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35)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35화(135/207)
나는 문을 열다가 말고, 흰 족제비를 확 뒤돌아봤다.
“피오. 너, 또 모르페우스한테 가려는 건 아니겠지?”
아니나 다를까, 내가 정곡을 찌른 것처럼 피오가 흠칫했다.
내 미간에도 굵직한 주름이 그려졌다.
와, 진짜 이 똥 족제비가?
[힝, 하지만 그 신관은 신성력이 강해서 정말 맛있는 냄새가 난단 말이야!]“너……. 나야, 모르페우스야?”
[헉.]뚜둥! 결국 이 궁극의 질문이 나오고야 말았다.
엄마야, 아빠야?
나야, 걔야?
[다, 당연히 꼬마 주인이지! 왜 그런 당연한 걸 물어?]물론 이 경우에는 몇 년이나 동고동락한 나와 그냥 오다가다 몇 번 만났을 뿐인 모르페우스가 동급일 수 없었기 때문에, 피오는 당황하면서도 서둘러 대답했다.
나는 그제야 흡족해졌다.
[알았어, 그 신관한테는 안 갈게! 이제 꼬마 주인 냄새만 맡을게!]엇, 아니, 그건 좀…….
하지만 기껏 피오가 결심을 굳혔는데 이제 와서 매정하게 굴기도 좀 그랬다.
그래서 일단은 ‘으으음……’ 하고 애매하게 수긍한 뒤 찝찝한 기분으로 방을 나섰다.
* * *
“어마마마, 아델이 왔어요!”
라 벨리카 황제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나는 열린 집무실의 문 안으로 불쑥 들어갔다.
따로 알아보니 제르카인의 신성 의식 문제도 얼추 정리가 되어가는 듯했다.
그래서 겸사겸사 어머니를 보러 온 거였다.
그런데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로잔티나의 별을 뵙습니다.”
켁.
나는 내게 인사하는 사람을 보며 무의식중에 얼굴을 구길 뻔했다.
하지만 금방 표정 관리를 하고, 상석에 앉은 라 벨리카 황제를 쳐다봤다.
“뷔요른 공과 함께 계신 줄 몰랐네요, 어마마마. 저 이따가 다시 올까요?”
그녀와 독대 중인 사람은 희끗희끗한 청록색 머리에 날카로운 빛을 띤 진회색 눈을 가진 엄중한 인상의 60대 남자였다.
그의 이름은 더글라스 뷔요른.
그는 제국의 기둥인 10개 가문 중 뷔요른의 가주이자, 2부군 요네스의 부친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2황녀 알렉시아와 3황자 헬리만의 친조부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있는 집무실에 나를 왜 들였지?
“그럴 것 없다. 마침 잘 왔구나, 3황녀.”
라 벨리카 황제가 입을 연 순간, 내 본능이 불길함을 감지했다.
“뷔요른 공. 아스포델의 학업 성취는 어떠한가?”
아니나 다를까, 내 입장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은 말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아, 제에엔장……. 괜히 지금 왔네.
나는 빈자리에 앉아 도르륵 눈만 굴려 애꿎은 천장을 쳐다봤다.
로잔티나 황실에는 황녀, 황자들의 수업을 담당하는 학자들을 모아놓고 관리하는 시설이 따로 있었다.
이곳을 별이라는 뜻의 고대어에서 따온 ‘아스트리움’라고 칭했는데, 더글라스 뷔요른은 그곳의 우두머리였다.
“3황녀님께서는…….”
라 벨리카 황제의 질문에 더글라스가 나를 돌아봤다.
“아스트리움의 누구보다 열린 사고방식을 가진 분이지요.”
중후한 분위기의 남자가 학부모의 앞에서 학생을 칭찬하는 교사처럼 은은하게 미소 띤 얼굴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속에 담긴 진짜 뜻을 읽어낼 수 있었다.
“자칫 따분함을 느낄 수 있는 수업에서도 항상 즐거움을 찾아 보람 있는 시간을 보내시고.”
-수업 시간마다 아주 즐겁게 딴짓하더라ㅎ
“다른 황자, 황녀님들과 책 동무인 몇몇 귀족 자제도 함께하는 수업 시간에는 특히 폭넓은 교우 관계를 가지신 것이 눈에 띄며.”
-심지어 합동 수업 시간에는 다른 학생들까지 물들여서 같이 딴짓하더라ㅎ
“문답 시간마다 아스트리움의 학생 중에서도 독보적인 창의성을 지니신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질문을 해도 엉뚱한 대답이나 하고 말이야…….
“3황녀님께서는 아스트리움에 들어오신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저나 다른 학자들이 지금 그 가능성을 섣불리 판단하는 건 시기상조일 듯합니다.”
-사실 얘는 따로 판단하고 말고 할 것도 없어ㅋ
‘아, 이, 씨…….’
나는 말을 마친 뒤 내게서 시선을 뗀 더글라스 뷔요른을 몰래 노려봤다.
‘이 아저씨는 예나 지금이나 밉상이란 말이야?’
물론 사실을 말하자면, 지금 이 양반이 돌려 말한 대로 내가 수업을 썩 열성적으로 듣지 않긴 했다.
