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27)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27화(127/207)
“어마마마, 지금 신나게 떠들어댄 가문들은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여신께 가깝다고 자신하나 봐요. 저희보다 하늘에 더 가까이 닿아 있는 자들이 로잔티나에 있다는 말은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데, 제가 아직 어려서 그런가 보지요?”
귀족들은 들으란 듯이 또랑또랑하게 내뱉은 내 목소리에 안색이 변했다.
“아, 아니, 그게 무슨!”
“3황녀님, 저희가 언제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까?”
지금 내가 한 말은 그들을 신성 모독에 황족 기만죄까지 두루 엮을 수 있는 내용이었으니 기겁하는 게 당연했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들이라면 가장 형벌이 무거운 저 죄목들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을 터였다.
“짐의 귀에도 3황녀의 말과 방금 그대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댄 소리가 다르게 들리지 않는군.”
마침내 전당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 들려 온 라 벨리카 황제의 목소리에 모두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등을 곧추세웠다.
“지고한 신의 뜻을 일개 소인의 몸으로 그리 속단하여 감히 불변의 진실인 양 겁 없이 입에 올리다니.”
나지막한 음성은 고요했으나, 그 안에는 듣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모골이 송연해지게 만드는 한겨울 그믐밤의 흰 서리 같은 기운이 담겨 있었다.
“신의 이름조차 사사로이 입에 담는 자들이 왕이라 하여 어려워하며 떠받들까.”
더군다나 황제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귀족들을 기함하게 만들 만한 것이었다.
“신의 전언이라도 받드는 양 겁 없이 떠드는 그 입으로 나중에는 짐의 뜻까지 감히 멋대로 가늠하여 짐 대신 공표하려 들 수도 있겠구나.”
“폐, 폐하……! 그게 무슨 황망한 말씀이십니까!”
“더군다나 짐이 듣는 앞에서 이리도 거리낌 없이 입을 놀리는 걸 보니, 지금 그대들의 눈에는 신성 의식의 주인공인 4황자만 보이는가 보군. 그대들의 위에 짐이 앉아 있는 것조차 잊은 모양이구나.”
높은 왕좌에 앉아 귀족들을 내려다보는 라 벨리카 황제의 눈빛은 숨이 막힐 정도로 섬뜩하게 벼려져 있었다.
“그래, 스스로 충성을 바쳐 따르겠노라 맹세한 주군의 존재를 이토록 가벼이 망각하는 신하가 세상 어디에 있다던가? 적어도 짐은 그런 자들을 로잔티나의 기둥으로 삼은 적이 없다.”
전당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압사시켜 죽여 버릴 듯한 강대하고도 무거운 기운이 라 벨리카 황제가 앉은 자리에서부터 퍼져나갔다.
귀족들이 대경실색해서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저희가 실언을 하였습니다!”
“절대 그런 불충한 의도로 드린 말씀이 아닙니다, 폐하!”
“부디 말씀을 거두어 주십시오! 소신들은 감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어머니께 넘어가 사정없이 빵빵 터져 나갔다.
역시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인 황제 어머니를 물귀신처럼 끌어들인 보람이 있었다.
‘그래, 바로 이 맛에 권력자를 빽으로 두는 거지!’
귀족들은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제르카인을 욕되게 할 때와 달리, 지금은 너 나 할 것 없이 서둘러 바닥에 납작 엎드린 상태였다.
나는 그런 귀족들을 향해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거슬리는 자들의 이름을 외워두었다.
“그대들은 입을 가벼이 놀리지 말라. 세 치 혀를 제대로 간수하지 못해 되는대로 말을 내뱉기는 쉬울 터이나, 그것을 다시 거두어 담기란 영영 불가능할 것이다.”
라 벨리카 황제가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린 귀족들을 서늘히 내리깐 눈으로 응시하면서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그때까지도 자비를 구할 세 치 혀가 남아 있으리란 법은 없지 않겠는가?”
참으로 살 떨리는 경고였다.
귀족들은 용서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연신 감읍한 마음을 표했다.
이 모든 일이 내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 것을 안 어떤 사람은 나를 악독한 어린애 보듯이 쳐다보았고, 어떤 사람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입술을 뻐끔거렸다.
당연히 나는 그들이 무섭지 않았으나, 옆에 있던 아버지가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나를 가리듯이 팔을 뻗어 어깨를 감싸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버지는 꼭 늑대가 제 새끼를 보호하듯이 내게 조금이라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냉엄한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밖에서는 좀 악명이 있었지만, 우리 아버지 앞에서만큼은 여전히 연약하고 순진한 딸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힝, 하고 무서운 척을 하며 아버지에게 덥석 안겨들었다.
그런 나를 가증스러운 듯이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당연히 무시했다. 그러면서 문제가 발생한 전당의 한복판을 힐끗 확인했다.
