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04)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04화(104/207)
“왜 안 된단 말입니까? 그냥 황족분들께 인사만 드리겠다는 건데요.”
이어서 바론 오클란테의 목소리도 들렸다.
“지나가는 길에 얘기를 듣고 잠시 들른 겁니다. 정말 오래 있지도 않을 텐데, 잠깐만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안 됩니까?”
정원에 들어가게 해달라, 안 된다 하면서 둘이 옥신각신하는 걸 보니, 레예스와 내가 숨은 곳이 입구 중 한 곳과 가까운가 보다.
“이 정원에는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어. 자네는 미리 허가받은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
쿤차는 이 상황이 귀찮은지 약간 짜증스럽게 말했다.
그가 다른 사람의 정원 출입을 막는 건 보안이 이유일 터였다.
하지만 문제는 쿤차의 말버릇이 원래부터 나쁘단 거였다.
“쯧. 그러니 번잡하게 하지 말고 돌아가게. 인사고 뭐고 필요 없으니까.”
특히 남을 깔아보는 듯한 말투라, 똑같은 말을 해도 쿤차의 말은 몹시 기분 나쁘고 불쾌하게 들렸다.
그런 느낌을 받은 건 바론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지금 제가 오클란테라고 무시하시는 겁니까?”
가라앉은 바론의 목소리를 듣고도 쿤차는 콧방귀만 뀌었다.
“갑자기 그런 말이 왜 나오지? 호, 이거 몰랐는데 그동안 자네가 오클란테인 것에 불만이라도 있었나 보군?”
아이고, 얄밉다, 쿤차……!
바론이 무시당하는 자기 가문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모를 리 없을 텐데, 굳이 말을 저런 식으로 하기는.
“아버지? 거기서 뭐 하세요?”
그때 작은 쿤차인 루벨리오까지 나타났다.
“오, 루벨리오. 친구들하고는 잘 놀고 있었니?”
“네, 아버지. 그런데…… 오클란테 가주님이시네요. 오늘 초대 명단에는 이름이 없었을 텐데요?”
“그래, 그래서 지금 바로 돌아갈 거란다.”
“아아.”
루벨리오가 알 만하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소리만 들어도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이 되었다.
쿤차랑 똑같이 사람을 깔아보는 듯한 눈으로, 입꼬리를 삐딱하게 기울인 채 앞에 있는 사람을 비웃고 있겠지.
그 모습은 쿤차와도 아주 닮아 있을 것이다.
쿤차가 씩씩거리는 거친 숨소리를 내뱉는 바론에게 또 얄밉게 말을 이었다.
“아무튼, 미안하게 되었네. 난 그런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닌데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그건 아마도 자격지심 탓일…… 으앗!”
그런데 그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이, 이게 뭐야! 어디서 튀어나온 쥐새끼들이……! 저리 가지 못해?!”
아, 익숙한 동물 울음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내가 바론에게 붙여둔 키노인가 보다!
역시 내 생각이 맞는지, 루벨리오가 놀란 듯이 외쳤다.
“이건……! 아스포델의 족제비들인데!”
“이 건방진 쥐새끼들! 네 주인한테나 돌아가서 치대란 말이다!”
키노가 나선 걸 보면, 지금 쿤차와 루벨리오 부자하고 대화를 나누는 동안 바론의 사기가 짙어진 게 틀림없었다.
얼마간 소란이 일다가 잠시 후 덤불 바깥이 조용해졌다.
다들 자리를 떠난 모양이다.
“어휴, 어휴휴.”
나는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친이나 아들이나 참 여기저기 적대감을 심어서 명줄을 재촉하는구나 싶었다.
“황녀님, 괜찮으십니까?”
레예스가 내 한숨 소리를 듣고 말을 걸었다.
쿤차와 루벨리오는 남을 무시하는 데 거리낌이 없으니 신경 쓰지 않겠지만, 난 이게 무슨 집안 망신인가 싶었다.
더군다나 내가 기껏 바론을 흑화시키지 않으려고 지난번에 미리 정화도 시켜주고 애썼는데, 저 부자는 누가 악역 아니랄까 봐 잠깐 감시를 소홀히 한 틈에 사고나 치고 있었다.
“흐유, 가끔 진짜 사는 게 뭔가 싶다니까.”
“음…… 네…….”
내 회한 가득한 목소리에 레예스도 공감하는 듯이 말끝을 흐렸다.
그래, 그래! 다 알아, 임마.
너도 살기 힘들지?
어린놈이 저주니 뭐니 해서 고생하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
“그래두 열심히 살자. 나중엔 복이 올 거야!”
우리의 인생을 격려하는 의미로 파이팅을 외치며 레예스의 등을 팡팡 쳐 줬다.
그러자 레예스가 왠지 조금 어색해 보이는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내친김에 레예스의 사기까지 정화해 주고 그에게 물었다.
“지금 들은 거 어디 가서 말 안 할 거지?”
사실은 알면서 그냥 확인해 본 거였다.
레예스가 어디 가서 함부로 입을 놀릴 성품이 아니라는 건 진작 알아차렸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전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역시 레예스는 눈치 있게 장단을 맞췄다.
때마침 멀리서 아이들이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한 명씩만 남았다!”
“숨은 사람 먼저 찾는 편이 이기는 거야!”
