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46)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46화(46/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46화
카시스는 무거운 족쇄가 되어 그를 속박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이를 악물었다.
〈우리는 고결한 심판자 페델리안. 그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지 잊지 마라.〉
하지만…….
〈긍지를 잃은 자에게는 오직 파멸만이 있을 뿐이니.〉
하지만…….
과연 그는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을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고도 정말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태양을 품은 것 같은 선명한 금색 눈동자에 불티가 날아들었다.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지금부터 네게 금제(禁制)를 걸겠다.〉
카시스는 그의 안에서 한동안 깊이 잠들어 있던 힘을 깨웠다.
콰직! 챙강!
일순간 한계까지 끌어 올린 힘에 그것을 견디지 못한 구속구가 깨져 나갔다.
그 순간 그의 몸에 붙어 있던 나비들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구속구를 부수자 주위에 진득하게 고여 있는 죽음의 기운이 더욱 또렷이 느껴졌다.
검은 피를 토했을 때부터 예상하고 있었지만 록사나는 심각한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독 향이 너무 강해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카시스는 고개를 숙여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입술을 겹쳤다.
화악!
밀접히 맞닿은 곳을 통해 생명력이 전달되었다.
맑고 정순한 기운이 체내를 유영하며 구석구석까지 번져 나갔다.
백지장처럼 창백하던 록사나의 얼굴에 서서히 혈색이 돌아왔다. 차갑던 몸에도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카시스가 록사나에게 바싹 몸을 붙인 이후로 차마 그들에게 내려앉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던 나비들이 하나씩 사라져 갔다.
잠시 후, 그의 품에 안겨 있던 몸이 살짝 움직였다.
카시스는 그제야 맞닿은 입술을 뗐다.
지척에서 마주한 눈동자는 여전히 초점이 흐렸다.
지금 막 의식을 되찾은 탓인지 물끄러미 그를 올려다보는 붉은 눈은 아직 꿈결 속을 헤매는 것처럼 몽롱해 보였다.
록사나는 아직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것 같았다.
다만 의아함을 느끼기는 하는 듯 뒤이어 그녀의 입술이 작게 벌어졌다. 그 위에 다시금 카시스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록사나가 다친 곳은 신체의 외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방법이 가장 회복에 효과적이었다.
곧이어 록사나의 숨이 흐트러졌다. 아무래도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손을 들어 아까처럼 그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하지만 서서히 내상이 치료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곧 미약한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 록사나의 체내에 흘러 들어간 힘은 이제 독의 정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맞닿은 몸에서 극렬한 거부감이 전해져 온 것도 그때였다. 카시스는 그를 밀어내는 손길에 순순히 물러났다.
“하지 마.”
아직 완전히 힘을 되찾지 못한 가느다란 음성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하지만 카시스를 똑바로 직시해 오는 굳은 눈동자에는 단호함이 어려 있었다.
그녀의 거부는, 단순히 입술을 겹치는 행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네가 어떤 상태인지 알고나 하는 말이야?”
록사나의 몸은 거의 독에 잠식당하다시피 한 상태였다.
그녀의 안에 고인 독은 이 순간에도 서서히 그녀를 좀먹어 가고 있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몸을 맞대고 있으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록사나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하지 마.”
카시스는 그런 그녀에게 어째서냐고 묻지 않았다. 허공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이 눈빛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매분 매초 죽음을 각오하고 사는 이의 눈빛이었다.
카시스는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그동안 알게 모르게 신경이 쓰였던 이유도, 또 이렇게 그녀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는 기분이 드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임을 깨달았다.
그 순간, 그의 안에 스스로조차 깨닫지 못한 바람이 불어 들었다.
그것은 분명 희미했으나 그리 머지않은 훗날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해져 그를 온통 뒤흔들게 될 변화였다.
* * *
나는 카시스의 능력에 감탄했다.
내장을 쥐어뜯는 듯하던 고통이 어느새 말끔히 가라앉은 것이 느껴졌다. 호흡도 아까보다 확연히 편해져 있었다.
피를 많이 토하기는 했는지 옷도 머리카락도 온통 축축했다. 그래도 저절로 환기가 되도록 방이 설비되어 있어서 그나마 역한 피비린내는 가셔 다행이었다.
방 안에는 색색거리는 내 숨소리만이 들리고 있었다.
