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65)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65화(65/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65화
* * *
“어디를 그렇게 급히 가는 중이니?”
아그리체의 하인 중 하나인 진은 뒷덜미를 잡아채는 음성에 흠칫 어깨를 떨었다.
뒤돌아보자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시야에 박혀 들어왔다.
“로, 록사나 아가씨.”
그는 절로 말을 더듬었다. 하지만 록사나의 앞에서 말을 더듬는 정도야 다른 사람들도 늘 하던 일이었으니 그리 특이할 것은 없었다.
진이 버벅거리자 록사나가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였다.
“사용인들을 소집한 장소는 별관이니 그쪽이 아닌데.”
“아, 그, 그게…… 저는 잠시 속이 안 좋아서…….”
“그래?”
“예, 예…….”
진의 얼굴은 희게 질려 있었다. 그러면서 식은땀을 흘리는 모양새를 보니 정말 몸이 안 좋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록사나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넌 쉬는 게 좋겠구나.”
상냥한 목소리가 귓가에 흘러들었다.
진은 록사나를 속인 것에 대한 안심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며 허리를 굽실거렸다.
또각.
하지만 록사나는 곧바로 발길을 돌리지 않고 어째서인지 그를 향해 다가왔다.
“잠에서 깨어나면 전부 다 끝나 있을 테니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되물을 새조차 없었다.
“그러니 편히 눈 감도록 하렴.”
녹아드는 것 같은 미소가 시야에 이지러졌다. 부드러운 손길이 그의 뺨을 매만지는 느낌이 마치 꿈결 같았다.
가까이에서 밀려드는 달큼한 향기가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심장을 조이게 만드는 아름다운 얼굴이 다가오는 것을 끝으로 진의 기억은 끊어졌다.
* * *
“이것 참 마지막까지 아버지답다고 해야 할지.”
록사나는 구겨진 서신을 손에 들고 시리게 웃었다.
다른 사람들과 따로 연락을 취할 시간 따위는 분명 없었을 텐데 이렇게 란트의 전언을 밖으로 빼돌리려는 사람이 있다니.
만일의 상황에 대한 최소한의 대비 정도는 늘 하고 있었다는 의미인가?
게다가 그 역할을 맡은 것은 평소에 란트가 아끼던 수하들이나 곁에 항시 두고 있던 사용인들이 아니라 그동안 저택에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눈에 띄지 않는 하인이었다.
란트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던 이들은 이미 제거한 뒤였으니, 이런 존재감 없는 사람을 이용한 것은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다고 할 만했다.
물론 들키지 않았을 때의 일이지만.
록사나의 싸늘한 시선이 발밑에 쓰러져 있는 남자의 위로 내리꽂혔다.
그는 록사나와 가까이에서 얼굴을 맞대자마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현실의 란트는 소설에서처럼 딸인 록사나에게 몸을 굴려 다른 남자들을 유혹하는 일을 시키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고 표현하는 쪽이 더 정확했다.
그 이유는 바로 록사나의 온몸이 치명적인 독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독나비의 주인이 되면서 꾸준히 맹독을 다량 섭취해 온 탓이었다.
그래서 독에 면역이 없는 사람은 지금처럼 가까이에서 숨결을 섞는 것만으로도 중독 증상을 보이며 정신을 잃을 수 있었다.
물론 훈련이 되면서 몸의 독기를 어느 정도 갈무리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은 내밀한 접촉이 없을 때의 일이었다.
소설 속에서 실비아의 키스가 사람을 치료했던 것과 반대로 록사나의 키스는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
“그나저나 또 베르티움이라.”
록사나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란트가 베르티움과 친교를 쌓고 싶어 하는 것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병력을 요구할 만한 관계였던가.
적어도 란트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두 가문 사이에는 남들이 모를 은밀한 끈이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최소한 이런 상황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정도로는, 란트가 베르티움에 무언가 준 것이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화합회에서 카시스의 일로 베르티움에 의심을 품지 않았던가.
아, 그렇지만 란트는 현재 록사나의 배반 사실을 알게 된 상태였으니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을 모조리 불신한다 해도 무리는 아니었다.
록사나는 잠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곧 아그리체와 베르티움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멈추었다.
이제 와서 그런 것은 아무런 쓸모도 없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차피 베르티움에서 이제 와 병력을 보낸다 해도 소용없는 짓이었다.
게다가 록사나는 이 모든 것이 이제 전부 다 귀찮게 느껴졌다.
“누나.”
그때, 복도의 끝에서 제레미가 나타났다.
그는 서신을 들고 있는 록사나의 앞으로 다가와 섰다.
제레미의 눈길이 흘깃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스쳤다.
“에밀리는 뭐 하고 누나 혼자 있어?”
“어머니께 보냈어.”
록사나의 대답에 제레미는 잠깐 말없이 그녀의 얼굴을 들여 다보았다.
