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36)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36화(136/207)
우리는 잠깐 눈싸움을 하듯이 시선을 마주했다.
하지만 곧 더글라스 뷔요른이 먼저 헛기침을 하며 눈을 돌렸다.
그렇다고 이 아저씨가 먼저 나한테 패배를 선언한 게 아니라, 아무래도 어린아이를 상대로 진지하게 눈싸움하는 자신의 모습이 우습다고 생각한 듯했다.
“크흠. 곧 다가올 지혜의 날을 맞아 아스트리움에서 주관하는 시험이 열릴 예정입니다. 그때가 되면 3황녀님이 지니신 좋은 자질에 대해서도 좀 더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겠지요.”
“그렇겠군. 그래, 뷔요른 공은 이만 물러가 보아도 좋다.”
더글라스 뷔요른이 그렇게 집무실을 나간 뒤, 나는 입술을 새 부리처럼 오므리며 볼멘 목소리를 내뱉었다.
“어마마마……. 일부러 뷔요른 공이 있을 때 저를 부르신 거죠?”
라 벨리카 황제는 대답하지 않고, 정무를 볼 때만 가끔 쓰는 안경을 벗으며 낮은 소리를 내 웃었다.
“더글라스 뷔요른이 진심으로 칭찬하는 학생은 드물지. 뷔요른 공에게는 네가 제법 인상적인 학생이었던 듯한데, 기뻐하지 않고 왜 이리 뿔난 오소리처럼 구는 것이냐?”
뿌, 뿔난 오소리? 우리 어머니 표현 한번 참 신박하시지.
“아아니요, 그거 그런 칭찬 아니었잖아요. 다 아시면서.”
라 벨리카 황제는 절대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녀의 눈앞에서 오간 대화가 겉보기처럼 순수한 칭찬 같은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내가 작게 꿍얼거리자, 라 벨리카 황제도 이번에는 내 말에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가 의자에 좀 더 깊이 등을 기댔다.
작게 물결치는 금빛 머리칼과 나를 지그시 응시하는 금빛 눈동자에는 은은한 광채가 어려 있었다.
“확실히 오늘 보니 내 셋째 딸이 상당한 달변가더군. 평소에 말을 길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동안 내 앞에서만 말을 아꼈던 것인가 싶구나.”
뜨끔!
“에, 엥, 무슨 말씀을? 아델은 어마마마 앞에서는 항상 즐거워서 말이 더 많아지는데요?”
말을 많이 하면 내 수상한 점이 라 벨리카 황제의 눈에 띌까 봐 전부터 주의하고 있던 건 사실이었다.
또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그녀와 마주하면 저절로 공손해져서 말수가 적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그런 부분을 이렇게 면전에서 지적당하자 괜히 속이 켕기는 느낌이었다.
내 말에 라 벨리카 황제가 입꼬리를 휘어 가느다란 미소를 머금었다.
“내 앞에서 즐겁다고? 정말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그럼요……! 어마마마가 그렇게 생각하실 줄 몰랐어요. 아델이 앞으로 더 열심히 떠들어서 어마마마를 즐겁게 해드릴 수 있게 많이 노력할게요!”
“호오. 그래, 기대하겠다.”
으, 으윽……. 왜 스스로 무덤을 판 것 같은 기분이지?
내가 살짝 울적해진 사이에 궁인들이 들어와 다과상을 갈았다.
내 앞에는 평소에 내가 자주 마시는 달지 않은 차가 놓였다.
“한데 네게 배정된 아스트리움의 학자들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던가? 원한다면 다른 이로 바꿔주마.”
라 벨리카 황제는 희미한 훈향을 풍기는 찻잔을 들며 지나가듯이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사실 아스트리움의 학자들을 갈아치우는 건 그녀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황자와 황녀의 스승이 되는 영광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만큼, 당연히 아스트리움에 발탁되는 것은 학자들에게 있어 현자의 탑에 들어가는 것만큼 최고의 명예 중 하나였다.
손에 꼽히는 실력과 명성을 가진 학자들만 엄선되다 보니, 황자와 황녀들 역시 웬만큼 상성이 맞지 않는 스승이어도 받아들이고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혹시 어느 황자나 황녀의 선생이 교체되는 경우에는, 스승이나 학생 중 어느 한쪽에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라 벨리카 황제의 명으로 선생이 교체된다면, 십중팔구 선생 쪽에 문제가 있다고 결론지어질 것이다.
그러니 그녀의 권유는 나를 향한 명백한 호의였다.
나는 현재 내게 배정된 아스트리움의 학자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또 소설을 통해 알고 있는 내용도 상기했다.
물론 지금의 구성원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우음, 지금은 괜찮을 것 같아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어마마마.”
나는 잠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사악한 생각을 감추고 샐쭉 웃었다.
라 벨리카 황제는 한쪽 눈썹을 슬쩍 추켜세우며 나를 쳐다볼 뿐, 두 번 권하지는 않았다.
“아 참참, 맞다! 그러고 보니 곧 신관님들이 대신전으로 돌아가신다면서요?”
나도 문득 생각난 것처럼 화제를 바꿔 발랄하게 재잘거렸다.
