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24)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24화(124/207)
나는 얼른 말을 돌렸다.
“있더라고! 나도 혹시 몰라서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어. 아무튼, 제르. 이거 받고 힘내. 신성 의식은 분명 멋지게 해낼 테니까 긴장하지 마.”
“아델 누나, 나한테 주려고 일부러 찾아온 거예요?”
제르카인이 조막만 한 손으로 내가 준 꽃을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그는 처음 본 클로비스 꽃이 신기한 듯했다.
그러다 이내 제르카인의 귀여운 앳된 얼굴에 말간 햇살 같은 미소가 피어났다.
“기뻐요. 역시 아델 누나밖에 없어요.”
그는 짧은 팔로 나를 와락 끌어안고 얼굴을 비비며 귀엽게 애교를 피웠다.
방금 막 제르카인의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었던 궁인들이 작게 침음을 흘리는 것 같지만, 나는 그런 제르카인을 향해 흐뭇하게 웃었다.
‘이 귀여운 녀석!’
그래, 역시 이 맛에 동생을 키우는 거였다.
* * *
“다녀왔어요, 아빠!”
“어서 와라, 아델.”
우리는 다시 전당으로 향했다. 황족석으로 들어가자마자 우리 아버지가 가장 먼저 반겨 주었다.
제르카인을 만나고 오느라 조금 시간을 지체한 탓에, 전당 안에는 이미 라 벨리카 황제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자리해 있었다.
오, 저기 1황녀 타마린느와 2황녀 알렉시아도 보인다.
1황녀 타마린느는 부친인 1부군 테드릭 옆에 조용히 앉아 있었고, 2황녀 알렉시아는 전당의 옆쪽에서 궁인들과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뭔지 모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카루스, 몸은 좀 괜찮은가?”
“예, 예! 괜찮습니다. 록샨 님과 다른 분들이 염려해 주신 덕분에 많이 진정된 것 같아요.”
카루스는 뒤늦게 등장해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게 부담스러운지 몸을 움츠리고 후다닥 자리로 가서 앉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남몰래 혀를 찼다.
예전에 내가 카루스와 조슈아의 캐릭터 성을 비슷하다고 한 적이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훌륭한 테이머로 거듭난 조슈아와 달리 카루스는 아직도 발전이 없었다.
그동안 내가 열심히 카루스의 쭈글쭈글함을 다림질해 주려고 노력했는데 부족했나 보다. 살짝 자존심이 상했다.
나는 바위틈에 숨은 꽃게처럼 내 아버지를 가림막 삼아 몸을 움츠리고 앉은 카루스를 보며 스산하게 눈을 빛냈다.
‘안 되겠군. 제르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좀 더 혹독하게 굴려야겠어!’
그 순간, 꼭 내 속마음을 듣기라도 한 듯이 갑자기 카루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물론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카루스를 보면, 이 공교로운 반응은 그냥 우연일 터였다.
“유르 오빠, 아스포델! 어서 와. 제르카인은 좀 어때?”
마침 1황녀 타마린느가 나와 유클레드를 발견하고 먼저 말을 걸었다.
“괜찮아 보였어.”
“걱정하지 마, 타마린느 언니!”
우리의 말을 들은 타마린느가 다행이라는 듯이 작게 웃었다.
유클레드와 쌍둥이인 타마린느도 이제 열네 살이 되어 전보다 많이 성장해 만개하는 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성격은 여전히 황족 남매 중 가장 얌전하고 상냥했으나, 외모는 그야말로 한 떨기 장미꽃처럼 도도하고 강렬했다.
지금 이 전당에는 나이 든 귀족들만 자리해서 타마린느를 귀찮게 하는 사람이 없지만, 연회나 야유회 같은 자리에 가면 그녀를 흠모 어린 눈길로 보는 소년들이 제법 많았다.
아, 우리 황족 남매 중 소녀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건 타마린느의 쌍둥이 오빠인 1황자 유클레드일 만도 했지만…….
“아스포델.”
앗!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바로 그 순간 내 등 뒤에서 간지러운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더불어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내 뺨을 장난스럽게 쿡 찌르는 느낌까지 들었다.
“안녕, 오늘은 처음 보네. 우리 막내는 잘 만나고 왔어?”
꿀이라도 머금은 듯이 달콤한 목소리가 옅은 웃음기를 담은 채 속삭이듯이 귀를 간질였다.
나는 흠칫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곧바로 내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가상의 꽃바람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꼈다.
“알렉시아 언니…….”
“응, 동생아.”
“오늘도 참, 혼자만 그림체가 다른 것 같네.”
“또 재미있는 소리를 하네? 너야말로. 오늘은 모처럼의 공식 행사라 다들 특별히 신경 썼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역시 너만큼 귀여운 사람은 없네.”
알렉시아가 반짝이는 금빛 눈을 반쯤 휘어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후후 소리를 내 웃었다.
알렉시아는 어릴 때보다는 조금 더 길이가 긴 단발을 어깨선 위로 늘어뜨리고, 유클레드와 비슷한 제복 느낌의 예복을 입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고귀하고 우아한 소년 기사, 혹은 귀공자 같았다.
