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37)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37화(137/207)
하지만 내가 있는 이 현실은 말랑 보송 로맨스 육아물 비중이 너무 미약해서 나는 흐린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그럼 선물에 대한 대가로 네게 한 가지 소식을 미리 알려주마. 마침 조금 전에 신관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으니.”
그리고 라 벨리카 황제가 대수롭지 않은 듯이 내게 흘린 말을 듣고 나는 살짝 흠칫했다.
“곧 황자와 황녀들을 위한 신학 수업이 아스트리움에 새로 추가될 예정이다.”
뭐, 신학? 이렇게 갑자기?
아, 혹시 그래서 방금 더글라스 뷔요른이 다녀간 건가?
“그래서 신관 중 한 명은 이번에 대신전으로 돌아가지 않고 황궁에 남기로 했지.”
앗! 앗, 잠깐만요…….
나 지금 갑자기 찜찜한 기분이 드는데?
왠지 뒷덜미에 스산한 예감이 퍼뜩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요? 어느 신관님이 남기로 하셨는데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왜, 추천할 신관이라도 있느냐?”
“아, 아뇨. 그건 아니고요. 그으냥 궁금해서요.”
나는 애써 태연히 반응하려고 애쓰며 자꾸만 구겨지려 하는 미간을 손가락으로 쓱쓱 문질렀다.
라 벨리카 황제가 그런 나를 보면서 눈을 가늘게 떴다.
“내 생각에는 아마 이 신학 수업이 특히 네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더구나. 그래서 올라온 안건을 바로 수락했다.”
“도, 도움요? 저한테요? 신학 수업이? 우와, 왜일까요……?”
라 벨리카 황제의 말을 듣자 등 뒤에서 식은땀이 또르륵 흐르는 것 같았다.
가끔은 그녀가 사실 내 모든 비밀을 다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때가 있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와아, 그러고 보니까 이건 못 보던 과자네요? 맛있겠다!”
나는 아방한 척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괜히 테이블 위의 간식에 정신이 팔린 양 과자를 와구와구 먹어치웠다.
똑똑.
“폐하. 오늘 중에 확인해 주셔야 할 서류와 상소문을 추가로 가져왔습니다.”
“안으로 들라.”
다행히 그때 황제의 보좌관이 집무실에 와서 대화의 맥이 끊겼다.
“아, 3황녀님과 함께 계셨군요. 로잔티나의 별을 뵙습니다.”
보좌관은 몹시 바쁜지, 내게 서둘러 인사한 뒤 가져온 서류와 상소문들을 책상 위에 산더미같이 쌓기 시작했다.
앗, 자연스럽게 나갈 찬스다!
“저도 그만 가볼게요, 어마마마.”
“그러겠느냐?”
“네, 바쁘신 것 같은데 제가 방해하면 안 되니까요!”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벌떡 일어났다.
그런데 문으로 가는 길에 보좌관이 실수로 떨어뜨린 상소문이 바닥에 떨어져 있어서 하마터면 밟을 뻔했다.
나는 속으로 혀를 쯧쯧 찼다.
‘지난번에도 이런 식으로 서류를 책상 밑에 떨어뜨렸던 것 같은데, 보좌관이 이렇게 덜렁거려도 괜찮은 건가? 에잉, 내가 봐줬다.’
나는 내용이 다 보이게 펼쳐져 있는 상소문을 얼른 주웠다.
그리고 대신 돌돌 말아, 원래 있어야 할 집무실 책상에 쓱 올려두었다.
바쁘게 움직이던 보좌관이 그걸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쉬잇.”
나는 그를 향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면서 위로의 의미로 그의 팔을 툭툭 쳐 줬다.
‘에구, 눈 밑 거뭇한 것 좀 보게. 그래그래, 나도 다 알아! 일하느라 힘들지? 나도 지난 회차 때 뼈 빠지게 워커홀릭으로 살아봐서 그 고통을 다 이해하지.’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결심했다.
‘이번 생에는 반드시 놀고먹으리라!’
내 측은한 눈빛을 받은 보좌관이 나를 향해 엉거주춤 인사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라 벨리카 황제는 다른 곳을 보고 있어서 내 행동을 목격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게 라 벨리카 황제의 집무실을 나서기 직전에,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뒤돌아보았다.
“저, 그런데 어마마마. 혹시 오크……. 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반쯤 충동적으로 뭔가를 물으려다가 그냥 말았다.
“과자랑 차 맛있었어요. 헤헤. 다음에 또 불러주세요!”
그러고는 그냥 바보같이 웃는 얼굴로 예법에 맞지 않는 인사를 남긴 뒤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 * *
‘생각해 보면 좀 그래. 보좌관도 있는 자리에서 그런 걸 물어봐서 뭘 어쩌려고?’
나는 햇빛이 반짝이는 복도를 걸으며 쩝 입맛을 다셨다.
