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2)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2화(12/207)
Chapter 5
어쩌다 보니 대어들을 낚아버렸다
‘와, 새삼스럽지만 둘이 같이 있으니까 존재감 엄청나네.’
조식 후, 둘이 오붓하게 산책이라도 다녀온 걸까?
거대한 신수를 타고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후광을 입어 한결 더 장엄하고 멋져 보였다.
그런데 그들도 우리를 발견했는지, 조금 앞서 있던 흰 신수가 먼저 이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쿠웅!
곧 육중한 신수들이 차례로 바닥에 내려앉았다.
라 벨리카 황제 어머니가 타고 있는 건 늑대와 비슷한 생김새에 날개가 달린 신수 티타라, 록샨 아버지가 타고 있는 건 뿔 달린 푸른 새 형태인 신수 뮤리엔이었다.
마가렛이 나를 안은 채 무릎을 굽혀 인사했다.
“로잔티나의 지고한 태양께 데메테아의 영원한 빛이 머물기를.”
“고개를 들라.”
어머니, 라 벨리카 황제가 마가렛의 인사를 받으며 신수에서 내려섰다.
위압적인 기운이 단숨에 주변에 내리깔렸다.
“아델, 산책을 나왔나 보구나.”
아버지가 은은한 청명함을 흩뿌리며 그 뒤를 따랐다.
이렇게 보니 그냥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두 사람은 진짜 태양과 달 같았다.
그런데 띠용.
이제 보니 어머님의 위용을 한결 더해 주는 장식품이 하나 딸려 있었다.
똑같은 흰색이라 눈에 띄지 않았는데, 신수에서 내려선 어머니의 손에 불쌍하게 축 늘어진 커다란 마수의 몸이 들려 있었던 것이다.
“폐, 폐하. 한데 이것은…….”
마가렛도 당황했는지, 어머니와 마수를 번갈아 쳐다보며 두 눈을 흔들었다.
어머니는 심드렁하게 느껴지기까지 한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놈이 흰 괴조의 우두머리인 것 같더군.”
허걱.
단순히 조식 후 바람을 쐬러 나간 게 아니라 흰 괴조 토벌을 나간 거였나?
닭 모가지라도 비틀고 온 양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저 거대한 몸집과 화려한 붉은 갈기를 봤을 때 라 벨리카 황제의 말처럼 저놈이 흰 괴조들의 왕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라 벨리카 어머니가 그것을 한 손으로 워낙 가뿐히 들고 있어서, 하마터면 진짜 마수가 아니라 마수 모양 솜인형쯤으로 착각할 뻔했다.
“그, 그러셨군요.”
“그간 귀찮아서 손대지 않고 내버려 둔 것들이 주제를 모르고 거슬리게 구니 씨를 말려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지당한 말씀입니다, 폐하.”
날벌레라도 처리한 양 말하는 어머니의 뒤에서 아버지가 청초하게 고개를 끄덕여 동조했다.
여, 역시 우리 어머님, 아버님.
흰 괴조 멸종을 예고한 게 바로 어제인데, 엄청나게 빠른 행동력이었다.
그때 갑자기 어머니의 눈길이 나를 향했다.
난 불쌍하게 모가지를 축 늘어뜨린 거대 닭둘기…… 아니, 흰 괴조를 멍하니 보다가 찌를 듯한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역시 마수를 무서워하지 않는군.”
태양 빛처럼 강렬한 눈으로 나를 관통할 듯이 주시하던 어머니가 흐음, 소리를 내며 잠깐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다 그녀가 내게 사냥해 온 흰 괴조를 불쑥 내밀었다.
“가질 테냐?”
“엥?”
“오다 주웠다.”
“……!”
갑자기 어머님 입에서 광공 대사가 튀어나와서 경악해 입을 벌렸다.
“원래는 수호석 앞에 걸어 두려던 것이지만 갖고 싶다면 주지.”
난 귀를 의심했지만 어머님은 빈말이 아닌 것 같았다.
“록샨의 아이라면 이런 걸 좋아할 듯한데.”
“폐하…….”
졸지에 취향을 의심받은 아버지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흰 수정에 넣어 보관하면 오래 두고 감상할 수 있을 터. 놀이방 구석에 장식품 삼아 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마가렛은 어머니의 말을 상상했는지 티는 내지 못하고 몸을 작게 흠칫거렸다.
“아니면 실용파인가? 하면 가죽을 벗겨 망토를 만들어도 괜찮을 테지.”
어머니는 길이를 재 보듯이 손에 든 마수의 시신을 위아래로 훑었다.
나는 입을 멍청히 벌리고 그런 어머니를 쳐다봤다.
그러다 그녀가 다시 나한테 눈길을 돌린 순간.
“우, 우와……!”
난 본능적으로 손뼉을 마구 치며 어머니를 찬사했다.
“와, 와아, 멋지다! 마수 너무 멋져! 마수 너무 좋아! 진짜 아델이 가져도 돼요? 아델, 마수 진짜 진짜 좋아하는데……!”
물론 무심시크한 우리 어머니는 내 찬양에도 눈썹 한 올 까딱하지 않았다.
“너무, 너무 좋아요! 어마마마, 최고! 어마마마 멋있어! 어마마마, 고마씀미다!”
나는 식은땀이 나는 걸 느끼며 더 필사적으로 좋아하는 척했다.
어머니의 얼굴에서는 쉽사리 감정적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는지, 그녀가 또다시 드문 호의를 보였다.
