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79)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79화(79/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79화
잠시 후 그는 조용히 커튼을 걷고 방을 나섰다.
“오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실비아가 눈앞에 나타났다.
“혹시 일어났어? 그럼 나도 들어가 봐도 돼?”
그녀는 아까 만났을 때 그랬던 것처럼 호기심 어린 눈을 빛내고 있었다.
실비아는 전부터 록사나에 대해 궁금해하며 그녀를 만나고 싶어 했다.
카시스가 3년 전 아그리체에서 만났던 록사나의 이야기를 언뜻 실비아에게 해 준 후부터 줄곧 그랬다.
“나중에. 아직 자고 있어.”
카시스의 말에 실비아는 실망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곧 그녀는 밝게 웃으며 씩씩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럼 기다리면서 꽃을 준비해야겠어. 환영의 의미로.”
카시스는 그런 실비아를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록사나도 페델리안에 있는 동안 실비아처럼 이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하아…….”
나는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깊은 숨을 입술 사이로 내뱉었다.
따뜻한 물에 잠긴 몸이 부드럽게 이완되는 느낌이었다. 쌓였던 피로가 단숨에 풀리는 것 같았다.
마차에서도 내내 자고 또 방금 전까지도 침대에서 자다 일어난 사람이 무슨 피로냐 하면 딱히 할 말이 없지만.
살면서 이렇게 많이 잔 건 처음이라 나도 좀 신기하긴 했다.
혹시 그동안 부족했던 수면 시간을 이제 채우는 게 아닐까?
나는 욕조에 팔을 얹고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목욕 시중을 들어 준다고 하는 사용인들을 거절하고 혼자 들어오길 잘한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입 밖으로 조소가 흘러나왔다.
내일 당장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던 주제에 이렇게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목욕을 하는 것이 어쩐지 우스웠다.
이곳의 욕실은 아까 내가 있던 방 못지않게 크고 정갈했다.
욕조에 담긴 물에서 올라오는 은은한 향기가 밀폐된 실내에 가득 퍼져 있었다.
꽃향기에 가까운 그 냄새를 맡는 동안 문득 아까 만났던 실비아의 얼굴이 떠올랐다.
* * *
“아! 깨어났군요.”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녀는 나를 향해 활짝 웃었다. 그 천진한 미소에 나는 멈칫했다.
실비아는 마치 춤을 추는 새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
“이 꽃 어때요?”
그런 후 대뜸 이런 이상한 질문을 건넸다.
별처럼 반짝이는 눈빛이 나를 향한 호의와 반가움을 담고 있었다.
“오빠가 좀 더 쉬게 두라고 해서 깨우지 않고 방문 앞에 꽃만 살짝 가져다 두려고 했거든요.”
나는 종달새처럼 지저귀는 실비아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눈을 뜨자마자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그렇죠?”
그녀의 얼굴에는 구김 한 점 없었다.
말씨나 눈빛이 어찌나 친근한지, 한순간 그녀와 내가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정원에 들러 가장 예쁜 꽃들을 고르려고 했는데, 막상 그걸 받을 사람을 생각하니 내가 아끼던 꽃들의 아름다움이 어쩐지 퇴색되어 보이는 거예요.”
실비아는 내 생각보다도 훨씬 밝고 귀여웠다.
그래서 나는 말없이 그런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까 영 고민이 되어서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
그러다 귓가에 발랄하게 울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서서히 잦아들었다.
마침내 실비아가 퍼뜩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입을 다물었다.
“아, 미안해요.”
나를 향한 그녀의 눈동자에 당혹감과 난처함이 피어올랐다.
“내 소개를 먼저 해야 했는데 너무 두서없이 혼자 떠들었네요.”
실비아는 혹시 내가 불쾌해할까 봐 걱정하는 기색이었지만 나는 조금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상태였다.
“음, 혹시 내가 누구인지 알아요?”
당연히 알고 있었다.
화합회 때 나는 이미 그녀의 얼굴을 봤으니까.
설령 그렇지 않았더라도 실비아의 은발과 금색 눈동자를 보면 카시스를 연상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위그드라실에 같이 참석했었는데…….”
“실비아.”
그녀의 이름을 입 밖에 낸 것은 거의 무의식에 가까웠다.
내 말을 듣고 눈앞에 있는 사람이 한순간 멈칫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곧 실비아는 아까보다 더욱 해사한 미소를 얼굴에 그려 넣었다.
* * *
“후…….”
나는 욕실의 천장을 보며 미묘한 기분에 젖었다.
아까 보았던 실비아의 티 한 점 없이 맑은 미소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원래 소설에서 이맘때의 실비아는 저렇게 때 묻지 않은 해맑음과 발랄함을 가진 소녀가 아니었다.
그 소설의 장르는 꿈도 희망도 없는 피폐물이었으니까.
