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40)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40화(140/207)
“뭐야, 둘이 왜 그렇게 친밀하게 눈빛 교환을 해?”
그런 우리를 발견한 유클레드가 못마땅하게 꿍얼거렸다.
모르페우스는 내가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걸 알았는지, 살짝 스산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말했다.
“혹시 제가 아닌 다른 신관과 신학 수업을 진행하고 싶으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해 주십시오.”
지목받은 신관을 네가 죽일 것 같은데…….
혹시 이런 상황을 상정하고 대기하고 있기라도 했나?
모르페우스가 고갯짓하자 궁인이 교육실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아직 대신전으로 귀환하지 않았던 신관 몇 명이 안으로 들어와 쪼르륵 모르페우스의 뒤에 일렬로 섰다.
당연히 다른 황자, 황녀들은 신관들에 대해 잘 모르니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루벨리오는 대놓고 다른 신관을 고르기가 눈치 보였는지, 네가 나서 보라는 듯한 강렬한 눈빛으로 나만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모르페우스는 잠깐 우리를 기다리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신관들에게 물었다.
“아니면 신관 중 마음이 바뀌어 지금이라도 이 자리에 지원하는 분이 있다면 손을 들어 주십시오.”
조용…….
신관들은 미묘한 얼굴을 하고 있을 뿐, 누구 한 사람 움직이지 않았다.
모르페우스의 협박 때문인 게 분명……! 하진 않은 것 같았고, 다른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 듯했다.
하기야, 세속적인 야망이 큰 신관이 아니고서야 사실 이런 자리는 달갑지 않을 수 있었다.
신관들의 입장에서는 느닷없이 어린 황족들에게 신학을 가르치라니 어리둥절한 느낌이 들 만도 했다.
그들이 정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다면 신전에 있는 어린 견습 신관들에게 강의를 하면 되었다.
게다가 아무리 신 아래에서는 만민이 평등하다지만, 신전에도 신분의 고하는 있었고 황족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어린 황족들을 가르치다가 괜히 밉보이기라도 하면 오히려 손해였다.
또, 이미 신관들은 신전에서의 수도승 같은 생활에 익숙했다.
그러니 이렇게 화려함의 극치인 황성에 머무는 것 자체가 불편할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혹시나 그러다가 세속의 욕망에 물들기라도 할까 봐 경계심이 들 수도 있었고 말이다.
그렇게 여러 가지 이유로 신관들은 어느 한 사람 시원하게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상황을 파악한 모르페우스가 여유롭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럼 달리 이의 있으신 분이 없다면, 제가…….”
“이의 있습니돠아아앗!”
콰앙!
바로 그때, 누군가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문이 벌컥 열렸다.
방 안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직후 열린 문 안으로 거친 콧김을 내뿜으며 난입한 사람은…….
“이 결정, 저는 반대입니다……! 그것도 완! 전! 결사!! 반대!!”
“……아이작 신관?”
나와 모르페우스는 눈을 의심하는 얼굴로 문 앞에 선 사람을 쳐다봤다.
“어떻게 지금 여기에……. 아이작 신관은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았던가?”
“예, 어제 막 황도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대신전에서 놀라운 소식을 듣고 이렇게 다급히 황궁에 찾아온 것이지요.”
아이작은 레예스의 외숙부로, 레예스와 함께 바스티온의 영지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제 황도로 돌아왔다고?
앗, 그럼 혹시 레예스도 같이 왔나?
“황자님, 황녀님들께 신학을 강론할 신관을 선출하신다지요?”
여전히 밤톨 같은 모습을 한 아이작이 결의에 찬 눈으로 선언했다.
“이 아이작이 지원하겠습니다!”
두둥! 라이벌이 등장했습니다!
난데없이 튀어나온 경쟁자에 모르페우스의 눈에 싸늘한 한기가 감돌았다.
“모르페우스 신관님께 결투…… 아니, 정당한 경쟁을 요청합니다!!”
모르페우스의 뒤에서 휘이잉 거센 눈보라가 치는 듯한 환영이 보였다.
아이작의 몸에서는 뜨거운 불길이 활활 치솟는 것 같았다.
오, 오오……. 이건 팝콘을 뜯어야 할 것 같은 긴박감!
“어우, 창문 열렸나? 왜 갑자기 춥지?”
“그래? 난 오히려 이상하게 좀 더운 것 같은데.”
남매들의 수군덕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난 루벨리오와 동그랗게 뜬 눈을 마주했다.
뭐지? 갑자기 일이 생각과 다르게 돌아가는데?
* * *
“야, 아스포델. 너 잠깐 이리 좀 와 봐.”
막장 드라마 뺨치는 교육실에서의 흥미진진한 엔딩 이후, 누군가가 내 앞길을 가로막았다.
꼭 삥 뜯는 일진처럼 시건방지게 나를 부른 건 루벨리오였다.
“뭐야, 왜 아스포델을 불러? 아스포델은 나하고 같이 돌아갈 건데.”