가장 많이 성장한 유클레드와 타마린느도 ‘꽃송이가 살랑살랑’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알렉시아는 완전히 ‘꽃보라가 뿜뿜’ 몰아치는 것 같은 중성적인 매력을 사방에 풍기고 있었다.
“2황녀님, 그럼 저희는 먼저 가볼게요.”
“아, 그래. 바쁠 텐데 말 상대해 줘서 고마워. 덕분에 즐거웠어.”
“아니에요! 2황녀님과 짧게라도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저희의 복이지요.”
“그럼 조만간 또 부를게. 나중에 봐.”
“네, 꼭이요!”
궁인들이 호호호 간드러지게 웃으며 총총 물러나고, 알렉시아가 웃는 얼굴로 그들을 배웅했다.
알렉시아는 남녀노소 상관없이 친화력이 엄청나서, 황궁에서 그녀와 궁인들이 허물없이 어울리는 광경은 그리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이상하게 얼굴이 따가워져서 고개를 돌리자, 2황자 루벨리오와 3황자 헬리만이 뱁새눈을 뜨고 나를 흘겨보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까의 일 때문인 게 분명했지만, 딱히 신경 쓰이진 않아서 그냥 코웃음을 치며 무시했다.
‘응? 그런데 다른 곳에서도 시선이 느껴지잖아?’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다시 시선을 옆에 있는 황족들에게 옮겼다.
“그러고 보니 알렉시아, 그새 머리가 많이 길었네. 혹시 이대로 기르려고?”
“응, 한번 길러볼까 해.”
문득 던져진 유클레드의 물음에 알렉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긴 머리도 잘 어울릴 것 같아.”
“고마워, 타마린느 언니. 언니의 긴 머리도 참 예뻐.”
나야 훗날 느슨히 땋은 긴 황금빛 머리가 알렉시아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걸 알아서 지금 이 대화가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아스포델도 그렇고, 록샨 님의 머리카락도 정말 멋져요. 이참에 머릿결의 비결이 뭔지 공유 좀 해주세요.”
그런데 알렉시아 이 녀석, 기회를 안 놓치고 또 우리 아버지를 대화에 끼워 넣는군.
이 녀석은 소나무 같은 취향으로 예전부터 지금까지 우리 아버지를 참 좋아했다.
갑작스럽게 시선을 집중받은 아버지가 약간 난처하게 웃었다.
“글쎄, 비결이라 할 게 따로 있던가? 특별히 뭔가를 하지는 않는데 말이다.”
“이런, 혹시 타고나야 하는 거라는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저희 아버지의 강인한 육체는 존경하지만, 머리카락의 우직함만큼은 닮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그 정도는 아닌데…….”
알렉시아의 부친인 2부군 요네스가 거대한 몸집과는 대조되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어색하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확실히 요네스도 그렇고, 아들인 3황자 헬리만도 튼튼해 보이는 굵직한 모발을 갖고 있었다.
특히 요네스는 그동안 관리를 잘하지 않아서 그런지, 머리카락이 좀 뻣뻣해 보이기도 했다.
“크흠. 머릿결을 유지하는 방법이라면 내가 특별히 알려줄 수도 있는데.”
조금 전부터 왠지 모르게 몸을 작게 들썩거리던 2황자 루벨리오가 슬쩍 끼어들었다.
평소에 머리카락을 애지중지 가꾸는 만큼, 거기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한 녀석이라 그런가?
머리카락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입이 간지러워서 참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아까부터 하찮은 대화에는 끼지 않겠다는 듯이 오만한 표정을 지은 채 앞을 바라보고 앉아 있던 쿤차도 은근슬쩍 자신의 탐스러운 긴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기는 게 눈에 띄었다.
“크흠, 머리카락의 관리 비법이라면 우리 부자가 일가견이 있지. 물론 아무에게나 알려주는 비결은 아니지만 말일세.”
물론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진짜 머릿결의 유지 비법이 궁금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심심해서 그러는 거지.
“루벨리오, 네가 웬일이야? 원래 좋은 건 혼자만 알고 있는 성격 아니었어?”
“뭣, 제가 언제요, 유클레드 형님! 오해예요.”
“하하. 이 누나한테 머리카락 관리 비법을 알려주겠다니 고마워, 루벨리오. 하지만 너와 나는 모발의 유형이 달라서 큰 소용은 없을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요, 록샨 님…….”
그래서 루벨리오의 말에 대해 썩 호응이 좋지는 못했다.
게다가 루벨리오는 부친인 쿤차를 닮아 입만 열면 밉살맞은 소리를 늘어놓아서, 대부분 그가 말을 많이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무시당한 루벨리오가 뒤에서 분한 듯이 씨근덕거렸다.
쿤차도 자기네 부자가 무시당한 것이 불쾌한지 미약하게 파르르 몸을 떨었다.
하지만 모두가 자업자득이니 어쩌겠는가?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