“가죽만 벗길 거라면 옮기기 번거로울 테니 지금 내가 분해해 주지.”
“아, 아뇨! 통으로……! 그냥 지금 모양 그대로! 가져가고 싶어요!”
제, 젠장.
눈앞에서 현란한 마수 해체 쇼를 라이브로 보는 건 절대 사양이다.
“황녀님, 그냥 가죽만 벗겨서 가져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아냐, 큰 게 더 멋져!”
그래서 필사적으로 닭둘기 마수의 원형 보존을 외치자 어머니는 그렇게 하라는 듯이 고개를 까딱였다.
“모처럼 크게 손상된 부위 없이 사냥했으니 이대로 두는 것도 괜찮지.”
“폐하, 제게 주시면 흠 하나 없이 궁까지 옮기겠습니다.”
“그래, 가져가도록.”
아버지가 앞으로 나서 두 손으로 공손히 흰 괴조를 받아 들었다.
“폐하의 성총에 감사드립니다.”
“별말을 다 하는군.”
아버지의 인사를 들은 어머니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곧 나른히 움직인 손이 백옥 같은 아버지의 턱을 들어 올렸다.
“우리 사이에 그런 딱딱한 감사 인사는 필요 없다.”
와아…….
우리 어머님은 역시 알파인 게 분명하다.
맞아, 이 맛에 아스포델의 부모님 세대 이야기를 파는 독자도 많았지.
별것 아닌 말이어도 어머님 입에서 나오면 왠지 멋있는 것 같다.
나도 기억했다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써먹어야지.
‘칫, 물론 그런 기회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폐하…….”
어머니의 말이 간지럽게 들린 게 내 귀만은 아니었는지, 아버지가 귓불을 조금 붉히며 입을 다물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청순계 냉미남이다…….
특히 외모는 눈 오는 겨울날 차게 흐르는 살얼음 낀 물처럼 청명하고 시렸다.
옷깃 한 번 스쳐도 그 자리에 서리를 피워낼 것 같은 고고한 미인이 하얀 피부를 이렇게 붉게 물들이며 쑥스러워하는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물론 보는 이에는 나도 포함되었다.
딸이 가지기에는 좀 발랑 까진 마음이었지만 아름다운 신의 예술작품 앞에서 그런 게 다 무슨 상관이리오.
“오전부터 마수 둥지에 다녀와 피곤할 텐데 그만 물러가서 쉬도록.”
어머니는 다시 한번 날 힐끗 내려다본 뒤 신수를 데리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나는 약간 넋이 나간 채 아버지의 손에 들린 흰 괴조를 내려다봤다.
방금 뭐가 지나간 거지?
그 냉정 무심한 라 벨리카 황제 어머님이 지금 나한테 그 유명한 ‘오다 주웠다’ 대사를 치고 간 건가?
아니, 아니!
하지만 어머님!
그동안 제가 오만 수치심을 다 던져버리고 있는 아양, 없는 아양을 다 떨어대도 저런 대사를 쏴주신 적은 한 번도 없었잖아요?
‘……혹시 내가 마수를 안 무서워하는 게 마음에 들었나?’
그러고 보면 어제오늘, 벌써 두 번이나 내 앞에서 저런 얘기를 했었지.
‘그럼 혹시 지금까지 내가 몰랐던 어머님의 숨은 공략법이…….’
“아델, 아빠가 미안하구나.”
내가 그렇게 한참 넋이 나가 있을 때, 옆에 있던 아버지가 뜬금없는 사과를 해 왔다.
“우리 딸이 다섯 살이 되도록 취향 하나 제대로 몰랐다니.”
어쩐지 그는 약간 시무룩해져 있었다.
이어진 아버지의 말을 듣고 그만 뒷골이 저릿해지고 말았다.
“아델이 마수를 그렇게 열렬히 좋아할 줄 알았으면 이번 생일 선물 후보로도 진지하게 고심해 보는 건데.”
아냐, 그거 아냐……!
“하지만 너무 아쉬워 말렴. 다음엔 이 아빠가 꼭 우리 딸에게 가장 어울릴 근사한 마수를 준비하마.”
아냐, 그거 아니라고!
“어디 보자, 우리 아델 취향에 맞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흰 괴조가 마음에 든다면 비슷한 흰 마수가 좋을까, 아니면 날개가 달린 마수가 좋을까. 아니면 다양성을 위해 아예 겉모습이 완전히 다른 종이 더 나을까?”
내가 아니라는 시선을 보내든 말든 아버지는 의욕이 샘솟는 듯 대륙 각지의 마수 서식지를 진지하게 곱씹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꼬리 털이 탐스러운 마라커스도 괜찮은데…….”
망할…….
아무래도 이번 생에서 나는 본의 아니게 마수 학살자의 칭호를 얻게 될지도 모르겠다.
* * *
라 벨리카 어머님이 주고 간 흰 괴조는 결국 그녀의 말처럼 수정 안에 박제될 운명에 처했다.
괴조만 한 크기의 수정을 당장 구하기 어려워 일단은 부패되지 않게 냉동 마석을 사용했는데, 그동안 궁인들은 황제의 하사품인 괴조를 때 빼고 광내느라 바빠졌다.
난 허브 화원에서 주워 온 검은 마석을 내 방 깊숙이 숨겨뒀다.
검은 마석은 이제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회색으로 변해 있었다.
내 손에 들어온 순간 사기가 약간 정화되었기 때문이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