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cked Princess Plans for Her Life RAW novel - Chapter (141)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141화(141/207)
“그래서 어떻게 하자고? 수업 듣는 애들끼리 투표라도 하자고 해?”
나는 그냥 한번 해본 소리인데, 루벨리오가 반색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인데? 넌 유클레드 형님과 타마린느 누님, 그리고 알렉시아 누님과 제르카인을 맡아라. 난 나머지를 맡지.”
“나머지…… 야, 헬리만밖에 안 남잖아!”
“야? 야아?! 너 지금 이 오빠한테 야라고 했어? 은근슬쩍 아주 맞먹는다?”
나와 루벨리오는 잠깐 티격태격했다.
그런데 루벨리오는 확실히 노골적으로 모르페우스를 경계하는 눈치였다.
지금까지의 태도로 보면 모르페우스에 대해 뭘 확실히 아는 것 같지는 않았는데, 어쩌면 본능적으로 그에게서 껄끄러움을 느낀 것인지도 몰랐다.
5년 전에 이 녀석이 독을 먹고 쓰러졌을 때 모르페우스는 그를 치료해 주기는커녕 나와 거래를 하기 위한 인질로 삼았었다.
사실 이 녀석은 그때 내가 성력으로 치료해 줄 때 아주 잠깐 깨어났었는데, 다행히 그날 일을 기억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모르페우스도 그때 이 녀석이 눈을 떴던 건 모르는 눈치라, 나도 그냥 입을 다물었고 말이다.
어쨌든 루벨리오 때문에 나도 모르페우스의 약점을 잡게 되었으니 조금은 그의 덕을 본 셈이었다.
물론 그래서 조금 잘해주려고 마음먹을 때마다 이놈은 말로 점수를 다 까먹고 있었지만…….
‘흠, 그러고 보니 예전에 루벨리오 녀석이 예지로 봐서 약간 아는 듯했던 신전의 타락은 이제 안 일어나는 거 아닌가?’
모르페우스는 이제 내 말을 잘 들어야 하니까, 예전처럼 검은 마석으로 사람들을 조종하고 타락시키고……. 그러지 않을 텐데?
그럼 루벨리오가 본 미래는 이제 사라진 건가?
그런데 예지라는 게 원래 그렇게 막 유동적으로 바뀌는 거던가?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은 걸 보면 미래를 알고 바꾸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나중에 보면 꼭 귀신같이 예언과 똑같은 일이 벌어져서 환장하고 그러던데.
나도 모르게 눈을 가느스름하게 좁혔다.
하긴, 나도 모르페우스를 아직 완전히 믿고 있지는 않지.
그러니까 어쩌면 그냥 이참에 황성에 두고 감시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음, 결정했다. 나는 모르페우스 신관한테 소중한 한 표를 투척하는 걸로!”
“뭐?!”
루벨리오는 진지하게 모르페우스를 황성에서 쫓아낼 궁리를 하다가,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사람처럼 어리벙벙하게 나를 쳐다봤다.
“그럼 루벨리오 오빠, 힘내! 당신의 소중한 신관을 위해 투표하세요!”
“자, 잠깐만! 너 진심이야? 진심이냐고! 야……!”
루벨리오가 현실을 부정하듯이 뒤에서 애타게 나를 불렀으나, 그럼 무엇하리오? 이미 내 마음은 굳어진 뒤였다.
“너, 너 어떻게 이렇게 금방 배신을……!”
잠깐 멍하게 있다가 뒤쫓아온 루벨리오가 나를 붙잡으며 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대사를 날렸다.
“뭐? 내가 배신자라고? 흥, 너야말로 혼자만 고고한 척하니까 좋냐?”
엥? 오해하지 마라. 참고로 이건 내 대사가 아니었다.
루벨리오와 나는 잠깐 어리둥절하게 시선을 마주하다가,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눈을 돌렸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황자와 황녀의 교육실이 있는 버베나 궁이었다.
그리고 루벨리오와 나는 몰래 작당 모의를 하느라, 평소에 걸음 하지 않는 버베나 궁 뒤쪽의 구석진 곳에 와 있었다.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의기투합하여 살금살금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곧 우거진 나무들 사이에서 마주 보고 서 있는 두 젊은 남녀가 눈에 띄었다.
“내가 고고한 척한다고? 언제부터 순수한 학문의 길을 걷는 것이 고고한 척한다며 비웃음을 살 일이 된 거지? 적어도 나는 정정당당하게 아스트리움에 이름을 올렸어.”
“하, 그게 바로 고고한 척이라는 거야.”
냉정한 여자의 말에 남자가 조소했다.
“그래, 네 말처럼 난 돈으로 이 자리에 들어왔고 넌 아니라고 쳐. 하지만 너도 애초에 아카데미 시절 은사였던 살라미르 교수님의 추천을 받고 여기에 들어온 거잖아? 네가 연줄로 아스트리움에 들어오는 건 되고, 내가 금줄로 들어온 건 안 된다는 거야? 네가 가진 것만 정당하다니 그것참 재미있는 소리네.”
나는 저들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아스트리움의 학자들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지? 선생들끼리 싸우는 건가?”
“조용히 좀 해 봐.”
