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21)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21화(121/207)
“황녀님, 산책은 즐겁게 다녀오셨어요?”
“응, 오늘 날씨가 맑아서 그런지 바람도 기분 좋더라.”
“아이참, 하지만 아까 만져드린 머리가 헝클어졌잖아요.”
“그래? 괜찮아, 난 그래도 예뻐.”
“어머나, 그건 당연하지요! 그래도 머리는 제가 빨리 다시 정리해 드릴게요.”
마가렛은 내 잘난 척하는 듯한 말에도 웃으며 맞장구를 쳐 줬다.
하지만 머리가 산발이어도 내가 제일 예쁘다면서, 왜 손은 이렇게 열심히 움직이는 건데……?
문득 나는 방금 떠나온 정원에서 본 두 명의 소년을 생각했다.
‘그 녀석들……. 쓸데없이 왜 그렇게까지 예쁜 거지?’
아스포델이 여주인공인데, 그럼 내가 세계관 최강 미인이어야 하는 거 아니야?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녀석들보다 별로라는 건 아니지만!
그런데 솔직히 오늘은 좀 위기감을 느끼고 말았다.
나는 입술을 불만스럽게 삐죽이며 제르카인의 신성 의식이 시작될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아스포델!”
그런데 눈부시도록 새하얀 회랑을 걷던 중에 갑자기 뒤에서 날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핫, 이 목소리는?’
내가 경계심을 느끼며 고개를 홱 돌리자마자, 누가 내 몸을 가볍게 훌쩍 들어 올렸다.
여름 햇살처럼 반짝이는 금빛 머리칼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채 민들레 꽃잎처럼 살랑살랑 흔들리는 게 보였다.
생기로 가득 찬 녹색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얼굴을 와그작 구겼고, 건방지게 나를 끌어안은 소년은 입꼬리를 올려 맑고 청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제르카인의 신성 의식을 보러 가던 길이지? 같이 가자.”
“유클레드 오빠, 내가 소리도 없이 접근하지 말라고 했니, 안 했니?”
“아야야, 그래서 멀리서 먼저 불렀잖아.”
“그게 멀리야? 멀리냐고?”
못마땅함에 유클레드의 턱을 이마로 쿵 하고 박자, 녀석이 아프다고 짐짓 엄살을 부렸다.
어쩐지 녀석의 목소리가 울린 지점이 제법 가깝더라니, 이번에도 나를 발견한 뒤 일부러 기척을 죽이고 가까이 걸어온 모양이다.
수행인들까지 저 뒤에 떼어놓고 살금살금 다가오다니. 하여간, 할 짓도 없는 놈이었다.
나는 번듯하게 차려입어 오늘따라 더욱 왕자님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잘생긴 소년을 불만스럽게 올려다보았다.
1황자 유클레드는 지금 열네 살이었는데,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아 사실상 열다섯 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는 동년배 아이 중에서도 발육이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이차성징이 확실히 나타나는 나이가 되면서부터는 어깨와 가슴팍도 제법 넓게 벌어지고(물론 청년인 조슈아만큼은 아니지만), 키도 내가 고개를 엄청나게 꺾어 들어야 할 정도로 커졌다(물론 조슈아만큼은 아니지만!).
그뿐 아니라 이목구비도 한결 뚜렷해진 데다 얼굴선도 슬슬 굵어져서, 이제는 완전히 듬직한 첫째 오빠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래봤자 내 눈에는 아직도 한참 더 자라야 하는 꼬맹이이긴 하다만…….’
어쨌든 이 건방진 녀석은 어릴 때도 어른인 척 거들먹거리는 걸 좋아하더니, 머리가 조금 더 커진 지금은 더더욱 나를 땅꼬마 취급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특히 2년 전에 처음 제 부친과 떨어져 독립된 궁을 가지게 되었을 때부터는 자기가 진짜 어른이라도 된 것처럼 굴어서 나를 짜증스럽게 만들었다.
틈만 나면 나를 번쩍번쩍 들어 올려서 안고 업고, 쓸데없이 챙겨주려고 하고, 하여튼 오만 건방진 짓거리를 다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아스포델, 너 아침밥은 먹었어? 왜 어제보다 더 작아진 것 같지?”
“한 대 더 맞을래?”
마뜩잖은 일이지만, 다섯 살과 아홉 살보다는 열 살과 열네 살의 신체적 차이가 더 컸다.
게다가 이 녀석은 도대체 삼시세끼 뭘 먹어대는지, 지금도 나날이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났다.
그동안 먹은 밥공기 수의 한계로, 막내인 제르카인을 제외하고는 어쩔 수 없이 내 키나 체구가 남매 중 제일 작았는데 나는 그게 아주 자존심이 상했다.
지금도 나를 안아 든 유클레드의 모습은 이런 짓을 골백번은 해왔던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고 안정적이었다.
그러니 이 녀석이 그동안 얼마나 나를 이리 들고 저리 들고, 난리를 쳐댔는지 알겠는가?
‘쳇, 도대체 나는 언제 이만큼 자라는 거지?’
