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32)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32화(132/207)
“…….”
“참, 그리고 오늘 전당에서의 일은 신관님이 한번 그림 좀 예쁘게 그려 봐. 내 마음에 들게.”
“3황녀님의 마음에 들게…… 라면, 지금 제게 진실을 은폐하라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는 바론 오클란테가 사라진 후원의 입구를 가늘게 뜬 눈으로 보다가, 모르페우스의 말을 듣고 와하하 웃었다.
“신관님 재미있는 소리를 하네. 진실 은폐라니, 아직 확실히 나온 것도 없는데 뭐가 진실이야? 그리고 피차 알 거 다 아는 사이에 무슨 어울리지도 않는 순진한 소리를 하고 그래?”
그리고 이내 웃음을 뚝 그치고는 모르페우스를 쳐다봤다.
“마지막까지 아무한테도 안 들키면 그게 진실이 되는 거야.”
모르페우스는 어딘가 심경이 복잡해 보이는 눈으로 잠깐 말없이 나를 응시했다. 그러다가 살짝 체념 어린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역시…… 진정으로 속이 새까만 건 3황녀님이십니다.”
물론 모르페우스의 말은 나한테 칭찬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나는 그의 마뜩잖은 시선을 대수롭지 않게 무시하며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후원을 나설 수 있었다.
Side
바론 오클란테
‘젠장, 젠장, 젠장!’
바론 오클란테는 도망치듯이 후원에서 빠져나와 뛰기 시작했다.
그의 온몸은 잠깐 사이에 식은땀으로 푹 젖어 있었고, 폐에서 간신히 쥐어 짜낸 숨은 당장에라도 끊어질 것처럼 거칠게 헐떡였다.
성치 않은 그의 몸으로는 단지 이렇게 조금 서둘러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무리가 되었지만, 가능한 한 조금이라도 빨리 저 후원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바론은 예전에 저 범접하기 어려운 느낌을 풍기는 젊은 신관에게 협박을 당했다.
모르페우스는 데메테아 여신과 같은 황금빛 눈을 가져, 애초에 신의 사랑을 받는 신관으로 로잔티나에서 이름 높은 자였다.
한데 그 대단한 신관에게 덜미를 잡혀 2황자에게 한 짓을 들켰으니, 바론으로서는 당연히 정신이 혼미해질 만도 했다.
이후로도 모르페우스는 바론을 정말 감시하기라도 하듯이 틈틈이 그의 앞에 얼굴을 비쳤다.
가끔은 바론에게 기묘한 명령을 내리는 서신을 보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바론은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지금 후원에서 그를 진정으로 섬뜩하게 만든 것은 신관이 아니라 황녀 쪽이었다.
‘그래, 먼저 가봐. 카루스 아버지랑 제르도 잘 위로해 주고.’
어린아이의 것 같지 않은, 그 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이라니……!
과연 모녀는 모녀란 말인가?
마치 5년 전 그날 알현실에서 봤던 형형한 황금빛 눈동자를 다시 목전에 둔 듯했다.
그동안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3황녀는 절대로 그 나이에 걸맞은 순진하고 어리숙한 소녀가 아니었다.
꼭 손에 쥔 물건의 가치라도 따져 보듯이 자신을 훑던 그 무기질적이고 차갑던 눈이 지금도 잊히지 않았다.
바론은 중병을 얻은 뒤 오클란테 가문 안에 거의 칩거했지만, 황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전해 들었다.
소문 속에서 3황녀는 대단한 부모를 둔 탓에 오만방자하게 자라 제멋대로 구는 건방진 하룻강아지였다.
바론은 예전부터 고귀한 피를 타고나 다른 사람의 머리 꼭대기에 앉은 것처럼 거들먹거리는 사람을 몹시 싫어했다.
2황자 루벨리오를 독살하려 마음먹었던 것도 그 쥐방울만 한 놈이 그의 자존심을 무참하게 짓밟았기 때문이다.
꼭 2황자가 아니더라도, 단지 운 좋게 남들보다 존귀한 곳에서 태어났을 뿐인 어린 황족들은 전부 그의 열등감을 건드렸다.
그러니 3황녀에 대한 그의 인식 역시 썩 좋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간혹 카루스의 궁에서 마주쳐 그의 눈으로 직접 본 3황녀의 모습도 소문과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바론의 못난 동생인 카루스와 조카 제르카인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이 3황녀에게서 봐줄 만한 유일한 장점이었다.
오늘 후원에서 만난 3황녀의 모습도 평소와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럼…… 혹시 제가 먼저 물러가도 되겠습니까?’
‘왜 제게 물으십니까? 존귀하신 로잔티나의 별께서 바로 옆에 계시거늘.’
바론은 모르페우스 신관의 그 말에 문득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은 아까 이 후원에 잘못 발을 들여 모르페우스와 3황녀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뭔가가 이상했다.
그래서 옆에 있는 3황녀에게 저도 모르게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앙증맞은 작은 그네에 올라탄 어린 소녀의 얼굴을 처음으로 똑바로 들여다본 순간…… 바론은 팔뚝에 소름이 돋는 기분을 느꼈다.
