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80)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80화(80/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80화
“손이 느려지고 있군. 아직 절반도 넘게 남았어. 조금 더 먹도록 해.”
“먹고 있어…….”
순간적으로 ‘내가 왜 이래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씨름할 기분이 아니라 그냥 묵묵히 손을 움직였다.
아까 실비아를 만나기도 했으니 아마 내가 깨어난 것을 페델리안의 다른 식구들도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럼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가문의 몰락에 일조하고 아버지의 숨통을 조이는 데 앞장선 나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리셸만큼은 내가 한 일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화합회 때도 내게 그렇게 묘한 시선을 보냈던 것일 테지.
그러니 그의 입장에서는 내가 달갑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내가 한 행동은 패륜과 다르지 않았고, 그런 것은 페델리안의 신념과 반하는 일일 테니까.
그래서 오히려 나를 꺼리지 않을까 싶었던 만큼 실비아의 반응은 의외였다.
하지만 그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사실 그런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카시스가 나를 데려온 것에 대하여 그들을 납득시키는 데 성공했건 실패했건 그것 역시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 때문에 카시스가 난처한 입장에 처한다 해도 나는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그가 선택한 일이니까.
그리고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한편으로 나는 카시스가 나 때문에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 같기도 했다.
역시 피는 어디로 가지 않는 모양이다. 나한테도 이런 질 나쁜 취향이 있었다니.
나는 여전히 카시스가 나를 이곳에 데려와서 어쩌고 싶은 건지 명확히 알 수가 없었다.
분명 그에게 들은 것은 내 생에 두 번 다시 경험해 볼 수 없을 것 같은 말이었지만…….
그걸 열띤 고백이라고 정의 내려야 할지는 알 수가 없었다.
혹시 나를 동정하나? 그래서 다 죽어 가는 동물을 길에서 주워 오는 심정으로 나를 데려온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낮의 그 집요한 키스를 생각하면 날 좋아하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까는 내가 먼저 시작했잖아.
나 정도의 여자가 그렇게 대놓고 먼저 유혹하는데, 그 자리에서 넘어오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게 불가능한 일 아닌가.
“그만 먹을래. 혼자 있고 싶으니까 나가 줘.”
뭐, 사실은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는 일이기는 했다.
애초에 내가 여기에 얼마나 오래 머물지 그것도 알 수 없었다.
또 카시스의 치유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모르겠지만 속에서부터 썩어 문드러져 죽어 가는 사람을 살려 내는 건 어차피 불가능한 일일 테니까.
그러니 카시스도 나한테 남은 시간을 자신에게 달라는 엄청난 말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던 거겠지.
그래도 그렇게 온전한 진심을 품고 나한테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카시스가 처음이었다.
그러니 내 남은 삶의 일부 정도는 그에게 주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시스의 말처럼 어차피 버리려던 시간인 것도 맞았으니까.
“사람들에게 미리 지시해 뒀으니 한동안 지내는 데 불편함은 없을 거야. 필요한 게 있으면 사용인을 부르고.”
카시스는 내가 먹은 걸 보더니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싶었는지 사람을 불러 자리를 치우게 했다.
“그 밖에 혹시 내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말해. 내 방은 바로 맞은편이니까.”
“뭐?”
이어진 그의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귀를 의심하며 반문하고 말았다.
“이 맞은편이 당신 방이라고?”
“그래. 한동안 나도 별관에 머물 거야.”
“왜?”
내 물음에 카시스가 나를 응시했다.
“내가 없는 사이에 네가 잘못되면 곤란하니까.”
카시스는 눈빛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히 말했다.
나는 설마 하는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
“혹시 해서 묻는 건데 이 별채에 머물고 있는 다른 사람은?”
“없어.”
이번에도 카시스는 무덤덤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조로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앞으로 이 별관을 카시스와 내가 단둘이 쓸 것이라는 의미가 맞았다.
아무래도 아까 했던 생각을 정정해야 할 것 같았다.
이 사람, 다른 사람의 이목 같은 건 정말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나 보다.
* * *
아그리체의 소식은 다른 세 가문들에게도 발 빠르게 전해졌다.
“그래? 별일이로군.”
류자크 가스토르는 그저 그렇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한 번 반응한 것으로 이 일에서 관심을 끊어 버렸다.
그 태도가 어찌나 뜨뜻미지근한지, 류자크에게 소식을 전한 심복이 오히려 당황할 정도였다.
“어차피 나야 수장도 아니지 않나. 어머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하지만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어차피 가문의 모든 일을 결정하는 것은 수장의 역할이었으니 류자크가 왈가왈부할 사항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원래도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란트 아그리체라면 작년쯤 다섯 가문의 모임에 다녀온 어머니가 ‘만약 세상에 귀신이란 것이 있다면 원한을 산 영혼들에게 족히 백 번은 더 죽을 인간’이라고 싸늘히 평가하는 것을 우연히 들은 기억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정말 죽다니. 역시 명줄이 긴 사람은 아니었군.
류자크는 별다른 감흥 없이 그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그 소식을 듣는 순간, 화합회 때 만난 적이 있는 록사나 아그리체와 그녀의 시건방진 남동생이 잠깐 머릿속에 떠올랐다.
류자크는 심복에게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려다가 그냥 그만두었다.
“이번 눈사태 피해 규모는 어떻지?”
“새로운 집계에 의하면…….”