한때는 삐뚤어진 마음으로, 살이라도 찌워서 유클레드 녀석이 나를 이렇게 번쩍번쩍 들어 올리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살을 찌워봤자 유클레드는 별로 무거워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동글동글한 게 귀엽다고 자꾸 달라붙어 다른 의미로 한결 더 성가셔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글동글한 게 좋으면 헬리만이나 가지고 놀 것이지, 아주 어이가 없었다.
“호호. 우리 황녀님, 오늘도 1황자님과 사이가 참 좋으시네요. 두 분의 화기애애한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아요.”
마가렛과 다른 궁인들은 내 굴욕감도 모르고, 이런 소리나 하면서 유클레드와 나를 흐뭇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뻔한 소리를 하는군. 당연하지, 아스포델은 우리 남매 중에 나하고 제일 친한데.”
나는 마가렛의 말에 은근히 만족스러워하면서 아닌 척 오만한 얼굴을 하는 유클레드를 뱁새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보다 아스포델, 신성 의식이 시작하기 전에 제르카인을 먼저 보러 갈 거지? 그럼 빨리 서두르자.”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유클레드를 떼어내는 건 그냥 일찌감치 포기했다.
“참나, 그렇게 내 시동 노릇을 하고 싶다면 특별히 허락해 주지. 자, 가라, 유클레드!”
어째서인지 유클레드는 나이를 먹을수록 낯짝이 두꺼워져서, 이제 내가 아무리 성질을 부려도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언젠가부터 내 앞에서만큼은 꽤 제멋대로 구는 편이었다.
어떨 때는 내가 이 녀석의 고집에 지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래서 ‘이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이 녀석을 부려 먹는 것처럼 행동해 주마!’ 하는 생각에 이번에도 포X몬 부리듯이 호기롭게 외쳤다.
그러자 유클레드가 내 머리 위에서 듣기 좋은 낮은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좋아. 가시는 곳까지 편하게 모시겠습니다, 3황녀님.”
“오냐.”
“그럼 지금 당장 출발할까요?”
“그래, 출발해 봐라!”
5년이란 세월은 짧지만은 않았다.
고지식하고 재미없던 놈이 이렇게 넉살 좋게 웃으면서 나한테 맞장구를 쳐줄 수 있게 된 것도 장족의 발전이라 할 만했다.
내 전용 애마가 되어 놓고도 이렇게 마냥 좋아하다니, 알고 보니 유클레드에게는 하인 근성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자청해서 내 수발을 들 때부터 알아봤다.
“그럼 꽉 붙잡아!”
“그으래…… 으학!”
내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유클레드가 순식간에 자리를 박차고 회랑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속도가 어마어마해서 하마터면 혀를 씹을 뻔했다.
“앗, 황자님, 황녀님! 같이 가요오오오오오…….”
저 뒤에서 우리를 부르는 수행인들의 목소리가 하염없이 작아져 갔다.
아, 아니, 이 녀석은 진짜 뭘 먹었길래 이렇게 치타같이 빠른 거지?
물론 신수도 즐겨 타고 다니는 내가 이 정도에 당황할 이유는 없었지만, 아직 어린 인간 소년치고는 확실히 놀라운 신체 능력이었다.
게임으로 치면 꼭 힘민체(힘, 민첩, 체력)에 처음부터 스탯을 몰빵한 탱커 캐릭터 같다고 해야 하나?
고작 열네 살에 열 살짜리 여동생을 안고 이렇게 숨도 헐떡이지 않다니, 역시 육아물 여주인공의 오빠!
아무리 어려도 자기 여동생 하나 가뿐히 안고 뛸 체력은 있어야지, 암!
“뭐야, 벌써 다 왔네. 여기서부터는 뛰면 안 되니까 천천히 걸어가자.”
유클레드에게는 신수와는 또 다른 스릴과 안정감이 있어서, 나는 흡족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
“로잔티나의 별들을 뵙습니다.”
“아, 됐어. 아스포델은 시끄러운 걸 싫어하니 다들 그만 물러가.”
유클레드가 내 부하 1호다운 위엄 있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인사하러 다가오는 사람들을 물렸다.
궁인과 귀족들은 익숙한 듯이 입을 다물고 재빨리 물러났다. 그래서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일 없이 신속하게 전당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우리 유클레드 오빠, 전에는 몰랐는데 볼수록 은근히 쓸 만하단 말이야?”
나는 새삼스럽게 유클레드가 기특해져서, 큰마음 먹고 칭찬하듯이 그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확실히 이 녀석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가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돼서 편했다.
“아스포델 너, 내가 오빤데 가끔 너무 제르카인을 대하듯이 하는 거 아니야?”
유클레드는 투덜거렸지만, 기껏 단정하게 손질한 머리카락을 내가 엉망으로 만드는데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앗, 그런데 저기 우리 아버지를 발견했다!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완전 소중하고 완전 아리따운 우리 아버지가 다른 아버지들 사이에 섞여 고아하게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록샨, 요즘 남부 해상의 물길이 심상찮다고 들었네.”
“예, 전에 없이 물살이 거친 날이 많다더군요.”
오늘 황제의 부군들은 국무 회의에 참석한 뒤, 신성 의식이 거행되는 장소로 다 같이 자리를 옮겨 먼저 도착해 있었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