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31)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31화(131/207)
“그래, 먼저 가봐. 카루스 아버지랑 제르도 잘 위로해 주고. 특히 카루스 아버지는 마음 기댈 곳이 별로 없으니까, 그래도 한 핏줄인 가족이 안심시켜 주면 좀 낫겠지.”
“물론이지요! 하면,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바론은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허둥지둥 뒤돌아 자리를 떠났다.
나는 꼬리에 불이 붙은 망아지처럼 서둘러 후원을 나서는 바론을 보다가 모르페우스를 칭찬하듯이 그의 팔을 툭툭 쳤다.
“오클란테 가주가 완전 기합이 바짝 들었네. 역시 신관님은 생긴 게 흑막 악당 같아서 협박도 더 잘 먹힐 줄 알았다니까?”
“3황녀님이야말로 진정한 흑막 악당의 자질을 지니셨거늘, 겸손하십니다. 저를 앞세워 바론 오클란테를 위협한 건 3황녀님이시니, 사실상 저이가 두려워하는 건 제가 아닌 셈이지요.”
우리는 훈훈하게 서로에게 칭찬(?)을 되돌렸다.
나는 모르페우스의 말을 듣고 5년 전의 일을 상기했다.
‘오클란테 가주. 상당히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2황자님이 무사히 깨어난 게 불만인가 봅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신관님?’
때는 2황자 루벨리오가 바론 오클란테에 의해 독을 먹고 쓰러졌을 무렵.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그런 루벨리오를 신성력으로 치료하고 막 모르페우스와 모종의 계약을 맺은 직후였다.
‘사적인 감정으로 로잔티나의 별을 독살하려 하다니, 오클란테에 이렇게 대범한 사람이 있을 줄이야.’
그때 나는 마침 손에 넣은 모르페우스를 바론에게 보냈다.
‘사람을…… 잘못 보셨습니다. 저는 그런 적이 없습니다! 증거도 없이 저를 이렇게 모함하시다니…….’
‘증거가 없다고 누가 그랬습니까?’
‘……!’
‘2황자님을 직접 살피고 치료한 것이 누구인지 잊었습니까? 이 몸은 유일하게 데메테아 여신의 축복을 직접 받는 영광을 누린 신관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번에 2황자님이 음용한 독이 어떤 종류인지 알아내는 것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바론은 2황자 루벨리오가 멀쩡히 살아나고 그의 증상이 단순 풍토병인 것으로 알려지자 안도와 불만,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낀 듯했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대신전 소속의 신관인 모르페우스가 나타나 진실을 말하자 크게 당황했다.
‘그, 그것만으로 제가 범인이라고는 할 수 없는……!’
‘아무렴, 제가 그것만 가지고 이 자리에 서 있겠습니까. 당연히 오클란테 가주 그대가 어디에서 독을 구해 무슨 수로 2황자님의 찻잔에 넣었는지, 그 수단과 방법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또 이번 일을 위해 접촉한 사람들의 신원까지 전부 파악을 끝마친 뒤입니다. 필요한 증인과 증거가 모두 이 손에 있다 이 말입니다.’
‘헉.’
‘그런데 오클란테 가주. 설마 이런 증거들이 없으면 그대의 무죄가 받아들여지리라 생각하는지……. 대신전에 적을 두고 한평생 신을 따르며 올바른 길만을 걷겠다고 맹세한 몸. 그런 제 발언이 설마 오클란테 가주의 말보다 가벼운 무게를 가졌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만.’
그때 모르페우스가 바론을 향해 지어 보인 미소가 얼마나 사악하고 음침했었는지…….
모르페우스는 과연 생긴 것만으로도 위험한 느낌을 풍기는 녀석답게, 협박에도 능했다.
가뜩이나 바론은 자신이 한 일을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내심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다른 사람도 아닌 대신전의 신관이 갑자기 튀어나와 ‘난 네가 한 짓을 알고 있다!’고 선언했으니, 기절초풍할 듯이 놀란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당신은 운이 좋았습니다. 제가 따르는 분께서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고자 하십니다.’
‘예? 그게 무슨…….’
‘자고로 대신전의 교리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신과 황실에 대한 경애심이 첫째이며, 낳고 길러준 부모를 향한 존경이 둘째라. 또한 피를 나눈 형제와 자매를 우애 어린 마음으로 아끼고, 그 밑의 자손들은 넓은 자애의 마음으로 포용해 돌보는 것이 세 번째 덕목이라. 이는 로잔티나의 백성이라면 누구나 지녀야 할 기본적인 마음가짐입니다. 또 신께서 말씀하신 인간의 기본 도리와 덕목으로는 첫째가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아니하며…….’
이건 내가 말하라고 미리 대사를 뽑아준 게 아닌데, 모르페우스 혼자 술술 교리를 읊더라…….
