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90)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90화(90/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90화
“아, 역시 좋네.”
나는 주인이 없는 카시스의 방에서 떡하니 그의 침대를 차지하고 누웠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인지, 내 방에 있는 침대보다 카시스의 방에 있는 것이 훨씬 더 푹신하고 좋은 느낌이었다.
이렇게 직접 누워 보니 역시 만족스러웠다.
나는 슬쩍 몸을 굴려 자세를 옆으로 했다.
카시스에게서 기운을 나누어 받고 나면 꼭 잠이 쏟아졌다.
그는 아닌 것처럼 굴었지만 역시 내 수면 시간이 대폭 늘어난 것은 카시스 때문이 맞는 것 같았다.
카시스의 몸에서 풍기던 은은한 향기가 그의 이불에서도 묻어 나왔다.
나는 거기에 코를 파묻었다.
왜인지 그의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전에 아그리체에 있을 때에도, 카시스를 떠올릴 때마다 긴장이 풀어지고 몸이 이완되는 것을 느끼곤 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건 좀 이상했다.
카시스와 나는 3년 전에 고작 한 달도 안 되는 시간만을 함께 보냈을 뿐이었다.
물론 그것은 퍽 강렬한 경험이었지만…….
그래도 그에게서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원래 이 세상에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일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그러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이해하지 못하는 대로 그저 그렇게 내버려 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사색에 오래 잠길 틈도 없이 서서히 눈이 감겼다.
나는 주인이 오기 전까지 잠시만 눈을 붙이기로 하고 몸에서 힘을 풀었다.
* * *
꿈을 꾸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마침내 도달한 지점은 아그리체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
어쩌면 리셸을 만나고 온 탓에 이런 꿈을 꾸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란트의 집무실에 있었다.
그곳의 서리 낀 공기와 그 속에 검은 얼룩처럼 배어 있던 약초의 매캐한 향기가 아직도 선명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얼핏 다른 냄새가 섞여 들었다.
란트가 늘 피우던 각성제와는 종류가 다른 청량하고 맑은 향기였다.
아, 그래. 카시스의 옷을 걸치고 있었지.
나는 위그드라실에서 만난 카시스가 주었던 겉옷을 입은 채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제레미에게 사용인들을 한곳에 대피하게 하고 병사들을 해산시키는 일을 맡긴 뒤였다.
그러다 굳게 닫힌 문을 열고 데온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도 선연한 광채를 내는 붉은 눈동자가 곧바로 시선을 맞춰 왔다.
낮은 발걸음 소리와 함께 그가 내게 다가왔다.
나는 그때 그를 똑바로 마주 보았던가, 아니면 또 외면하듯이 눈을 감았던가?
그때의 내가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금의 나는 후자 쪽이었다.
불현듯 뺨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아 왔다.
어쩐지 아득한 의식 너머로, 누군가의 시린 손이 내 얼굴을 가볍게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피부 위로 스미는 서늘한 온도에 연상되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식으로 나를 다정히 만진 적이 없었다.
그와 나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고, 내가 그에게 그런 것을 허락할 리 없는 것처럼 그 역시도 내게 그런 것을 시도할 리 없다는 사실을 그와 나 두 사람 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 괴리감에 서서히 정신이 돌아왔다.
어느덧 해가 완전히 떨어졌는지 사위가 어두웠다.
가물가물한 시야에 검은 형체가 비쳤다.
아……. 드디어 올 것이 왔나.
그 순간, 무심결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조금 전 꿈에서 보았던 사람의 이름을 소리 내 부르고 말았다.
“……데온?”
뺨에 닿아 있던 손이 우뚝 멈추어졌다.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침내 잠기운이 완전히 사라진 내 눈에 들어온 사람은 카시스였다.
“데온이라고?”
낮게 읊조려진 음성이 머리 위에서 무겁게 떨어졌다.
