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y to Protect the Female Lead’s Older Brother RAW novel - Chapter (99)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99화(99/253)
여주인공의 오빠를 지키는 방법 9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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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쟌느와 헤어진 나는 조금 전까지 나누었던 대화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그녀의 말에는 따로 고심해 봐야 할 부분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카시스의 능력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녹록한 수준이 아닌 듯했다.
반작용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힘이라면, 반대로 그것은 누군가를 소생시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이란 말과 상통했다.
물론 카시스의 힘에 대해서는 예전에 본 것도 있고, 또 몇 번이나 내가 직접 경험한 것도 있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가 기운을 불어 넣어 주면 몸에 온기가 돌고 힘이 샘솟는 것도, 또 칼로 베인 상처가 아물고 몸에 있는 독이 중화될 수 있다는 사실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무릇 정도란 것이 있는 법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그의 치유 능력이 대단한 것을 떠나 그렇게 비현실적일 정도로 엄청나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카시스가 마음먹으면 구하지 못할 사람이 없을 거라니.
그 말은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그때 실비아의 숨이 완전히 멎었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녀는 지금 아주 멀쩡히 살아 있었다.
그럼 죽은 실비아가 도대체 어떻게 되살아났다는 거지?
그 당시의 카시스는 실패했다고 했으니. 그럼 혹시 청의 수장인 리셸일까.
그렇다면 역시 카시스의 힘은 페델리안의 유전이란 말이었다.
가만, 그럼 설마 지금 카시스가 나한테 하는 일들도 단순 회복이 아닐 수 있다는…….
불현듯 스쳐 지나간 생각에 나는 움찔 눈가를 잘게 미동했다.
“록사나 양?”
그러던 어느 순간 내 귀에 돌연 미성의 목소리가 흘러들어 왔다.
나는 그 음성이 들려온 방향으로 동요 없이 시선을 미끄러뜨렸다.
“이것 참, 오랜만에 뵙네요. 그 동안 몸이 편찮으셨다고 들었는데. 다행히 이젠 전부 털고 일어나셨나 보죠?”
오르카 휘페리온의 화사한 미소가 시야에 스몄다.
누구라도 능히 무장 해제시켜 버릴 것만 같은, 유리처럼 더없이 맑고 투명한 웃음이었다.
물론 그의 속을 알고 있는 나한테는 통하지 않았다.
“백의 마수사시군요.”
나는 그를 향해 느른한 음성을 흘려보냈다.
내 뒤에는 별관에서부터 따라온 올린이 있었고, 오르카의 뒤에는 이시도르가 서 있었다.
그는 오르카를 향해 마뜩잖은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오르카를 호위하고 있을 리는 없고. 아무리 봐도 저건 노골적으로 오르카를 감시하는 것 같은데.
아마 이시도르가 오르카를 따라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지켜 보는 역할을 맡은 모양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손님으로서 예우해 그런 짓을 하지 않았지만 판도라의 일 이후로 신뢰를 잃은 영향인 것 같았다.
“아, 제가 누구인지 알고 계시네요? 하긴, 그때 청의 귀공자가 저를 그렇게 불렀던가요.”
오르카는 내가 자신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몹시 기쁘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정식으로 소개드리죠. 오르카 휘페리온입니다. 오르카라고 불러 주세요.”
“글쎄요. 백의 마수사라는 호칭으로 이미 충분한 것 같은데.”
오르카는 퍽 친근감 있는 태도로 서글서글하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저 한 번 의례적으로 웃어 보인 뒤 거부했다.
그러자 마주한 얼굴에 과장된 실망이 떠올랐다.
“지난번에는 제가 실례를 저질렀지요. 그때의 제 부끄러운 언동은 잊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풀이 죽은 척하며 사과하는 모습이 정말 그럴듯해 보였다.
생긴 게 워낙 청순가련해서 그런지, 저 안에 능구렁이가 백 마리쯤 들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누구나 절로 측은지심이 들 것 같았다.
“괘념치 않으니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시길. 그 말을 하러 저를 찾아오셨나요?”
“아, 볕이 좋아 산책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록사나 양과 딱 마주치다니, 마치 운명 같네요.”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었다.
저런 식으로 웃고 있는 사람에게 아무런 꿍꿍이가 없을 리가.
오르카가 나한테 이렇게 관심을 갖는 건, 역시 독나비 때문인가.
문득 사흘 전 정원에서 보았던 열망 어린 눈동자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때 은연중에 내가 느꼈던 찝찝함도 덩달아 떠올랐다.
“괜찮으시다면 주위 사람을 물리고 같은 마수사끼리 유익하고 즐거운 대화를…….”
“불가합니다.”
“불가합니다.”
“나누고 싶지만 역시 안 되나 보군요.”
오르카가 운을 띄우자마자 이시도르와 올린이 동시에 그의 말을 쳐 냈다.
오르카도 애초에 기대했던 건 아닌 것 같았다.
다시 침울한 표정을 짓는 오르카를 이시도르와 올린이 경계하듯이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좀 미묘해졌다.
역시 나는 페델리안의 사람들에게 연약한 이미지로 낙인찍힌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첫 만남에서부터 지금까지 본의 아니게 상황이 저절로 그렇게 흘러간 것도 있었고, 또 카시스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워낙에 나를 병자 취급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거기에 내 의지가 아주 없었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어쩌면 나도 그들에게 호감을 살 만한 무구하고 가련한 모습을 무의식중에 내보이고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보호받는 입장이 되니 기분이 이상하긴 했다.
