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60)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60화(60/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60화
* * *
“제길,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급히 연회장을 빠져나오는 길에 란트가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의 얼굴에는 충격과 혼란, 그리고 경악이 가득했다.
“카시스 페델리안은 분명 그때 죽었을 텐데……!”
주위에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곤란한 일이 벌어졌을지도 몰랐다.
란트는 그런 것조차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침착함을 잃은 상태였다.
하기야 죽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 사람이 되살아났으니 그 놀라움이 오죽하겠냐마는.
아까 제레미가 그랬던 것처럼 귀신을 목도한 것 같은 기분일 것이 분명했다.
문득 저 멀리서 노엘 베르티움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다시 연회에 참석할 생각인 모양이었다.
나는 란트와 그가 서로를 발견하기 전에 움직였다.
“아버지, 진정하세요.”
“내가 진정하게 생겼느냐?”
자연스럽게 란트를 유도해 방향을 틀자 노엘 베르티움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로써 란트와 노엘이 지금 마주치는 것은 차단했다.
“아버지도 그때 분명 두 눈으로 똑똑히 보셨잖아요. 그는 분명 제 손에 죽었어요.”
“그건 그렇지만…… 그럼 저건 도대체 뭐란 말이냐?”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는지 란트의 목소리가 조금 전보다 약간 안정되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아직도 혼란이 담겨 있었다.
“진짜는 이미 죽었으니 저건 진짜 같은 가짜겠지요.”
그러자 란트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럼 저게 대역이라는 말이냐? 하지만 저 기운은 분명 페델리안의 것인데. 게다가 저건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가 아니냐?”
“어쩌면 진실은 생각보다 단순할지도 몰라요.”
란트의 마음에 의심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 느껴졌다. 결국 그는 이 뒤에 이어질 내 말을 부정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나는 란트의 눈을 정면에서 직시하며 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이 세상에는 진짜 살아 있는 사람처럼 정교한 인형을 만들 수 있는 자가 있잖아요.”
그 순간 마주한 눈동자에 정지된 시간이 깃들었다. 그와 나는 어느새 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인형…… 인형이라고?”
란트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딱딱하게 굳어진 얼굴을 보니 지금 내가 이야기한 것이 과연 실제로 있을 법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당연했다. 란트가 지금까지 베르티움과 끊임없이 접선을 시도하며 욕망했던 것도 이와 맥락을 달리하지 않는 것이었으므로.
“기억나지 않으세요?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페델리안과 베르티움의 교류가 확인되었다고 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었잖아요.”
나는 그저 란트의 마음속에 숨겨진 부분을 건드려 그의 불안과 의심에 불을 지폈을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확인된 건 최근의 교류뿐이지만 어쩌면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전부터 은밀히 연락을 주고받았을지도 몰라요.”
물론 내가 란트에게 흘린 것은 가짜 정보였다. 근 3년간 페델리안과 베르티움은 눈에 띄는 교류를 가졌던 적이 없었다.
“설마 베르티움이…….”
란트의 머리가 정신없이 굴러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것 같았다.
그의 머릿속에 일단 한번 혼돈이 생긴 탓인지, 그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를 향해 다시금 뱀처럼 간교한 말을 속삭였다.
“후계자를 잃어 위기에 처한 청의 페델리안이 몸을 웅크리고 있던 지난 3년 동안 카시스 페델리안과 똑같이 생긴 인형을 만들었다고 하면 아귀가 맞아떨어지지 않나요?”
* * *
예상대로 란트는 노엘 베르티움과 만날 생각인지 곧장 숙소가 있는 건물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노엘은 아까 연회장으로 향한 참이었다.
물론 록사나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란트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
록사나는 나비를 통해 그들의 위치를 확인한 뒤 걸음을 옮겼다.
홰액!
강한 힘이 그녀의 팔을 낚아챈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록사나는 어둠 속에 몸을 감추고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깨닫고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팔을 끌어당긴 거친 힘이 이번에는 그녀를 뒤로 밀쳤다. 등 뒤로 싸늘함이 흐르는 딱딱한 벽이 닿았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앞으로 서늘한 기운을 풍기는 몸이 다가들었다.
“……뭐야? 인사치고는 너무 격한데.”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록사나는 동요 한 점 내비치지 않았다.
잔물결 하나 일지 않은 눈동자가 눈앞에 있는 얼굴을 싸늘하게 응시했다.
그 시선과 비슷한 온도를 가진 붉은 눈동자가 록사나를 꿰뚫을 듯이 내려다보았다.
시야에 불빛이 어른거렸다. 연회장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었다.
1층의 테라스와 거의 등지고 있다 보니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와 수군거리는 음성들이 나직하게 들려왔다.
“카시스 페델리안이 다시 양지로 나왔더군.”
불빛에 물든 데온의 얼굴은 시리게 얼어 있었다.
위그드라실에는 지금 막 도착한 것인지 그의 복장은 연미복이 아니었다.
록사나는 코끝에 희미하게 번지는 혈향에 슬쩍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망토에 반쯤 가려진 데온의 왼쪽 팔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그녀가 맡긴 일을 처리하다가 상처를 입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록사나는 거기에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않았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니 반가웠나?”
오히려 그녀의 흥미를 끄는 것은 이쪽이었다.
카시스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다니.
록사나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여져 마침내 작은 호선을 그렸다.
“그렇게 잘 알면서 굳이 왜 묻는 거야?”
