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72)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72화(72/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72화
어느새 카시스의 시선도 내게 닿아 있었다.
그는 매를 다시 날려 보낸 뒤 나를 향해 다가왔다.
“누워 있으라고 하지 않았나.”
싸늘한 겨울 공기 위에 그 색채와 닮은 낮은 음성이 덧씌워졌다. 하지만 생각보다 나를 향한 눈빛이나 목소리가 차갑지는 않았다.
그가 무어라 말을 이으려 했으나 가까워진 카시스를 올려다보며 내가 입을 연 것이 먼저였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여긴 또 어디고.”
딱히 내게 숨길 생각은 없는지, 카시스가 대답했다.
“지금 멈춰 선 곳의 지명은 프레데리카. 이대로 반나절 정도 더 이동하면 고원을 완전히 벗어나게 되겠지.”
지명을 듣고 나자 지금 이곳이 어디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한마디로 지금 이 일행이 향하는 곳은 페델리안이라는 말이었다.
물론 마차 안에 있을 때부터 예상하고 있던 일이기는 했지만 이렇게 직접 확인하고 나니 실소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카시스를 향해 서늘히 물었다.
“그럼 난 포로야, 전리품이야?”
불타오르던 아그리체.
폐허가 된 땅.
기억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그 광경만큼은 눈에 박힌 듯이 선명했다.
그렇게 만든 것이 이 사람이었고, 그렇게 되도록 아그리체의 문을 열었던 것이 바로 나였다.
그 사실만큼은 망각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것처럼 잊을 수 없었다.
이제 와서 거기에 딱히 불만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나는 화합회 날 어쩌면 카시스가 공식적인 자리에 나타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고, 그렇다면 그때가 페델리안에서 아그리체에 칼을 빼 드는 순간일 것이란 사실도 일찍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 역시 일부러 그때로 날을 잡은 것이었다.
페델리안의 손을 빌려 아그리체를 완전히 부숴 버리기 위해서.
카시스를 위시한 페델리안의 사람들이 이렇게 대거 이동 중인 것을 보면 예정된 수순으로 일이 진행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내 눈앞에 카시스가 있는 현실은 계획에 없었다.
아그리체의 마지막 날, 나는 혼자 떠날 생각이었다.
“무슨 목적으로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어?”
카시스는 한동안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내 얼굴을 주시하는 눈에는 얕은 물살 하나 생겨나지 않았다.
잠시 후 그의 얼굴에 실낱처럼 가느다란 어떤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워낙 찰나의 일이라 그것이 무엇인지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다음 순간 카시스가 팔을 들어 내게 손을 뻗었다.
서늘한 온기를 품은 손이 살갗에 닿는 순간 움찔 눈매를 떨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모르는 것처럼, 카시스의 손은 내 이마를 스쳐 뺨까지 훑고 내려갔다. 어루만지는 듯한 부드러운 손길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굳었다.
“다시 열이 오르는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나와 카시스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 속에서 오직 카시스만이 담담한 낯을 하고 있었다.
곧 그의 손이 내 얼굴에서 떼어졌다.
“이시도르, 오늘은 여기에 막사를 치겠다.”
“예, 준비하겠습니다.”
카시스의 말에 줄곧 그의 뒤에 서 있던 남자가 대답했다. 카시스의 시선이 다시 나를 향했다.
“열 때문에 추운 줄도 모르는 건가? 그 차림을 하고 밖으로 나오다니.”
꾸짖거나 한심해하는 듯한 어투로 말했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여전히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군.”
하지만 나를 보는 카시스의 얼굴에 비친 감정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나는 그와 시선을 마주한 순간 입을 굳게 다물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 카시스가 자신의 망토를 벗어 내 몸에 감쌌다.
아니, 감쌌다기보다는 바람 한 점 안으로 새어 들지 않도록 거의 동여매다시피 했다.
그런 뒤 그는 그대로 나를 안아 들었다.
그 일련의 행위가 얼마나 자연스러웠는지,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고사하고 나조차 그에게 한 마디 항의의 말도 꺼내지 못했을 정도였다.
카시스는 내가 사람이 아니라 짚 더미라도 되는 것처럼 가볍게 들어 올려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걸음으로 마차를 향해 걸었다.
