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58)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58화(58/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58화
* * *
그날 밤, 나는 시간이 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오늘 저녁 연회는 어제보다 한결 떠들썩했던 모양이다.
드디어 5가문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당연했다. 물론 개중에는 나처럼 연회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마 화합회의 마지막 날인 내일은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을까 싶었다.
연회장에 심어 둔 나비에게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오늘은 실비아가 단연코 주인공이었던 것 같다.
달빛 같은 신비로운 은발과 별가루를 뿌린 듯 반짝이는 금색 눈동자를 가진 사랑스러운 소녀의 모습은 과연 연회장에 모였던 젊은이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을 만했다.
하지만 나는 독나비가 보여 주는 영상을 보다 말고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오늘 저녁 만찬 때는 제레미도 연회장에 내려갔었나 보다. 아마도 카시스의 여동생인 실비아가 궁금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실비아를 본 제레미의 반응은…….
〈시발, 청의 개새끼랑 존나 닮았잖아. 비위 상하게.〉
소설과 달리 굉장히 야박한 평가였다.
얼굴을 종잇장처럼 잔뜩 구긴 채 혼잣말을 읊조리는 제레미의 모습이 퍽 웃겼다.
아무래도 현실의 제레미가 실비아에게 반해서 그녀를 납치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듯했다.
류자크 가스토르도 실비아를 보고 또 슬쩍 얼굴을 찌푸렸지만 나를 볼 때만큼의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 정도가 약했다.
노엘 베르티움은 연회에 참석하지 않고 미동 없이 방에 머물러 있었다. 중간에 란트가 접선을 시도하는 듯했지만 그는 방문을 수락하지 않았다.
“고마워. 이제 됐어.”
나는 평소보다 일찍 확인을 끝마치고 독나비를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냈다. 역시 이곳에서 독나비를 오래 부리는 것은 몸에 무리가 갔다.
밤이 깊은 시간이었다.
성 안은 깨어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처럼 작은 인기척 하나 없이 무척 조용했다.
그 후 시간이 한참 더 지나도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아까 만났던 리셸과 독나비의 영상을 통해 본 실비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그들과 닮은 다른 사람의 얼굴도 덩달아 생각났다.
잠시 후, 침대 위에서 뒤척이던 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빠져나왔다.
낮에는 그렇게 따뜻했는데,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라고 밤공기가 차가웠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나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잠깐 바람을 쐬기에는 지금 이대로도 나쁘지 않았다.
밖에서 보니 이 시간에도 불이 켜진 방이 두어 개 있었다. 위치상 그중 하나는 리셸 페델리안의 방이었다.
지금 시간이 벌써 4시가 넘었는데 이대로 밤을 새우려는 것일까?
물론 이 시간에 밖으로 나온 내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나는 잠깐 불 켜진 방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다가 이윽고 다시 고개를 내렸다. 그러고 나서 멈추었던 발을 뗐다.
한밤중의 위그드라실은 더없이 고요했다.
농도 짙은 이 적막감 때문일까. 어쩐지 낮보다 한결 더 엄숙하고 묵직한 장엄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직 안 죽고 살아 있었네.”
나는 길옆의 덤불을 헤치고 들어가 나무둥치에 등을 기대고 쭈그려 앉았다.
그곳에는 붉은 열매가 맺힌 풀이 자라 있었다. 작년에도 실내가 갑갑해 지금처럼 혼자 나왔을 때가 있었는데, 그 당시에 우연히 발견했던 독초였다.
뜻밖의 장소에서 발견한 뜻밖의 식물에 상당히 반가운 기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독초라고 해 봤자 기껏해야 배탈을 야기하는 정도이기는 한데.
어쨌거나 지금도 익숙한 독초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 마음이 조금 평온해졌다.
깊은 숨을 내쉬자 허공에 하얀 서리꽃이 피어났다.
요즘 들어 계속 그래 왔던 것처럼 오늘도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여주인공인 실비아가 열여덟 살이 된 올해가 소설이 시작될 시점이었다.
하지만 현실의 이야기는 소설과 다른 국면을 맞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일단은 실비아의 오빠인 카시스가 살아 있었으니까.
그는 무사히 아그리체를 빠져나간 뒤 오늘까지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란트는 카시스가 죽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문득 실소가 새어 나왔다.
