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33)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33화(133/207)
그녀는 여전히 서늘하고도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카루스를 후궁으로 삼은 이유? 갑자기 그런 얘기를 왜 하는 거지?’
바론은 왜 지금 황제가 이런 것을 묻는지 연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자신이 어찌 대답하느냐에 따라 지금 이 위기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라 벨리카 황제가 굳이 최약소 가문인 오클란테를 마지막 후궁으로 들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바론은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소수에게 권력이 치중되어 불균형한 10개 대귀족의 세력을 맞추기 위해서…….’
‘틀렸다.’
‘그, 그럼…… 저희 오클란테가 앞으로 번성해 다른 가문들보다 로잔티나에 더 크게 기여할 가능성을 보시고…….’
‘그것도 틀렸다.’
‘아니면 혹시, 제 막냇동생에게 호감이 있으셔서는…….’
‘그 또한 틀렸다.’
바론이 애써 머리를 굴려 몇 가지 생각을 내놓았지만, 라 벨리카 황제는 번번이 퇴짜를 놓았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냉혹한 음성이 알현실 안에 울렸다.
‘짐이 가치를 두는 것은 지금 그대가 말한 것 중 무엇에도 속해 있지 않다. 그러니 기실 그대의 오클란테는 지금 당장 로잔티나에서 사라진다 해도 무방하다.’
바론은 마치 사형선고처럼 떨어진 그 무참한 말에 온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오클란테를 이번 대에도 존속시키기로 결정한 것은 굳이 열 개의 가문을 아홉 개로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뿐더러, 그쪽이 아주 조금은 짐의 일을 수월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지. 그러나 설령 그 반대의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저 길가의 돌멩이 하나를 치우는 것만큼의 번거로움만 더해질 뿐이니.’
라 벨리카 황제는 정말 그 말처럼 바론 오클란테가 하찮은 작은 이물질에 불과하다는 듯이 선득한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러니 그대는 오클란테의 가치를 착각하지 마라.’
바론은 망연자실하게 황제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4황자는 짐의 아들이고, 한낱 오클란테라도 버팀목으로 있는 것이 나을 테니 자비를 베풀어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그리고 라 벨리카 황제는 바론에게 잔인한 선택권을 주었다.
‘바론 오클란테, 그 차를 마셔라. 그리하면 그대가 한 일은 오늘 이 자리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러나 거부한다면, 오늘 이후로 로잔티나에서 지워지는 것은 오클란테의 이름이 되리라.’
물론 눈앞에 떨어진 두 개의 선택지 중, 바론이 고를 수 있는 건 애초에 하나밖에 없었다.
바론은 그날의 냉엄한 목소리와 눈빛을 떠올리면 아직도 온몸에 오한이 들었다.
그날부터 거의 한 달 동안이나 사경을 헤매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긴 했으나, 바론의 몸은 이미 많이 망가져 예전 같은 생활을 하는 건 불가능해졌다.
이만한 독을 먹고도 후유증 하나 없이 무사히 살아남은 2황자 루벨리오의 천운이 부러운 한편으로, 바론은 지금까지의 그의 인생 자체가 왠지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 보면, 감히 황족을 독살하려 하고도 이렇게 살아남은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긴 했다.
그래서 그는 라 벨리카 황제의 자비에 감사하며, 뒤늦게나마 모르페우스의 경고를 따라 분수를 지키는 삶을 살기로 했다.
혹시 모르페우스 신관을 움직여 일찍이 그에게 경고했던 사람이 라 벨리카 황제가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전에 들은 말을 거스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오늘 모르페우스 신관의 옆에 3황녀가 있었던 거지? 더군다나 그런 모습으로.’
단지 둘이 같은 장소에 함께 있는 것뿐이었다면 바론도 이렇게 기이한 느낌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까 분명 모르페우스 신관은 3황녀에게 복종하듯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3황녀는 꼭 개라도 쓰다듬듯이 그런 모르페우스 신관의 머리에 자연스럽게 손을 올리고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모르페우스 신관이 어린 3황녀를 따른다는 건 여전히 뭔가 이상했다.
그러나 아까 본 3황녀의 모습은 벌써 라 벨리카 황제와 똑같이 닮아 있었는데…….
라 벨리카 황제가 총애하는 딸이라고 하니, 어쩌면 벌써 후계자 교육이라도 하며 모르페우스 신관 같은 수하를 공유하는 사이인 걸지도 몰랐다.
바론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일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이상 깊이 파헤쳐 뭔가를 더 알아내는 것도 두려웠다.
바론은 이제 정말 욕심을 내려놓고 카루스의 형, 또 제르카인의 백부로 조용히 살고 싶었다.
그는 자꾸만 떠오르는 섬뜩한 황금빛 눈들을 잊으려고 애쓰며, 서둘러 카루스와 제르카인이 있는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Chapter 29
흑막은 사라졌는데, 세계 멸망 플래그는 아직 살아 있다?!