넋이 나간 카루스 대신 우리 아버지가 보낸 궁인들이 어느새 제르카인을 일으켜 세워 재빨리 옷매무새를 만져주는 중이었다.
하지만 제르카인의 얼굴빛은 충격을 받은 듯 별로 좋지 못했다.
“폐하. 대신전을 대표하여 오늘 신성 의식을 참관한 신관으로서,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성물인 심연의 거울이 깨진 일로 경악해 있던 신관들 사이에서 누군가 일어난 건 바로 그때였다.
어둡게 굽이치는 검보랏빛 머리카락이 그의 움직임을 따라 흰 신관복 위로 파도처럼 흘러내렸다.
찬란한 황금색 눈동자로 라 벨리카 황제를 고요히 응시하고 있는 모르페우스의 창백한 얼굴은 이 상황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듯이 담담했다.
그는 신성 의식을 위해 황궁에 온 신관 중에 가장 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었기에 당연히 발언권 또한 컸다.
“말하라.”
라 벨리카 황제가 냉연한 얼굴로 모르페우스에게 발언을 허락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만큼, 아직은 섣불리 원인을 단정해 규명할 수 없으리라 판단됩니다. 그러니 신관들이 파손된 성물을 먼저 확인했으면 합니다. 더불어 성물을 옮겨 대신전에서 자세히 살펴보고자 하니, 이를 허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허가한다. 그러나 성물은 황실에서 먼저 조사할 것이다. 신관들은 한동안 황궁에 머물며 함께 성물을 살펴도 좋다. 시일이 지나도 마땅한 파손 원인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그때 신전으로 성물을 옮기는 것을 허가하겠다.”
그러나 라 벨리카 황제가 신관들을 황궁에 머물게 하는 것은, 그들 역시 성물을 파손해 신성 의식을 망친 주범으로 염두에 두고 있어 따로 조사하기 위해서일 터였다.
모르페우스도 그것을 모를 리 없었지만, 그는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이 흔쾌히 동의했다.
그렇게 신전과의 합의를 끝낸 뒤, 라 벨리카 황제가 이번에는 카루스에게 말했다.
“4황자를 데려가라. 오늘 일과 관련해 물을 것이 있으나, 일단 황자가 많이 놀란 듯하니 조용한 곳에 데려가 잠깐 쉬게 하도록.”
“가, 감사합니다, 폐하! 그렇게 하겠습니다!”
얼굴에 핏기라곤 완전히 사라진 카루스가 비틀거리며 뛰어가, 제르카인을 데리고 서둘러 퇴장했다.
4황자 제르카인의 신성 의식은 그렇게 모두에게 충격과 의문만을 남긴 채 끝났다.
* * *
“제르!”
당연히 나는 곧장 제르카인을 찾아갔다.
“아델 누나…….”
가엾게도 제르카인은 완전히 하얗게 질린 채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방으로 들이닥친 나를 보고는 갑자기 감정이 북받친 듯이 울먹였다.
헉, 나는 대번에 마음이 뭉클해져서 그에게 달려갔다. 그러고는 제르카인을 끌어안고 막 달래주려고 했는데…….
“제르, 너 괜찮…….”
“제르카인, 괜찮아? 아까 다친 곳은 없어?”
“어떡해, 많이 놀랐나 봐. 마음을 안정시키는 차라도 마시면 어떨까?”
“거기, 이름이 로웰이었지? 방금 타마린느 언니 말대로 우리 막내한테 차를 좀 가져다줄래? 고마워.”
내가 다른 말을 더 꺼내기도 전에 뒤쪽에서 다른 황자, 황녀들의 목소리가 연달아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새치기를 당한 채로 어정쩡하게 뒤돌아보았다.
그러자 저마다 제르카인을 걱정하는 얼굴로 서 있는 녀석들을 볼 수 있었다.
“아까 그건 도대체 뭐야? 너 진짜 데메테아 여신한테 저주받았어? 안에서 무슨 짓을 했길래 그래?”
물론 그 안에는 웬 빌런도 섞여 있었다. 3황자 헬리만의 눈치 없는 발언에 방 안이 대번에 싸늘해졌다.
“헬리? 우리 동생은 잠깐 밖에 나가 있자.”
“엉? 갑자기 왜 이래, 누나? 내가 뭘 어쨌다고? 궁금한 걸 물어보지도 못해?”
“응, 그래, 그래. 이 누나도 내 남동생이 눈치가 심각하게 없어서 그렇지, 나쁜 마음으로 이러는 게 아닌 걸 알지.”
“내가 뭐가 눈치가 없다고……!”
“아, 참. 그러고 보니 오늘 내 남동생이 서쪽 정원에서 친구들과 뭘 했는지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었는데. 겸사겸사 잠시 후에 오누이 간의 즐거운 대화를 나눠야겠네?”
“허억……!”
물론 그는 ‘헬리만 전담 케어반’의 대표인 알렉시아에게 금방 퇴치당했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