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4)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4화(14/207)
“으악!”
위에서 거미와 벌레가 떨어져서 1황자가 우아하지 못한 비명을 질렀다.
“뭐야, 거미가 무서워?”
“무, 무섭긴 누가!”
“귀엽기만 하구먼.”
“히익!”
녀석에 옷에 붙은 벌레를 한 마리 떼서 앞으로 들이밀었더니 또 녀석이 진저리쳤다.
난 그걸 보고 케케케 웃었다.
평소에 늘 어른스럽고 단정한 모습만 보이던 1황자 놈이 이렇게 망가지는 걸 보니까 웃겼다.
“너 이게 무슨 짓……. 어?”
나한테 성을 내려던 1황자가 곧 담쟁이덩굴 사이에서 나타난 내 키만 한 작은 쪽문을 발견하고 세 번째로 놀랐다.
“뭐야, 문이잖아? 여기 왜 이런 게…….”
일명 ‘개연성을 따지지 말자!’ 2탄이었다.
솔직히 이런 황성에 외부인 침입이 가능한 비밀 문이 있다는 건 말이 안 되지.
하지만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
이런 비밀 문이 있어야 아스포델이 어른들 몰래 성을 빠져나가서 여기저기 플래그를 꽂으며 새로운 사건·사고를 만드는 거니까.
좋은 게 좋은 거니 그냥 소설적 허용이라고 치면 돼!
“자, 먼저 들어가.”
난 1황자에게 먼저 개구멍을 권했다.
사실 꼭 녀석을 데려갈 필요는 없긴 한데 여기에 남겨뒀다가는 어른들한테 가서 이를지도 모르니 나름의 안전 장치인 셈이다.
“잠깐! 너 수행인도 없이 나가려고?”
그런데 이 범생이 녀석이 역시 딴죽을 걸었다.
난 그를 보고 파하, 한숨을 내쉬었다.
내 눈을 본 1황자가 흠칫했다.
“있잖아, 9살이면 이제 다 큰 어른이잖아?”
역시 ‘어른스러운 나!’에 심취한 꼬맹이답게 1황자는 내 말을 듣고 두 눈을 흔들었다.
“그러면, 혼자 궁 밖에 나가서 산책도 하고 그래두 되는 거 아냐?”
“그건…….”
“그 정도도 못 하면 그게 무슨 어른이야? 오빠, 어른도 아니면서 그동안 어른인 척한 거야?”
하찮은 걸 보듯이 무시하는 눈빛으로 쳐다봐 줬더니 아직은 어려서 단순한 부분이 있는 1황자가 걸려들었다.
“아니야! 그냥 아직 나보다 한참 어린 네가 혼자 나가려고 해서 놀란 거지……. 나한테 이런 건 아무것도 아냐!”
그는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난 옳다구나 하고 더 뻔뻔하고 당당하게 말했다.
“어른인 오빠랑 같이 있는 건데 뭐가 문제야? 원래 보호자랑 같이 있으면 상관없는 거잖아?”
“그, 그렇지 그건.”
“자, 빨랑 들어가.”
상황은 금방 종료되었다.
그러게 왜 버티고 난리야, 귀찮게.
1황자는 ‘이게 아닌데’ 하는 얼굴을 한 채로 나한테 떠밀려 작은 쪽문으로 엉거주춤 걸어갔다.
머리가 좀 더 크면 이런 식으로 은근슬쩍 구워삶기도 어려워질 테지만 아직은 어려서 요리하기가 쉬웠다.
그렇게 1황자와 나는 궁 밖으로 나왔다.
물론 그래봤자 아버지와 내가 살고 있는 궁을 나섰을 뿐, 아직도 황성 안이긴 했다.
난 최대한 사람들이 없는 후미진 곳으로만 걸었다.
나중에야 들켜도 상관없지만, 적어도 목적지 가까이 갈 때까지는 방해받지 않을 필요가 있었다.
“어디까지 가려고?”
“쉿, 저기 사람 오자나.”
“헉, 이쪽으로 숨어.”
처음에는 불안해 보였던 1황자도 처음 하는 일탈에 점차 재미가 들렸는지, 나중에는 꽤나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아, 그런데…….
‘하, 왜 이렇게 머냐.’
아무리 걷고 또 걸어도 목적지 근처에 다다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앗, 저기 또 근위대가 서 있군. 이번엔 저 뒤로 가서 이동할까?”
……너 지금 진짜 즐기고 있냐?
난 점점 다리가 저려 오고 체력도 떨어져 흐느적거리는데, 이 녀석은 점점 얼굴도 밝아지고 오히려 기운만 생생해지니 그것도 짜증이 났다.
결국 난 덤불 속에 같이 숨은 1황자의 팔에 척 손을 올렸다.
반짝이는 눈으로 날 돌아본 1황자가 내 강렬한 눈빛에 흠칫했다.
“나 업어.”
“뭐?”
“업어.”
“뭐어?”
“업어.”
결국 1황자가 내 기세에 밀렸다.
그는 아까처럼 어리벙벙한 얼굴로 내 말대로 움직였다.
“쩌기로 가, 쩌기!”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듯한 그가 나를 등에 업은 채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왜 내가…….”
당연히 그의 사정 따위는 내가 알 바 아니어서 그냥 무시했다.
그래도 확실히 이동 수단을 업그레이드한 다음부터는 속도가 좀 나서, 금방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긴…… 연회장이잖아?”
어유, 드디어 왔네.
생각보다 긴 여정이었다.