황당함에 헛웃음이 나와서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카시스는 나를 마차에 데리고 들어와 다시 자리에 눕혔다.
그러고는 내가 아까 벗어 놓았던 담비 털 담요를 끌어와 몸 위에 덮어 주기까지 했다.
온몸을 파고드는 보드라운 온기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날 묶어 두는 게 좋지 않겠어?”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렇게 묻자 카시스의 시선이 힐끗 내 얼굴 위로 내려앉았다.
“그런 취미가 있는 줄 몰랐는데.”
그런 의미가 아닌 줄 알면서도 그는 태연히 반응했다.
“아쉽게도 나는 아니어서.”
“내가 달아나면 어쩔 건데.”
“다시 데려와야지.”
그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붙잡아 와야지’도 아니고 ‘데려와야지’라니.
도대체 그가 나를 어쩌고 싶은 것인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잡생각이 많으니 자꾸 열이 오르는 게 아닌가.”
나지막한 음성이 귓가를 간질인 데 이어 서늘한 손이 눈가를 덮었다.
열이 난다는 말이 사실인지 그의 손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다시금 귓가에 차분한 속삭임이 흘러들었다.
“걱정 말고 쉬어. 네가 신경 써야 할 일은 이제 아무것도 없으니까.”
신기하게도 그 목소리를 듣는 동안 어지럽던 마음이 서서히 잠잠하게 가라앉았다.
내 기억이 끊긴 이후에 아그리체가 어떻게 되었는지.
또 어머니나 제레미, 그리고 데온과 란트를 비롯해 아그리체의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카시스의 말을 들으니 지금은 그런 생각을 전부 다 뒤로 밀쳐 놔도 될 것 같았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도, 또 마차 밖에 있는 사람들도 전부 페델리안에서 온 이들이었다.
그러니 어찌 보면 지금 나는 적진의 한가운데에 있다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아그리체에 있을 때보다도 편안한 기분으로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아득해지는 의식 너머로 어쩐지 그것이 조금 우습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 *
똑똑.
“일어나셨습니까?”
한숨 자고 일어나 이 와중에도 정말 수면을 취한 나 자신에게 약간의 회의감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마차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딘가 중성적인 느낌을 풍기는 차분한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나는 직접 마차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올리브색 머리와 짙은 남색 눈을 가진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멈칫했고, 시야에 비친 딱딱한 얼굴은 아주 약간 이완되었다.
미묘한 변화이기는 했으나 내가 깨어나 있어서 다행으로 여기는 듯한 표정이었다.
머리가 단발이고 목소리도 낮은 편이기는 했지만 나를 찾아 온 사람은 분명 여자였다.
아그리체에서도 실력만 된다면 성별에 상관없이 차출해 부하로 삼는 주의였기 때문에 딱히 신기하거나 이상하지는 않았다.
내가 그녀를 보고 한순간 움직임을 멈춘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혹시 시장하시면 간단한 식사 거리를 준비해 드릴까요?”
“카시스는?”
“윈스턴 경과 잠시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아가씨…… 께서 깨어나셨는지 확인해 보고 혹시 필요한 것이 있으면 챙겨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윈스턴 경이 그 이시도르라는 사람인가.
뭐, 그건 둘째 치고.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이곳에서의 내 위치와 입장이 어떤지 새삼스럽게 궁금해졌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도 내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잠깐이지만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마찬가지로 나도 그들에게 어떤 말투를 써야 할지 조금 고민이 되었다.
“원하시면 이곳으로 요기할 만한 것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지금 밖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중이니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그렇게 해 줘.”
하지만 그리 오래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하대를 쓰기로 했다.
카시스에게도 경어를 쓰지 않는 내가 그의 부하에게 말을 높이는 것은 그림이 이상했다. 그렇다고 카시스에게 다시 존칭을 사용하지도 않을 거니까.
앞에 있는 사람도 내 말투가 어떻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여전히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얼굴로 고개를 한 번 숙여 보인 뒤 마차의 문을 닫았다.
“…….”
저 무표정한 얼굴을 보니 에밀리가 떠올랐다.
어머니에게 그녀를 보냈던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고, 그때 전했던 말이 내 마지막 명령이었다.
생각보다 식사 준비가 일찍 끝났는지 문이 금방 열렸다. 그래서 나는 다른 생각을 그리 오래 하지 않아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