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09)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09화(109/207)
쿤차는 자신의 다과 모임이 엉망이 되자, 처음엔 망연자실한 것 같았다.
“우, 우리 루벨리오의 귀환 3일 축하 기념 다과 모임이 이 지경이 되다니……!”
아무래도 그는 루벨리오가 황궁에 돌아온 사실에 혼자서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루벨리오는 루벨리오대로 넋이 빠져 있었다.
다과 모임에 참석했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아, 아스포델…… 너, 그, 일단 안 다쳤어?”
그래도 개중에 제일 빠르게 정신을 차린 유클레드가 기특하게도 내 상태를 먼저 확인했다.
아니, 방금 내가 한 짓이 있으니 최소한 ‘너 뭐 잘못 먹었어?’라거나, 아니면 ‘너 미친 거야?’라는 소리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걱정을 해주는군?
“바, 바닥에 깨진 물건이 많으니 움직이지 마세요!”
카루스도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상황을 인지했는지 아직도 경악해서 입을 벌리고 있는 3황자 헬리만과 다른 황족 아이들에게 말했다.
쿤차 역시 조금 전 유클레드의 입에서 나온 내 이름을 듣고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그는 순식간에 시뻘게진 얼굴을 내 쪽으로 홱 소리 나게 돌렸다.
“그래, 당장 저 족제비들부터……!”
“쿤차 아부지 나빠! 우리 애기들 괴롭히지 말라고 해짜나!”
하지만 여긴 내가 버티고 있었다.
나는 희대의 악당을 보는 양 우렁차게 외치며 뻔뻔하게 눈을 동그랗게 부릅떴다.
흥. 이왕 망나니가 되기로 한 거,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지.
그리고 우리 족제비들 뭐. 뭐!
우리가 티 테이블 몇 개를 부숴도 댁은 할 말 없어!
이럴 때는 지난 회차들을 기억하는 게 나뿐인 게 조금 원통했다.
쿤차가 사사건건 내 발목을 잡아댔던 세월이 얼마며, 그런데도 내가 알게 모르게 그를 도와준 횟수가 몇 번인데.
이번 회차에도 검은 마석에 두 번이나 중독된 쿤차를 좋은 마음으로 정화해 주지 않았던가?
눈치 빠른 족제비들은 언제 테이블 위에서 한바탕 현란한 춤사위를 보였냐는 듯이 내 양쪽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어 불쌍한 척 몸을 오들오들 떨어대고 있었다.
만약 전후 사정을 모르고 지금 이 장면만 봤다면, 혼자 성을 내고 있는 쿤차를 악당이라 생각할지도 몰랐다.
“허, 저저! 저 가증스러운 쥐새끼들이!”
단단히 열이 받았는지 쿤차의 얼굴이 점점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저 망할 족제비들은 당분간 우리 궁에 출입 금지다! 버르장머리 없는 짐승들 같으니! 그리고 아스포델, 너는…… 너는!”
그가 족제비들에 이어 나를 삿대질했다.
하지만 쿤차는 강강약약이었다.
그래서 히세리온 출신인 나를 직접 건드리지는 못하고 분노에 차서 파들파들 몸을 떨기만 했다.
그러다가 그가 분을 못 참고 빼액 외친 소리는 참으로 기가 막혔다.
“록샨이 애를 그렇게 싸고돌기만 하니까 이런 짓을 하지!”
그게 댁이 할 소리유?
“아버지, 저…….”
“에잇, 뭣들 하느냐? 당장 여길 치워라!”
“아버지…….”
“오오, 그래! 우리 루벨, 혹시 저 난폭한 족제비들에게 걷어차여서 다친 곳은 없…….”
“꼬르릅…….”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예측불허인 법이다.
이번에는 디오메네 가문에서 보낸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다른 회차들에서보다 기력이 쇠한 루벨리오가 원래 막타용이었던 독 차 없이도 깰꼬닥 쓰러진 것이다.
“루, 루벨리오!”
“루벨!”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평화롭던 화원이 한바탕 뒤집어졌다.
* * *
“독입니다……!”
그리고 불려온 황궁의가 폭탄을 투척했다.
“독이라니! 도대체 우리 루벨이 어디에서 독에 당했단 말이냐!”
당연히 쿤차는 오만 난리를 피웠다.
“지금 당장 독에 당한 것 같지는 않고, 그동안 서서히 소량의 독을 섭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뭐라고? 서서히 소량의 독을 섭취했다니…… 루벨리오는 한동안 황궁을 떠나 있었는데 그, 그럼 설마!”
황궁의의 말에 쿤차는 아연실색했다.
얼굴이 퍼렇게 질린 쿤차가 당장 시종을 불렀다.
“당장 디오메네에 전보를 부쳐! 감히 내 아들을 건드린 놈들의 사지를 찢어 죽일 것이다!”
황궁의는 루벨리오가 중독된 독의 종류가 무엇인지 알아내야 해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루벨리오의 상태를 볼 수 있는 신관, 즉 황궁 안에 있던 모르페우스가 불려왔다.
“독이 아닙니다.”
