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74)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74화(74/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74화
카시스가 조용히 나를 응시했다.
그의 눈빛은 ‘이제야 그것을 묻느냐’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이제 와서 그런 것을 묻느냐’고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간단히 결과만 말하자면.”
곧 카시스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그 말을 듣고 나는 작게 웃었다.
“그래, 죽었구나.”
불타오르던 아그리체의 성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모닥불 너머로 환영처럼 어른거렸다.
조금씩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마도 집무실에서 나와 헤어진 뒤 데온이 향한 곳은 란트가 있는 장소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누가 란트를 죽였는지, 또 그의 최후가 어떠했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런 것 따위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까부터 내 안에 팽배하던 실로 모순적인 마음이었다.
“네 어머니가 저택을 빠져나가는 모습을 이시도르가 확인했다고 하더군.”
여전히 나를 바라보며 카시스가 덧붙였다. 그 말에 나는 느리게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래.”
“다른 건?”
이번에는 카시스가 내게 물었다.
“궁금하지 않아?”
나는 침묵하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불꽃을 사이에 둔 채 우리는 한동안 말없이 시선을 마주했다.
짧디짧은, 혹은 길디긴 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굳게 닫혀 있던 카시스의 입술이 벌어졌다.
“전부, 네가 원하는 대로 되었어.”
그러고 나서 그는 가만히 나를 주시했다. 내 반응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그래서 나도 그가 원하는 대로 해 주었다.
“그래.”
그 말밖에는 더 할 말이 없었다.
타닥, 타닥…….
모닥불 속의 장작에 작은 불똥이 튀었다.
“별로 기뻐 보이지 않는군.”
“당신은 어떤데?”
내가 생각해도 상당히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 나왔다.
“복수해서 기뻐? 아그리체가 무너져서 속이 후련해?”
스산한 바람이 뒷덜미를 스쳐 지나갔다. 해가 지면서 기온이 내려갔는지 아까보다 뺨에 닿는 공기가 차가웠다.
덩달아 체온이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옷깃 한 번 추스르지 않았다.
그건 카시스도 마찬가지였다.
“글쎄.”
한 차례 눈을 길게 감았다 뜬 카시스가 아까보다 느린 어조로 말했다.
“그저 해야 할 일 하나를 끝마친 기분일 뿐, 기대 이상의 감흥은 없군.”
그의 말을 듣고 나니 나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비슷해.”
“네가 나와 비슷하다고?”
그런데 그 순간 카시스의 얼굴에 시린 미소가 피어났다.
모닥불의 불꽃을 그대로 집어 삼킨 것 같은 진한 황금색 눈동자가 나를 꿰뚫을 듯이 직시했다.
“지금 네 얼굴이 어떤지 너 스스로는 모르는 모양인데.”
돌연 카시스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몇 발짝도 채 옮기지 않았는데도 그와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달그락!
그의 발에 차인 그릇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하지만 카시스는 그런 것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이렇게 앉은 상태로 올려다보니 카시스는 한결 더 거대해 보였다.
어느새 바로 내 앞까지 다가와 모닥불을 등지고 있는 탓인지 그의 몸에 짙은 음영이 져서 존재감이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게 바싹 접근한 카시스가 몸을 낮추었다.
가까이에서 마주한 그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나를 응시하는 눈동자도 내가 처음 보는 종류의 한기를 머금고 있었다.
“너, 그날 죽을 생각이었나?”
시리게 떨어져 내리는 낮은 속삭임에 나는 가만히 눈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림자 진 어둑한 금색 눈동자가 나를 한입에 집어삼켜 버릴 것 같았다.
“무슨 소리야, 내가 왜?”
내 안에 이는 자그마한 파문을 숨기고 그에게 차분하게 되물었다. 나를 정면에서 응시하는 카시스의 눈이 내 속까지 샅샅이 파헤치는 느낌이었다.
“내가 널 여기로 데려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지?”
“떠났겠지.”
“어디로?”
“어디로든. 아그리체가 아닌 곳으로.”
“그날 내가 너를 찾았을 때, 네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
마주한 눈이 한층 더 낮게 가라앉았다.
“그때의 너는, 꼭 죽을 자리를 찾아 떠나려는 사람 같았어.”
그 순간 아득한 심연 속에 가라앉아 있던 기억이 물 위로 끌어 올려졌다.
“뭐야…….”
“누나, 혼자 어디 가고 있었던 거야?”
“왜 날 그렇게 쳐다봐? 꼭 이게 마지막인 것처럼…….”
“누나…… 나도 버릴 거야?”
그때 보았던 애달픈 얼굴이, 나를 뒤쫓던 애처로운 눈빛이 가시처럼 내 안에 박혀 속을 아리게 했다.
나는 환영처럼 생생히 펼쳐지는 그날의 광경을 지워 내려 눈을 감았다.
“지금 당신이 말한 것처럼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잠시 후 내 입에서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던 사실이 내뱉어졌다.
“당신이라면 알 텐데. 어차피 난 오래 못 살아.”
내 여생은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3년 전 카시스가 내게 했던 말대로였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어림잡아 길게 봐도 1년이 채 되지 못할 것이다.
사는 동안 몸을 그렇게 혹사시켰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힘겹게 애써 왔는가를 생각하면 허망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한 일이었다.
내가 뭘 하든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어차피 단명할 팔자였다니.
하지만 그런 마음도 처음뿐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딱히 아등바등 노력해 이 삶을 더 오래 잇고 싶다는 욕망이 들지 않았다.
아직 20년도 살지 않았지만 그리 큰 미련도 아쉬움도 남지 않는 것을 보면 나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더 많이, 그리고 빨리 내 삶을 소모했었나 보다.
이 정도면 충분히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어디에서 숨이 끊기든, 내 유해는 세상 어디에도 남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죽기 전에 독나비가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아낌없이 먹어 치울 테니까.
“그래서 그렇게 아무런 욕심도 미련도 없이 죽는 날만 기다리며 살겠다고?”
카시스의 눈이 시리게 빛났다. 침묵을 동반한 차가운 눈빛이 내 얼굴에 머물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카시스가 입술 끝을 끌어 올려 어스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어차피 버리려던 생이라면 내가 가져도 상관없겠지.”
그 후에 이어진 말이 무슨 의미인지 나는 곧바로 깨닫지 못했다.
“네 남은 시간을 나한테 줘.”
마주한 얼굴에서는 한 치의 주저함도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그의 말을 인식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차피 앞으로의 목적지가 어디라도 상관없다면 내 옆에 있어. 네가 죽을 때까지.”
그 순간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카시스는 내가 미처 무어라 반응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너는 지금 당장 죽어도 아쉬움이 없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으니까.”
“카시스…….”
“그러니 앞으로 남은 네 인생도, 이제부터의 시간도, 또 네 삶의 마지막 순간도 정말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면…….”
귓가에 나지막한 속삭임이 새어 드는 것과 동시에 뜨거운 열기가 내 손을 감쌌다.
곧 카시스가 붙잡아 올린 내 손등에 입술을 묻었다.
“내가 전부 고맙게 받아 가도록 하지.”
손 위에 내려앉은 낙인 같은 입맞춤과 지척에서 뒤얽힌 시선 모두가 델 것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머리 위에서 별 무리가 황홀하게 반짝이던 밤.
그렇게 나는 내 삶의 남은 시간을 그에게 빼앗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