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56)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56화(56/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56화
* * *
“역시 황의 베르티움인가.”
잠시 후 밖에서 물에 번진 듯한 소음이 밀려들었다.
나는 살며시 커튼을 걷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자 막 마차에서 내려선 사람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우리에 이어 두 번째로 도착한 것은 황의 베르티움 가문의 사람들이었다. 란트 아그리체가 다가가 그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독나비를 이용해 근 3년간 란트 아그리체를 지켜본 바로는, 그와 가장 긴밀한 관계를 가진 것은 황의 베르티움 가문인 것 같았다.
가문들 간에 교류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베르티움과는 그 정도가 보다 주기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쭉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쉽게 덜미를 잡힐 짓을 하지 않는 게 과연 란트다웠다.
뭐, 그래도 아예 짐작 가는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락의 꽃〉에 나왔던 내용을 되새겨 보면, 란트는 황의 베르티움이 가진 인형술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베르티움의 인형은 마리아가 가지고 노는 인형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마리아는 단순히 마음에 든 사람을 인형처럼 가지고 노는 것뿐이었지만, 베르티움에서는 인형술을 이용해 정말 살아 숨 쉬는 사람처럼 정교한 인형들을 만들어 냈다.
란트가 베르티움의 인형에 관심을 가진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
아마 죽음에 대한 공포도 고통도 느끼지 않는 강력한 군사를 갖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은데…….
역시 탐욕스러운 악역에 딱 어울리는 생각이 아닌가?
하지만 베르티움의 수장이자 소설의 남자 주인공 중 하나였던 노엘은 란트의 단물만 쪽쪽 빨아먹고 나중에 그를 배신했다.
흑화한 실비아와 손을 잡고 결국 아그리체를 무너뜨렸으니까 말이지.
게다가 소설에서 묘사된 노엘은 상당한 귀차니즘이라 란트의 생각처럼 인형 군사니 뭐니 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이대로라면 앞으로의 내 계획에 베르티움이 방해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물론 그래도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감시는 계속 할 생각이었다.
조금 더 지켜봤지만 베르티움의 수장으로 보이는 인물은 마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어쩌면 작년과 마찬가지로 올해에도 모임에 불참할 생각인지도 모른다.
그는 소설에서도 베르티움 안에 자신만의 왕국을 만들어 놓고 두문불출하는 인물이었다.
나는 란트 아그리체의 모습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커튼을 쳤다.
* * *
그날 저녁부터 위그드라실의 성에는 성대한 연회가 열렸다.
역시 어디를 가나 이와 같은 대규모의 교류회에는 술과 잔치가 빠지지 않는 법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나는 참석하지 않았다.
란트도 내가 독나비를 부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자 흔쾌히 허락했다.
그러나 사실 내가 파티에 가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하지만 딱히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할 수도 없었다. 단순히 연회가 재미없었기 때문이니까.
“누나, 진짜 연회장에 안 내려 갈 거야?”
“난 마지막 날에만 참석할 거야.”
아까부터 문밖을 기웃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졌지만 그냥 무시했다.
작년에도 내가 첫날 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던 이후로 모임이 끝날 때까지 내내 이런 식으로 내 주위를 얼쩡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방에만 처박혀 있었는데 작년과 같은 현상이 벌어지다니.
아마 저 사람들은 작년 참석자들이거나 그들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들인 것 같았다.
막상 내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면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하는 주제에 꼭 이렇게 은근히 성가시게 군단 말이지.
“제레미, 넌 내려가서 다른 사람들하고 어울리도록 해.”
나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제레미에게 권유했다.
제레미는 내 옆에 있는 소파에 눌어붙어 다과상에 딸려 온 티 푸드를 전부 해치운 참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따분한 듯이 옆으로 벌렁 드러누웠다.
“누나가 없으면 나도 재미없어.”
손을 닦으라고 건넨 티슈를 갈기갈기 찢으며 노는 모습이 꼭 열여덟 살이 아니라 여덟 살짜리 애 같았다.
“그리고 아까 살짝 내려가서 다른 놈들하고 만나 봤는데 죄 다 별 볼일 없던데?”
아마 소설의 남주인공들을 만나면 생각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지만…….
아무래도 그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니 제레미가 시시해할 만도 했다.
나도 지금 저 밑에 있는 사람들이 별 볼일 없다는 그의 말에는 동의했다.
현재 저 밑에는 청의 페델리안 가문을 제외한 다른 가문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 〈나락의 꽃〉의 주요 인물이었던 이들은 없었다.
