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87)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87화(87/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87화
기분 탓일까?
어쩐지 카시스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아까부터 먹으라는 밥은 안 먹고 대화도 하는 둥 하는 둥 하면서 카시스만 계속 훔쳐보는 게…….
아무리 봐도 저건 분명 흑심이 있는 거였다.
현실의 판도라는 류자크를 좋아하는 게 아닌 건가?
이미 소설과 상당히 많은 부분이 변한 후였으니 그렇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그런데 왜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나는 기분이 다소 언짢아졌다.
물론 내가 그럴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독나비와 꽤 장시간 시각을 공유했더니 머리가 아파져서 그런 모양이었다.
나는 커다란 식탁에 둘러앉은 네 사람을 잠깐 지켜보다가 곧 독나비와의 연결을 끊어 냈다.
그 후 나는 테라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카시스의 방이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어서 그가 올 때까지 그냥 여기에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밤의 후원은 그 나름대로의 멋이 있었다.
나는 테라스의 난간에 상체를 기댄 채로 바깥의 풍경을 시야에 담았다.
그러다 문득 얼마 전에 들었던 나지막한 속삭임이 후원의 은은한 향기에 떠밀려 귓가로 흘러 들었다.
“그날, 네가 아그리체를 나왔을 때…….”
“손을 내민 사람이 내가 아니었어도 넌 상관없었겠지.”
“하지만 난 네가 아니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거야.”
나는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역시 괜히 따라왔나.
그 당시에는 별로 고려하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 와서 뒤늦게 내 마음을 서서히 짓눌렀다.
카시스와 함께 지내는 동안 내 안에 하나둘씩 어떤 발자국이 새겨지는 것 같았다.
그날, 그냥 카시스를 따라오지 말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난간에 팔을 올리고 그 위에 얼굴을 기댔다.
등허리에 늘어뜨려져 있던 머리카락이 어깨 밑으로 스르륵 미끄러져 내렸다.
아마 실비아가 묶어 주었던 붉은 리본이 그새 느슨해져 있었던 모양이다.
사락.
별안간 내 머리카락에서 풀린 리본이 뒤이어 불어온 바람에 떠밀려 날아갔다.
아. 저거 실비아가 준 거라 잃어버리면 안 될 것 같은데.
내 머리를 땋아서 리본을 묶어 주며 행복해하던 실비아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그런 생각에 난간에 기대고 있던 몸을 막 일으켰을 때, 밑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갑자기 어디서 끈이 날아온…….”
붉은 리본을 들고 나무 그림자 속에서 나타난 것은 연청색 머리카락을 가진 아름다운 남자였다.
그는 분명 오르카 휘페리온이었다.
어째서 오르카가 여기에 있는지 의문을 품을 새도 없이 시선이 마주쳤다.
다음 순간, 마주한 눈동자가 크게 벌어졌다.
그는 숨 쉬는 것조차 잊은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커다랗게 뜨여 얼어붙은 은회 안에는 몹시도 큰 당혹감이 어려 있었다.
“……마물?”
그러다 오르카에게서 자그마하게 새어 나온 속삭임에 나는 슬쩍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마물인가……? 새로운 진화종인 인간형 마물?”
오르카는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여전히 저런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아니야, 그런 게 있다고는 들어 본 적 없는…….”
“오르카 휘페리온.”
그 순간, 미성의 목소리 위로 얼음 덩어리 같은 차가운 목소리가 묵직하게 떨어져 내렸다.
이번에 나타난 것은 카시스였다. 그의 얼굴에는 한기가 폴폴 날리고 있었다.
“허락 없이 페델리안 안을 들쑤시고 다니다니, 경고를 알아듣지 못했군.”
상황을 보아 하니 만찬장 안에 있던 오르카가 재주 좋게 몰래 자리를 빠져나온 듯했다.
카시스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뒤를 따라온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오르카는 여전히 얼이 빠진 얼굴로 카시스를 쳐다볼 뿐이었다.
“아니……. 청의 귀공자, 혹시 지금 당신 눈에도 저게 보이나요? 저건 아무리 봐도 인간이 아닌 것 같은데…….”
