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화(1/207)
Chapter 1
그 피폐 육아물 소설 속에서 망나니 황녀로 살아가는 방법
내 기억에 따르면, 오늘이 소설 속 악역 중 하나인 2황자가 독살당할 뻔한 날이다.
[아스포델! 저기야, 저기 2황자 찻잔에 독!] [우와, 저 새까만 것 좀 봐. 저거 한 모금이면 완전 골로 가겠는데?]나는 무릎 위에서 속닥거리는 족제비 두 마리를 양손으로 쓰다듬으며 2황자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후 눈에 들어온 것에 나도 모르게 질겁해 혀를 찼다.
‘어우, 진짜 시꺼머네. 매번 저런 걸 처먹으니 애가 말라비틀어진 파처럼 골골거리지.’
꽤 더운 날임에도 오늘 티타임은 야외 정원에서 열렸다.
그래도 테이블 주변에는 냉기를 뿜는 마석이 준비되어 있어 참석자들이 더위에 곤욕을 치를 일은 없었다.
이 더운 여름날 밖에서 뜨거운 차를 즐기기 위해 마석까지 사용하다니.
새삼스럽지만 굉장한 돈지랄이다.
하지만 이 정도 사치는 당연한 일이었다.
여긴 황금을 녹여 물놀이도 할 수 있는 황궁이니까.
“루벨리오, 오늘따라 기운이 없는 것 같구나. 동방에서 들여온 새로운 간식이 많이 있는데 맛보지 않고.”
“아……. 체했는지 속이 좀 좋지 않아서요.”
“저런, 그럼 차라도 마셔 보렴. 북방의 약차라 속이 한결 진정될 거란다.”
2황자가 주변의 채근을 이기지 못하고 마지못해 눈앞의 찻잔으로 손을 뻗었다.
저 안에서 넘실거리고 있는 독의 사기는 나와 내 사역마들 눈에만 보였다.
한동안 못 본 사이 2황자의 몸에 축적된 독기도 굉장히 짙어졌다.
그러니 이대로 놔두면 소설에서처럼 한동안 사경을 헤맬 게 분명하다.
평소에 날 볼 때마다 밥맛없이 굴던 녀석이라 그냥 모른 척해도 되지만 그러기엔 내가 너무 착했다.
‘피오! 키노! 출동!’
[출동!] [간다아!]내 명령을 받은 족제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테이블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타다다닥!
“으앗, 이게 뭐야!”
“3황녀의 애완동물 아니야?!”
테이블을 가로질러 달리는 내 귀여운 사역마들에 의해 티타임을 즐기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흰 족제비 피오가 테이블 위에서 우당탕 한껏 요란을 떨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캬오!”
그러는 동안 날쌔게 달려 목적지에 도착한 얼룩무늬 족제비 키노가 하얀 솜방망이 손을 가차 없이 휘둘렀다.
퍽!
“아악!”
2황자가 들고 있던 찻잔이 키노의 앞발에 명중해 날아갔다.
“이, 이! 망할 쥐새끼들이!”
평소에도 내 사역마들을 못마땅해하던 2황자의 부친 쿤차가 평소의 고상함을 잃은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하는 거야! 당장 저것들을 잡아!”
쿤차는 내가 그의 금쪽같은 아들내미의 명줄을 늘려줬다는 사실도 모르고 분개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할 수 없네.
내가 나설 때로군.
‘신님, 정의로운 망나니가 되는 걸 허락해 주세요!’
나는 여신님께 경건히 기도한 뒤 숨을 흡 들이마셨다.
“우리 애기들 괴롭히지 마아아아아아아!”
배에서부터 내뱉은 우렁찬 목소리가 정원 안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무릎 위로 늘어져 있던 레이스 천을 무지막지하게 잡아당기자 테이블 위의 찻잔과 케이크들이 하늘을 날았다.
사람들의 흔들리는 눈동자도 연어 떼처럼 허공을 헤엄쳤다.
와장창!
쨍그랑!
독이 든 찻잔을 포함한 다기와 식기들이 바닥에 떨어져 개박살 났다.
내 사역마들은 어느새 낚아챈 과자를 갉아먹으며 케케케 사악하게 웃어대고 있었다.
평화로웠던 정원에서의 티타임은 단숨에 파국을 맞이했다.
“아, 아스포델! 이게 무슨 짓이냐!”
“화, 황녀님!”
망할 피폐 육아물 소설에 빙의해 황녀로서의 3회차 인생을 맞이한 지 약 반년이 지난 한여름의 어느 날.
내가 평판을 버리고 망나니 황녀가 되기로 결심한 사연을 설명하려면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Chapter 2
작가의 저주를 조심하세요
“작가가 미친 건가…….”
들고 있던 핸드폰이 허무하게 얼굴 위로 툭 떨어졌다.
읽고 있던 웹소설의 충격적인 결말에 나는 완전히 넋이 나가 버렸다.
<황녀 아스포델>.
단순한 제목 그대로 황녀로 환생한 여주인공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되는 로맨스 판타지 소설이었다.