“유클레드 형님은 바로 검술 수업이 있잖아요. 절대 지각하면 안 되는 마노 경의 상급 검술 수업이요. 늦지 않으려면 지금 바로 연무장으로 가야 할 텐데요?”
루벨리오의 논리정연한 말에 유클레드가 움찔했다.
“나는…… 나는 아스포델을 위해서라면 지각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됐거든? 그냥 가라.”
나는 차게 식은 얼굴로 유클레드의 쓸데없는 결의를 와장창 깨뜨렸다.
루벨리오는 유클레드를 간단히 치워 버린 뒤,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다음 타자를 또 보내버리기 위해 제르카인을 쓱 쳐다봤다.
“…….”
하지만 제르카인은 아무 말도 없었다.
루벨리오는 저 누나 바보가 어쩐 일이냐는 듯이 멈칫했다.
나도 이상함을 느꼈다.
평소의 제르라면 ‘아델 누나, 나 혼자 두고 갈 거예요?’라면서 촉촉한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고도 남을 텐데, 왜 이렇게 가만히 있지?
그러고 보면 방금 교육실 안에서도 제르카인은 이상하게 조용했었다.
“제르, 왜 그래? 혹시 어디 아파?”
제르카인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처럼 멍하게 서 있다가,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것처럼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 아델 누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혹시 고민 같은 거라도 있어?”
“아뇨……. 그냥요.”
제르카인은 대답을 얼버무리듯이 입술을 옴짝거리며 웅얼거렸다.
그러더니 그는 이내 조용히 시선을 내리깔며 말했다.
“저기, 저 먼저 궁으로 돌아가도 될까요?”
헉! 이번에는 나와 다른 남매들 모두 진심으로 경악했다.
“그, 그래? 지금? 혼자?”
“네.”
귀를 의심하며 되물었지만, 제르카인은 입술을 오므리면서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어어, 그래. 그럼 그럴래?”
“그럼 아델 누나. 다른 누나들, 형들……. 다음에 뵐게요.”
어린 소년이 공손하게 인사한 뒤 뒤돌아 총총 걸어갔다.
나와 다른 남매들은 입을 벌린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제르카인이 갑자기 왜 저러지?”
“몰라, 맨날 병아리처럼 아스포델만 쫓아다니더니 오늘 뭘 잘못 먹었나?”
나는 나대로 충격을 먹어서 멍했다.
제, 제르가 신성 의식을 치른 걸 계기로 홀로서기를 시작한 건가?!
“야……. 너 내 얘기 듣고 있어?”
“어엉?”
앗, 잠깐 넋을 놓은 사이에 자리를 옮겼구나.
망가진 로봇처럼 끼기긱 고개를 돌리자, 종잇장처럼 구겨진 루벨리오의 얼굴이 보였다.
아마도 지금 내 눈은 죽은 동태 같을 것이다.
유사 생선 눈깔을 마주한 루벨리오가 흠칫 놀랐다.
“뭐야, 너 설마 4황자 녀석이 혼자 자기 궁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고 이러는 거야?”
루벨리오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헛숨을 들이켰다.
“그게 그렇게 충격받을 일이야? 옛날부터 이해가 안 됐어. 넌 왜 그렇게 그 녀석을 챙기는 건데? 그래 봤자, 제르카인 그 녀석은 어차피……!”
하지만 루벨리오는 왠지 발끈해서 언성을 높여놓고는, 말을 제대로 끝맺지 않고 삼켰다.
“뭐야, 왜 말을 하다가 말아? 제르카인이 어차피 뭐?”
나는 사뭇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루벨리오의 말에 눈매를 추켜올렸다.
루벨리오는 어쩐지 복잡한 눈으로 나를 보다가 곧 외면하듯이 옆으로 휙 고개를 돌렸다.
“하, 됐어. 내가 이렇게 신경 쓸 일은 아니지. 맞아, 내가 무슨 상관이라고.”
“얼씨구,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똥 싸다가 끊는 기분, 안 찝찝한가?”
“너……! 더러운 소리 좀 하지 마! 너는 황녀라는 애가 품위 없게!”
루벨리오는 자기가 무슨 이슬만 먹고 사는 요정이라도 되는 것처럼 진저리를 쳤다.
나는 불결한 것을 보듯이 몸서리치는 그를 보면서 킬킬 웃었다.
“아무튼! 내가 이렇게 널 불러낸 이유는 알고 있겠지?”
루벨리오가 천둥벌거숭이를 보는 눈으로 나를 흘기다가 다시 엄숙하게 분위기를 잡았다.
“신관들이 황성에서 신학 수업을 못 하게 막아야 돼.”
“오오오. 생각보다 야망이 넘치는데?”
“난 진지하거든?! 아니면 하다못해 그 존재감 넘치는 신관이 아니라, 밤톨처럼 희끄무레하게 생긴 신관이 황성에 남게 해야 돼!”
밤톨…… 희끄무레…….
야, 나도 아이작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긴 했지만 너까지 그러는 건 좀 심하지 않냐?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