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12)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12화(112/207)
이번에는 제법 협박 같은 협박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겁먹을 줄 아나?
“신관님, 방금 말로는 알았다고 했잖아. 그거 나한테 사기 치려고 거짓말한 거였어? 진짜 나쁜 신관이네.”
눈을 가늘게 뜨고 내 앞에 있는 사기꾼 신관을 비난했다.
“그리고 좋은 말로 안 하면 어떻게 할 건데? 쿤차 아버지한테 사용한 방법이라도 쓰려는 거야? 나한테는 신관님 수법 안 통해.”
모르페우스를 향해 들으란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신관님이야말로 내 기분이 상하면 내가 어떻게 할 줄 알고 이런 식으로 비협조적으로 굴어?”
그래 봤자 이미 모르페우스의 신성력 보호막이 약해졌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 또 일전에는 그가 쓰러진 모습까지 직접 목격했다.
그래서 모르페우스의 협박을 받아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관님,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나는 성령들을 불렀다.
신성한 기운이 금방 방 안에 가득 찼다.
내 든든한 지원군들을 뒤에 두고 위풍당당하게 말했다.
“지금 내가 너보다 더 세.”
모르페우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일전의 사건 때 정말 의식은 그대로였다면 내 성력을 경험한 기억이 있을 텐데도 그는 말문이 막힌 눈치였다.
사실 지금 내 성력은 이전 회차 때의 전성기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랐다.
하지만 지금은 모르페우스도 내가 봤던 최종 악역의 모습보다 한참은 어리고 미숙했다.
그래서인지 현재의 내가 봤을 때, 지금은 모르페우스와 나 둘 다 고만고만한 능력으로 도토리 키재기를 하는 느낌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별것도 아닌 걸로 깝치려니 좀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는 거다.
하지만 도토리 키재기든 뭐든 어떠냐?
일단 내가 이놈보다 우위에 있으니까 상관없어!
“그러니까 신관님은 나 못 건드려.”
이번에는 내가 모르페우스를 협박했다.
“그래도 나한테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면, 신관님이 원하는 건 절대 안 들어줄 거야.”
모르페우스의 황금안은 앞에 있는 사람의 오금을 저리게 할 정도로 냉혹하고 잔인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자신의 말을 순순히 따르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해서든 굴복시키고 싶어 하는 게 한눈에 보였다.
신관복 소매 밑으로 드러난 그의 손도 울컥하는 감정을 삭이듯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내 예상대로, 모르페우스는 말로만 협박했을 뿐 나를 쉽게 건드리지 못했다.
“……보면 볼수록 이상하군요. 지금 3황녀님의 행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나이대 어린애 같지가 않습니다.”
한순간 뜨끔했다.
하지만 팔짱을 낀 채 모르페우스에게 당당하게 말했다.
“난 데메테아 여신의 선택을 받은 성녀니까 당연하지.”
그러자 모르페우스의 입매가 비틀렸다.
“성녀. 성녀라고…….”
날카로운 시선이 얼마 동안 또 나를 꿰뚫을 듯이 직시했다.
“……그래요, 좋습니다.”
그러다 이내, 모르페우스가 여전히 나를 첨예한 눈으로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하면 3황녀님도 제가 원하는 것을 반드시 들어주시겠노라 약조하시지요.”
“난 신관님처럼 나쁜 사람 아니어서, 그런 거 안 해도 약속 잘 지켜.”
“잘 되었군요. 그럼 3황녀님도 여기에 서명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모르페우스가 서슬 퍼런 얼굴로 꺼내 든 건, 조금 전 내가 그에게 내민 것과 동일한 신성력 계약서였다.
하, 이놈이 나랑 딜을 하려고 하네?
“신관님, 난 이런 거 안 해도 손해 볼 게 하나도 없어.”
“그럴까요? 만약 3황녀님이 거절하시면 전 지금 이 황궁 안에 있는 사람들을 전부 가만히 두지 않을 겁니다.”
뭐시라고? 이놈이 또 악당 짓 하네.
구겨진 얼굴로 망언을 지껄인 모르페우스를 노려봤다.
“내가 그렇게 둘 것 같아?”
“물론 저를 막으려 하시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제 몸이 성치 않다고 한들, 3황녀님이 소중히 여기시는 사람을 한 명도 해치우지 못하고 당하리란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모르페우스의 입술에 사악한 미소가 번져 들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저도 손해고 3황녀님도 손해시겠지요.”
와, 이 자식, 이거…….
꽤 그럴듯한 협박을 하네.
과연 모르페우스의 말대로이긴 했다.
지금 당장 내가 모르페우스를 죽일 생각으로 덤벼도, 만약 이놈이 반격하면 아무런 희생 없이 그걸 완벽히 막아낼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자,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어서 제 목에 목줄을 채우십시오.”
모르페우스가 인상을 쓰고 있는 나를 보며 살살 꼬드기듯이 속삭였다.
그런데 목줄이라니 단어 선택이 좀…… 그렇지 않냐, 모르페우스야?
이거 장르 육아물이야!