“신관님들이 심연의 거울을 예쁘게 잘 고쳐주시면 좋겠어요. 로잔티나 황실의 대표적인 성물이니까, 또 지금처럼 깨지는 일이 없게 대신관들님이 성력도 다시 빵빵하게 잘 보충해 주고요.”
모르페우스가 일을 제대로 처리해서 신성 의식 건은 무난히 해결되었다.
원래 아무리 대단한 성물이라 해도 시간이 오래 지나면 기능이 저하되어 언젠가는 아무 쓸모도 없는 장식품으로 전락하게 마련이었다.
황실과 대신전의 보물창고에도 상징적인 의미는 있되 실질적인 힘은 없는 옛 성물들이 적지 않게 보관되어 있었다.
이번 신성 의식에 사용된 거울도 그런 이유로 깨진 것이라고 최종적으로 결론이 났다.
당연히 제르카인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일이었고, 오히려 그는 운 나쁘게 피해를 입은 것뿐이었다.
잠깐이긴 했지만 백색 심연에 들어갔다가 나오긴 했으니, 신성 의식도 무사히 마친 것으로 정리되었다.
‘모르페우스가 제법 쓸 만하단 말이야?’
이 정도면 나도 만족스러웠다.
확실히 이 방향이면 제르에게 악영향도 없을 테고, 또 황실과 대신전, 어느 쪽의 과실도 아니게 되니까.
모르페우스로서도 새까만 본성을 거스르고 상당히 고심해서 평화적으로 일을 해결한 셈이었다.
“그래, 대외적으로는 그렇게 공표될 예정이지.”
나는 혼자서 흡족해하다가, 라 벨리카 황제가 지나가듯이 내뱉은 말을 듣고 멈칫했다.
그리고 도르륵 눈을 굴려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힐끗 쳐다봤다.
뭐, 뭐지? 한순간 쎄한 느낌이 들었는데?
“어, 대외적으로는…… 이라면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뭐 그런 의미인 걸까나요?”
“3황녀는 어떻게 생각하지?”
“에헤헷, 어마마마도 참. 제가 뭘 알겠어요?”
“그런가? 알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나를 담아내고 있는 찬란한 황금색 눈은 너무 아득하게 깊어, 그녀의 속내를 읽어낼 수 없었다.
‘아우우.’
이번에도 먼저 시선을 뗀 건 나였다.
괜히 뒷덜미가 쭈뼛거려서 목을 쓱쓱 문질렀다.
‘3회차가 되어도 적응이 안 되다니까? 역시 후덜덜한 어머님이야.’
라 벨리카 황제의 앞에서는 종종 이렇게 영문 모를 긴장감이 들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는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게 장땡이었다.
“우음, 아델은 복잡한 건 싫어요~ 그냥 안 궁금해할래요. 머리 아프게 생각하는 건 재미없어요.”
나는 평범한 열 살 어린애가 투정을 부리듯이 구시렁거린 뒤, 괜히 창밖에 새가 앉은 걸 보는 척 산만하게 굴었다.
라 벨리카 황제는 그저 그러냐는 듯이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볼 뿐, 내 생각을 더 캐묻지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신성 의식 때 4황자에게 행운의 꽃을 선물했다지?”
“아, 넵. 제르하고 카루스 아버지가 너무 긴장하는 것 같아서요.”
“황성 안에 클로비스 꽃이 있었던가?”
“차, 찾아보니까 있던데요?”
“흥미롭군. 생각해 보면 짐도 클로비스 꽃을 가까이에서 본 지 오래되었구나.”
으음……?
나는 문득 라 벨리카 황제의 목소리와 눈빛에서 미묘한 느낌을 받고 멈칫했다.
“그동안 아들과 딸에게 꽃 선물을 받은 적은 아예 한 번도 없었지.”
으으응?
“온 세상을 손에 쥐었다고 우러름받는 황제임에도 이런 사소한 추억 하나 없다니, 이 정도면 인생을 헛살았다 해도 할 말이 없겠군.”
으, 으으으으응?
잠깐 이게 무슨 상관인지 맹렬히 고민하다가, 이내 머릿속에서 전구가 반짝 켜졌다.
“……저! 사실은 어마마마께 드리고 싶어서 요즘 클로비스 꽃을 열심히 찾고 있었는데요. 다음에 발견하면 선물로 드릴 테니 받아주세요!”
“호오. 첫 번째로 찾은 꽃은 4황자에게 줬지만, 두 번째로 찾은 클로비스 꽃은 내게 주겠다는 것이냐? 록샨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에, 에이. 물론 아버지도 완전 사랑하지만, 당연히 어마마마께 먼저 드려야지요! 사실 제르는 때마침 신성 의식이 겹쳐서 그렇지, 아니었으면 제일 먼저 어마마마께 제가 찾은 클로비스 꽃을 선물했을 텐데요!”
나는 진땀을 빼며 라 벨리카 황제에게 아부했다.
“그리도 짐을 위한다니 감동적이군. 그래, 3황녀의 마음은 잘 기억하도록 하지.”
그 모습이 퍽 재미있었는지, 그녀의 입술에 지금까지 중에 가장 짙은 미소가 피어났다.
‘꼬, 꽃을 안 줘도 된다는 말은 끝까지 하지 않네? 이런 부분은 제법 육아물 같은데 말이지…….’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