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47)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47화(47/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47화
한바탕 몸이 아팠던 탓인지 나도 모르게 경계가 느슨해진 모양이다.
그러다 문득 나는 이제껏 이 집에서 단 한 번도 지금처럼 마음 편히 아파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집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내 약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없었으니까.
그래서 지금처럼 다른 사람 앞에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것도 처음이었다.
어쩌면 카시스 페델리안이 외부인이기 때문에 이런 게 가능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는 내가 살고 있는 아그리체의 세계와 동떨어진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그에게는 이렇게 지친 모습을 보여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렇게 카시스에게 안겨 있으니 마치 보호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이상했다.
온몸에 스미는 타인의 체온이 낯설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따뜻해…….”
나는 야트막한 숨을 내쉬며 작게 중얼거렸다.
얼마 전 환각의 방에서 그랬던 것처럼 카시스의 손이 잠시 후 내 눈가를 덮었다.
“몸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자는 게 나아.”
나지막하게 흘러드는 목소리에 믿을 수 없게도 정말 의식이 낮게 가라앉았다.
옆에 다른 사람이 있는데도 이렇게 잠이 오는 것은 아주 어릴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언젠가부터 줄곧 그래 왔듯, 꿈에는 아실이 나왔다.
오늘은 어쩐 일로 비통하게 피눈물을 흘리는 대신, 마치 우리가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내게 꽃 화관을 내밀고 있는 아실이었다.
사실 나는 아실이 내 꿈에 찾아올 때마다 조금 무서웠다.
혹시 아실의 환각 속에 등장해 그를 죽게 만든 사람이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아실이 나를 원망하고 있을까 봐.
하지만 오늘은 아실이 나를 보며 웃어 주어서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열다섯 살의 아실이 이제는 그와 키가 엇비슷하게 자란 내 머리에 화관을 씌워 주었다. 그런 뒤 그는 나를 향해 다시금 활짝 웃었다.
나도 그를 따라 웃어 주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미소가 지어지지 않았다.
한심하게도 나는 아실을 보며 울음을 터트려 버렸다.
그러자 아실이 ‘정말이지 어쩔 수 없네.’라고 말하듯이 어렴풋이 미소 지으며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짧은 꿈에서 깨어났을 때에도 나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누군가의 단단한 손끝이 눈물에 젖은 내 뺨과 눈가를 스쳤다.
잠깐 머뭇거리다가 이내 조금 더 힘을 실어 내 눈물을 닦아 주는 그 손길이 무척 부드럽고 따스했다.
나는 지금 이 순간도 모조리 꿈인 것처럼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 후로 또 잠이 오지는 않아서, 나는 한동안 내 눈물을 닦아주는 손길을 느끼며 그저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 * *
그 후 나는 카시스와 얼굴을 마주하는 게 불편해졌다.
당연하지. 그런 꼴을 보였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와 나 사이에 그날 일이 화두로 오르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카시스는 그날 보인 자신의 능력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고, 나는 지난번에 그의 앞에서 보였던 추태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암묵적인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침묵했다.
“좋은 저녁이네.”
지금도 카시스의 방에 들어오자마자 마주친 시선에 어색함이 폭발할 것 같았다.
오죽하면 이렇게 얼간이 같은 인사를 하고 있을까?
엉겁결에 입에서 튀어나온 말을 다시 주워 삼키고 싶었다.
지금이 아침도 아니고 해가 저물어 가는 저녁인데 굳이 이런 인사는 왜 한 거지? 게다가 오늘 처음 만난 것도 아니잖아.
“그래. 벌써 저녁인가 보군.”
하지만 카시스는 그저 담담한 눈으로 나를 보며 대답했다.
그 말투도 담담하기는 마찬가지라 그나마 민망함이 조금 가라앉았다.
지금 카시스는 에밀리를 통해 몰래 공수해 온 새 구속구를 차고 있었다.
물론 이전의 구속구도 부숴 버린 카시스에게 새 구속구라고 한들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그는 기회를 엿봐 다시 탈출 시도를 하지도 않고 묵묵히 내가 원하는 대로 구속구를 찼다.
“이걸 전해 주려고 왔어.”
나는 카시스에게 암호가 적힌 작은 천 조각을 건네주었다.
어제 접촉한 페델리안의 사람들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역시 거기에 적힌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본 카시스의 눈동자에 미미한 안도감이 떠오른 것을 보고 어쨌거나 좋은 의미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거, 역시 독나비인가?”
