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00)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00화(100/207)
“신관님!”
다시 만난 모르페우스는 왠지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보통은 저렇게 해쓱하면 좀 무해한 느낌이 나야 하는 거 아닌가?
특히 미남이 아플 때는 청초함이 미모 버프로 더해지는 게 로맨스 판타지의 법칙 아니었냐는 말이다.
하지만 모르페우스에게는 오히려 위험한 느낌이 드는 퇴폐적인 분위기가 짙어져 있었다.
거기다 당황스럽게도 창백한 얼굴과 붉은 입술이 대비되어 묘한 색기까지 더해지면서, 이제는 요사스러운 느낌마저 폴폴 풍기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은근히 뺨을 붉히며 그를 힐끔거리는 궁인들도 종종 보였다.
‘어유, 저게 어딜 봐서 신관이야? 애초에 왜 모르페우스한테 신의 축복을 내렸는지, 여신님 취향 한번 참…….’
그때 내 부름을 듣고 고개를 돌린 모르페우스가 아버지에게 안겨 있는 나를 발견한 뒤 멈칫했다.
아니다.
저건 멈칫이 아니라 흠칫인가?
“로잔티나의 달과 별께 태양의 가호가 내리기를.”
“데메테아의 천칭께 태양의 빛이 비치기를.”
모르페우스는 이상한 낌새를 거두고 아버지와 내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 아버지도 잔잔하게 미소 지은 얼굴로 모르페우스에게 화답했다.
모르페우스는 어딘가 경계하는 듯한 눈빛으로 우리 아버지를 한번 스치듯이 본 뒤, 내게 시선을 고정했다.
“3황녀님, 그간 무탈하셨습니까.”
나를 보는 그의 표정이 왠지 우리 아버지를 볼 때와는 조금 달랐다.
하긴, 함께 괴한들과 대적한(?) 뒤 처음 보는 거였으니 그럴 만도 한가?
“네! 신관님은요? 아직도 아파?”
나도 모르페우스에게 안부 인사를 되돌렸다.
그때 네가 말도 없이 기절해서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뭐, 그 뒤에는 오히려 나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신성력을 쓸 수 있어서 편하긴 했다만.
“염려해 주신 덕분에 이제는 괜찮습니다.”
내 물음에 모르페우스가 표정만큼이나 애매모호한 말투로 대답했다.
“한데 3황녀님의 가족분들은 참……. 황녀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시더군요.”
이어진 그의 말은 어딘가 떨떠름하게 들렸다.
말하는 걸 들어보니, 이번에 황궁에서 취조를 당하면서 좀 많이 데인 것 같았다.
우리 아버지와 히세리온 가족들까지 합세해서 모르페우스에게 괴한들의 정체와 그들과의 관계에 대해 캐물었다고 하던데.
히세리온 사람들도 눈치가 빨라서 그런지, 내가 탄신연 도중 궁으로 돌아온 이유가 단순하지 않다는 걸 금방 알아차린 듯했다.
그래서 직접 황제 폐하를 알현해 이번 사건에 개입하는 걸 허락받았다고 들었다.
히세리온은 내 직계 혈족이니 목숨을 위협받은 나를 위해 나서는 것에 명분도 충분했다.
황궁에서는 당연히 괴한들의 공격 대상이 된 모르페우스를 수상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간도 크게 황궁에서 이런 일을 벌였으니, 대신전의 보호를 받는 신관이라 해도 단순 피해자로 취급되어 그냥 빠져나갈 수 있을 리 없었다.
이 부분은 나도 좀 의아하긴 했다.
어차피 괴한들의 목표가 모르페우스면 대신전에서 황궁으로 오는 길에 그를 노리는 게 더 쉽고 간단했던 거 아닌가?
그런데 굳이 황궁 안까지 기어들어 온 이유가 뭘지 나도 나름대로 생각해 봤다.
아무래도 놈들이 쓰던 게 신성력과 상극인 힘이라 모르페우스가 다른 신관들과 떨어질 때를 기다린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었다.
아무튼, 그래서 지난 이틀간 모르페우스도 곤욕을 치른 것 같았다.
특히 우리 아버지는 전부터 모르페우스를 은근히 경계하던 느낌이었다.
그런데 더군다나 이번에는 내가 모르페우스 때문에 위험에 말려들기까지 한 셈이니…….
모르페우스가 괴한들에게서 나를 보호해 줬다고는 한들, 아버지의 눈에 그가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그러니 이번 취조 때 우리 아버지가 모르페우스를 탈탈 털어본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모르페우스 신관님. 그동안 수색을 위해 기꺼이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안고 있던 아버지가 여느 때처럼 온화한 모습으로 예의를 지켜 모르페우스에게 말했다.
하지만 모르페우스는 어딘가 질린 눈으로 우리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닙니다……. 저 역시 피해를 입은 몸이니, 범인을 찾을 수 있다면 당연히 도움을 드려야지요.”
어디까지나 그는 괴한들과 연관이 없는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말이었다.