나는 루벨리오를 조용히 하게 시키고 다시 귀를 기울였다.
지난번에 알렉시아와 더글라스 뷔요른을 봤을 때 그랬던 것처럼, 수행인들에게도 더 멀리 떨어지라고 손짓했다.
황족의 신분은 이게 불편하다니까?
어딜 가든 사람들을 주렁주렁 달고 다녀서 뭘 몰래 하기가 쉽지 않단 말이야.
“그래……. 페터, 너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
감정을 삭이는 듯한 가라앉은 여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난 연줄은 되고 돈은 안 된다는 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라, 아스트리움에 점점 자격과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들어오고 있는 게 문제라는 거야.”
“그래, 그리고 넌 그런 소리를 경솔하게 했다가 아스트리움에서 쫓겨날 운명이지.”
여자에게 페터라고 불린 남자가 뒤이어 빈정거렸다.
“루드밀라. 그래 봤자 넌 이제 다음 달이면 아스트리움에서 이름이 지워질 거야. 네가 뭐라고 떠들든 간에, 넌 네 자리를 지키지 못했고 난 지켰어. 그것 자체가 내 능력이야. 너도 여기 남고 싶었으면 나처럼 하지 그랬어? 이렇게 뒷북치면서 배신자 소리나 하지 말고 말이야.”
“너는…… 그럼 지금 네가 한 짓이 자랑스럽다는 거야?”
“공부나 잘하는 샌님이 좋은 결과를 얻는 건 아카데미 시절까지만이지. 너도 멍청한 짓 좀 그만하고 이제 세상을 좀 배워라. 응?”
끝까지 이죽거리던 페터가 먼저 자리를 떠나고, 잠시 후 어두운 표정의 루드밀라도 사라졌다.
두 사람은 모두 아스트리움에 소속된 정식 교사였다.
과목은 정치와 역사.
나는 저 두 사람 중에 페터의 과목만 듣고 있었다.
“뭐야, 저 두 사람 사이가 별로 안 좋네? 같은 아카데미 출신이라고 들었는데.”
나를 따라 옆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던 루벨리오도 그들을 알아보고 쯧쯧 혀를 찼다.
“그런데 도대체 왜 싸운 거야?”
으이그, 여기까지 들었는데도 모르겠단 말이야?
그런 너에게 내가 딱히 설명해 줄 말은 없구나.
“루벨리오 오빠, 우리 곧 지혜의 날이라고 시험 보잖아. 근데 시험 보기 싫지?”
“뭔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시험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나?”
“역시. 그럼 난 간다.”
“잠깐, 어디 가? 나랑 얘기하던 거 아직 안 끝났잖아!”
“난 할 얘기 다 했는데? 루벨리오 오빠, 파이팅. 당신의 소년, 아니, 당신의 신관에게 투표하세요.”
“야!”
방금 내가 들은 두 교수의 대화는 더글라스 뷔요른이 뒤에서 돈을 먹고 실력이 좀 딸리는 학자를 아스트리움에 들이는 걸 꼬집는 게 분명했다.
‘어쩐지 페터 자식. 내가 어리다고 수업 때마다 아부나 떨고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더라니. 그래놓고는 내가 지겨워서 딴생각을 좀 하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못마땅한 티를 냈었지?’
관상학적으로도 저놈이 더글라스 뷔요른한테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리를 한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문제가 있는 교수가 한두 명이 아니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아까 교육실에서 두 신관이 불꽃 튀기는 만남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던 일을 떠올렸다.
‘흠, 마침 오늘 아이작이 신학 과목 교수직을 걸고 모르페우스에게 정식으로 도전장을 내민 일도 있었잖아?’
이건 원작 소설과 지난 1, 2회차 빙의 때는 없던 사건인데, 이걸 잘 엮어 보면 의외로 재미있는 그림이 나올 수도 있을 듯했다.
“음후후훗.”
나는 음흉하게 웃으며 버베나 궁을 빠져나갔다.
물론 뒤에서 마가렛과 다른 궁인들이 ‘우리 황녀님이 또 뭔가를 부수려고 계획 중이신가 보다……’ 하는 눈으로 아련하게 나를 쳐다보는 건 알지 못했다.
* * *
“이 배신자!”
아닛, 누구야? 누가 또 배신자 소리를 하였어?
다음 날, 나는 우리 궁 앞에서 실랑이 중인 녹색 소년들을 발견했다.
“진짜 나 대신 아스포델을 선택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배신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3황자님, 저는…….”
“변명하지 마! 내가 그동안 너한테 어떤 호의를 베풀었는데!”
나는 또 치정 싸움 같은 분위기를 내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쯧쯧 혀를 찼다.
한 명은 청록색, 다른 한 명은 민트색 머리를 가진 두 소년은 3황자 헬리만과 소설의 서브 남주인 히아킨 란타나였다.
왜, 지난번에 화원에서 만났을 때 헬리만과 그 똘마니들에게 은근히 따돌림당하는 히아킨 란타나를 내 궁에 초대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약속한 주말이 되어 드디어 오늘 저 소년이 입궁하게 된 것이다.
망나니 황녀님의 제멋대로 인생 계획