그러다 문득 카시스가 나를 보며 지나가듯 물었다.
그제야 두어 마리의 독나비가 어느새 튀어나와 내 옆에서 팔랑거리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심 당황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나온 거지?
게다가 나비들은 내가 그들을 미처 거두어들이기도 전에 카시스에게 날아가 그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얼마 전 탈출 사건 때 입은 상처가 있는 바로 그 위치였다.
어쩐지 나비들이 카시스의 피를 엄청나게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난번에 내가 피를 토하며 기절했을 때에도 제멋대로 튀어나 와서 카시스에게 붙어 있던 기억이 가물가물하게 떠올랐다.
한번 피 맛을 봐서 저러나.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살상용으로 키우기로 한 나비가 아니라 먼저 부화시킨 다른 용도의 나비라는 점이었다.
카시스의 시선이 자신의 어깨에 내려앉은 나비들을 힐끔 스쳐 지나갔다.
“왠지 내 피를 탐내는 것 같은데.”
쓸데없이 예리하긴.
“아마 아닐 거야. 그건 내 피만 먹거든.”
이게 독나비가 아니라는 변명은 이미 해 봤자 소용없을 것 같아서 그냥 하지 않았다.
이미 지난번에 내 체내에 독이 잔뜩 축적되어 있다는 것도 들키고, 또 본의 아니게 나비들까지 보인 뒤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카시스는 완전히 확신하는 눈빛으로 내 나비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카시스의 시선이 느껴져서 나는 나비를 향해 있던 눈길을 돌렸다.
그 후 마주친 것은 지난번에도 보았던 눈빛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넌 불안정해.”
잠시 후 카시스가 굳게 다물려 있던 입술을 열어 침묵을 깨트렸다.
그건 거의 혼잣말 같았다. 그게 무슨 의미냐고 물어보려고 했는데 이어진 그의 물음이 더 빨랐다.
“내가 이곳에서 나가면 넌 어떻게 되는 거지?”
설마 지금 이런 상황에서도 날 걱정하는 건가?
내가 바보도 아니고, 애초에 카시스를 탈출시키는 준비를 하는 데 시간을 들인 이유도 다 내 살길을 모색하느라 그런 건데.
설마하니 내가 자기를 위해서 희생이라도 할까 봐?
그는 나 때문에 자신이 어떤 곤욕을 치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속이 더부룩해졌다.
“당신이야말로 날 당신 여동생이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
불편한 마음 때문인지 말이 다소 삐뚤게 나왔다.
언젠가부터 카시스가 저런 눈으로 나를 볼 때면 그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기가 거북했다.
자기 여동생이나 걱정할 것이지. 당신이 죽으면 실비아는 소설처럼 흑화하는 걸로도 모자라서 이 세계의 또라이들과 집착 감금물을 찍게 될지도 모른다고.
“내가 널 걱정하면 안 되는 건가?”
하지만 잇따른 카시스의 말에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달싹이는 입술 밖으로 아무런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실수다. 시선만 피하면 되는 게 아니라 귀도 막았어야 하는데.
결국 나는 입술을 꾹 다물고 카시스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의 금색 눈동자는 여전히 나를 올곧게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을 오래 마주하지 못하고 슬쩍 옆으로 눈길을 비꼈다.
그 후 내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아까보다 확연히 날카로움이 깎인 것이었다.
“나도 나름대로 생각해 둔 방법이 있어.”
하지만 사실 지금에 와서는 카시스가 자력으로 이곳을 빠져나갈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대마물용 구속구도 부순 데다 이상한 능력도 가지고 있으니까.
설마 지금까지 저런 생각 때문에 탈출하지 않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본인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내 어머니를 구해 줄 정도이니 아예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어쩐지 지금까지 내가 우위에 있는 줄 알았던 관계가 나도 모르는 새 뒤집힌 것 같은 불쾌감이 꿈틀꿈틀 등줄기를 타고 기어 올라오려 했다.
실은 어제 슬쩍 그의 능력에 대해 물어봤지만 카시스는 당연히 말해 주지 않았다.
구속구를 부술 수 있으면서 지난번에는 왜 그러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그때는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대답한 뒤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계획을 자세히 설명해 준 적은 없는 것 같네. 이참에 말해 줄게.”
나는 의미를 알 수 없게도 약간 기분이 상한 상태로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카시스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지만 그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은 인정하는 것 같았다.
“페델리안의 사람들은 안전한 곳으로 안내했어. 그러니까 그때 합류하면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