전하라 하셨습니다.”
카시스의 방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마리아의 하녀였다.
그녀는 붉은 꽃을 한 아름 담은 꽃바구니를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거기에 장식된 요란한 리본을 보고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을 들고 방으로 들어가자 카시스도 그게 뭐냐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이 앞에서 받았어.”
나는 간단히 설명하고 바구니 안에 들어 있는 쪽지를 펼쳐 보았다. 그 후 나는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마리아는 다음 티 파티 때에는 꼭 카시스와 함께 참석하라는 말과 함께 자신이 보낸 선물들이 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바로 사흘 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이렇게 태연히 또 티 파티에 초대하다니. 알고는 있었지만 참 대단한 여자였다.
선물은 꽃밖에 없는데 왜 쪽지에 지칭된 것은 복수형인가 했더니 꽃들 사이에 파묻힌 작은 약병 하나가 뒤늦게 눈에 들어왔다.
이건 또 뭐지?
유리병에 든 것은 무색이라 보기만 해서는 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거침없이 마개를 열어 냄새를 맡았다.
그런 뒤 병을 다시 꽃들 사이에 처박았다.
마리아가 내게 보낸 것은 다름 아닌 미약이었다.
어쩐지 마리아의 하녀가 왜 하필 카시스의 방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지 수상했는데.
그래도 이번 일로 카시스의 목에 남긴 흔적을 본 사람들의 수가 꽤 되는 것 같아 그건 만족스러웠다.
“그것도 네 아버지의 수하가 선물한 건가?”
“아니, 어머니 중에 한 분이.”
바구니 안에 든 꽃은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독화라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이런 선물을 따로 보낸 걸 보니, 데온과 나 사이에 있던 마찰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 건 처음이라 나름대로 신경이 쓰이긴 했었나 보다.
“네 어머니는 상태가 어떻지?”
그때, 바구니 속의 붉은 꽃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시스가 지나가듯이 내게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많이 좋아지셨어. 애초에 그저 놀라서 심력을 소모하셨던 것뿐이니까.”
여전히 우리 사이에 살가운 대화는 오가지 않았지만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약간 달라졌다.
분위기가 조금 더 둥그스름해졌다고 해야 할까.
탈출을 시도했다가 붙잡힌 카시스에게 실질적으로 아무런 처벌도 가하지 않은 데다, 오히려 가문에 피해를 입힌 그를 최대한으로 보호하려 노력하는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어쩌면 내가 은근슬쩍 이번 일 때문에 나도 큰 벌을 받을 수 있었는데 운 좋게 면책했다는 말을 흘려서 조금쯤은 신경을 쓰는 것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카시스는 내가 준 도면을 진짜라 여기고 있으니, 그를 도우려 하는 내 마음이 진심이란 것을 확인한 느낌일 수도 있고.
그 밖에도 어머니와 데온의 일이라든가, 기타 등등이 있었으니까.
“그날 내 구속구를 작동시켰던 남자, 이름이 데온 아그리체였지.”
역시 내 생각이 맞았던 모양이다.
뒤이어 카시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데온의 이름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그날의 일을 상기하는지, 그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사람이 네 어머니의 앞에 일부러 마물을 밀어 넣었던 걸 알아?”
나는 잠깐 카시스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알아.”
그러자 카시스의 금색 눈동자가 그 안에 띤 감정을 변화시켰다.
나를 향한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그런 카시스를 보며 나도 모르게 설핏 실소하고 말았다.
“그야 아그리체니까.”
게다가 그는 다른 누구도 아닌 데온 아그리체였다.
이미 아실도 죽인 인간인데 내 어머니를 죽이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문득 카시스의 시선이 내 뺨 언저리에 닿는 것 같았다. 그 자리에는 데온이 만든 상흔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당신에게 알려 줄 좋은 소식이 두 가지 있어.”
나는 말을 돌렸다. 어쩐지 그 날의 일을 카시스와 이야기하는 것은 껄끄러웠다.
“하나는 내가 전에 말했던 비밀 통로의 문이 곧 열린다는 거야.”
내가 카시스를 탈출시키는 데 이용하려고 하는 비밀 통로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월례 평가 전날에만 개방된다는 것이었다.
“전에 네가 말했던 그 비밀 통로를 말하는 건가.”
“맞아. 내가 전에 사소한 문제가 있다고 했던 거 기억나? 그 문은 늘 열려 있는 게 아니라 개방되는 시기가 따로 있거든.”
월례 평가 때마다 입구가 개방되는 미로들과 비밀 통로들이 있었다. 개중에는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사장된 문들도 있었다.
예전에는 갖가지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무용지물이 되어 잊힌 문이었다.
내가 눈여겨본 것은 그중에서도 통로를 이용하는 것 자체가 너무 위험해져서 폐쇄된 문이다.