카시스가 밖에서 묻혀 온 찬 기운이 나한테까지 번져 들었다. 그의 손이 내게서 완전히 떨어졌다.
“……내가 그자와 닮았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나를 내려다보는 카시스의 눈동자에서 삭풍이 부는 것 같았다.
“내 방에 잠들어 있던 네 입에서 왜 그 이름이 나온 건지 이유를 모르겠군.”
그렇게 낮게 속삭이며 카시스가 어스름하게 웃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유쾌해서 지은 미소가 아니었다.
나는 카시스를 올려다보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 후 다시 느리게 숨을 토해 내면서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다.
“다른 의미 없어. 그냥 잠결에 착각했어.”
카시스가 그냥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위그드라실에서도 날 데온이라 불렀었지.”
화합회의 마지막 날, 아직은 동이 트기 전이던 깊은 밤의 일이었다.
분명 카시스의 말처럼 그때도 나는 그를 데온이라 착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카시스를 3년 만에 보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때는 그의 얼굴이 어둠에 먹혀 있어서, 위압감 있는 분위기나 체형을 보고 오해했던 것이 컸다.
“그 사람이 나오는 꿈이라도 꿨나 보군.”
바싹 메마른 목소리가 귀에 고였다.
나는 이 상황이 무겁게 느껴졌다.
무슨 말로도 내 안에 들어 있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나를 침묵하게 했다.
그래서 자리를 비키기 위해 침대에서 완전히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침대를 짚은 내 손을 카시스의 손이 위에서부터 덮어 눌렀다.
그 후 그와 나 사이의 거리가 좁혀 들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물렸지만 그만큼 카시스가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오히려 조금 전보다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그에게 갇힌 것 같은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설마 지금까지 데온 아그리체를 기다리고 있었나?”
얼어붙은 금색 눈동자가 정면에서 나를 관통했다.
나는 살며시 입술을 지르물었다.
카시스에게 붙들려 단단히 고정된 손을 움직여 보았지만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카시스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조금 전 잠결에 데온의 이름을 불렀던 내 목소리는 기다려 왔던 것을 맞이하는 듯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카시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그것은 진실과 달랐다.
나는 아그리체의 마지막 날에 헤어진 데온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하지만 만약 그가 어딘가에 살아 있다면, 반드시 나를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아그리체를 떠난 내가 어디에 있든, 아마 데온이라면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잠에서 깨 눈앞에 있는 검은 형체를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이 지금인 줄 알았다.
그것이 내가 무심코 데온의 이름을 입 밖에 낸 이유였다.
“……그런 게 아니야.”
그 순간 나는 체념하는 한편, 우습게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고 말았다.
페델리안에 있는 동안에도 나는 데온이 나를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편으로 늘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카시스의 옆을 내 진짜 종착지라 여기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가끔씩 나 스스로 그려 왔던 내 결말에는 데온의 손에 죽는 내가 있었다.
“……그 사람과 네 관계는 어딘가 기묘해.”
묵직하고 차갑고, 또 예리한 음성이 고막을 찔러 들어왔다.
“넌 란트 아그리체 이외에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한 번도 묻지 않았지. 데온 아그리체에 대해서도.”
숨죽인 시선이 내 눈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마치 내게서 드러나는 한 치의 허점도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그래서 그날 난 말했어. 전부 네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고.”
하지만 카시스에게 그 말을 듣고도 나는 그 무엇도 결정지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데온이 그날 그곳에서 죽었기를 바라는지, 아니면 살았기를 바라는지, 아직도 나는 그것을 알 수 없었으니까.
“아그리체로 돌아가고 싶어?”
속삭이는 듯한 낮고 작은 음성이 성글은 숨결과 함께 허공에 흩뿌려졌다.
내 손을 움켜쥔 힘이 한결 강해졌다.
당장이라도 입술이 닿을 것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카시스가 말했다.
“하지만 보내 주지 않을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꽉 조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