3황녀 아스포델은 열 살의 어린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냉연한 눈으로 그를 비스듬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린아이가 살짝 젠체하듯이 고개를 든 채 쾌활하면서도 귀엽게 웃고 말하던 어린 소녀는 그 자리에서 완전히 사라진 듯했다.
마치 바론이 한순간이나마 3황녀를 모르페우스가 따른다는 ‘그분’으로 의심한 것을 눈치채기라도 한 것 같았다.
꼭 양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던 이리가 정체를 들키자 마침내 본색을 드러낸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바론은 자신이 무슨 정신으로 후원을 빠져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혼미해진 머릿속에 3황녀와 지독히도 닮은 눈으로 그를 오연히 내려다보던 여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바론 오클란테. 짐이 오늘 그대를 보고자 한 이유를 아는가?’
사실은 5년 전…….
모르페우스의 협박을 받고 나서 얼마 뒤, 라 벨리카 황제가 바론을 궁으로 부른 적이 있었다.
바론은 당연히 잔뜩 긴장한 상태로 황제를 배알했다.
‘폐하의 깊으신 뜻을 제가 어찌 감히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혹시 그 신관이 황제에게 그가 한 짓을 모조리 말해 버린 게 아닐까?
아니지, 신관은 따르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했으니, 그 누구인지 모를 놈팡이가 입을 놀린 것일지도 몰랐다.
어찌 되었든, 요즘 바론은 모르페우스의 말을 따르는 것을 살짝 게을리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모르페우스에 대한 두려움도 옅어졌고, 신관 따위의 말에 휘둘려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슬슬 분노가 일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어라.’
바론은 그렇게 머리를 굴리느라 바빴지만, 라 벨리카 황제는 그저 여느 때와 같은 무심한 목소리로 바론에게 차를 권할 뿐이었다.
‘갑작스럽게 불러 긴장한 눈치로군. 그대를 위해 좋은 차를 준비했으니, 먼저 목을 축이게.’
혹시 2황자 루벨리오 때문에 부른 게 아닌 건가?
바론은 불안한 눈빛을 숨기기 위해 시선을 내리깔고,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찻잔을 들어 올렸다.
라 벨리카 황제가 말한 대로 목이 타던 상태라,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라 벨리카 황제가 다시 입을 연 것은 향기로운 찻물이 막 바론의 입술에 닿았을 때였다.
‘그 차에는 그대가 2황자의 찻잔에 넣었던 독이 들어 있다.’
‘크흡!’
바로 그 순간, 당연히 바론은 경악하여 손에 든 찻잔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실수로 입에 조금 들어간 찻물도 모조리 뱉어냈다.
바론의 부릅뜬 눈에 서리가 어린 듯이 차가운 제왕의 얼굴이 비쳤다.
그녀는 무생물이라도 보듯이 감정이 깃들지 않은 눈으로 바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라니타. 오클란테 가주를 위한 차를 다시 내와라.’
라 벨리카 황제의 명령을 받은 궁인이 새로운 찻잔을 들고 와 바론의 앞에 다시 내려놓았다.
바론은 맑은 액체가 가득 담긴 찻잔을 내려다보며 몸을 떨었다.
‘지금까지 2황자가 조금씩 섭취한 양을 그 잔에 모아 담았지. 그러니 어쩌면 건장한 성인이라 해도 그 한 잔만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질 가능성이 있겠군.’
라 벨리카 황제는 그렇게 바론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어 놓고, 지독히도 태연한 모습으로 자신의 찻잔을 들어 차를 마셨다.
‘무,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독이라니, 소신이 어찌 감히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 일전에 다과회에서 소란이 일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사오나, 2황자님께서는 풍토병으로 자리에 누우신 게 아닌지요?’
바론은 혼이 빠져나간 듯이 정신이 없었으나, 일단 모르페우스의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시치미를 떼기로 하고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폐하, 이는 모함입니다……! 누군가 오클란테의 가주인 저를 죽이려고 모함한 것입니다! 이는 저 혼자만이 아니라 5부군님과 4황자님까지 위협하는 교활한 간계입니다! 그런 간악한 자의 말에 귀 기울이시면 안 됩니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라 벨리카 황제가 어떻게 이 일을 알고 있는지는 몰랐으나, 까딱 잘못했다가는 지금 당장 일족이 멸할 수도 있었다.
그런 만큼 자신의 무고함과 억울함을 주장하는 바론의 말에는 절절함이 담겨 퍽 진실성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알현실 안에 있는 라 벨리카 황제와 궁인들, 그리고 근위병들 모두 그의 감정적인 호소에 눈썹 한 올 까딱하지 않았다.
‘바론 오클란테. 그대는 짐이 이번 대에 오클란테를 황실의 계보에 올린 이유를 아는가?’
라 벨리카 황제는 바론이 바닥에 엎드려 처절하게 읍소하는 것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 듯했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