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6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63화(63/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63화
마침내 문 앞에 그림자처럼 서 있던 데온이 움직였다.
그의 걸음은 란트와 록사나, 둘 모두가 원하는 대로 심판의 방의 앞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팔을 들어 록사나의 목을 날리는 대신 자신의 앞으로 내밀어진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사실상 가장 신뢰했던 아들과 딸의 배반이었다.
란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부릅뜬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덜컹!
“누나!”
바로 그 순간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그 사이로 뛰어 들어온 것은 제레미였다.
“기다렸지? 나 왔…….”
그런데 그는 들어오자마자 안 쪽의 상황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뭐야, 이 거지 같은 상황은?”
제레미의 반응에 란트는 일말의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이어지는 제레미의 말은 그의 기대를 또 한 번 박살 냈다.
“데온, 너 이 새끼. 누나 손 안 놓냐? 사나 누나 오른손도 왼손도 다 내 거거든?”
제레미는 데온에게 이를 갈면서 홀랑 록사나를 향해 뛰어갔다.
바닥에 쓰러진 란트에게 잠깐 시선이 닿기는 했지만 제레미는 그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는 듯 했다.
“안타깝게도, 아버지. 아그리체에 당신 편은 아무도 없답니다.”
록사나는 마치 날 때부터 왕이었던 사람처럼 오만하게 앉아 란트를 시리게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뒤이어 그녀의 얼굴에 눈빛과는 상반된 상냥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하지만 잇따라 나긋이 덧붙여진 말은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아직 아버지는 쓸모가 있으니, 지금 바로 죽이지는 않을게요.”
* * *
휘오오오.
침엽수림이 울창하게 자라난 깊은 숲 속에 사나운 바람이 몰아쳤다. 살이 에일 듯이 시리고 날카로운 북풍이었다.
어딘가 불길한 느낌을 풍기던 붉은 해가 저물고, 숲에는 다른 땅보다 한발 일찍 밤이 찾아들었다.
그 어둠을 틈타 조용히 숨을 죽이며 때를 기다리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란트 아그리체가 돌아오기 전부터 저택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다.
깨진 달 조각처럼 시리게 번뜩이는 눈에는 잘 갈린 예기가 서려 있었다.
“오셨습니까.”
마침내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주인이 도착했다.
어둠 속에서 소리 소문 없이 등장한 남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팔을 움직이자 이곳에 오는 길에 처리한 정찰병이 바닥에 풀썩 떨어졌다.
건초가 웃자란 차가운 바닥에는 먼저 처리한 아그리체의 하수인들이 있었다.
“상황은?”
“아까부터 안쪽이 다소 소란스럽습니다.”
서늘한 금색 눈이 먼발치의 불빛을 주시했다.
“움직일까요?”
“잠시 대기한다.”
카시스가 오기 전까지 지휘를 맡고 있던 이시도르는 아무런 의문도 표하지 않고 주인의 명에 복종해 물러났다.
카시스는 싸늘히 가라앉은 눈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휘오오오.
거친 바람 소리가 귓가에 내달렸다. 그 소리가 꼭 짐승의 우짖는 소리 같았다.
숲의 겨울 짐승들조차 몸을 옹송그리는 밤이었다.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에 앙상한 나뭇가지가 파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 우뚝 선 이는 어깨 한 번 움츠리지 않았다.
뼛속까지 얼려 버릴 것처럼 밀려드는 추위에 뺨과 손발이 아릴 만도 하건만, 숫제 한기조차 느끼지 않는 모양새였다.
단단한 암벽처럼 미동 없이 버티고 선 몸에는 사냥 직전의 맹수 같은 날카로운 기운이 흘렀다. 정면을 곧게 응시하고 있는 눈동자도 마찬가지였다.
주위에 있는 이들은 조용히 그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득 암흑 속에 먼지 같은 하얀 티끌이 내려앉는다 싶더니, 하늘에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착각처럼 계절에 맞지 않는 나비 한 마리가 눈이 흩날리는 밤 하늘을 유영하다가 금세 종적을 감추었다.
차가운 금색 눈동자가 선득한 빛을 발했다.
마침내 기다렸던 명령이 떨어졌다. 어둠 속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던 자들이 민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해묵은 악연을 끊어 낼 때였다.
* * *
모반이 성공해 란트가 실각했다는 소식이 금세 아그리체 전체에 퍼져 나갔다.
화합회에 참석했던 일행이 돌아온 지 불과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의 일이었다.
