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89)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89화(89/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89화
시야가 금세 높아졌다. 카시스가 별관 내에서 그러던 것처럼 나를 안아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못 걷겠다는 의미로 한 말이 아니거든?”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지?
황망함을 느끼며 항의하자 카시스가 힐끔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 의사 표현을 불분명하게 해서 오해했나 보군.”
아니, 도대체 뭐가 불분명했다는 거야…….
“이제 알았으면 내려 주지?”
“아까 보니 네 보폭으로는 별관과 본관 사이로 이동하는 시간이 5분 정도 더 지체되더군. 그냥 이대로 가는 게 빨라.”
무감한 음성 끝에 카시스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정말 단순히 효율, 비효율을 따지는 것 같은 단조로운 억양이어서 뭐라고 반박하기에도 마땅찮았다.
이번에도 내가 뭐라고 더 말해 봤자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하아.”
그래, 포기하면 편하지…….
결국 나는 한숨을 내쉬며 카시스의 어깨에 턱을 올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금 전 등지고 온 오르카와 판도라의 모습이 정면에서 보였다.
그들은 우리를 보고 아까보다 입을 더 크게 벌리고 있었다. 동그랗게 뜬 눈이 당장이라도 밑으로 굴러떨어질 듯했다.
막상 그런 그들의 얼굴을 보자 나는 또 잠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당신, 진짜로 다른 사람들 눈은 전혀 신경 안 쓰는구나…….”
잠시 후 어쩐지 나도 체념 섞인 심정이 되어 중얼거렸다.
“그저 이런 상황에서 그런 부분을 우선순위로 두고 있지 않은 것뿐이야.”
카시스가 덤덤히 대꾸했다.
나는 그의 어깨에 고개를 얹고 청명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기분 탓인지, 아까 이 길을 거꾸로 갈 때보다 지금이 날씨가 더 맑고 화창해진 것 같았다.
그러다 다시 시선을 내렸을 때, 페델리안 내부를 오가던 사람들이 저마다 크게 당황하거나 돌덩이처럼 굳은 채로 이쪽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때마침 시야에 나타난 실비아도 카시스와 나를 보고 흠칫했다.
그녀는 곧 흐뭇하게 웃으며 다시 살금살금 뒷걸음질 쳐 사라졌다.
아…….
나는 차마 형용하지 못할 기분을 느끼며 카시스의 어깨에 얼굴을 가리듯이 파묻었다.
* * *
잠깐 바람을 쐬러 테라스에 나갔다가 거기에서 의외의 사람을 발견했다.
감람색의 동그란 정수리가 꼭 보호색처럼 주위의 풀과 나뭇잎들하고 잘 어우러져 있었다.
내 인기척을 느꼈는지, 테라스 밑에 있던 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올린이 깍듯한 자세로 내게 인사했다.
아닌 척해도 이렇게 나와 마주쳐 내심 동요하기는 했는지, 그녀의 행동에서 당혹감이 느껴졌다.
“그래, 안녕.”
나도 일단 올린에게 마주 인사해 준 뒤 물었다.
“왜 여기에 있어?”
그녀는 아그리체에서 페델리안으로 이동할 때 보고 그 후로는 만난 적이 없는 카시스의 수하였다.
리셸을 만날 때 잠깐 본관에 갔던 것을 제외하고 나는 줄곧 별관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그러니 서로 얼굴을 볼 일이 없었던 게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지금 그녀는 내가 머무는 방의 테라스 밑에 보초를 보듯이 서 있었다.
“별관의 경비를 강화하라는 명이 있었습니다.”
아, 오르카 때문인가.
그 말을 듣자 지난 일이 떠올라서 나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관 주변만 경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서 이제부터는 안쪽까지 3겹으로 보초를 서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이곳을 맡게 되었습니다.”
올린은 그렇게 설명하며 언뜻 표정을 흐렸다.
그녀는 어쩐지 면구함을 느끼는 듯했다. 오르카의 일 때문이었다.
오르카가 별관에 몰래 숨어 들어올 때도 그들은 카시스의 명으로 경비를 서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오르카를 놓쳐 안쪽까지 잠입하는 걸 허용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르카는 이래 봬도 소설의 남주인공이 아니겠는가?
