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61)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61화(61/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61화
* * *
“저, 저기. 아그리체 양?”
숙소가 있는 건물로 향하는 길에 어떤 남자가 록사나에게 다가왔다.
그의 머리가 한순간 은발로 보여 멈칫했으나 다시 보니 그의 머리카락은 은색이 아니라 새하얀 백발이었다.
“저희 수장님께서, 그러니까…… 이걸 꼭 아그리체 양께 선물하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대신 왔습니다.”
“감사하다고 전해 주세요.”
록사나는 꽃다발을 건네받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남자가 또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잠깐 뒤를 쫓아오며 어물거렸다. 하지만 록사나는 그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카시스가 드디어 전면에 나섰다는 건 때가 되었다는 의미였다.
“그래. 곧 웅장한 파티가 열리겠구나.”
록사나의 얼굴에 어딘가 선득한 느낌을 풍기는 달콤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녀의 손 안에서 화려하게 만개한 장미꽃이 부서졌다.
록사나는 허공에 흩날리는 붉은 꽃잎을 뒤로한 채 걸음을 옮겼다.
* * *
잠시 후 그녀가 도착한 곳은 란트 아그리체의 방이었다.
예상대로 그는 노엘 베르티움과의 접선에 실패한 뒤 초조하게 방 안을 서성이고 있던 중이었다.
“아버지, 지금 바로 아그리체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요.”
록사나의 말에 란트가 의문을 표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방금 데온 오빠를 만나서 소식을 들었는데…….”
뒤이어 란트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아버지가 안 계신 틈을 타서 폰타인 오빠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하네요.”
* * *
그들은 곧장 위그드라실을 떠났다.
마침 록사나의 말을 따라 먼저 연회장을 벗어난 제레미가 하인들에게 미리 채비를 시켰던 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곧장 준비를 마치고 아그리체로 향할 수 있었다.
“란트 아그리체가 지금 막 성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 소식은 카시스에게도 전해졌다.
어느새 그는 연회장에서 입었던 예복을 벗은 뒤였다.
“준비는?”
“지시해 놓으신 대로 이미 끝마쳤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한다.”
광택이 나는 구두 대신 투박한 가죽 부츠가 복도에 깔린 붉은 융단을 밟았다. 어깨에 걸친 짙푸른 망토가 절제된 걸음을 따라 흔들렸다.
예복을 벗은 카시스의 모습은 귀공자라기보다는 단련된 기사 내지는 노련한 사냥꾼에 더 가까워 보였다.
오늘은 화합회의 마지막 날이었고, 지금은 아직 연회가 한창인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숙소 주변을 하릴없이 얼쩡거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카시스의 눈에 여동생 실비아의 모습이 띄었다.
카시스처럼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실비아가 카시스에게 다가왔다.
“오빠, 조심해야 돼.”
카시스와 닮았지만 훨씬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풍기는 금색 눈동자가 그 안에 미약한 걱정을 담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카시스는 손을 뻗어 여동생의 머리를 얕게 헝클어뜨렸다.
“아버지와 함께 돌아가. 일이 전부 끝나면 나도 곧장 페델리안으로 갈 테니까.”
이미 모든 이야기를 끝마친 뒤였기에 아버지인 리셸을 지금 따로 만날 필요는 없었다.
카시스는 처음 이곳에 올 때처럼 조용히 위그드라실을 떠났다.
목적지는 오래된 숙원이 남아 있는 아그리체였다.
* * *
붉게 타오르는 낙조가 지평선 위로 떨어졌다.
아그리체에는 낯설게 느껴질 정도로 짙은 불온함이 감돌고 있었다.
성벽의 내부뿐만이 아니라 외부에서부터 그 불길한 기운이 여실히 느껴질 정도였다.
“당장 그놈을 내 눈앞에 끌고 와라!”
란트는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사납게 명령했다.
장남의 모반 소식을 알게 된 그는 몹시 대노한 상태였다.
란트는 그의 손으로 직접 판결을 내려 죄인을 처벌할 때 이용되는 심판의 방에 폰타인을 끌고 오라고 명령했다.
란트가 없는 동안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던 탓인지 저택 내부는 다소 어수선했다.
이번 일에 관심이 있는 몇몇 형제와 안주인들이 방에서 나와 기웃거렸다.