게다가 넌 이미 생긴 것부터가 전연령가 수위에 걸릴 것처럼 퇴폐적이어서, 그런 대사까지 치면 네가 등장하는 장면만 장르 경계선이 위험해진다고.
나는 떨떠름해진 얼굴로 모르페우스를 쳐다봤다.
어쨌거나, 과정이 좀 이상해지긴 했지만 이건 분명 내가 노렸던 상황이 맞긴 했다.
거래든 계약이든 뭐든 간에, 이야기의 최종 흑막인 모르페우스를 내 손아귀에 넣을 수만 있다면 나로서는 손해 볼 게 없는 일이었으니까.
결국 나는 모르페우스를 찡그린 눈으로 지그시 보다가 큰마음 먹고 봐준다는 듯이 말했다.
“좋아. 대신 내용은 좀 더 세부적으로 정해.”
“제게만 약조를 강요하셨을 때와 사뭇 다른 태도시군요.”
“시끄러워. 내가 갑이니까 당연한 거 아냐?”
그렇게 해서 어쩌다 보니 모르페우스와 나는 신성력 계약서로 엮인 끈끈한 관계가 되고 말았다.
빙의 3회차 만에 처음으로 이 세계의 최종 흑막을 손에 넣는 데 성공한,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쾌거였다.
응? 그런데 잠깐.
그럼 이제 세계 파멸 플래그는 뿌리 뽑았으니, 해피 엔딩을 위한 목적은 달성되었다고 봐도 되는 거 아닌가?
side
추락한 열세 번째 신의 사도들
“이제야 잡았구나, 이 괘씸한 놈!”
짙푸른 그림자로 물든 숲.
그 안에 검은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회색빛 머리칼을 가진 남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회색 머리의 남자 역시 검은 로브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 앞에 넙죽 엎드려 몸을 달달 떨면서 용서를 구걸했다.
“죄, 죄송합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일부러 몸을 숨긴 게 아니라, 황성에서 생각 외의 큰 타격을 입는 바람에 본체인 육신이 망가져서 지금까지 연락을 취하지 못한 겁니다. 자, 보십시오!”
그가 로브의 소매를 끌어당겨 팔을 드러냈다.
다른 사람들은 검게 썩어 가는 남자의 팔을 보며 역겹다는 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부디 자비를…….”
“뚫린 입이라고 잘도 뻔뻔스러운 변명을 나불거리는구나!”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임무에 실패했으면 차라리 그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었어야지! 그러지도 못한 주제에, 호출용 마력석까지 라 벨리카의 충견에게 빼앗긴 채로 우리에게 연락도 없이 혼자만 몸을 숨기다니!”
얼마 전의 일을 떠올리자 또 분노가 치밀었는지, 그들은 바드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면서 사납게 뇌까렸다.
“네놈 때문에 우리가 그놈에게 몇이나 당했는지 아느냐?!”
지은 죄가 있는 회색 머리 남자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지금 검은 로브를 입은 사람들 앞에 무릎 꿇려진 남자는, 라 벨리카의 탄신연 날 황궁에 들어가 모르페우스와 아스포델을 공격한 바로 그 침입자였다.
그날 황궁 안으로 들어갈 때는 그가 이용하는 다른 인형들과 마찬가지로 죽은 육신을 껍데기로 입고 있었다.
한데 예상치 못하게 어린 황녀의 신성력에 당하면서 황성 밖에 숨겨둔 이 진짜 육신에도 타격을 입었다.
그래서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에서, 임무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위쪽에 소식을 알리지도 못했다.
그러는 사이 그날 그의 입에 물려 있던 지원 요청용 호출석을 빼앗은 라 벨리카 황제의 네 번째 부군 록샨이 비겁한 수를 썼다.
바로 빼앗은 호출석으로 자신인 양 동료들을 불러낸 것이다.
록샨 히세리온은 과연 로잔티나 최고의 신수 소환사이자 마수 사냥꾼이라는 명성이 헛되지 않을 정도로 강했다.
그래서 동료들의 피해가 상당했다고 방금 전해 들었다.
더군다나 그중 둘은 록샨에게 붙잡히기까지 했다고 하니, 이렇듯 검은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남자를 대하는 태도가 살벌할 만도 했다.
“이놈은 이제 폐기한다. 당장 끌고 가서 처리해.”
“아, 안 돼! 제발 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그 썩어 가는 육신으로 네가 뭘 할 수 있단 말이냐? 이번 죄가 아니었어도 어차피 넌 폐기될 운명이었다. 버러지 같은 네게 두 번째 인생을 살 기회를 주셨던 성좌님과 그분의 신성한 피를 이은 유일한 후손이신 이카르테 님께 마음 깊이 감사하며 재로 돌아가라.”
결국 회색 머리 남자는 다른 검은 로브를 입은 사람들에게 질질 끌려갔다.
검은 로브를 입은 사람 중에서도 가장 높은 직책을 가진 노인이 마뜩잖게 혀를 찼다.
“이카르테 님이 기껏 우리를 믿고 힘을 빌려주셨거늘, 저런 반편이 같은 놈이 쓸 만한 그릇 하나 제대로 구해 오지 못해 일을 다 망쳐 놓을 줄이야.”
일러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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