일단 백의 마수사라는 위명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마물들 틈에서 죽지 않고 살아온 남자인 만큼 오르카의 신체 능력은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그의 민첩함과 기척을 숨기는 능력은 세 명의 남주인공들 가운데 가장 뛰어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오르카가 마음먹은 이상 다른 사람들이 그를 붙잡기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그때, 저 멀리서 자그마한 소음이 흘러들었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또 별관의 후원 쪽에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 듯했다.
혹시 또 오르카인가? 아까도 별관에 숨어들려고 하다가 걸렸다고 들었는데.
왜 저렇게까지 여기에 기어들어 오려고 하는지…….
그가 출몰하는 구역이 후원 쪽이라 더 찜찜했다.
그곳은 지난번에 오르카와 우연히 마주쳤던 테라스와 거리가 멀지 않았으니까.
계속 별관의 뒤쪽을 노리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지난번에 내가 있던 카시스의 방을 내 방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혹시 내가 독나비의 주인이라는 걸 눈치챘나? 그래서 저렇게 별관에 들어오려고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소음이 들려오는 곳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희가 지켜 드릴 테니 안심하십시오.”
그런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올린이 조금 전보다 힘이 실린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사명감마저 어려 있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믿음직스럽기도 했다.
아무래도 올린은 나를 오르카나 그 밖의 위험 요소로부터 몸 바쳐 지켜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녀 역시 이곳에 오는 내내 병든 닭처럼 골골거리던 내 모습을 보고 나를 연약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니면 카시스가 워낙에 나를 병자 취급 하다 보니 그것이 옮은 것일 수도 있었다.
음, 어느 쪽이든 어쩐지 기분이 좀 미묘해졌다.
나는 그녀에게 희미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말한 뒤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 * *
알고 보니 올린은 성이 아니라 이름이었다.
원래 그녀의 풀 네임은 올린 올리비아로, 성과 이름이 비슷했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올린 올린’이나 ‘올리 올리’ 따위로 이름을 줄여 불리며 놀림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럴 바에는 차라리 성을 떼고 올린이라 부르라고 한 것이 오늘까지 이어졌단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본인도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더 편하다고 했다.
이제부터 내 방의 테라스 밑에서 경비를 서게 된 올린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였다.
참고로 카시스는 수하들을 모두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른다고 한다.
별로 쓸모 있는 대화는 아니었지만 이런 것도 의외로 나쁘지는 않았다.
올린은 내가 말을 걸 때마다 흠칫하면서도 묻는 말에는 또 꼬박꼬박 대답을 잘 해 주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내가 그녀에게 자주 말을 거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저 가끔 테라스에 나가 바람을 쐴 때, 밑에 올린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무시하기가 좀 그래서 가볍게 인사나 나누곤 했을 뿐이다.
게다가 그녀와의 대화는 기분을 전환하기에 그럭저럭 괜찮았다.
리셸과 만나고 온 이후로 부쩍 나 혼자서 상념에 빠지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건 지금 말해 둬야 할 것 같군. 아그리체에 대한 소식이네.”
그날 들었던 말이 하루에도 몇 번씩 메아리처럼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카시스는 어느 쪽이든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해 주라 했으니 직접 선택하게. 듣고 싶은가?”
만약 그때 내가 다른 대답을 했더라면 차라리 지금보다는 마음이 가벼워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분명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더라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러니 이 번민은 틀림없는 내 몫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종종 테라스나 방에 있을 때마다 혼자 생각에 빠지곤 했다.
그러다 늦은 오후에, 나는 카시스의 방에 들어갔다.
그는 자리를 비워 별관에 없었다.
카시스는 요즘도 계속 내게 생기를 불어 넣어 주고 있었다.
그가 내게 하는 일을 그런 식으로 말고 또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아직 나는 몰랐다.
카시스가 입술을 맞대고 내 안에 그를 닮은 정결한 기운을 흘려보내 주면, 몸에서 서서히 온기가 돌고 머리가 맑아졌다.
어떤 면에서는 가슴에 눌어붙어 있던 오물이 정화되는 것 같기도 했다.
조금 전에도 카시스는 자리를 비우기 전에 내게 같은 일을 하고 갔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입술을 맞대기만 할 뿐, 여전히 그 이상의 일은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