사실은 집무실을 나오기 전에 바론 오클란테에 대한 것을 라 벨리카 황제에게 질문할 뻔했는데, 마지막에라도 정신을 차리길 잘한 것 같았다.
5년 전에 바론이 인과응보라도 당하듯이 독을 먹은 사건.
라 벨리카 황제가 거기에 진짜 연관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말이다…….
만약 내 생각이 틀리다는 답변을 들어도, 이미 오래전부터 내 마음속에 깃들어 있던 의심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터였다.
반대로 만약 내 생각이 맞다는 말을 들으면?
그래도 그녀에게 딱히 할 말은 없었다.
물론 라 벨리카 황제가 바론 오클란테에게 처벌을 내린 게 사실이라면, 궁금한 게 하나 더 있긴 했다.
‘어마마마, 그럼 혹시……. 처음부터 바론 오클란테가 루벨리오를 해치려 하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그런데도 그냥 놔두신 거예요?’
그러나 결국은 이 또한 기회가 있어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물음이었다.
‘설령 그런 거면 뭐……. 나도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모친이면서 그럴 수 있느냐는 생각은 가당치도 않았다.
원래 제왕에게는 모정보다 우선시되는 것이 셀 수 없이 많은 법이었다.
물론 내가 제왕은 아니지만, 정작 나부터도 적극적으로 바론을 막아 루벨리오를 안전하게 보호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에게 미리 경고해 주려던 마음은 약간 있었지만, 어차피 죽지 않을 걸 알고 있으니 독을 먹고 좀 앓아도 상관없다는 생각 역시 가지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원래 루벨리오는 내가 지키고 싶은 내 울타리 안의 사람에 속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론의 약점을 잡으려면 그가 피해를 입는 게 낫다는 생각을 마음 한편으로 하고 있었던 건지도 몰랐다.
더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 비교적 가치가 낮은 것을 희생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소설에 빙의해 꿈도 희망도 없는 현실을 어떻게든 수렁 속에서 건져내려고 지금까지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왔다.
아마 앞으로도 그런 생각은 쉽게 변하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마음 한구석에 돌멩이가 낀 것처럼 묘하게 속이 거북했다.
하지만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니 앞으로는…… 조금 거리…… 모두 2황녀님을 위해 드리는 말입니다.”
그렇게 건물 밖으로 나와 회랑을 걷던 중에, 문득 귀에 익은 목소리가 바람에 작게 실려 왔다.
나는 귀를 쫑긋하며 걸음을 멈췄다.
“황녀님?”
“쉬잇!”
의아하게 나를 부르는 마가렛과 수행인들에게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들에게 잠깐 여기에 있으라고 손짓한 뒤,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물론 아랫사람을 아우르는 관대함은 2황녀님처럼 존귀한 분께 꼭 필요한 덕목이지요. 하지만 바로 곁에 있는 1, 2급 궁인들도 아니고, 허드렛일을 하는 4급 궁인들까지 거르지 않고 친밀하게 지내시는 건 과합니다.”
역시 조금 전에 황제의 집무실에서 봤던 더글라스 뷔요른이 그곳에 있었다.
그와 함께 있는 건 2황녀 알렉시아였다.
그들은 후원에 근접한 회랑의 가장자리, 사람들이 굳이 일부러 걸음 할 리 없는 구석진 곳에 서 있었다.
주변에는 수행인들이 일정 거리를 두고 서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감시하는 중인 듯했다.
하지만 나는 몸집이 워낙 작은데다, 이렇게 조용히 기둥 뒤에 숨기까지 하니 눈에 잘 띄지 않는 모양이었다.
“황실 계보에 올려진 2황녀님의 정식 이름은 ‘알렉시아 리안 로잔티나’입니다. 이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더글라스 뷔요른은 손녀를 붙잡고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타이르듯이 말했다.
그의 말처럼, 알렉시아는 현재 황녀와 황자 중에 유일하게 가운데 이름이 있었다.
자고로 로잔티나의 황족에게 가운데 이름이 생기는 경우는 성인이 되었을 때, 또는 황태자로 책봉되었을 때뿐이었다.
그래서 지금 내 이름은 그냥 ‘아스포델 로잔티나’였다.
라 벨리카 황제를 예로 들자면, 그녀는 황제의 칭호인 ‘라’까지 합해 ‘라 벨리카 글로리아나 에스메랄다 로잔티나’라는 긴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원래대로라면 알렉시아도 나와 같은 이름 형식이어야 하지만, 그녀는 예외였다.
그것은 바로 알렉시아가 신성 의식 때 신의 축복으로 이름을 선사받았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그런 전례가 없었던 건 아니라, 특별하기는 해도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알렉시아의 경우에는 신에게 선사받은 이름을 외부에 밝히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신성 의식 때 2황녀님께서 신께 직접 받은 이름인 ‘리안’의 의미는 고대어로 왕이지요.”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