개중에는 록사나의 이복 언니인 그리젤다도 있었다.
록사나는 란트를 뒤따르다가 그녀를 발견하고 걸음을 늦추었다.
그런 록사나의 뒤로 그리젤다가 조용히 따라붙었다.
앞서 걷는 란트의 등을 바라보며 록사나가 작게 입술을 벌렸다.
“준비는?”
“끝났어.”
록사나의 얼굴에는 작은 표정 변화 하나 생기지 않았다.
그 대화를 끝으로 두 사람은 다시 거리를 벌렸다.
록사나에게서 떨어져 나온 붉은 나비가 벽에 스며들듯이 조용히 사라졌다.
“제레미. 넌 밖을 정리해.”
“알았어, 누나.”
곧 록사나는 아버지 란트 아그리체의 뒤를 따라 심판의 방에 들어섰다.
* * *
잠시 후, 포박당한 폰타인이 심판의 방에 끌려 들어왔다.
“폰타인, 네놈이 기어이……!”
란트가 짓씹듯이 일갈하며 바닥에 무릎 꿇려진 폰타인에게 다가갔다.
반란을 도모했다는 죄로 잡혀 온 폰타인은 크게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를 제압한 데온이 팔을 다칠 정도였으니, 폰타인의 상태가 어떨지는 사실 두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뻔했다.
“아, 아버지!”
폰타인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란트를 보고 다급히 입을 열었다.
“이건 다 오해…… 커억!”
하지만 그가 막 입을 열기 무섭게 란트의 손에 들려 있던 단장이 휘둘러졌다.
이제껏 란트가 잘못의 경중에 따라 죄인들에게 형벌을 내리고, 또 간혹 제 손으로 직접 즉결 처분을 내리기도 했던 곳이 바로 이 심판의 방이었다.
그가 자식들에게 폐기 처분 명령을 내렸던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퍽! 퍼억!
란트는 지금 이 자리에서 폰타인을 패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거침없이 손을 휘둘렀다.
끝부분이 금속으로 장식된 단단한 막대기가 폰타인을 내려칠 때마다 눈부신 대리석 바닥에 피가 튀었다.
그의 손속에 자비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감히 네가!”
퍼억! 퍽!
“내 등에 칼을 꽂으려고……!”
퍽!
폰타인을 내려다보는 란트의 눈에는 이글거리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에게서는 살기마저 느껴졌다.
중년에 접어든 나이였지만 란트의 풍채와 힘은 폰타인에 뒤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지금 폰타인은 사지를 결박당한 데다 그 전까지 거칠게 다루어져 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란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퍼억!
결국 란트의 손에 들린 단장이 부러졌다. 그제야 란트는 폰타인을 패는 것을 멈추었다.
“버러지 같은 새끼. 내가 금수만도 못한 놈을 낳았어. 감히 이 아비의 뒤를 치려고 하다니.”
란트는 피로 칠갑되어 축 늘어진 폰타인을 섬뜩하리만치 냉엄한 눈으로 노려보며 부러진 단장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집어 던졌다.
“네놈이 내 뒤에서 몰래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을 모를 줄 알았더냐? 그래도 설마 하는 마음에 기회를 주려고 했건만, 감히 네가 이런 식으로 나를 배신해……!”
폰타인은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머리 위에서부터 쏟아지는 란트의 분노를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이를 악물며 고통을 참아 내는 동안에도 그의 눈은 형형히 불타고 있었다.
제기랄, 어떻게 들킨 거지? 모든 계획이 완벽했는데.
데온, 저 새끼가 중간에 갑자기 나타나 방해하지만 않았어도……!
증오로 범벅된 폰타인의 눈이 문 쪽에 선 데온을 쏘아보았다.
“아버지, 이건…… 이건 전부 다 데온, 저 새끼가 저를 모함하려고! 저는 억울…….”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개소리를 지껄이는구나.”
폰타인의 애끓는 호소에도 란트는 냉담했다.
“내가 네놈의 얕은 수를 모를 줄 알았더냐? 네놈이 뒤에서 몰래 사병을 모으기 시작하는 걸 알고 데온에게 감시를 맡긴 게 나인데!”
그 말에 폰타인은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