그동안 몰랐는데, 혹시 이놈도 성서 덕후였나?
아니면 이왕 나하고 손을 잡은 김에 제 역할을 좀 더 제대로 해주려던 건지.
아무튼, 효과는 확실한 것 같았다. 바론 오클란테가 완전히 넋이 나가 정신적 무장해제 상태가 된 것이다.
‘오클란테 가주는 앞으로 이 덕목들을 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반드시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이 일은 묻어주시는 겁니까……?’
‘아니. 사설이 길었지만, 진짜 본론은 이것입니다. 앞으로 5부군님과 4황자님께 주제넘게 굴지 마십시오.’
‘뭐, 뭐라고요?’
‘살점이 붙은 뼈다귀를 본 들개 새끼라도 되는 것처럼 황실에 자리 잡은 두 분을 어떻게든 뜯어먹으려고 애쓰지 말고, 더 추잡한 꼴로 전락하기 전에 최소한 가족이라는 이름이라도 유지하란 말입니다.’
‘그게 무슨!’
‘그러기 어려우면 차라리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음지에 처박혀 사십시오. 제 주인께서 보기 거슬려 하십니다. 선택은 직접 하십시오. 그러나 지금 제가 전한 말 중에 하나라도 어긴다면 다음에 만나는 곳은 교수대가 될 겁니다. 제가 모시는 분의 눈과 귀가 언제,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 후로 바론 오클란테는 겁을 먹고 알아서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 인간은 루벨리오를 독살하려고 한번 급발작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영 간이 작아서 큰일을 도모할 사람이 못 됐다.
그래서 정말 몸가짐이 조심스러워졌다.
모르페우스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경계심이 들었는지, 카루스와 제르카인에게도 나름대로 친절해졌다.
심심할 때마다 카루스를 찾아가서 가스라이팅을 일삼으며 그의 자존감을 갉아먹던 것도 멈췄다.
형에게 쪼이지 않게 된 카루스는 얼굴이 밝아졌고, 이는 당연히 제르카인의 성장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아무리 그래도 바론이 모르페우스의 말을 이 정도로 순순히 들을지 미심쩍어 다른 방법도 생각해 뒀는데, 2단계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조금은 김이 샜다.
사실 바론의 처우에 대해서는 나도 고민이 많았다.
이번 일로 피해를 본 건 2황자 루벨리오인데 내 마음대로 진실을 은폐하고 바론을 놔주는 게 별로 온당하지 않은 듯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 죽어가는 루벨리오를 내가 살려줬으니, 범인인 바론의 목숨은 그 대가로 내가 받아 가는 셈 쳐도 되지 않겠는가?
‘아직은 바론이 필요하니까. 나중에 이놈이 용도를 다하면, 그때 적절한 처벌을 받게 해야지.’
하지만 바론 오클란테는 내가 건드리지 않았는데도 이미 인과응보라 할 수 있는 천벌을 받았다.
듣기로는 루벨리오의 사건이 있고 나서 얼마 후에 중병을 얻어, 거의 사경을 헤매다가 겨우 살아났다고 한다.
그 이후로 바론은 아주 가끔만 모습을 내비쳤는데, 그렇게 간혹 얼굴을 볼 때마다 정말 다 죽어가는 것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는 마음에 걸리는 사실을 한 가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바론이 중병에 걸린 이유가 독을 먹었기 때문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범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고, 어째서인지 오클란테 가문에서도 이 일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혹시 루벨리오의 부친인 쿤차나, 그의 가문인 디오메네에서 바론의 소행을 알고 남몰래 복수한 건가 싶은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그쪽의 동태를 살펴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 남을 독으로 해치려 한 사람이 독으로 죽을 뻔하다니, 굉장히 공교로운 일이었다.
이게 정말 우연이라면 하늘이 천벌을 내렸다는 말이 가장 합당할 듯했다.
‘방금 나를 향한 바론의 눈빛으로 봐서는 모르페우스의 뒤에 있는 게 내가 아닌지 살짝 의심하는 것 같았는데……. 아예 눈치가 없진 않나 보군.’
그때, 모르페우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오클란테 가주에게 또 서신을 보낼 때가 되었군요. 내용은 일전에 말씀하신 대로 적으면 되겠습니까?”
“그래. 신관님, 이제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이네? 꽤 똘똘해졌어. 내 은총 덕분인가.”
“오클란테 가주에게 도대체 왜 그런 일을 시키셨는지는 아직 알려주실 마음이 없으신 건지요?”
“쯧, 신관님은 몰라도 돼.”
“제가 아니면 황성에서는 직접 그런 서신을 보내기 어려우실 텐데요…….”
“신관님이 하기 싫으면 다른 사람 시키면 되지. 하지만 신관님은 내가 아니면 안 될 텐데?”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