다 같이 와아, 와아 함성을 내지르는 소리가 이어졌다.
이제 한 명씩 남았다고?
그럼 우리 팀에서는 나만 남은 거고…… 상대 팀은…….
“황녀님과 저만 남은 모양이네요.”
그러게, 레예스랑 내가 잘 숨어 있었나 보다.
그럼 나한테 술래를 따돌리고 다시 오겠다고 했던 유클레드랑 아까 나를 뒤쫓던 메리엘도 잡혔구나.
다른 사람보다도 메리엘은 좀 쌤통이다.
술래한테 잡혀서 원점으로 갔는데 내가 안 보여서 기분이 많이 나쁘겠군!
“좀 더 황녀님과 같이 있고 싶지만……. 아무래도 시간이 거의 다 된 듯하니 제가 먼저 나가서 주의를 끌겠습니다.”
“그냥 같이 나가자. 저 앞까지 가서 양쪽으로 갈라지면 되겠지.”
굳이 1등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마침 다리도 저리던 참이라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예스하고 나는 동시에 숨어 있던 곳에서 나갔다.
먼저 잡힌 건 레예스였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했는데도, 레예스가 굳이 먼저 소리를 내서 술래의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나는 본의 아니게 게임의 최종 승자가 되어 메리엘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꼬마 주인아!
“피오!”
모임이 파하기 전에 흰 족제비가 알렉시아에게 안겨 등장했다.
“소리가 들려서 가보니까 이 앞에 혼자 있더라. 길을 잃은 것 같아서 데려왔어.”
-맛있는 냄새가 나서 와봤어! 주인아, 나 저거 먹어도 돼? 응응?
피오는 식탐 넘치는 눈으로 테이블 위에 남은 간식들을 보며 군침을 흘렸다.
아이구, 그래.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리 없지.
“누나! 저 난폭한 족제비는 왜 데려온 거야!”
아직도 혼자 테이블 앞을 지키고 앉아 남은 간식을 독식하고 있던 3황자 헬리만이 알렉시아에게 성질을 냈다.
3황자의 놀이 친구인 뷔요른 영식도 경계심 어린 눈으로 피오를 보면서 몸을 움찔거렸다.
지난번에 길에서 마주쳤을 때 우리 족제비들이 바론을 때려서 정화시켜 주던 모습을 봐서 그런가?
우리 애들은 착한 짓 한 건데, 이렇게 오해를 받기 쉬웠다.
“이게 3황녀님 애완동물이에요?”
“생각보다 별로 안 무서워 보이는데……?”
“그러게. 지금 배고픈가 봐.”
그런데 귀족 아이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왠지 우리 족제비들을 이미 알고 있던 눈치였다.
언제부터 우리 애들이 이렇게 유명해졌지?
“와, 밥 먹는다!”
“귀여워!”
나를 닮아서 귀여운 우리 족제비들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다들 옹기종기 모여 피오가 테이블 위의 음식을 동내는 걸 구경했다.
어떤 아이들은 용기를 내서 피오를 한 번씩 쓰다듬어 보기도 했다.
바로 그때, 아이들 틈에 껴 있던 메리엘이 피오에게 슬그머니 손을 뻗는 게 보였다.
그런데 그녀는 족제비를 쓰다듬어 주는 게 아니라, 몰래 아프게 꼬리를 잡아당겼다.
-캬악!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랐는지 피오가 이를 드러냈다.
“꺅!”
메리엘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 이 족제비가 갑자기 왜 이래요? 무서워!”
아이들도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족제비의 모습에 겁을 먹은 듯이 뒤로 물러나서 수군거렸다.
-우씨, 깜짝이야. 갑자기 꼬리가 따끔해서 벌한테 쏘인 줄 알았네.
피오는 그리 섬세한 성격이 아니라 아이들이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다시 테이블 위의 간식을 섭렵하는 데 열중했다.
“3황녀님 족제비 너무 무서워요. 지금도 간식 먹다가 갑자기 이빨을 드러내고…… 이러다 갑자기 공격하면 어떡해요?”
메리엘이 옆에서 또 바람잡이 역할을 시작했다.
“안전하게 우리에라도 넣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이들이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나 웅성거렸다.
“역시 사나운 동물이었어…….”
“방금 송곳니가 되게 날카롭지 않았어?”
아이들아, 소곤거리는 소리 다 들린다.
나는 또 거슬리는 짓을 하기 시작한 메리엘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족제비가 화내는 게 당연하지. 원래 밥 먹는데 막 건드리는 거 아니야.”
그때 내 옆에 있던 1황자 유클레드가 콧방귀를 뀌며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도 뭐 먹을 때 건드리면 성질 내잖아. 그거 되게 예의 없는 짓이라고.”
“그건 1황자님 말씀이 맞습니다.”
레예스도 옆에서 유클레드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지? 역시 너, 나랑 말이 좀 통하는 것 같은데.”
유클레드는 레예스의 반응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레예스를 보는 그의 눈에는 호의가 어려 있었다.
아무튼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아이들은 잠잠해졌다.
‘그건 그래’ 하는 의견 반, ‘그래도 무서워’ 하는 의견이 반씩 섞인 것 같았다.
아무튼 분위기는 방금보다 좀 나아졌다.
나는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인 채 메리엘을 보다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야.”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