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82)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82화(82/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82화
“클라네타리아하고 비슷하게 생겼는데 이게 더 예쁘네.”
“클라네타리아? 그런 꽃이 있군요. 처음 들어 봐요.”
록사나가 화원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자 실비아의 얼굴도 한결 밝아졌다.
“아그리체의 정원에는 사시사철 피어 있었어.”
“그것도 이렇게 향기가 좋아요?”
실비아의 물음에 록사나는 무언가를 되새겨 떠올리는 듯했다.
곧 차분한 음성이 그녀에게서 흘러나왔다.
“그렇기는 하지. 면역 없는 사람이 가까이에서 5분 이상 맡으면 죽지만.”
“네?”
“독성이 강한 마약류의 꽃이거든.”
“네……?”
“그래도 향은 좋아. 하필 정원이 내 방 창문 앞에 있어서 매일 맡다 보니 질려 버리긴 했지만.”
실비아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녀는 록사나의 말에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깜빡였다. 지금 그녀가 한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조차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록사나는 뒤늦게 그런 실비아의 반응을 깨달았다.
그러다 시선이 마주쳤을 때, 록사나가 눈을 접어 생긋 웃었다.
어느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지 못하고 좌우로 기우뚱거리던 실비아의 마음속의 저울추가 그 순간 한쪽으로 떨어졌다.
“아, 뭐야. 농담이었어요?”
실비아도 록사나를 따라 웃었다. 하지만 카시스는 그것이 농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잠깐 실비아와 시선을 맞대고 웃던 록사나가 곧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도 모르게 긴장이 풀어져 괜한 말을 했다 싶었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농담인 것으로 결론지어져 다행이었다.
록사나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평화로운 한때였다.
카시스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았다.
록사나는 이런 식으로 가끔 먼 곳을 응시할 때가 있었다.
카시스는 록사나가 그럴 때마다 그녀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리고 싶어졌다.
“그만 들어가자.”
마침내 카시스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록사나가 그를 돌아보았다.
숨이 막히도록 농도 짙은 황금빛 공기가 온몸을 감싸 안았다.
달콤한 향기의 한가운데에서,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보다 황홀한 아름다움이 시야에 박혀 들어왔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카시스는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을 차라리 어딘가에 가두어 두고 싶다고,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것은 스스로조차 깜짝 놀랄 정도로 어둡고 강렬한 욕망이었다.
* * *
창밖에서 황혼이 저물었다.
록사나는 병을 기울여 그 안에 든 액체를 유리잔에 따랐다.
짙은 황금색 술이 작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비어 있던 잔에 채워져 갔다.
그 빛깔이 마치 황혼 직전의 대기를 그대로 녹인 것 같았다. 코끝을 스치는 향기 역시 꿀처럼 달콤했다.
록사나는 창밖의 경관을 감상하며 술잔을 비웠다.
달칵.
조만간 문이 열리고 록사나가 기다리던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와.”
귓가를 파고든 그녀의 여상한 인사말에 카시스가 멈칫했다.
당연했다. 여긴 그의 방이었으니까.
카시스는 록사나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언제든 찾아와도 된다고 했던 것은 그였으므로 언질 없이 방문한 그녀를 불청객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록사나의 앞에 놓인 것은 그다지 반갑지 않았다.
“누가 술을 가져다줬지?”
“누구겠어. 일하는 사람들이지.”
카시스는 록사나의 몸에 조금이라도 무리가 갈 만한 것은 되도록 멀리하게 하고 있었다.
록사나에게는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하라고 했지만 그것은 그녀에게 해롭지 않다고 판단된 한도 내에서였다.
물론 술이 금지 항목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용인들에게 어느 정도 언질해 둔 내용이 있는데 이것을 직접 그녀에게 가져다주었다니.
“내가 원하는데 이루지 못하는 일이 있을 것 같아?”
록사나는 카시스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눈꼬리를 가늘게 휘어 웃었다.
그것을 보며 카시스는 자신의 생각이 안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연 그녀의 말대로였다.
록사나가 청하는 것을 끝까지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없을 것이었다.
“말했잖아, 당신이 이상한 거라고.”
카시스는 록사나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된 이상 굳이 그녀가 술을 마시는 걸 막을 생각은 없었다.
보아하니 그래도 사용인이 가져다준 술은 도수가 낮은 것이었다.
록사나는 조금 전 다시 채운 두 번째 잔을 카시스의 앞으로 밀었다.
“한 잔 줄게. 마셔. 자릿세야.”
“자릿세?”
카시스의 얼굴에 오묘한 웃음이 작게 걸렸다.
록사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창 밖을 내다보았다.
이곳에서는 별관 뒤쪽에 있는 후원이 시야에 훤히 들어왔다.
“여기서 보는 경치도 나쁘지 않네.”
정원보다는 화려함이 덜했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그윽한 운치가 있었다.
“마음에 들면 방을 바꿔 줄 수 있어.”