“역시 생일 연회가 일찍 끝나서 아쉬웠던 건가?”
1황자가 눈앞에 있는 건물을 보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마수들이 휩쓸고 간 연회장은 외관이 많이 상한 상태였다.
어제오늘, 황성에 불려 온 신관들이 마수의 흔적이 있는 곳을 깨끗이 정화하긴 했지만 깨진 창문이나 부서진 외벽을 보수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1황자가 뭔가 오해하는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어서 그냥 녀석을 독촉했다.
“저리루 가자. 저기까지 가서 내려줘.”
“저긴 마수 때문에 출입 금지…….”
“신관님들이 다 정화했는데 무슨 상관이야? 설마 오빠, 신관님들 못 믿는 거야?”
황권이 강한 로잔티나였지만 어쨌거나 신을 모시는 나라답게 신전의 세력 또한 강력했다.
“누가 그렇대? 가면 될 거 아니야, 가면.”
1황자는 차마 제 입으로 신관들에 대한 의심을 표할 수 없었는지, 투덜거리면서 내가 가리킨 곳으로 향했다.
“앗, 1황자님과 3황녀님?!”
“로잔티나의 별께 인사드립니다!”
연회장 앞을 지키고 있던 근위병들이 우리를 보고 인사했다.
“그래. 수고들 하는군.”
1황자가 또 근엄한 척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래봤자 날 업고 있어서 딱히 위엄 있어 보이진 않을 테지만.
“왜 두 분이 여기를…….”
“잠깐 보러 온 거니까 신경 쓰지 마.”
1황자와 나는 근위병들을 지나쳐 연회장 앞의 공터로 향했다.
원래 이곳에는 분수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깨져서 흔적만 조금 남아 있었다.
그래도 마수와 사람의 핏자국을 포함한 불결함의 잔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정화된 공기에는 신성한 기운이 가득했다. 그래서 기분이 상쾌해졌다.
“이제 내려줘 봐.”
“안에는 들어가면 안 돼.”
나도 안다, 이놈아.
1황자는 생일 연회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왔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내가 바닥에 내려서 뽈뽈뽈 움직이는 동안 1황자도 주변을 한번 둘러보았다.
난 기회를 봐서 녀석이 날 보고 있지 않을 때 품 안에 숨겨 온 마석을 잽싸게 꺼냈다.
허브 화원에서 주운 바로 그 검은 마석이었다.
하지만 이미 내가 며칠간 틈날 때마다 만져 절반쯤 정화시킨 데다, 지금 이 장소에 깃든 순수한 신성력 때문에 남은 절반의 사기마저 사라진 상태였다.
오늘 여기 온 이유는 마석을 자연스럽게 처리하기 위해서다.
이걸 내가 계속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고, 아버지나 마가렛에게 들키면 귀찮은 일만 생길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침 마수들이 죽어서 마석들이 나왔던 곳에 버리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았다.
‘나도 하는 생각을 악당 놈들이 못했을 리도 없고. 그래도 그놈들이 검은 마석을 허브 화원 같은 후미진 곳에 버리게 한 건, 사기가 깃든 마석을 신관들에게 들키면 안 되니까 그랬겠지.’
“이거 주워따!”
난 마석을 바닥에서 찾은 척 손에 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
보란 듯이 그걸 높이 쳐들고 총총총 뛰어가자 1황자가 날 쳐다봤다.
“반짝여서 봤더니 보석이 떨어져 있어써!”
“보석? 연회에 왔던 사람이 떨어뜨리고 간 건가?”
하지만 그는 내 손에 들린 걸 가까이에서 확인하자마자 그것의 정체를 알아챘다.
“이건 보석이 아니라 마석이잖아?! 아, 다행히 흰색이네.”
마수의 몸에서 나오는 마석은 원래 짙은 보라색을 띠고 있다. 마수의 몸에 있는 사기와 독기 때문이다.
그것을 신관들이 정화하면 흰색이 되는데, 앞서 설명했듯이 그 상태의 마석은 마력을 넣고 가공해 여러가지의 생활 편의품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너 이거 함부로 만지면 안 돼. 정화가 안 된 걸 건드리면 아플 수도 있단 말이야. 혹시 이런 게 더 떨어져 있는 건 아니겠지?”
“이거밖에 없던데?”
“그럼 이건 신관님들한테 가져다드려야겠군. 저기, 음. 이거 일단 나한테 줄래? 차, 착하지?”
이게 어디서 어린애 취급이야?
1황자 놈이 어색하게 날 어르는 꼴을 보니, 내가 이걸 안 주겠다고 떼라도 쓸 줄 아는 모양이다.
난 콧방귀를 뀌며 손에 들고 있던 마석을 녀석에게 줬다.
그러자 1황자가 다행이라는 듯이 얼굴을 폈다.
“그래, 잘했어. 착하다.”
……엥?
그런데 지금 내 머리에 올라온 이 시건방진 손은 다 뭐다냐?
아니, 이놈이 지금 누굴 말 잘 듣는 똥강아지 취급이야?
“응? 아니, 황자님과 황녀님 아니십니까? 귀여운 황족분들이 여긴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내가 1황자의 손을 물어뜯을까 말까 고민 중일 때 연회장 건물 안쪽에서 웬 밤톨 같은 사람이 튀어나왔다.
1황자가 깜짝 놀라 손을 내리고 고개를 돌렸다.
쳇, 1황자 녀석 운이 좋군.
“안녕하세요, 신관님.”
“하하, 안녕하십니까. 1황자님은 어제도 뵈었었지요.”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