황송하게도 나는 카시스에게 거의 안기다시피 한 채 그의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냥 이렇게만 있는데도 약해진 몸이 서서히 회복되는 게 느껴졌다. 도대체 이게 무슨 능력이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내 안으로 들어온 카시스의 힘이 독까지 정화하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하마터면 지금까지 열심히 독을 먹어 왔던 일이 전부 허사가 될 뻔했다.
그러다 퍼뜩 카시스의 여동생인 실비아도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와, 어떻게 지금까지 이걸 잊고 있었지?
하지만 그럴 만도 했다. 왜냐하면 실비아의 능력은 19금 소설의 여주인공에 걸맞은 19금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충 그녀와 키스를 하면 체력이 회복되고, 검열 삭제가 될 만한 짓을 하면 상처가 낫거나 하는 형식이었던 것 같은데.
맞아. 실비아가 다른 가문의 남주인공들의 장난감이 되어 감금 루트를 타게 되는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페델리안 가문의 유전적인 능력이라고는 본 기억이 없었다.
더군다나 카시스의 능력은 지금 가물가물하게 떠오른 실비아의 능력과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왜냐하면 실비아의 능력은…… 그러니까 체액 전달을 통해서만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단 말이지.
이것 참 다시 생각해도 정말 19금 역하렘 소설 속 여주인공에게 어울리는 능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카시스는 지금 그저 나를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 몸의 회복을 돕고 있었다.
그런 걸 보면 카시스 쪽이 여동생보다 좀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진 것 같기도 했다.
혹시 독초를 구분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인가?
그런 고민을 하다가 나는 슬쩍 시선을 들어 올렸다. 내 시선을 느낀 카시스도 눈길을 움직여 나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내게 묻어 있던 피가 카시스에게도 번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마주한 얼굴이 여전히 조금 굳어 있어서 나는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괜찮아. 이 정도로는 안 죽어.”
물론 피를 한 바가지 쏟아 낸 사람이 이런 말을 해 봤자 믿기지 않겠지만 말이다.
“말했잖아. 당신이 무사히 밖으로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지켜 주겠다고.”
내가 그렇게 말하자 카시스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마침내 굳게 다물려 있던 입술을 뗐다.
“어째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지?”
그런데 그에게서 흘러나온 말이 상당히 뜻밖이었다.
“난 네 오빠가 아니야.”
얘는 뭐 이런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나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어서 잠깐 고민했다.
그러다 곧 카시스가 터무니없는 오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물론 내가 카시스와 공감대 형성을 하면서 친해지려고 ‘널 보면 오빠 생각이 난다’느니 하며 약을 팔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가 아실 때문에 자기를 도우려 한다고 생각하다니?
애초에 둘은 닮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일까.
난 그저 단순히 카시스 페델리안의 죽음을 방조한 죄로 나중에 몰살 엔딩을 맞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 것뿐이었다.
“알아.”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갑자기 목에 돌멩이가 굴러와 박힌 것처럼 말이 턱 막혔다.
그런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고 대답하려 했는데, 어째서인지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게 조금은 짜증이 났다.
“당신, 죽은 우리 오빠랑 조금도 안 닮았어.”
지금까지 그의 앞에서 취했던 태도도 잊고 그렇게 말하고 만 것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마치 정곡을 찔린 사람이 아니라고 우기는 것처럼 어째서인지 약간 날 선 말투가 흘러나왔다.
“그러니까 착각하지 마.”
그냥 여태껏 했던 것처럼 차라리 카시스의 약한 부분을 자극해 나를 연민하게 놔두는 것이 이보다는 좋은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말에 부정하고 싶어졌다.
데온도 그렇고 카시스도 그렇고, 아실이 마치 내게 큰 약점이라도 되는 것처럼 구는 게 싫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카시스에게 했던 ‘지켜 준다’는 말은, 어릴 때 아실이 내게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과 동일했다. 그 사실을 떠올리고 만 것도 기분이 나빴다.
아실은 내 앞에서 한껏 오빠인 척했지만 사실 나는 그를 딱히 오빠라 여기지 않았다.
당연했다. 전생까지의 기억을 합치면 내가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데. 차라리 아실이 내 동생이면 또 몰라.
“웃겨……. 누가 누굴 지켜 준다고.”
불현듯 떠오른 옛 기억에 나도 모르게 작게 중얼거리고 말았다.
카시스는 그저 그런 나를 조용히 내려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나는 그에게 가장 솔직한 모습을 내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