하지만 모르페우스는 루벨리오를 보자마자 황궁의와 반대되는 의견을 내세웠다.
“디오메네 부근에서 발생하는 풍토병의 일종으로 보입니다.”
“뭐라고, 그럼 중독된 게 아니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병이라 의원님이 오인하신 듯합니다. 저도 데메테아 여신님의 성음을 따르는 신관들이 따로 정리한 의학서를 보고 알았으니, 충분히 그러실 수 있습니다.”
황궁의는 모르페우스의 말에 긴가민가한 것 같았다.
하지만 모르페우스가 신전에서 본 의학서라고 말하자 납득한 얼굴을 했다.
“그, 그렇군요. 그런 풍토병이 있다니, 저도 아직 배움의 길이 먼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신의 사랑을 받는 모르페우스다 보니, 보통의 의원들보다 이런 방면에서 해박하리라는 믿음이 기본적으로 마음에 자리 잡아 있는 것 같았다.
“바깥에 잘 알려지지도 않은 희귀한 병이니 자책하실 것 없습니다.”
나는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태연히 거짓말하는 모르페우스를 황당하게 쳐다봤다.
이 자식 이거,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사기 치는 거 아냐?
루벨리오가 중독된 게 아니라니, 뭐 하러 저런 거짓말을 하지?
혹시 얼마 전의 사건으로 아직 감시당하면서 황궁에 있는 처지인데, 루벨리오가 독살이라도 당했다고 하면 범임을 잡기 전까지 거기에 엮여서 더 피곤해질까 봐 그런 건가?
하긴, 얼마 전에도 쿤차를 검은 마석으로 파절임 되게 만들었던 인성이 어디 가겠냐.
하지만 나로서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루벨리오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지만, 지금 바론을 그의 독살 범인으로 붙잡히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황녀 아스포델>과 지난 회차의 경험으로, 내가 4황자 제르카인의 배신과 흑화를 막기 위해 그를 잘 키우는 것 말고도 미리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사실 독자 모두를 힐링물인 척 속였던 찐 피폐 소설 <황녀 아스포델>에서 병약 미소년 남동생 포지션인 4황자 제르카인이 나중에 흑화할 수밖에 없던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한 가지 있었다.
말하기 좀 그렇긴 한데…….
그것은 바로 먼 훗날에 있을 카루스의 자살이었다.
사실 지금까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았지만, 바론이 루벨리오 독살 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당해 형벌을 받고 오클란테 가문이 망하게 된 뒤 한 번도 빠짐 없이 벌어지는 사건이었다.
카루스는 가문이 몰락하고 형이 죽은 후 엄청난 우울증에 시달렸다.
황궁에서 루벨리오를 볼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리는 건 덤이었다.
그래서 루벨리오가 제르카인을 괴롭혀도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했고, 그러다 결국 제르카인에게 원망의 말을 들은 어느 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런 일을 저지른 바론 오클란테를 카루스와 제르카인하고 계속 붙여놓을 생각은 없었다.
또 제르카인의 흑화와 카루스의 자살을 막기 위해, 이런 짓을 저지른 바론을 계속 잘 먹고 잘살게 내버려 둘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었다.
그러니 이번 일에서만큼은 모르페우스가 하는 짓을 가만히 내버려 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일단 신성력으로 치료하겠습니다. 다만 황자님이 워낙 어리시니 몸에 부담이 가지 않게 몇 번 나눠서 치료해야 할 듯합니다.”
어째서인지 모르페우스는 지금 그가 한 말과 달리, 루벨리오의 머리에 손을 대고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응? 뭐야? 신성력 치료한다며?
그런데 왜 경건한 척하면서 그냥 서 있기만 하는데?
이 자리에서 신성력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나만 이상함을 알아차렸다.
“오늘 하루는 제가 옆에서 황자님의 상태를 살피겠습니다. 내일 아침까지는 최대한 황자님과 접촉을 삼가주십시오.”
그리고 모르페우스가 조용히 시선을 들어서 나를 응시한 순간, 나는 그가 이런 헛짓거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지금 모르페우스는 나를 시험하고 있었다.
‘아니, 저런 멍멍이 자식이……! 진짜 인성 쓰레기네?’
신성력 한 방이면 다 나을 걸 가지고 사기극 한번 제대로 펼치고 있잖아?
설마 내가 나서지 않으면 루벨리오를 계속 저대로 그냥 둘 생각인가?
루벨리오 상태가 지금 굉장히 심각해 보이는데.
아니면 설마…….
‘죽일 생각인 건 아니겠지?’
설마 황궁 안에서 그렇게 대놓고 미친 짓을 할까 싶었지만, 모르페우스는 원래 미친놈이 맞았다.
아무튼 이건 변수를 계산하지 못한 내 실수기도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다과 시간이 끝나자마자 접촉해서 루벨리오를 정화했어야 하는데, 이렇게 바로 쓰러져 버릴 줄은 몰랐지.
하 씨, 그러니까 결국 이건 내 업보인가.
결국 그날 밤 나는 루벨리오를 간병하는 사람들이 잠든 틈을 타서 움직였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 3황녀님.”
그리고 역시 그곳에서 모르페우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