그런 제레미의 눈빛은 약간 어둡게 침잠해 있었다.
“누나, 시키는 대로 했어.”
아까 심판의 방에서 아버지 란트를 상대했을 때와는 달리 지금의 제레미는 다소의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록사나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재수 없는 데온이 록사나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것이 불만이었지만 그녀의 명이 있었기에 제레미는 지난 3년간 단 한 번도 데온을 건드리지 않았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데온에게 마냥 질 것 같지 않았는데도 록사나가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근질거리는 손을 움켜쥐고 호승심을 꾹 억눌러 참았다.
철없는 마음에 제멋대로 행동했던 것은 3년 전 록사나의 장난감인 카시스 페델리안을 실수로 위험에 처하게 했을 때가 마지막이었다.
이제 제레미는 록사나에게 진정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 그녀의 옆에 당당히 자리 잡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의 소원이라면 무엇이든 그의 손으로 이루어 주고 싶었다.
그러니 록사나가 아그리체를 갖고 싶다고 하면 얼마든지 그것을 가져다 바칠 생각이었다.
만약 그녀가 아버지 란트를 비참하게 죽이고 싶다고 한다면 기꺼이 앞장설 수 있었다.
하지만 록사나가 란트를 몰아낸 뒤 제레미에게 시킨 일은 어딘가 이상했다.
이건 마치…….
애당초 아그리체를 갖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던 것처럼…….
“그래, 잘했어. 마지막으로 이 사람을 사용인들에게 데려다주고 올래?”
록사나는 제레미의 동요를 모르는 것처럼 여상한 태도로 말했다.
그래서 제레미도 목 끝까지 치솟은 의문과 불안을 삼켰다.
“응, 그럴게.”
어쨌거나 그는 록사나가 바라는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라도 돕고 싶었으니까.
제레미는 바닥에 쓰러진 남자를 들쳐 업고 사용인들을 소집한 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록사나는 제레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뒤 발길을 돌렸다.
그녀는 벽에 걸린 촛대의 불에 서신을 태웠다.
그리고 아직 불씨가 남은 종이를 반대쪽 창가에 걸린 커튼에 가져다 댔다.
화르륵!
일렁이는 불길이 두꺼운 천에 금세 옮겨 붙었다.
록사나는 표정 없는 얼굴로 서서히 영역을 넓혀 가는 불꽃을 바라보다가 멈추었던 몸을 돌렸다.
우우우웅!
때마침 침입자를 알리는 경보가 복도에 가득 울려 퍼졌다. 멀리서부터 시끄러운 소음이 밀어 닥쳤다.
하지만 그 사이로 이어지는 록사나의 걸음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명령을 받은 나비들이 저택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녀의 등 뒤로 아까보다 거대해진 불길이 지옥의 문처럼 입을 벌렸다.
늘 그래 왔듯이, 아그리체에서의 생존은 각자의 몫이었다.
* * *
새해의 첫 달, 그 끝자락에서 청의 페델리안이 흑의 아그리체의 성문을 부수고 쳐들어왔다.
무기와 갑주가 부딪쳐 내는 소리가 밤의 고요를 깨트리며 얼어붙은 겨울바람 사이로 내달렸다.
페델리안은 물 샐 틈 하나 없이 아그리체의 주위를 포위한 채 사방에서 맹공격을 퍼부었다.
예기치 못한 기습에 아그리체는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때마침 내분으로 혼란스럽던 참이라 위에서부터 제대로 된 지시를 받지 못한 영향이 컸다.
앞을 막아선 이를 단숨에 베어 넘긴 카시스가 명령했다.
“달아나는 자는 쫓지 마라! 란트 아그리체의 신병 확보를 최우선으로 한다!”
무기를 들지 않은 자와 도망가는 자는 공격하지 않았다. 목적은 아그리체 내에 있는 사람들의 몰살이 아니었다.
소란스러운 와중에 누군가 사육장의 문을 열었는지, 아그리체 내부는 어느새 마물과 인간이 뒤섞여 아수라장이 되었다.
카시스는 걸음 한 번 멈추지 않고 앞을 가로막는 것들을 모조리 쓸어 냈다.
고개를 들자 불길이 번져 나가는 건물이 시선 끝에 걸렸다. 카시스는 거기에 누가 있을지 알고 있었다.
이미 모든 준비를 끝마쳤음에도 곧바로 눈앞의 성을 침략해 공격하지 않은 것은 그가 보일 수 있는 최대의 인내이자 예우였다.
설령 아그리체가 투항한다 해도 카시스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저 불길 너머에 있는 사람이 원하는 것도 분명 동일하리라.
키아악!
앞에서 덮쳐들던 마물이 허공을 찢듯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 그은 검날에 두 동강 났다.
카시스는 마물의 피를 뒤집어 쓴 채 벌벌 떨고 있는 아그리체의 수하를 내려다보며 서늘히 입을 열었다.
“란트 아그리체는 어디에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