아버지도 그걸 알 텐데 짐짓 아무것도 모르는 양 눈썹 한 올 까딱하지 않고 모르페우스의 말에 감복한 듯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신의 뜻과 함께하시는 분답군요. 하면 신관님의 안전을 위해 앞으로 저희 황궁 기사들이 신관님의 곁을 지키는 것도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나는 떨떠름하게 침묵하는 모르페우스를 보고 자꾸만 씰룩거리려고 하는 입꼬리를 간수했다.
솔직히 말이 보호지 이건 사실상의 감시였다.
‘깨소금 맛이구먼.’
지난 회차들에서 늘 내 속을 터지게 만들었던 놈이 지금 이렇게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걸 보니까 어쩔 수 없이 약간은 고소한 기분이 들었다.
모르페우스는 탄신연 동안은 물론이고, 그 이후로도 한동안 황궁에 남아 손님으로 머물며 지금처럼 감시받을 예정이다.
아직 침입자의 덜미를 잡지 못한 데다, 모르페우스의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기에 결정된 사안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되면 모르페우스도 한동안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할 테니, 나로서는 잘된 일이었다.
혹시 그가 허튼짓을 하지는 않나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도 있고 말이다.
물론 내가 아는 전개와 많이 달라진 만큼 우려되는 부분도 존재했으나, 솔직히 모르페우스 말고도 변수가 워낙 다양해서 이제는 나도 어느 정도는 해탈한 상태였다.
‘그럼 다들 날 안 보고 있을 때 확인 한번 해볼까?’
손을 꼼지락 움직여 주머니에 든 광물을 슬쩍 들여다봤다.
내가 가져온 건 알렉시아가 준 생일 선물이었다.
처음에는 이것이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 싶었으나, 다행히 앤디미온이 이 광물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듣자 하니, 이것 역시 내 해파리 성물의 원재료처럼 고대의 특이한 신성 물질 중 하나라고 했다.
평소에는 검붉은색이나, 앞에 있는 사람이 광물을 들고 있는 주인에게 호의를 품고 있으면 파란색, 해를 끼칠 마음을 품고 있으면 새빨간 색으로 물드는 신묘한 광물이었다.
사실이라면 알렉시아의 말대로 정말 쓸 만한 물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진짜 효과가 있는지 이미 실험도 해봤지!’
아버지를 포함해 지난 이틀간 내가 우리 궁에서 만난 사람들의 앞에서 이 광물은 모두 파란색으로 변했다.
그러니 지금 모르페우스가 나한테 나쁜 마음을 품고 있다면 이 광물은 붉은색으로 물들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나도 기회가 될 때 이 녀석을 처리하는 걸 더 망설이지 않아도 되겠지.’
어쩌다 보니 이번에 괴한들과 만났을 때 모르페우스에게 보호받은 것처럼 되어버려서 나도 쓰러진 그를 죽이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왠지 이대로 모르페우스를 죽이기엔 빚진 기분이 들어서 좀 찜찜했으니까.
‘하지만 붉은색이면 망설이지 않는다!’
이번 사건도 있으니, 때를 봐서 괴한들에게 당한 것처럼 꾸며내면 아무도 날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주머니 속의 돌멩이를 확인했다.
‘……뭐야!’
그런데 그 결과는 놀랍게도…….
“파란색……?”
“아델, 뭐가 말이니?”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작은 혼잣말에 아버지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나는 당황한 채로 둘러댔다.
“아아니, 신관님 얼굴이 파래서요. 아직 다 안 나아서 그런가?”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황녀님. 전 괜찮습니다.”
모르페우스가 살짝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
언젠가부터 그랬듯이, 이번에도 나를 향한 그의 눈빛은 다소 묘했다.
“아델의 말처럼 피곤해 보이십니다, 신관님. 그만 방으로 돌아가서 쉬시지요. 휴식을 취하시는 동안 혹시 필요한 게 있다면 기탄없이 궁인들에게 말씀하십시오.”
모르페우스의 시선이 다시 우리 아버지에게 옮겨졌을 때 얼른 다시 광물을 확인했다.
여전히 내 눈을 의심하게 할 만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광물은 붉은색이 아니라 조금 전보다 더 선명한 푸른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갑자기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혹시 이거 불량품 아니야? 만나는 사람마다 죄다 파란색인데?’
하지만 그 의혹은 금방 떨쳐버릴 수 있었다.
푸른색이던 광물이 다음 순간 붉은색으로 다시 물들었던 것이다.
광물은 꼭 갈등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후로도 푸른색으로 물들었다가 붉은색으로 변하기를 반복했다.
뭐, 뭐야, 이게?
파란색으로만 변하는 게 아닌 건 알겠는데, 다른 의미로 불량품인 것 같잖아?
“그럼 권유해 주신대로 전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두 분 모두 편안한 하루 보내십시오.”
결국 마지막으로 모르페우스와 헤어질 때 고정된 광물의 색은 빨강도 파랑도 아닌 그 중간의 오묘한 보라색이었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