카시스는 어쩐지 묘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와 탈출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몹시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바로 며칠 전에만 해도 혼자 탈출 시도를 했던 카시스였으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나는 그런 카시스에게, 어쩌면 그에게는 좀 더 반가운 소식일 수도 있는 두 번째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어제 경계 부근을 서성이는 사람들을 찾았는데 아무래도 페델리안에서 보낸 자들인 것 같아.”
그 순간 카시스를 둘러싼 공기의 흐름이 멈춘 것 같았다.
나는 독나비를 통해 본 영상을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나이는 서른 중반 정도 되었고 머리는 갈색에 눈은 녹색. 한 쪽 눈에 안대를 끼고 있었는데 아는 사람이야? 그 사람이 무리를 이끄는 것 같았어.”
카시스의 얼굴을 보니 내가 발견한 무리는 페델리안에서 보낸 게 맞는 것 같았다.
“그들을 어디에서 발견했어?”
“남동쪽 경계에서.”
데온이 떠난 카란튤 서식지는 동쪽에 있어서 솔직히 조금 아슬아슬했다.
“당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무언가를 주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카시스가 좀 더 이것저것을 물어볼 줄 알았는데, 그는 그러지 않고 곧바로 행동을 취했다.
하기야, 물어본다고 해도 내가 대답해 줄 수 있는 건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그 꽃, 한 송이만 줘.”
나는 그의 요구대로 바구니에 있는 꽃을 한 송이 그에게 꺼내 주었다.
그러자 카시스가 꽃의 줄기에 달린 잎새를 하나 떼어 냈다.
그런 뒤 그는 손가락에 피를 내 거기에 무언가를 적었다.
페델리안에서 사용하는 암호 문자인가. 글자 같기도 하고 문양 같기도 한 생김새였다.
카시스가 건네준 잎새를 잠깐 살피는 동안 그는 내가 준 꽃을 의미 모를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곧 카시스의 눈길이 나를 향해 조용히 움직여졌다.
“내가 지금 너를 온전히 신뢰한다고 말한다면 아마 그건 거짓말이겠지.”
나는 올곧게 응시해 오는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잔잔한 금색 눈동자는 어떤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성지의 샘물처럼 맑고 깊었다.
“그런 게 가능한 상황도 관계도 아니란 걸 이미 우리 둘 다 알고 있으니, 설령 내가 그렇게 말한다 해도 믿을 수 없는 건 너 역시 마찬가지일 테고.”
그는 여전히 내 눈을 똑바로 직시한 채로 눈빛만큼이나 곧은 음성을 흘려보냈다.
“하지만 설령 내게 보이고 있는 네 말과 행동이 진심 어린 호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해도, 너에게 도움을 받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는 뜻밖의 말을 들은 기분이 되어 카시스를 바라보았다.
“고마움을 표해야 마땅하겠지.”
카시스가 내게 이런 식으로 먼저 진지하게 대화를 청한 것은 처음이었다.
지난 사건 이후로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눈치더니, 이런 말을 할 줄이야.
흔들림 없이 단단한 눈빛을 마주하는 동안 어쩐지 말문이 막히는 느낌이었다.
이런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나는 알지 못했다.
지금 카시스가 아주 솔직하게 나를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만약 나라면 좀 더 친근한 태도를 보이고 입에 발린 말을 해서 최대한 상대방의 마음을 약하게 만든 뒤 이용했을 것이다.
내게 유리한 방향으로 타인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카시스는 그런 것과는 동떨어진 사람이었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한 번 깨닫고 나니 기분이 묘해졌다.
남을 속이는 데 능숙한 아그리체의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탓일까?
이상했다. 카시스의 올곧은 눈빛을 마주하는 동안 어째서인지 가슴이 약간 답답해졌다.
이 기분은 사흘 전 그가 어머니를 구해 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느꼈던 것과 비슷했다.
“고맙다는 인사는 아직 일러. 당신은 지금 아그리체에 있잖아.”
처음부터 카시스가 내게 빚진 마음을 갖기를 원했던 주제에 막상 그에게 이런 말을 듣자 마음이 이상하게 편치 않았다.
“그래, 아직 내가 있는 곳은 아그리체지.”
그래도 이대로라면 내가 원하던 대로 소설과 동일한 사망 플래그는 확실히 피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건 다행이었다.
내가 묘하게 어색해하고 불편해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카시스의 눈빛이 미세하게 조금 더 온화해졌다.
“록사나.”
“왜?”
잠시 후, 카시스가 내가 준 붉은 꽃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다 말고 나를 불렀다.
“지난번부터 묻고 싶었던 게 있는데.”
“뭔데?”
“이 꽃, 뭔지 알고 받은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