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10)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10화(110/207)
모르페우스의 얼굴을 보자마자 떨떠름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씨, 올 줄 알긴 뭘 올 줄 알아?
내가 네 손바닥 안에 있다는 소리라도 하고 싶은 거냐?
가뜩이나 아버지 시선을 피해서 비밀 통로를 이용해 우리 궁 밖으로 나오느라 개고생했는데 신경질 나게 말이야.
“신관님, 루벨리오 오빠는 좀 어때요? 신관님이 치료해 줘서 이제 안 아파?”
사실은 이 야심한 시간에 내가 여기 혼자 온 것부터 수상한 일이었지만, 일단 시치미를 떼 봤다.
“보시는 대로입니다.”
모르페우스가 그런 나를 보며 입술에 가느다란 미소를 그렸다.
“아, 어두워서 잘 안 보이실 수도 있겠군요. 원하신다면 가까이 와서 살펴보셔도 괜찮습니다.”
창가에 앉아 있어서 그런지, 어둠 속에서도 모르페우스의 하얀 얼굴과 붉은 입술만큼은 달빛에 비쳐 눈에 아주 잘 들어왔다.
“자, 이쪽으로 오십시오, 3황녀님.”
이렇게 보니까 진짜 여기가 악마 소굴 같구먼.
그럼 침대에 누워 있는 루벨리오는 악마의 제물인가?
모르페우스가 있는 곳에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루벨리오의 상태라도 안 살피면 내가 얻는 게 뭐냐.
미운 녀석이긴 하지만 살려주려고 왔으니까 살려줘야지.
그런데 침대로 다가가 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루벨리오를 보자마자 내 이마에 빠지직 혈관이 도드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모르페우스 이 자식, 이거……!
역시 치료 하나도 안 했잖아.
애가 시든 잡초처럼 축 늘어져서 이렇게 비실거리는데 불쌍한 마음도 안 드나?
이렇게 인성 터진 인간이 신관 해도 돼?
이 나라 성직자들, 이대로 괜찮은 겁니까? 예?
“신관님, 루벨리오 오빠 다 시들어서 죽어가잖아.”
짜증이 나서 모르페우스에게 띠꺼운 말투로 말했다.
“지금 어린애 데리고 장난해? 이런 짓 하면 나쁜 신관이야.”
하지만 모르페우스는 뻔뻔했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그게 나쁘다고, 그게!
“2황자님이 정 걱정된다면 3황녀님이 직접 치료해 주시면 되겠군요.”
그리고 모르페우스가 은은하게 미소 지으며 꺼낸 말에 내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하, 진짜 이 자식.’
뭔가 알고 있는 게 맞나 보네.
어쩐지 얼마 전부터 이상하다 싶었다.
지난번에 길에서 마주쳤을 때 날 보던 시선도 뭔가 이상했고, 또 얼마 전에 있었던 성수 물병 사건과 쿤차의 검은 마석 조종 사건도 뭔가 이상했다.
특히 가장 마지막의 쿤차 사건은 정말 다른 목적 없이 순수하게 내 반응을 떠보려고 그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 신관님이 안 하고 나한테 치료하래? 신관님은 할 줄 몰라? 그럼 무능한 신관님이네.”
내 도발하는 듯한 말에 모르페우스는 발끈하지 않았다.
“황녀님에 비하면 그럴지도 모르지요.”
오히려 그는 내 말에 긍정하는 듯한 반응을 보여 나를 질겁하게 만들었다.
“3황녀님, 사실 탄신일 날 저는 의식을 잃지 않았습니다.”
뭐요?
“육신은 한계에 달해 쓰러졌지만 정신만은 멀쩡했지요.”
뭣이요?
“작고 어린 황녀님이 그 정체 모를 괴한을 당당하게 쫓아내는 모습은 참 인상 깊었습니다.”
뭣이라고!
모르페우스의 말이 이어질수록 나도 뒤통수를 한 대씩 쾅쾅 얻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아, 아니,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하긴 했지!
그런데 설마 그때 몸만 못 움직이고 정신은 멀쩡히 깨어 있는 상태였다니!
그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다는 거야?
“신관님이 뭔가 착각한 거 아냐? 그때 신관님 많이 아팠잖아!”
다시 한번 잡아떼 봤지만 사실 소용없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모르페우스가 기분 나쁘게 입술 끝을 길게 늘이며 ‘그걸 믿겠냐?’ 하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뒤 그가 침대에 누운 루벨리오를 손으로 가리켰다.
“원하신다면 2황자님을 치료하십시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습니다.”
하, 진짜…….
나도 그쯤 해서 그냥 더 연기하는 걸 그만뒀다.
어차피 여기까지 와서 더 시치미 떼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어린애인 척 시늉하던 걸 그만두고 파하,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창가 앞에 서 있는 모르페우스를 싸늘한 눈으로 응시했다.
이놈이 도대체 뭘 위해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루벨리오에게 무슨 짓을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루벨리오의 상태를 보니, 실제로 지금까지 그를 나쁜 의도로 건드리지도 않은 것 같았고.