그의 말을 듣고 카시스의 시선이 위로 들렸다.
그는 잠깐 나와 눈을 맞대다가 다시금 오르카에게 시선을 떨어뜨렸다.
“뭐야, 진짜 내 눈에만 보이는 거야? 그럼 역시 저건 영체?”
“역시 어제까지 머물던 곳이 더 마음에 든 모양이군. 그럼 원하는 대로 해 주지.”
카시스의 무반응한 모습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오르카가 기함해 입을 벌렸다.
“데려가.”
카시스는 그런 그를 무시하고 뒤를 따라온 수하들에게 서늘히 명령했다.
그들은 카시스의 명을 따라 오르카의 양쪽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오르카는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그는 넋이 빠진 상태로 카시스의 수하들에게 붙들려 갔다.
“왜 밖에 나와 있어.”
나를 대하는 카시스의 태도는 오르카를 마주할 때와 확연히 달랐다.
내게 건네진 목소리에 찬기가 꺾여 있는 것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아직 그의 뒤에 남아 있던 수하들이 조용히 물러났다.
나는 카시스의 눈에 시린 유리 조각의 잔해 같은 것이 여전히 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금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쩐지 알 것 같았다.
나를 향한 감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원인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니 달래 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말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
그러자 카시스가 입을 다물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아예 온 거야?”
“……그래.”
“약속했던 대로 정말 일찍 왔네.”
나는 테라스의 난간에서 손을 떼며 덧붙였다.
“그럼 올라와. 당신 방에 있을 테니까.”
카시스는 대답 없이 나를 응시하다가 마침내 자리에서 발길을 뗐다.
나도 그제야 테라스를 떠나 방으로 들어섰다.
그 후 우리는 카시스의 방에서 함께 늦은 저녁 식사 시간을 가졌다.
카시스는 이미 만찬장에서 대충 배를 채운 뒤라 제대로 식사를 하지 않고 주로 내가 먹는 모습을 앞에서 지켜보았다.
조금 전에 본 오르카에 대해서는 카시스도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 자리를 비우고 있던 페델리안의 주인과 안주인이 돌아왔다.
* * *
카시스의 말대로였다.
페델리안의 주인 내외가 저택을 비운 것은 사실이었다.
그들은 약 열흘 동안 이어졌던 공백에 점을 찍고 페델리안에 돌아왔다.
나는 리셸의 부름을 받고 처음으로 페델리안의 본관에 발을 들였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생각이 무색하게도 그는 저택에 돌아오자 마자 나를 만나고자 했다.
그리하여 내가 안내받은 곳은 리셸의 집무실로 보이는 곳이었다.
이런 내밀한 공간에 나를 들인 것이 의외였다.
어쩌면 이제부터 나눌 이야기의 중차대함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똑똑.
“록사나 아그리체 양입니다.”
나를 안내한 사람이 문 앞에 서서 노크를 한 뒤 내 방문을 알렸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쉴 만큼의 시간이 지난 뒤 안 쪽에서 응답이 들려왔다.
“들어오게.”
* * *
잠시 후, 나는 리셸과 마주 보고 앉았다.
리셸의 집무실은 매우 정갈했다.
그와 내 사이에 있는 테이블에는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이 놓여 있었다.
리셸은 바로 서두를 던지지 않고 내게 차를 마시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권유대로 찻잔을 들어 올렸다.
어쩌면 찬물 한 잔 내주지 않고 1분 1초도 아깝다는 양 곧바로 본론에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고결한 성품을 가진 페델리안의 수장답게 리셸은 내게 충분한 예의를 갖춰 주고 있었다.
차를 거의 다 비워 가는 동안 리셸과 나 사이에 다른 대화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불편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생각보다 리셸이 위압적이지 않은 분위기를 띄고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애초에 내가 그에게 기대하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긴 말을 나눌 필요는 없을 것 같군.”
그래서 마침내 입을 연 리셸이 그렇게 운을 띄웠을 때, 나는 차분한 마음으로 앞으로 이어질 그의 말을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어서 내 귀를 파고든 말은 의외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원하는 만큼 편안히 머물다 가도록 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