육아물이 판을 치는 시대에 엄청 신선하다고 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원래 잘 쓴 클리셰가 맛있는 법이다.
그래도 이 소설은 조금 특이하게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황제였다.
황족들은 여자가 직접 아이를 낳지 않고 신의 입김이 닿은 성소에서 마력을 합해 후손을 보는 설정이었는데, 판타지가 섞인 세부적인 요소들이 꽤 흥미로웠다.
팔색조 아버지들과 남매들, 그리고 씬스틸러 조연들의 화합도 맛깔났고 말이다.
하지만 역시 이런 장르물의 묘미는 귀염뽀짝한 여주인공이 가족들에게 사랑받으며 시원시원한 사이다 전개를 펼쳐 주는 것 아니겠는가?
이 소설에도 그런 유행 요소는 모조리 다 양념으로 들어가 있었다.
“오다 주웠다. 마음에 들면 가져라, 아스포델.”
쿨내를 폴폴 풍기는 암사자 같은 멋진 황제 엄마.
강하고 아름답고, 세상만사에 무심한 면이 있지만 오히려 그 점이 매력적이라 독자들의 애정을 한 몸에 받았다.
“아델, 널 위해서라면 아빠는 뭐든 할 수 있단다. 그러니 지금처럼 늘 웃어주렴.”
거기에 한 마리 꽃사슴처럼 곱디고운 아빠도 있었다.
외모는 고아하면서도 수려한 유니콘 계열이었지만, 남들에게는 은근히 냉정하면서 내 아내와 딸에게만 다정한 반전 매력이 있어 어머님 못지않은 많은 인기를 끌었다.
“내 귀여운 동생. 누가 괴롭히면 말만 해. 우리가 다 없애줄게.”
“역시 누님이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이리 와서 제 손을 잡아주세요.”
물론 여주인공 없이 못 사는 형제들도 빠질 수 없지.
여기에 귀엽고 멋진 언니들까지 더해지니 더욱 금상첨화가 아닌가.
“당신의 영광이 곧 나의 기쁨이고, 당신의 행복이 내 삶의 이유이니. 황녀님, 당신이 나의 유일한 신이십니다.”
로맨스 장르에 없어서는 안 될 근사한 남자 주인공과 서브 남주들까지 틈틈이 나와 설렘 지수를 높여 주었다.
게다가 시기적절하게 악역들의 뒤통수를 치며 사이다를 터뜨려 주는 섬세한 강약조절까지.
이러니 소설이 매화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었다.
‘크, 역시 이 맛에 여주 성장물을 보는 거지.’
이대로 쭉 알콩달콩하게 힐링물을 찍다가 소설이 잘 마무리되면 로맨스 판타지계의 거대한 한 획을 그으리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우리 작가님이 중간에 뭘 잘못 먹기라도 한 걸까……?
‘어라, 갑자기 내용이 왜 이러지?’
상큼하게 진행되던 이야기의 중후반부부터 느닷없이 대형 똥이 투척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힘숨찐이었던 악역들이 갑자기 설치기 시작하더니, 그동안 비중도 없던 마수들까지 약 처먹은 바퀴벌레처럼 날뛰었다.
귀염 발랄하던 소설의 분위기가 당황스럽게도 점점 우중충해졌다.
아니, 작가님……?
왜 잘 나가다가 갑자기 피폐물이 돼요?
무척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애써 침착해지려 노력했다.
그래, 원래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여주인공이면 이 정도 역경쯤은 이겨내 줘야지!
우리 작가님은 다 생각이 있어서 이러시는 거다!
그러다 여주인공의 아빠가 죽었다.
마수들의 침공에서 여주인공을 지키다가 팔 한 짝만 남기고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 죽었다.
‘시, X발…….’
그래도 아버지의 눈물겨운 희생으로 다행히 마수들의 침공도 정리되고, 여주인공도 힘을 각성해 악역들을 처단할 수 있었다.
하여 이야기는 그렇게 해피엔딩을 맞는가 싶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살아 있던 최종 악역에게 여주인공의 오빠까지 습격당해 끔찍하게 죽고, 병약 미소년 남동생은 세뇌당해 악당의 하수인이 되었다.
‘아니, 미친?’
그뿐이랴.
여주인공과 달달한 로맨스를 찍던 남주인공마저 악당과의 최종 전투 때 신성력 폭주로 위기를 맞은 여주인공을 구하려다 크게 다쳐 영영 검을 들지 못하는 몸이 되고 말았으니.
‘X발……!’
결국 마지막에 악당을 처단하긴 했지만 그렇게 모두에게 상처만 남긴 채로 소설은 마무리되고 완결 표시가 떴다.
전례 없는 배드 엔딩에 독자들은 완전히 맛탱이가 가 버렸다.
-작가님……? 이제 1부 끝난 거죠? 2부는 회귀물인가요? 그렇다고 해주세요ㅠㅠ
차라리 개연성 없는 회귀나 부활 엔딩이라도 기대했으나 결과적으로는 헛된 꿈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작품의 다른 소식은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독자들이 하도 성화를 부려서인지, 얼마 후, 작가의 개인 사이트에 완결 후기가 올라왔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