크흠, 사실 몇 번은 아예 땡땡이를 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방금 들은 것처럼 수업 시간마다 계속 딴짓을 하고, 다른 애들을 방해하고, 질의응답 시간에도 헛소리만 지껄인 건 절대 아니었다!
‘와, 나 억울하다!’
사실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일단 어린아이의 지식에 맞춰 진행하는 수업 내용이 나한테 얼마나 지겹고 따분한 것인지부터 짚고 넘어가야 했다.
그것도 이미 이전 회차 때 두 번이나 똑같은 수업을 받아서 뻔히 다 아는 내용인데, 세 번째까지 참고 듣는 건 시간 낭비가 아니겠느냐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은 나 이 내용 다 알아요!’라고 주장하면 2회차 때 그랬던 것처럼 천재인 양 떠받들어져서 인생이 피곤해질 것 같고, 아예 수업을 하나도 안 들으면 아버지가 하나뿐인 딸내미를 걱정할 것 같아서 나로서도 중도를 맞추기가 까다로웠다.
물론 나는 막살기로 일찍이 결심했으니, 언행일치로 그냥 과감하게 공부 같은 건 다 때려치워도 됐다!
‘……크흑! 하지만 우리 아버지 딸이 기본 교육 과정도 못 뗀 똥 멍청이 소리를 듣는 건 너무 자존심이 상하잖아!’
여기서 바로 망나니로 살기로 결심한 나의 딜레마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일단은 탈주 본능을 꾹 참고, 좀이 쑤셔도 그냥 수업을 적당히 들었다.
숙제도 적당히 해가고, 선생님들의 질문에도 적당히 대답하면서…….
그렇게 가끔 딴짓을 하고 또 아주 가끔만 땡땡이만 좀 치는 걸로 최선을 다해 막살고 싶은 욕망을 참아내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런 식으로 내가 수업 시간마다 놀고먹는 것처럼 말해?’
심지어 이 아저씨는 내가 수업을 성실하게 잘 들어도 트집을 잡았을 게 분명하다.
오죽하면 누구나 인정하는 아주 모범적인 황녀로 살았던 지난 2회차 때도…….
‘3황녀님의 명성이 하도 자자하여 소신의 기대가 컸습니다만, 고작 이 정도였습니까? 아무래도 히세리온의 후광 덕에 바깥의 소문이 지나치게 과장된 듯하군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자기가 군대 중대장이야? 맨날 그놈의 X랄 맞은 실망 같은 소리만 귀 따갑게 염불하고 말이야!’
이런 식으로 매번 나를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했었단 말이다.
물론 그게 빡쳐서 지난 회차에서는 나도 더 열심히 노력해 성장한 긍정적인 면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아저씨가 학생을 발전시키려는 스승의 참된 마음씨로 나를 일부러 자극했다고 오해하면 절대 안 된다.
그냥 이 아저씨는 다른 황녀, 황자들이 자신의 손녀보다 뛰어난 꼴을 보지 못할 뿐이었다.
“그렇다는군, 3황녀. 뷔요른 공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지?”
라 벨리카 황제, 우리 어머니는 한 손에 느슨히 턱을 괸 채 나를 응시했다.
나는 뭐라고 대답할까 고민하다가, 이대로는 왠지 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더글라스 뷔요른에게 아주 살짝만 되갚아주기로 했다.
“으음, 모든 학생에게는 수준에 맞는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아스트리움에도 좋은 선생님들이 계셔서 저도 수업 시간에 따로 고민하거나 어려움을 느끼는 일 없이 즐겁기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수업이 내 수준에 안 맞아서 딴짓하는 건데ㅎ 얼마나 쉬우면 이렇게 머리 쓸 일이 하나도 없겠냐?
“합동 수업 시간에도요. 처음 갔을 때 생각보다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라 놀랐는데, 확실히 폭넓은 교우 관계를 형성하기는 나쁘지 않더라고요.”
-쯧. 합동 수업은 이미 개판이더구먼. 너희가 관리를 못 해서 애들이 날뛰는 건데 내 탓을 해?
“우음, 또 문답 시간에도요. 사실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의 답으로 딱 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던데……. 그래서 저도 다양한 해석을 해보려고 노력 중인데요. 판에 박힌 정설만 정답으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그런 부분도 이해해 주시는 선생님이야말로 열린 사고를 가진 이 시대의 참된 지식인인 거겠죠.”
-그리고 네 말만 정답이냐? 내 말도 정답이야! 네 생각만 맞다고 하는 넌 구식이고 후져!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아까 더글라스 뷔요른이 나를 칭찬하듯이 말한 것처럼 나도 아스트리움의 선생님들을 좋게 표현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더글라스 뷔요른은 내 말에 묘한 느낌을 받은 듯했다.
원래부터 살짝 주름이 나 있던 그의 미간이 움찔거리며 더 깊이 파였다.
더글라스가 눈썹의 높이를 비대칭으로 만들면서 의구심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도 뻔뻔스럽게 그를 마주하며 썩은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본 더글라스 뷔요른이 눈매를 꿈틀거렸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