당연히 저택 안은 큰 혼란에 휩싸였다.
더군다나 아그리체를 장악한 것은 바로 직전까지 저택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던 장남 폰타인이 아니었다.
“다들 정신없이 뛰어다니는구나. 꼭 개미 떼들 같네.”
아그리체의 장녀인 그리젤다는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을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며 웃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록사나의 안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란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심판의 방에 그를 포박할 덫을 만든 것이 바로 그리젤다였다.
그녀는 다른 방면에서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주술진의 설계에는 소질이 있었다. 그래서 현재 아그리체 내에서 이용되는 주술진은 대부분 그녀의 손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록사나, 걔도 참 보통이 아니야.”
그리젤다는 지금의 상황이 몹시도 흥미진진했다.
록사나가 이렇게 재미있는 애인 줄 알았다면 진작 그 옆에 붙어 있을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실질적으로 아그리체를 장악한 것은 록사나와 데온, 그리고 제레미였다.
지금 다른 이들에게 알려진 반란의 대표자는 데온이었지만 그리젤다는 그를 움직이는 것이 록사나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미 저택의 실권도 그녀에게 넘어가 있었다.
폰타인이 일으키려 했던 사병들도 진짜 그의 명령을 따라 움직였던 것이 아니었다. 사라진 군사들도 록사나의 수중에 있었다.
그리젤다도 그녀를 따라 란트를 몰아내는 데 한몫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그저 재미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아버지를 배반하는 짓이었지만 딱히 죄의식 같은 것을 느끼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에게 지켜야 할 의리 같은 게 있었던 것도 아니고.
란트는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자기 자식도 죽일 수 있는 남자였다. 실제로 그가 폐기 처분 시켜 죽인 자식들도 몇 있었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있음직한 일이 아닌가?
그런 란트의 밑에서 나고 자랐기에 그리젤다를 포함한 아그리체의 아이들은 가족애를 몰랐다.
특히 형제들 간의 우애란 동복 형제 사이에도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날 때부터 약육강식의 경쟁 구도에 내던져져 각자의 능력만으로 살아남아야 했으니 당연했다.
솔직한 말로 그들에게 가족이란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다.
아마 가족들 간에 살인을 금지하는 규칙이 없었다면 이 저택 안은 진작 살육의 현장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란트의 실각 소식에 그를 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형제들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에 그들은 아그리체의 절대자라고 생각했던 란트가 실각당했다는 소식에 크게 놀라고 당황했다.
하지만 곧 대부분의 형제들은 지금껏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이 새로운 판도에 무척이나 흥미로워했다.
개중에는 그들이 당했던 대로 란트를 처벌의 방에 넣자고 제의하는 형제들도 있었다.
다만 저택의 안주인들은 지금의 상황에 다소 혼란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리젤다는 머리가 제법 비상하게 돌아가는 축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곧 이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무로 돌아가리란 사실을 눈치챘다.
“오늘 밤 아그리체에 역사상 가장 성대한 파티가 열리겠구나.”
그리젤다는 즐겁게 웃으며 테라스를 벗어났다.
* * *
“뭐? 그게 정말이야?”
시에라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두근거리는 심장이 좀처럼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조금 전 하녀에게서 들은 말이 그 정도로 놀라웠던 탓이다.
당연했다. 그녀가 들은 것은 아그리체의 절대적인 권력자였던 란트가 데온에 의해 감금되었다는 소식이었으니까.
하지만 시에라의 생각에 이 일에는 분명 그녀의 딸이 연관되어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동안 불안하게 방 안을 서성이다가 이윽고 결심했다.
“지금 당장 사나에게 가 봐야겠어.”
시에라의 하녀인 베스가 곤혹스러운 기색으로 그녀를 말렸다.
“마님, 지금은 저택 내부가 상당히 혼잡합니다. 차라리 분위기가 좀 더 차분하게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 보시는 것이…….”
똑똑.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마침 그 가까이에 서 있던 시에라가 베스를 뿌리치고 직접 문을 열었다.
그녀는 뒤이어 시야에 비친 여자의 모습에 멈칫했다.
“너는…….”
문밖에 서 있는 여인이 시에라를 향해 공손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오랜만에 찾아뵙습니다, 마님.”
그녀는 록사나의 그림자나 마찬가지인 에밀리였다.
고개를 든 에밀리가 다시 입을 열어 시에라에게 말했다.
“록사나 아가씨의 명으로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