그리고 실비아는 피폐물의 여주인공답게 소설이 진행될수록 순수함과 밝음을 잃어 갔다.
그러다 종국에는 아그리체에 의해 오빠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비통함에 피눈물을 흘리며 복수를 다짐하게 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렇게 활발한 실비아의 모습을 보게 되니 기분이 절로 묘해질 수밖에 없었다. 장성한 카시스를 볼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화합회 때는 제법 어른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보니 실비아도 아직은 어린 티가 났다.
그러고 보니 제레미와 동갑이었지.
“…….”
첨벙.
나는 물속으로 머리끝까지 담가 잠수했다.
보글보글, 수면 위로 올라가는 물거품과 함께 머릿속의 상념도 흩어졌다.
* * *
목욕을 완전히 끝내고 밖으로 나갔을 때에는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다.
뜨거운 물에 상당히 오래 들어가 있어서 그런지 온몸이 노곤했다.
조금 전에 옷시중에 대해 물어보기에 필요 없다고 사람을 모두 물렸는데 괜히 그랬나 싶었다.
나는 대충 가운을 몸에 걸치고 소파로 비척거리며 걸어갔다.
잠깐만 앉아 있으려고 했는데 그새 또 선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누군가 나를 침대로 옮기려 하고 있었다.
“……당신, 나한테 무슨 짓 한 거 아니야?”
잠겨 있는 목소리로 작게 읊조리자 카시스가 나를 안아 든 채로 시선을 내렸다.
“이렇게 눈만 뜨면 다시 자는 거, 정상이 아니잖아. 내가 도망 못 가게 하려고 일부러 다른 방법을 쓴 건 아니겠지?”
아니면 혹시 카시스가 내 기력을 회복시킨답시고 강제로 잠이 오게 만든 건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
그러자 카시스가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라는 듯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큼 몸이 휴식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거겠지.”
음영 진 그의 눈을 올려다보다가 나는 시선을 떨어뜨렸다.
“내려 줘. 오늘은 잘 만큼 잤으니까.”
카시스는 바로 나를 내려 주지 않고 다시 소파로 돌아가서 나를 그 위에 앉혔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실비아가 목욕을 끝내면 다시 보자고 다른 방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당신 동생은?”
“아까 돌려보냈어.”
역시 너무 늦어서 그냥 돌아갔구나. 그래도 아직까지 기다리는 건 아니라 다행이었다.
물론 약속을 한 것까지는 아니고 실비아가 일방적으로 저렇게 말하고 떠난 것뿐이었지만…….
그래도 그 웃는 얼굴을 보고 분명히 거절하지 못한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다음에 또 보게 되면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해야 하려나.
“배가 고플 테니 방으로 식사 준비를 시키겠어.”
카시스는 내 의사를 묻지 않고 움직였다.
어차피 내가 됐다고 할 걸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여기서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해 봤자 통하지 않을 걸 나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여기 페델리안 맞아?”
“짐작한 대로.”
결국 나는 카시스의 뜻대로 늦은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식욕이 돋지 않아서 손에 들고 있는 수저를 공연히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당신 여동생이 날 상당히 반가워하던데.”
“그런 것 같더군.”
미적지근하게 대답하는 카시스의 얼굴에서는 아무것도 읽어 낼 수 없었다.
다만 그의 눈빛은 약간 더 부드러워졌다.
실비아는 뜻밖에도 생각 이상으로 나를 환영해 주었다.
지금 테이블의 한쪽에는 아까 그녀가 내게 주고 간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나는 그것을 힐끔 쳐다보았다.
도대체 카시스가 나에 대해 뭐라고 말했는지 궁금했다.
여동생으로 하여금 이렇게 날 환대하게 만든 카시스의 수완이 남다르다고 감탄해야 할지.
내가 페델리안에 온 건 딱히 다른 이유나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카시스의 말대로 어차피 어디든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딱히 갈 곳도 없고, 또 가고 싶은 곳도 없으니 그 목적지가 페델리안이어도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일단은 카시스를 따라 지금 이렇게 페델리안에 와 있기는 했지만 이곳을 마지막 종착지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만약 내게 함께 가자는 말을 한 사람이 카시스가 아니었어도 나는 거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 상당히 조용한데. 인기척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사람이 거의 없나 봐?”
“손님용 별관이라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으니까.”
역시 본채가 아니었군.
나를 별관에 데려다 놓은 것은 아마도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째로 또다시 제어를 잃고 날뛸 위험성이 있는 내 몸의 독 기운 때문에.
두 번째로 아그리체 소속인 나를 페델리안에 들여놓으며 남들의 이목을 아예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물론 카시스는 여기까지 이동하는 길에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행동했지만 어쨌든 그건 밖에서의 일이었으니까.
막상 페델리안의 안으로 들어온 지금은 카시스도 처신에 조심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지 몰랐다.
그런 생각에 나는 카시스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설핏 눈매를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