“황녀님, 바스티온에서 서신이 도착했어요! 이번 달에는 오지 않는 줄 알았는데, 반가운 소식이네요.”
“그래? 아, 지금 읽을 테니까 나한테 바로 줘, 마가렛.”
오랜만에 레예스에게서 편지가 도착했다.
사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그동안 레예스와 꾸준히 편지는 주고받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번에는 바스티온에서 보내는 편지가 좀 늦어서 내심 의아했던 참이었다.
[어머, 어머! 그 장래가 기대되는 잘생긴 바스티온의 장남이 또 편지를 보냈구나? 빨리 열어봐, 열어봐!]“앗! 훔쳐보지 마, 티타니아 언니!”
[에이, 좀 같이 보면 어때서? 어머나? 여기 좀 봐봐. 네가 보고 싶대! 오호호, 병아리 같은 애들이 귀엽기도 하지.]아잇, 진짜! 이 언니 때문에 집중을 못 하겠네?
나는 내 옆에 찰싹 붙어 남의 편지를 뻔뻔하게 대놓고 감상하는 티타니아에게 눈을 흘겼다.
내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은 성령이 그제야 알겠다면서 아쉬운 듯이 멀찍이 떨어졌다.
[하아, 부러워라. 이런 어린애들도 알콩달콩 귀엽게 연애하는데 나는 왜 수백 년째 이렇게 혼자 쓸쓸하게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는지.]“무슨 소리야, 이거 연애편지 같은 거 아니야.”
[흥, 채신머리없기는. 세상에 그런 속된 애욕보다 고귀한 감정이 얼마나 많은데? 아직도 세속의 욕망을 못 잊고 이런 어린 인간의 연서 따위나 부러워하다니, 그동안 나이를 헛먹었나 보군.]“잠깐, 연서 아니라니까?”
[속된 욕망이라니? 감정은 전부 고귀한 것인데 무슨 기준으로 귀천을 따로 나눈단 말이야? 아, 하긴. 앤디미온, 네 모습을 보니 어린 인간일 때 죽은 게 분명하지? 이런 애송이가 이 달콤씁쓸한 어른의 감정을 알 리가 있나.] [뭐, 애송이?!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거냐! 이 앤디미온 님이 모르는 건 세상에 없어!]그래……. 너희, 내 말을 안 듣고 있구나.
나는 그냥 티타니아와 앤디미온이 싸우게 내버려 두고,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가렸던 레예스의 편지를 다시 펼쳤다.
편지를 쓴 주인을 닮아 아주 정갈하고 깔끔한 필체의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군청빛 머리칼과 붉은 눈을 가진 수려한 소년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눈앞에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황녀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그간 평온하게 지내셨는지요?
저는 염려해 주신 덕분에 무탈한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답신과 함께 보내주신 성력석도 무사히 전해 받았습니다. 매번 잊지 않고 이렇게 배려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늘 그렇듯이 레예스의 편지는 간단한 안부 인사와 나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편지에서도 느껴지는 정중한 어투는 레예스의 평소 말투를 닮아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글씨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의 목소리가 저절로 귀에 들려오는 듯했다.
레예스는 내가 건강하고 즐겁게 잘 지내는지 묻고 있었다. 그리고 편지를 주고받지 못한 동안 자신이 뭘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도 구체적으로 풀어 썼다.
나는 흡족하게 그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처음 편지를 주고받을 때만 해도, 레예스는 내 안부만 실컷 묻고 도통 자기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네 소식도 궁금하니 좀 더 자세히 알려달라고 요구하고 나서야 조금씩 편지에 자신의 이야기를 적어 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런 게 퍽 어색한 듯하더니, 지금은 이렇게 곧잘 적응해서 자기 얘기를 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그리고 황녀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스티온 북쪽의 녹색 빙벽을 꾸준히 지켜보다가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을 발견했습니다.]‘어?’
그렇게 훈훈한 마음으로 편지를 보다가, 다음 순간 눈에 띈 문장에 미간을 움찔 찌푸렸다.
[그러나 사소하다면 사소하다고 할 수도 있는 일이니, 현재 상황으로서는 염려하시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자세한 내용은 조만간 가문에서의 일을 마치고 황도로 올라가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때는 제 동생도 동행할 예정입니다. 황녀님께 함께 인사드릴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편지를 적고 있어서인지, 어쩐지 오늘은 유독 황녀님이 생각나는 밤이네요.
그럼 곧 다시 찾아뵐 때까지 늘 행복한 날들만 황녀님의 곁에 함께하길 바랍니다.
-그리움과 애정을 담아, 레예스.]
편지를 다 읽은 뒤, 내 얼굴은 심상치 않게 살짝 굳어져 있었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