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03)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03화(103/207)
다른 애들을 따라 어영부영 자리에서 일어났다.
코흘리개 애들이 뭘 하고 놀려나 했는데, 전술 게임이란 명목의 술래잡기였다.
아이들을 두 팀으로 나눠서 각각 술래를 뽑은 다음, 그들이 어딘가에 숨은 다른 팀의 아이들을 먼저 다 찾아내면 이기는 게임이었다.
“그럼 이제 규칙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 이 화원 밖으로는 나가면 안 돼.”
내가 이 나이 먹고 이런 유치한 놀이를 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애들 수준이 다 그렇지 뭐.
“아스포델, 넌 제일 어리기도 하고 이런 놀이도 처음 해보는 거니까 우리랑 같이 움직이자.”
나와 같은 편이 된 이부형제는 유클레드와 루벨리오였다.
유클레드는 승부욕이 있어서인지 마지막까지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불태웠고, 루벨리오는 별로 놀이에 끼기 싫은 듯이 떨떠름하게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언니, 나랑 바꿔줘.”
그때 메리엘이 자기 언니인 클라리사한테 속닥거리는 게 보였다.
“난 1황자님이랑 같은 편 하고 싶단 말이야. 응? 바꿔줘!”
“안 돼. 1황자님하고 3황녀님 옆에 너 혼자 뒀다가 또 무슨 실수를 할 줄 알고? 그냥 1황녀님 옆에 있어. 그래도 1황녀님은 널 귀엽게 봐주시는 편이니까.”
하지만 클라리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메리엘. 네가 여기 몰래 따라온 걸 알면 어머니한테 혼날 거야. 그러니까 제발 오늘은 얌전히 있어.”
“아, 잔소리 좀 그만해! 언니는 매일 나한테만 뭐라고 하더라!”
메리엘이 제 어리광을 받아주지 않는 클라리사에게 삐친 듯이 빽 소리쳤다.
그걸 보고 혀를 쯧쯧 찼다.
으이구, 역시 언니란 참 힘든 거다.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사고뭉치도 동생이라고 챙겨야 하니.
역시 저런 어린애들이 한번 어른한테 혼났다고 순식간에 성격이 바뀌진 않겠지.
아무튼 그렇게 게임은 시작됐다.
“하나, 둘, 세엣…….”
“가자, 아스포델!”
술래들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난 별로 의욕이 없어서 대충 숨을 생각이었는데 유클레드가 나를 덥석 안아 들었다.
“아, 뭐야.”
내가 까칠하게 쳐다봤지만 유클레드는 이미 숨을 자리를 찾느라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형님 먼저 가세요. 전 다른 데로 가서 숨을게요.”
루벨리오는 우리를 따라올 생각이 없는 듯이 설렁설렁 걸었다.
“그래, 그럼 이따 보자.”
유클레드도 루벨리오까지는 챙겨 갈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어느 쪽으로 갈까, 아스포델?”
“저기.”
유클레드의 물음에 이번에도 대충 아무 곳이나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찾았다!”
“이크.”
그런데 벌써 술래가 숫자를 다 셌나 보다.
막 우리가 가려던 곳에서 상대편 술래의 목소리가 들렸다.
유클레드가 서둘러 몸을 돌렸다.
그런데 술래의 발소리가 생각보다 빠르게 가까워졌다.
나를 안고 있는 탓에 유클레드가 속도를 내지 못해서인 것 같았다.
“그냥 나 두고 가.”
“뭐? 어떻게 너만 혼자 두고 가?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거야.”
유클레드야, 너 진짜 진심이구나.
고작 이딴 게임 하나 하면서 뭐 그렇게 결연하게 말하니?
나는 진짜 전쟁에라도 나온 양 비장한 표정까지 짓는 유클레드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무슨 소리야? 오빠가 죽어도 난 살아야지.”
“어?”
유클레드가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날 내려다봤다.
뭘 당황해?
혹시 내가 날 두고 그냥 가라고 한 게 널 위해서 살신성인하려는 건 줄 알았어?
“나 혼자는 저기 숨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오빠는 다른 데로 가. 방해돼.”
“그, 그래?”
“엉. 아니면 가서 술래 따돌리고 오든가.”
내 냉정한 말에 유클레드는 할 말을 잃은 눈치였다.
그는 흔들리는 눈으로 날 보다가 결국 내 말대로 나를 바닥에 내려줬다.
“그럼 아스포델, 잠깐 여기 숨어 있어. 네 말대로 넌 작아서 조용히 있으면 안 들킬 거야. 난 술래 가면 금방 다시 돌아올 테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하유, 그래그래.”
유클레드는 내가 덤불 사이에 잘 숨은 것을 확인하고 다른 곳으로 뛰어갔다.
그 직후 술래들의 외침이 들렸다.
소리가 점점 멀어져서 유클레드가 잡힌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나대로 고민이 되었다.
그냥 지금 나가서 잡힐까, 아니면 좀 더 쉬다가 나갈까?
바스락.