여차하면 그냥 여기서 모르페우스를 처리해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왠지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은 기이한 직감이 들었다.
“너, 일단 루벨리오부터 치료하고 얘기하자.”
나는 썩은 시금치처럼 늘어져 있는 루벨리오에게 손을 뻗었다.
파앗!
어두운 방 안에 곧 환한 빛이 반짝였다.
강한 신성력이 나한테서 흘러나와 루벨리오에게 스몄다.
잠시 후 빛이 꺼진 자리에는 조금 전과 달리 편안한 얼굴을 한 채 고른 숨소리를 내는 루벨리오가 있었다.
하, 이렇게 간단한 걸 안 해서 애가 시름시름 죽어가는 걸 방치하기만 하다니.
다시 한번 속으로 모르페우스의 인성을 욕했다.
아무튼 루벨리오의 문제를 해결했으니 다음엔 네 차례다!
나는 짜증스럽게 얼굴을 구긴 채 모르페우스를 휙 돌아봤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허억……!”
얘 뭐, 뭐야!
지금 저 녀석 눈에서 나오는 거 도대체 뭐야……?!
모르페우스의 창백한 얼굴을 타고 흐르는 투명한 물줄기가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진짜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펄쩍 뛰어 뒤로 물러났다.
눈에서 콧물이 날 리는 없고!
그럼 저거, 설마 진짜 눈물이야?
“시, 신관님, 너 우, 울어? 뭐야, 진짜 울어……?!”
오죽 당황했으면 입 밖으로 내뱉은 모르페우스의 호칭도 근본 없이 엉망으로 섞여 있었다.
빙의 3회차 인생에서 이 최종 흑막 놈이 이렇게 옥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건 처음 봤다.
하마터면 내 두 눈을 찔러서 이게 꿈이 아니라 진짜 현실이 맞는지 확인할 뻔했다.
만약 그 순간 모르페우스가 창가 앞에서 비틀거리며 움직이지만 않았다면 진짜 눈 찌르기를 실행에 옮겼을지도 몰랐다.
모르페우스가 나한테 가까이 다가오는 걸 보고,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 나를 해치우려는 건가 싶었다.
그래서 나도 언제든 신성력을 사용할 준비를 했다.
하지만 모르페우스가 한 일은, 나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내 앞에 무릎을 꿇는 거였다.
“3황녀님.”
엄마, 진짜 미쳤나 봐, 얘.
“다시, 다시 한번만 신성력을 사용해 보실 수 없겠습니까?”
가까이에서 본 모르페우스의 얼굴은 멀리서 봤을 때보다 눈물로 더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그 상태에서 눈만 맹렬한 빛으로 번들거리고 있어 살짝 소름이 돋았다.
“왜, 왜 이래, 신관님? 너 돌았어?”
“처음에는 제가 착각한 것인가 싶었으나 역시 아니었습니다.”
모르페우스의 얼굴에는 광기와 환희가 뒤섞여 있었다.
인생 3회차 동안 늘 싸늘한 얼굴을 한 것만 보다가, 이런 낯선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눈에 담으니 또 적응이 안 돼서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이어서 귓가에 울린 모르페우스의 목소리에도 격양된 감정이 담겨 있었다.
“황녀님의 신성력이…… 아니, 오직 황녀님의 신성력만이 제 죽어가는 육신에 숨을 불어넣었습니다.”
지금 내가 많이 경황이 없고 당황한 상태라 그런지, 모르페우스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머릿속에 바로바로 입력되지가 않았다.
내 신성력이 뭐가 어쩌고 저째요?
죽어가는 육신에 숨을, 뭐요?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지난번 축하연 때도, 황녀님이 신성력을 사용해 침입자를 몰아냈었지요. 그때도 황녀님의 신성력을 가까이에서 받은 직후, 제 오랜 병에 처음으로 차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금도…….”
아, 그러고 보니까 그날 모르페우스하고 가까이 접촉했을 때 그의 몸에서 이상한 기운을 느꼈었지.
직접 만져보면 그게 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신관복이 워낙 금욕적인 복장이라 드러난 맨살이 드물어서 결국 확인해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게 병이라고?
그래서 모르페우스 얼굴이 창백했던 건가?
아니, 그보다 다른 방법은 다 소용이 없었는데 내 신성력에만 모르페우스의 상태가 완화되었다는 건 또 무슨 소리야?
그렇게 내 정신이 저 멀리, 은하계로 날아가고 있을 때 모르페우스가 갑자기 내 손을 덥석 잡았다.
“황녀님, 그러니 지금 제게 다시 한번만 신성력을 사용해 주십시오.”
옴마, 이 아저씨가 진짜 왜 이래요?
“방금 2황자님을 치료하실 때 제가 느낀 게 정말인지, 이번에는 제 몸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달빛에 촉촉하게 젖은 남자의 황금색 눈이 집요한 광채를 띤 채 번쩍였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