살아 있는 카시스를 보았을 때 란트 아그리체가 지어 보일 표정이 벌써부터 기대되었다. 그 놀란 얼굴을 보는 게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러던 중, 별안간 위그드라실 안에 작은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졌다.
멈춰 선 마차 안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일색인 사람이 내려섰다.
겉옷의 모자를 뒤집어쓰고 있었기 때문에 턱 언저리만 언뜻 보일 뿐,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멀리서 언뜻 보기에도 잘 단련된 느낌을 풍기는 단단한 육체나 굉장히 큰 장신의 키를 보았을 때, 지금 마차에서 내린 사람은 남자인 것이 분명했다.
달빛 아래에서 하얗게 드러난 턱 선이 베일 듯이 날카로웠다.
데온인가.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 정도로 큰 키와 다부지게 균형 잡힌 신체를 가진 사람은 데온밖에 본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저 사람의 주위에 흐르고 있는 분위기.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변에 고인 공기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만 같은 저 위압적인 분위기는 아무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슬슬 데온이 올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참이긴 했다.
되도록 화합회에 늦게 도착하게 하려고 까다로운 일을 맡기고 온 참이었는데 벌써 끝마쳤나. 이쯤 되면 정말 징그러울 정도였다.
나는 내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오기 시작하는 남자를 차게 식은 기분으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대로 알은척하지 말아야지. 괜히 말 섞어서 기분을 망치기는 싫으니까.
하지만 데온은 늘 그래 왔듯이 너무도 간단히 내 기대를 저버렸다.
길을 따라 이어지던 발걸음이 돌연 내가 있는 곳의 바로 뒤에서 멈추어졌다.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시선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아마 고개를 돌린 모양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는 상당히 밤눈이 밝았다. 어둠 속에서도 이렇게 나를 정확히 발견해 내서 곧장 시선을 보내오고 있으니 말이다.
저벅,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내게 한 발짝 다가왔다.
나는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지겹기도 하지…….”
내가 입을 여는 순간 다가오던 걸음이 멈추어졌다.
귀신같은 놈. 기척도 전부 다 죽이고 있었는데 내가 여기에 있는지 어떻게 안 거지?
하지만 예전부터 지겹도록 끈질기게 내 뒤를 쫓던 데온이니만큼 저 집요함이 새삼 놀랍지도 않았다.
“도대체 날 얼마나 더 질리게 만들어야 만족할 셈이야? 꼴 보기 싫다고 했잖아. 당신은 정말 입이 아프도록 말해도 알아듣지를 못하는구나.”
정말로 지긋지긋했다. 아마 내 목소리에도 이런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을 것이 분명했다.
데온의 그림자조차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시선 한 자락 그에게 주지 않았다.
“아무 말 하지 말고 그냥 가, 데온. 오늘은 모처럼 기분이 나쁘지 않은 밤이니까.”
다른 때라면 좀 더 잔인한 말로 그를 공격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간만에 맞이한 평온한 밤을 데온 때문에 망쳐 버리는 건 아까운 짓이었다.
뒤에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대로 그냥 가 버린 건지 아닌지조차 헷갈릴 정도로 주변의 공기가 조용했다.
저벅.
그러다 문득 조금 전에 멈추었던 발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그 것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욱해서 다시 입을 열었다.
“가까이 오지…….”
휘익.
바로 그 순간, 머리끝에서부터 따스한 온기에 감싸였다.
차갑게 식었던 몸에 따뜻함이 번져 나갔다. 나는 훅 숨을 멈춘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내 몸을 덮고 있는 것은 조금 전까지 남자가 걸치고 있던 겉옷이었다.
묵직한 무게감이 어깨를 눌렀다. 그 안에는 낯선 향기가 배어 있었다.
어째서인지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하고 시간이 멈춘 것처럼 그저 가만히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작은 풀벌레 소리가 귀에 흘러든 순간,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 후 흠칫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급히 뒤돌아보았다.
하지만 조금 전까지 누군가가 서 있던 자리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텅 빈 공간에는 차가운 한기만이 고여 있었다.
……데온이 아니야.
다만 그 선연한 깨달음 하나만이 의심할 여지조차 없이 너무도 확고한 진실을 가리키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