나른한 눈매에도 웃음기가 어렸다. 꽃망울을 틔우듯이 피어오르는 미소에 데온을 둘러싼 공기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난 가끔 널 죽여 버리고 싶어.”
특유의 냉담하고 단조로운 음성과 달리 그의 눈빛에 틀어박힌 감정은 그보다 훨씬 격렬하고 사나웠다.
저벅.
옆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설마 화합회의 취지조차 모르는 자가 이곳에 있을 줄은 몰랐는데.”
나지막한 음성이 시린 밤공기를 가로질러 고막을 찔렀다.
그와 동시에 록사나의 팔을 움켜쥐고 있던 데온의 손목에 강한 악력이 파고들었다.
록사나는 데온과 마주하고 있던 시선을 끊어 내고 고개를 돌렸다.
불빛에 번진 은색 머리카락이 허공에 잘게 흩날리는 것이 보였다. 음영이 진 눈동자는 그녀의 기억 속에서보다 한결 더 강렬한 광채를 머금고 있었다.
곧게 뻗어진 시선이 록사나의 앞에 위협적으로 도사리고 선 데온을 꿸 듯이 직시하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상대방을 겁박하는 것이 아그리체만의 인사법인가?”
시야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카시스 페델리안이었다.
이렇게 가까이 접근할 때까지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카시스에 의해 강제로 손을 떼어내게 된 데온의 몸에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것을 정면으로 맞고 있는 사람에게서는 미동 한 번 생기지 않았다.
소년티를 벗은 카시스는 여러 가지 면에서 놀라울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데온 못지않은 위압감이 숨을 막히게 할 지경이었다.
이 모습을 본다면 란트 아그리체도 카시스 페델리안이 가짜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은 추호도 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물론 이번 화합회에서 란트가 카시스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그가 원하는 대로 베르티움의 수장인 노엘과 만나는 것도 불가능했다.
록사나가 그렇게 만들 것이었으므로.
“데온.”
마침내 록사나의 입술이 작게 달싹여졌다.
귓가에 닿은 자그마한 부름에 카시스에게 박혀 있던 싸늘한 눈길이 다시금 록사나를 향했다.
데온은 여러 감정이 부딪쳐 균열을 그리는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다가 이윽고 거칠게 날뛰는 기운을 갈무리하고 물러났다.
데온이 돌아선 후 록사나도 몸을 똑바로 세웠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치맛자락을 잡아 올리며 앞에 있는 사람을 향해 예의를 갖추어 인사했다.
“제 이름은 록사나 아그리체. 귀인의 성함은 어떻게 되십니까?”
만약 다른 누군가가 지금의 그들을 본다면 이것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이라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카시스는 록사나를 잠깐 말없이 바라보았다.
짧은 침묵 끝에 마침내 카시스가 굳게 다물려 있던 입술을 천천히 움직였다.
“……카시스 페델리안입니다.”
깊은 울림을 지닌 낮은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청의 귀공자셨군요.”
“허락해 주신다면 인사를.”
카시스는 자신을 소개한 데 그치지 않고 록사나처럼 동요 없는 모습으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기꺼이.”
장갑을 낀 두 손이 겹쳐졌다.
록사나가 손을 올리자 카시스가 그것을 붙잡아 손등에 입술을 묻었다.
서늘함이 감도는 피부 위에 낯선 열기가 얕게 스몄다.
가까이에서 시선이 부딪쳤다. 정면에서 마주한 눈동자는 익숙했지만 그 익숙함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낯선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그런 감상을 느끼게 하는 것은 눈빛만이 아니었다.
록사나는 먼저 그에게 붙잡혀 있던 손을 빼냈다.
“청의 귀공자의 위명이라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남매간의 철없는 다툼을 보여드려 부끄럽네요.”
그러자 카시스의 고요한 금색 눈동자가 옆으로 슬쩍 미끄러졌다.
그것은 조금 전에 데온의 모습을 삼킨 어둑한 공간을 서늘히 스쳐 지나갔다.
“남매간의 철없는 다툼이라.”
“네, 그러니 청의 귀공자께서 깊이 마음 쓰실 필요 없는 일입니다.”
“그렇습니까.”
카시스는 혼잣말처럼 그렇게 나지막하게 읊조린 뒤 다시 눈앞에 있는 록사나를 응시했다.
연회를 맞아 화려한 복장을 한 록사나는 그야말로 눈이 멀어 버릴 정도로 아름다워 어둠 속에서도 홀로 두드러지게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는 이대로 밤공기 속에 소리 없이 스러져 버릴 것 같은 기이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어느새 밤이 깊어졌네요. 저는 이만 방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청의 귀공자께서는 다시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록사나가 먼저 자리를 떠날 의사를 내비쳤다. 카시스는 그런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다만 뒤이어 록사나의 어깨에 어디선가 겪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안온한 무게감이 내려앉았다.
“밤공기가 차니 걸치고 가십시오.”
얇은 드레스를 입고 있어 차게 식었던 몸에 따스한 온기가 스몄다. 록사나는 카시스의 겉옷을 어깨에 걸친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의 거리는 아까보다 한결 가까웠다.
카시스의 얼굴을 이렇게 지척에서 마주하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어쩐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금 허공에서 시선이 얽혔다.
“지난밤에 드린 것과 마찬가지로…….”
낮은 속삭임이 그 사이로 번졌다.
“이것 역시 돌려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을 듣고 간밤에 만났던 사람이 누구인지 비로소 완전히 확신할 수 있었다.
먼저 뒤돌아선 것은 카시스였다.
록사나는 한동안 미동 없이 서서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