카시스가 록사나를 따라 창밖으로 눈길을 돌렸다.
록사나는 그런 카시스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 지금처럼 보고 싶을 때마다 종종 오면 되니까.”
그 말의 끝에 시선이 마주쳤다.
하지만 잠시 후 카시스의 눈길이 도려내지듯이 록사나의 얼굴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의 손이 조금 전에 록사나가 내민 술잔에 닿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대화 없이 술을 나누어 마셨다.
그러다 얼마간의 시간이 더 지나서 다시 시선이 얽혔다.
유리창 너머에서 번지는 석양이 테이블의 한가운데에 놓인 작은 황금색 호반 위에 알알이 맺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또 맨발이군.”
나지막한 음성이 방 안을 그득히 적신 주황색 공기 속을 가로질렀다.
“방에 있는 신이 불편하면 다른 걸 준비시키지.”
카시스의 말에 록사나는 카펫 위에 벗어 두고 온 것을 떠올렸다.
“아니, 좋은 신이던데. 따뜻하고 보드랍고, 또 편하고 예쁘고.”
그래서 그녀가 가져도 될 것 같지 않았다. 페델리안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처럼.
카시스는 잠깐 록사나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마주한 시선이 어쩐지 그녀의 속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이내 카시스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록사나는 다가오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녀를 안아 들 때까지.
그새 익숙해진 체취가 후각을 자극했다.
록사나는 딱히 거부하지 않고 얌전히 카시스의 품에 안겼다.
그의 손길은 꼭 도자기에 유약을 덧바르는 것 같았다.
마치 조금만 방심했다가는 언제든 깨져 버릴 수 있는 유리 조각을 다루는 듯했다.
카시스가 이렇게 안을 때마다 록사나는 자신이 풀잎 위에 맺힌 작은 이슬방울, 혹은 비누 거품으로 만든 인형이 된 것 같았다.
혹시 다른 누가 이런 카시스를 보게 되면, 그녀가 설탕을 녹여 빚은 공예 장식품이라고 착각할지도 몰랐다.
카시스는 그 상태로 걸음을 옮겨 록사나를 그녀의 방으로 옮겼다.
복도만 가로지르면 바로 문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 긴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았다.
카시스가 록사나를 내려놓은 곳은 소파 위였다.
록사나는 아까 정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돌아온 직후 이미 목욕을 끝마치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였다.
카시스에게 안겨 있다가 소파에 내려서는 동안 허술히 여미고 있던 잠옷의 앞섶이 벌어졌다.
그 사이로 탐스러운 가슴의 굴곡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하지만 록사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지도 않고 그저 카시스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느린 시선이 한 차례 그녀의 모습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카시스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다시 발길을 돌렸다.
잠시 후 돌아온 카시스의 손에는 카펫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그녀의 신이 들려 있었다.
카시스는 록사나의 앞에서 몸을 숙였다.
필연적으로 그녀에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 같은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조금의 굴욕도 아니라는 듯이 그의 행동에는 한 점의 주저함도 거리낌도 없었다.
록사나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그런 카시스를 내려다보았다.
곧이어 카시스가 록사나의 발을 감싸듯이 붙잡았다. 내내 노출되어 있던 피부에 한기가 돌고 있었다.
카시스는 록사나의 차가운 발에 손수 신을 신겨 주었다.
여전히 조심스럽고 섬세한 손길이었다.
그러나 카시스의 손은 처음의 목적을 달성하고도 록사나에게서 곧바로 떨어지지 않았다.
발의 뒤꿈치 쪽을 감싸고 있던 손이 스르륵 미끄러져 올라갔다.
찬 기운을 머금은 가느다란 발목에 온기가 밀착되었다.
록사나는 그녀의 발목을 붙든 손이 화인처럼 뜨겁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지금 그녀의 체온이 유독 낮아서 그렇게 느끼는 건지도 몰랐다.
마치 간지럽히는 것 같은 느린 손길이 피부 위를 뭉근히 훑었다.
록사나는 소파 위에 얹은 손을 움찔 떨었다.
카시스와 맞닿은 곳의 감각이 덩달아 예민하게 곤두서는 것 같았다.
카시스의 금색 눈은 빛 한 점 들지 않는 밤의 숲처럼 어둡게 침잠해 있었다.
그 안에 어린 갈증이 뜨거운 손을 타고 록사나의 발목에 진득하게 달라붙는 것 같았다.
일순간, 발목을 움켜쥔 그의 손이 족쇄처럼 느껴졌다.
“……식전주치고는 과했던 것 같군.”
하지만 잠시 후, 카시스는 더 이상 그 무엇도 하지 않고 록사나에게서 손을 뗐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면 부르러 오지. 그때까지 쉬고 있어.”
뒤이어 귓가에 닿은 음성은 카시스의 방에 있을 때보다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녀를 내려다보는 눈빛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카시스는 그 모든 것을 갈무리하고 뒤돌아섰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록사나는 가만히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