풀잎을 헤쳐 누군가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혹시 유클레드가 돌아온 건가 싶어서 덤불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조심성 없다고 할 수 있는 행동이었지만, 사실 술래에게 들켜도 상관없어서 한 일이었다.
“어?”
하지만 내 눈앞에 나타난 건 메리엘이었다.
“뭐야, 너였…….”
“여기! 여기 한 명 찾았다아아아아!”
내가 막 그녀를 알은척한 순간,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내 고막을 강타했다.
“술래 어디 있어! 빨리 와, 빨리이이……!”
허, 이것이?
내 얼굴은 대번에 썩어들어갔다.
나는 다시 덤불 속으로 고개를 쏙 숨겼다.
그리고 반대쪽에 난 틈으로 빠져나가 바로 줄행랑을 쳤다.
“아얏! 머리카락이 걸렸어!”
메리엘은 날 쫓아와서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는 틈이 작아서 쉽게 덤불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사이에 나는 열심히 뛰었다.
처음에는 술래한테 그냥 잡힐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야!
최소한 메리엘 때문에 잡혔다는 굴욕을 당할 수는 없었다.
“저쪽으로 갔어, 저쪽!”
“알겠어!”
그런데 상대편 술래는 상당히 발이 빠른지, 잔디를 가르고 달려오는 발소리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와, 씨.”
나는 어이가 없어서 탄식했다.
아니, 누가 5살을 상대로 저렇게 진심으로 게임을 해?!
아무튼 지금 잡히는 건 진짜 별론데!
바로 그때, 갑자기 옆에서 뭔가가 날 잡아당겼다.
“3황녀님.”
“레예스?”
“쉿.”
레예스가 내 팔을 잡고 어딘가로 이끌었다.
잠시 후 그와 나는 화원 어딘가에 몸을 숨겼다.
잠깐 숨을 죽이고 있자, 쫓아오던 발소리가 주변을 맴돌다가 곧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허, 들키는 줄 알았네.”
그제야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가 이런 유치한 놀이에서 이 정도 스릴을 느끼게 되다니, 인생 참…….
“레예스, 마침 가까운 데 있었네? 우연히 안 마주쳤으면 잡혔을 텐데 덕분에 살았어.”
때마침 레예스가 나타나서 운이 좋았구나 싶었다.
그런데 레예스는 내 말에 귀여운 소리를 들은 듯이 웃었다.
“우연이 아닌데요.”
“응?”
“아까부터 계속 3황녀님을 찾아다니고 있었으니까요.”
조금 전에 다른 아이들과 다 같이 테이블에 둘러앉았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얼굴을 한 채로 레예스가 나를 보았다.
아까처럼 예의를 차린 무표정한 얼굴도 자연스럽다고 느꼈는데, 역시 나한테는 이렇게 말갛게 웃는 레예스의 모습이 더 익숙했다.
마침 나도 레예스와 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참이라 그에게 물었다.
“이렇게 둘이 있는 거 오랜만이네.”
“예,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그냥 그렇지 뭐. 넌 이제 눈 잘 보여?”
“아직 잘 보이진 않습니다. 예전보다는 조금 나은 정도지만…….”
“그런데 왜 내가 쪽지에 적어준 장소에 안 가봤어? 거기 숨겨둔 거 그대로 있던데.”
그런데 내 말을 들은 레예스의 표정이 이상했다.
“아…… 혹시 이 쪽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어딘가 난처한 듯한 얼굴로 그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흰 종이를 꺼냈다.
그걸 보고 할 말이 없어서 침묵했다.
“어떻게든 해석해 보려고 했지만……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서요.”
“그렇겠네…….”
내가 레예스에게 보낸 쪽지는 꼭 젖었다 마른 것처럼 글씨가 번져 있었다.
족제비가 입에 물고 갔으니까 침인가? 침인 거냐?
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잉크가 번졌어도 적당히 그럭저럭 글씨를 알아볼 만한 것 같았는데…….
‘제, 젠장. 내가 악필이라서…….’
하지만 굳이 그런 말을 하기엔 민망해서 그냥 족제비의 침 때문인 걸로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전보다 상태가 괜찮은 것 같던데. 전에 내가 줬던 건 효력도 떨어졌을 텐데 왜지? 혹시 바스티온에 있을 때도 대신전에 있을 때보다 안 아팠어?”
괜히 멋쩍은 기분에 말을 돌렸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레예스가 나를 보며 고개를 슬며시 기울였다.
“왠지 황녀님과 가까운 곳에 있으면 상태가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건 그냥 느낌상 그런 거 아닌가?
뒤이어 레예스의 머리가 살짝 내 쪽으로 숙여졌다.
“지난번처럼 만져주시면 더 괜찮아질 것 같기도 하고요.”
나를 보는 붉은 눈에 친애의 감정을 담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와,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진짜 주인 손길을 기다리는 강아지 같네.
어차피 레예스를 한번 정화해 줄 필요는 있을 것 같아서 손을 들었다.
“그러니까, 여긴 들어오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하나?”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쿤차의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