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51)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51화(51/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51화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 아그리체의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이것 좀 보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내가 기어이 너희를 기만하는 데 성공했노라고.
달칵.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이 열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둠에 먹힌 방 안에 가느다란 빛 줄기가 스며들었다.
밖에서 다른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어떤 징조도 없이 누군가가 문틈으로 발을 들였다.
에밀리의 것으로 보이는 팔이 바닥에 늘어져 있는 것이 열린 문 사이로 언뜻 보인 것 같았다.
하지만 록사나가 제대로 확인하기도 전에 다시 문이 닫혔다.
아, 지겨워라.
록사나는 그녀의 눈앞에 우뚝 선 남자를 보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네가 카시스 페델리안을 독나비에게 먹이로 줬다고 밖이 시끄럽더군.”
지금 막 저택으로 돌아온 것인지 방 안에 들어온 남자에게서는 우거진 숲의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카란튤의 서식지로 떠났던 일행이 그새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래서?”
록사나는 소맷자락으로 천천히 입가를 훔쳐 내며 무덤덤한 음성을 흘려보냈다.
“그게 당신하고 무슨 상관이라고 이렇게 날 찾아와 그 이야기를 하는 거야?”
하지만 잇따른 나직한 음성에 록사나의 움직임이 멈추어졌다.
“카시스 페델리안, 죽은 게 아니지?”
그것은 이미 록사나에게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로 빼돌렸어?”
저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뿌리내린 나무처럼 우두커니 서 있던 데온의 발길이 자리에서 떨어졌다.
그의 걸음은 록사나와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멈췄다.
찰박, 검은 구둣발이 바닥에 고인 작은 피 웅덩이에 닿았다.
데온의 시선이 붉게 물든 록사나의 모습을 느리게 훑고 지나갔다.
방 안이 어두워 무엇이든 제대로 보일 리 없었는데도, 그의 시선은 마치 그녀의 속까지 꿰뚫는 듯했다.
“내가 맞혀 볼까?”
곧 데온이 작게 속삭이며 몸을 숙였다.
달빛에 첨예한 광채를 발하는 붉은 눈동자가 가까이에서 시선을 맞춰 왔다.
“지금까지 내 눈이 닿지 않은 곳은 딱 하나지.”
뒤이어 데온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떠올랐다.
“북쪽 경계의 검은 숲.”
그 순간 바깥에서 들려오던 희미한 바람 소리가 잦아들었다.
진득한 공기가 어린 방 안에 얼음송곳 같은 침묵이 떨어져 내렸다.
록사나의 얼굴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지 않았다.
데온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은 그가 이 방에 처음 들어왔을 때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냉막하게 시렸다. 그 안에서는 어떤 감정적 동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데온은 흔들리지 않았다.
“무슨 방법으로 빼돌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그럴듯한 방법이었어. 그래……. 그럼 이건 환영을 보여 주는 독나비인가?”
록사나가 약해진 틈을 놓치지 않고 허공에 나타난 독나비들이 그녀의 주위를 떠돌고 있었다. 데온의 눈길이 그런 나비들을 스쳤다.
“네가 가진 게 살육 나비가 아니었다니. 그게 아니면 혹시 부화시킨 독나비가 하나가 아니든지.”
데온의 말은 놀랍도록 사실에 근접했다.
마주한 얼굴을 조용히 주시하던 록사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망상이 지나치네.”
“망상이 아니란 걸 네가 제일 잘 알 텐데.”
록사나의 시선이 다시금 말없이 데온의 얼굴에 머물렀다.
잠시 후, 그녀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래서, 지금 밖으로 나가서 그런 이야기를 하겠다고?”
“어떻게 할까.”
데온의 입술 끝이 느른히 호선을 그렸다.
그 후 그는 잔인하게 속삭였다.
“일단 북쪽 경계로 수색대를 보낼까? 네 앞에 갈가리 찢긴 카시스 페델리안의 시체를 가져다 놓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그 모습이 마치 먹잇감을 덫에 몰아넣는 데 성공한 사냥꾼 같았다.
데온은 손을 들어 록사나의 주위를 떠돌고 있는 나비를 그 안에 움켜쥐었다. 마치 그것이 눈앞에 있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네가 왜 이렇게 하면서까지 그놈을 살리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는 손 안의 나비를 으스러뜨릴 듯이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러면서 한동안 록사나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곧 다시금 손에서 느슨히 힘을 풀었다.
벌어진 틈으로 나비가 빠져나와 팔랑거리며 허공을 유영했다.
그 직후 데온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가지 마.”
아니, 일으키려고 했다.
다음 순간 그의 귀를 파고든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가지 마, 데온.”
움직임을 멈춘 데온의 귀에 다시금 자그마한 속삭임이 새어 들었다.
그에게 향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달콤한 목소리였다.
만약 이것이 록사나의 나비가 보여 주는 환청이라고 해도 그는 믿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뒤이어 데온의 뺨에 닿은 손은 실체를 가지고 있었다.
겨울의 태를 빌려 태어난 것처럼 뼛속까지 시린 분위기를 풍 기던 남자가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모습으로 눈앞에 있는 사람을 응시했다.
록사나는 그런 데온을 향해 손을 움직였다.
그렇게 그의 얼굴을 다정하게 어루만지다가, 그녀는 이내 천천히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시시해라.”
조금 전의 그 달콤함이 모조리 거짓이라는 것처럼 시야를 찌르는 미소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당신, 정말로 시시한 사람이구나.”
정말이지 애처롭고 안쓰러워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록사나는 그녀의 손 안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남자를 동정과 비웃음이 뒤섞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데온.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게 뭔지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그 순간 록사나의 시야에 비친 붉은 눈동자에 실낱같은 파문이 떠올랐다.
그것은 아주 작디작은 동요였지만 그 대상이 다른 누구도 아닌 데온이었기 때문에 몹시 극렬한 변화인 것처럼 느껴졌다.
“난 정말 당신이 주는 건 그게 뭐라고 해도 필요 없었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가 진저리날 정도로 싫고 또 역겨워서, 록사나는 그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는 것조차 용인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가엾고도 끔찍한 남자는 아무리 거부하고 밀쳐 내도 끈질기게 그녀의 그림자를 쫓았다.
“난 말이야. 당신이 정말 구역질나도록 싫어.”
록사나의 말에 데온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그저 조용히 그녀를 응시해 오는 눈동자는 심해처럼 깊고 어두웠다.
“하지만…… 그래…….”
록사나는 그 눈을 가만히 직시하며 차갑게 웃었다.
“당신이 그렇게까지 내게 목줄을 쥐여 주고 싶다면야.”
창밖에서 시린 달빛이 스며들었다.
맞닿은 몸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따뜻했다. 그러나 기이하게도 살이 에이는 듯이 추웠다.
“당신도 나도, 어차피 갈 곳은 지옥밖에 없을 테니까.”
그날, 록사나는 새로운 속박의 맹약을 맺었다.
그 끝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분명 나락일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