“스스로를 마수사라 칭하기에는 견문이 넓지 않아서.”
한편으로는, 그럼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나설 자리를 줄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차라리 뒤에 있는 윈스턴 경과 대화를 나누시는 편이 더 유익하겠네요.”
내 말에 오르카가 의외라는 듯이 이시도르를 뒤돌아보았다.
“윈스턴 경이요? 당신, 마수사였나요?”
“아닙니다.”
이시도르는 내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를 보며 고개를 슬쩍 옆으로 기울였다.
“쟌느 님께 이야기를 들어 보니 마물에 대한 윈스턴 경의 견문이 넓다고 하던데.”
“그 정도의 식견은 없습니다만…… 원하신다면 어느 정도 대화 상대가 되어 드릴 수 있습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내가 의도한 바를 읽었는지, 이시도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오르카에게 말했다.
이시도르는 오르카가 더 이상 나를 귀찮게 하는 것보다 그냥 스스로를 희생양으로 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음, 아뇨, 별로.”
하지만 오르카는 떨떠름함을 숨기지 않고 질색한 얼굴로 거 절했다.
잘은 몰라도, 이시도르와 붙어 있는 동안 그에게 학을 뗄 만한 일들이 적지 않게 있었던 듯했다.
“제가 대화를 나누고 싶은 건 독나비의 주인이어서 말이죠.”
역시 오르카는 예상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역시 독나비 때문이었군.
“아무리 생각해도 궁금하단 말이에요. 당신이 어떻게 독나비를 각인시켰는지.”
이시도르와 올린이 자리를 비켜 줄 것 같지 않으니 그냥 이대로 말을 꺼내려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독나비를 찾아 페델리안에 무단 침입까지 하려 했을 정도이니, 그 열의가 오죽하련만은.
마물에 대한 그의 집념과 열망이 어느 정도인지는 나도 아는 바가 있었다.
“일단은 독나비 서식지를 찾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고.”
원래대로라면 독나비는 그 노력의 산물로 마땅히 그의 몫이 되어야 했다.
그런데 그걸 중간에서 내가 홀랑 가로채 꿀꺽해 버린 셈이니.
아마 오르카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나를 마물 밥으로 던져 주고 싶을 것이다.
“또 알을 찾는다고 해도 부화 시키는 데 엄청난 개고생을, 아이고, 숙녀분의 앞에서 실례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엄청난 공을 들여야 하는 데다, 또 그마저도 성공할 가능성은 현저히 낮지 않습니까?”
갑자기 오르카에게 조금 가련한 마음이 들어서 잠깐 정도는 이야기를 들어 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렇게 부화한 독나비를 각인시키기란 또 바늘구멍으로 마물 통과시키기인데 말이죠.”
나도 굉장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독나비와 내 상성이 상상 이상으로 좋았던 것도, 또 대량의 독을 조달하기 쉬운 환경에 있던 것도.
그리고 지금까지 독나비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이렇게 공생하며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그런데 제일 걸작인 건…….”
오르카는 내가 아무런 반응을 내보이지 않아도 알아서 혼자 계속 말을 이어 갔다.
이미 그가 하는 말은 거의 혼잣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걸 또 살육 나비로 키우셨다고.”
이윽고 오르카가 흥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킥 소리 내 웃었다.
그의 눈이 얄팍하게 접혔다. 가늘게 미소 짓는 얼굴이 여우를 닮아 있었다.
“록사나 양, 지금껏 독나비의 주인들은 하나같이 행방이 묘연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겠죠?”
당연히 들어 보았다.
“그 이유가 독나비에게 먹혔기 때문이란 걸 압니까?”
그 순간 이시도르와 올린이 몸을 움찔 굳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동요 없이 눈을 한 번 느리게 감았다 뜬 뒤 나른한 어조로 읊조렸다.
“설마 당신이 아는 걸 내가 모르리라 생각하나요?”
과연 오르카의 말대로였다.
기록에 남아 있는 독나비의 소유자들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기도 했지만, 그들의 결말은 대개 같았다.
독나비에게 잡아먹히는 모습이 목격되거나, 어느 날 갑자기 돌연 종적을 감추고 사라진 것이다.
물론 소리 소문 없이 실종된 사람들이 나중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아마 다른 누군가에게 목격당하지 않았을 뿐, 최후는 다른 독나비의 숙주들과 동일하지 않았을까 하고 대부분의 마수사들이 추측하고 있었다.
독나비는 원한다고 해서 각인시킬 수 있는 마물도 아니었지만, 애초에 선뜻 독나비의 각인에 나서는 마수사들도 극히 드물었다.
상상할 수 있는 최후가 뻔하기 때문이다.
란트 아그리체가 탐욕스러운 눈빛을 보내면서도 나한테서 독나비의 알을 빼앗지 않았던 이유도 그와 동일했다.
그런 의미로 소설 속에서의 오르카는 역시 특이한 놈이었다.
그렇게까지 독나비를 열망해 갖은 애를 써서 결국은 그것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으니까.
오르카는 이미 최상급 마물들을 다량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독나비에 목을 맬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그는 휘페리온의 후계자였다. 그런 귀한 몸을 직접 독나비의 숙주로 삼다니.
독나비의 주인인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제정신으로 할 짓이 아니었다.
“아, 진짜 재미있네.”
다음 순간, 재미있어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