그는 상념을 떨쳐 버린 뒤 심복의 설명을 들으며 걸음을 옮겼다.
* * *
“뭐? 아그리체가 풍비박산 났다고?”
노엘 베르티움은 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떨어뜨렸다.
그 위에 먹음직스럽게 올려져 있던 생크림 묻은 딸기도 무릎 위에 떨어졌다.
옷에 하얀 크림이 묻어 더러워졌지만 노엘은 이미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는 눈치였다.
졸음을 못 이겨 반쯤 감겨 있던 눈도 어느덧 또렷해져 있었다.
“그, 그럼 루나는?”
“루나라니요?”
“내 여신님 말이야!”
그는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두 눈을 흔들며 외쳤다.
노엘은 다른 건 전부 다 어찌 되든 상관없고 ‘루나’만 멀쩡하면 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 이 중차대한 소식을 듣고 정말 물어볼 게 이런 것밖에 없나?
노엘에게 아그리체의 일을 전달한 단테가 설마 하며 반문했다.
“설마 록사나 아그리체 양 말씀이십니까?”
“그래, 내 루나 말이야!”
단테는 기가 막혀졌다.
도대체 언제부터 록사나 아그리체의 소유권이 그에게 있었다고 저렇게 당당히 소리치는 것일까?
게다가 루나라니, 이번에는 달의 여신의 이름인가.
물론 록사나에게 어울리기는 했지만 데리고 있는 인형에게 이름을 붙여 주는 것도 아니고, 멀쩡한 사람의 이름을 이렇게 자기 멋대로 개명시키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었다.
“언제부터 아그리체 양이 노엘 님의 루나였습니까?”
“처음 봤을 때부터! 난 한눈에 운명을 느꼈어!”
“화합회 때 이미 시원하게 거절당해 놓고 무슨.”
“거절당하긴 누가! 꽃도 받아 줬잖아!”
“나 참. 꽃을 받은 거지 마음을 받은 게 아니잖아요.”
아이고, 또 시작이구나.
단테는 노엘의 억지가 시작된 것을 깨닫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래서 연애 한 번 못 해 본 방구석 폐인이란.
화합회의 마지막 연회 날, 노엘은 아름다운 록사나 아그리체를 보고 첫눈에 반해 버렸다.
단지 그뿐이면 그래도 괜찮았다.
하지만 노엘은 연회장에서 볼썽사납게 코피를 쏟은 데 이어, 그녀에게 선물하겠다고 위그드라실의 온실에 고이 피어난 꽃을 무작정 뜯어 오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그런 주제에 차마 그 꽃을 제 손으로 직접 전해 주는 건 쑥스러워서 못 하겠다며 단테를 붙잡고 어찌나 징징거렸는지 모른다.
그래서 단테가 체질에도 안 맞는 사랑의 수호천사 역할을 대신 하게 된 것이다.
가까이에서 본 록사나 아그리체는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오죽하면 그녀와 가까이에서 눈이 마주쳤을 때 미추의 기준이 흐린 단테조차 일순간 당황해 말을 더듬고 말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녀는 단테가 건넨 꽃에도, 그 꽃을 건넨 주인에게도 관심이 전혀 없어 보였다.
심지어 그녀는 다른 급한 일이 있는지, 단테가 하려는 말도 채 듣지 않고 자리를 벗어났다.
그 후 아그리체의 사람들이 먼저 위그드라실을 떠났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노엘이 또 어찌나 그를 달달 볶았는지 모른다.
그때의 생각이 나서 단테는 일부러 노엘을 약 올리는 말을 꺼냈다.
“뭐, 노엘 님의 주장대로 그때는 아니었다고 쳐도 이번에는 정말 끝이네요. 괜찮아요, 다 그런 거죠.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설이 괜히 있는 게 아니잖아요?”
“아, 아니야! 내 루나는! 우린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
노엘은 정말 큰 충격을 받았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단테를 노려보았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일을 귀찮아 하는 주제에 한번 마음을 준 것에는 무서울 정도로 집착했다.
단테는 이번 건 꽤 오래가겠다고 생각하며 혀를 찼다.
“단테, 네가 또 노엘을 울린 거야?”
바로 그때, 봄바람 같은 미성의 목소리가 귀에 울렸다.
노엘과 단테의 앞에 나타난 것은 금발 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소년이었다.
“닉스!”
밤의 여신의 이름을 따서 붙인 그는 노엘이 가장 아끼는 인형이었다.
닉스는 그 이름만큼이나 빛나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루나가 사라졌어. 다른 놈들이 가로채기 전에 내가 가지려고 했는데!”
“루나라면 얼마 전에 네가 말했던 그 여자?”
“응, 너만큼 아름다운 내 여신님.”
단테는 오늘도 사이가 좋아 보이는 두 사람을 구겨진 얼굴을 하고 바라보았다.
그는 닉스를 다소 혐오하는 눈초리로 응시하고 있었다.
“흐응, 노엘이 한눈에 반한 여자라니 궁금하네. 내가 찾아 줄까?”
“정말? 찾을 수 있어?”
“그럼. 난 네가 만든 가장 완벽한 인형이잖아.”
닉스는 노엘을 보며 빙긋이 웃었다.
일순간 그의 눈에 어딘가 비틀린 섬뜩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노엘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마냥 순진하게 기뻐했다.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닉스의 본성을 알고 있는 단테만이 그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