소설의 남자 주인공은 총 세 명.
백의 휘페리온 가문의 오르카, 적의 가스토르 가문의 류자크, 황의 베르티움 가문의 노엘이 바로 그들이었다.
으음, 물론 소설 속에서 흑의 아그리체 가문 소속인 제레미도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맡긴 했지.
하지만 그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 악역 캐릭터였으니 일단 남자 주인공에서는 제외시키도록 하자.
어쨌든 그들은 남자 주인공답게 각자 개성 넘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소설의 주연답게 굉장히 몸값이 비싸 나 같은 악역 조연 캐릭터는 얼굴 한 번 보기도 어려웠다.
작년에 이 화합회에 와서 내가 봤던 인물은 저 중에 적의 가스토르 소속인 류자크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작년 모임에 당당히 불참했고 올해에도 여기에 올지 안 올지 불명확했다.
하기야 소설에서도 실비아가 남자 주인공들과 엮이게 된 것은 오빠의 행방을 찾기 위해 직접 그들을 찾아갔기 때문이었으니까.
아무튼 그래서 내가 직접 얼굴을 확인한 사람은 류자크 가스토르가 유일했다.
그를 본 감상을 말하자면, 확실히 소설의 남자 주인공다웠다는 것이었다.
붉은 머리카락과 자색 눈동자를 가진 류자크는 야성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구릿빛 피부의 미남이었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상당히 강렬한 인상이었는데, 작년에 화합회에 참석했던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내 미모 앞에서도 평정심을 유지했던 사람이었다.
물론 나를 발견하고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추며 두 눈을 크게 뜨기는 했지만, 적어도 곁에 있던 다른 사람들처럼 얼간이 같은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
그는 얼마 안 가 무리 중에 가장 빨리 정신을 차린 뒤, 와락 얼굴을 구기며 거친 걸음으로 나를 지나쳐 갔다.
나는 류자크에게 여성 기피증이 있다는 사실을 소설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날 그가 내보인 거대한 불쾌감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대강 짐작했다.
류자크는 바로 그날 밤 위그드라실을 떠났다. 꼭 그 이유가 나 때문이라는 듯이 참으로 발 빠른 퇴장이었다.
그의 성격은 대쪽 같은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아마 여자에게 동요한 자신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나는 추측했다.
“베르티움의 수장은 우리 또래라고 해서 좀 궁금했는데. 작년에도 불참해서 이번에는 온다고 하지 않았어?”
“전해 들은 소식으로는 그렇긴 한데.”
앞서 말한 베르티움의 수장 노엘은 현 세대의 수장들 중에 가장 어린 나이였다. 더불어 소설의 세 남자 주인공 중 유일하게 후계자에서 벗어난 신분이기도 했다.
그는 거의 2, 3년에 한 번씩 화합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내 정보통에 의하면 이번에 얼굴을 볼 수 있을 텐데…….
아까 마차에서 내려서는 사람 중에 소설에서 묘사되었던 대로 주황색 머리칼에 녹색 눈동자를 가진 귀여운 외양의 남자는 없었던 걸 보니 그냥 올해도 불참하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반면 백의 휘페리온 가문의 오르카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화합회에 얼굴을 내민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백의 마수사’라는 별칭을 가진 인물답게 마물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겨울마다 움직임이 활성화되는 특이한 마물의 서식지를 쫓아 언제나 화합회는 뒷전이라고 들었다.
“제레미, 배고프면 여기로 식사를 준비시킬까?”
“그래! 내가 말하고 올게.”
그냥 줄을 잡아당겨 사용인을 부르면 될 텐데 제레미는 굳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아까부터 계속 방 앞을 서성이던 인기척이 거슬렸던 게 분명했다.
제레미는 내가 바깥에 노출되지 않게 문을 조금만 열어 그 사이로 홀랑 빠져나갔다.
그 후 밖이 잠시 시끄러워졌다.
하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제레미는 한결 홀가분해진 얼굴로 다시 방에 들어왔다.
“아, 밥 가져오라고 하는 거 까먹었다.”
“그냥 사람을 안으로 부르자.”
역시 제레미가 밖으로 나간 목적은 밥이 아니었던 게 분명했다.
이런 걸 보면 그동안 나이만 먹었지 그 밖에 다른 부분은 예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나는 그냥 그것을 눈감아 주기로 하고 줄을 잡아당겨 사람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